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69화 (269/468)

269화. 부항자국 아트스트 (2)

[새로운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스킬명 : 부항 Lv.1]

[부항 기구로 환자의 피부에 음압을 발생시켜 이로운 치료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부항 치료 효과 +10%]

[스킬 옵션 : ① <부항자국 아티스트>를 활용하면 환자에게 각종 추가 버프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

역시나 예상했던 결과다.

부항으로 많은 사람을 치료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 이를테면, 부항에 관련된 스킬이 개방될 거라는 간단하고도 명료한 결과 말이다.

그런데 이건 예상 못 했다.

‘부항자국 아티스트?’

라키엘은 눈을 가늘게 뜨며 메시지창을 노려보았다.

[당신은 성물을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과감한 치료법으로 100명의 환자를 뱀파이어 변이증으로부터 구해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신이 지니고 있던 기존의 부항 치료요법에 대한 지식이 큰 영향을 받았으며, 숙련된 지식만큼 깊어져 있던 고정관념의 일부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당신이 지니고 있던 부항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며, 새로운 옵션 활용의 길이 열렸습니다.]

[스킬 옵션 : <부항자국 아티스트>를 통해 당신은 환자의 부항 자국에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이 일정 조건을 충족시킬 때, 부항자국에 새겨진 그림이 환자에게 각종 이로운 효과를 부여할 것입니다.]

“…….”

고정관념이라.

어쩌면 내가 한의대에서부터 배우며 익힌 지식이 일종의 벽처럼 내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걸까. 그렇게 나는 기존의 지식이라는 고정관념의 틀에 붙잡혀 있었던 걸까.

‘사실 부항이야 유사 이래로 엄청 대중적인 처치법이었으니까.’

그러했다.

부항의 역사는 깊었다.

또한, 거의 모든 민족이 애용했다.

보통은 동양,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지에만 부항요법이 발달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틀린 고정관념이다. 역사 이래로 부항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받은 치료요법이었다.

‘사실 부항의 원리는 엄청나게 간단하거든. 문어 빨판 같은 음압을 발생시켜서 피부를 자극하고, 그걸로 국부 모세혈관의 충혈이나 파열을 의도적으로 일으켜. 그러면 신체가 손상된 부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반응하지.’

일명, ‘자가용혈(自家溶血)’ 현상이 일어난다. 조직에 대사 산물이 만들어진다. 신체의 자가회복 사이클이 앞당겨진다. 자연히 면역력이 증진된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러한 일련의 자극이 신체의 혈관수용기를 통해 중추신경에 전달된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적절하게 조절한다. 아울러 신체 조직의 대사와 탐식작용을 끌어올려 준다.

즉, 게임으로 치자면?

캐릭터의 생명력 리젠률을 끌어올리는 버프인 셈이다.

‘방법은 간단하고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데 효과는 괜찮아. 많이 아프지도 않아서 진입장벽도 낮지. 그만큼 가성비가 좋은 치료법이야. 덕분에 역사상의 수많은 민족이 부항을 애용한 증거가 곳곳에 남아 있고.’

대표적으로는 그리스의 의사들이 있겠다. 이미 그때부터 그리스 성님들이 부항을 받으며 그 시원함에 크어어 뻑…… 아니, 제우스 만세를 외쳐댔다.

그 유구한 전통이 중세를 거쳐 유럽 곳곳에 변형되고 발전하며 이어졌다. 영국의 커핑테라피(Cupping therapy), 프랑스의 출산을 돕는 방투즈(Ventouse), 독일의 슈뢰프코프(Schröpfkopf) 등이 좋은 예시일 것이다.

‘게다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성님들도 소뿔을 사용해서 부항을 즐겼다고도 하니까 뭐.’

이쯤이면 거의 모든 민족이 다 즐긴, 고장 난 전자제품은 때리면 낫는(?)다는 풍습과 버금갈 지구 휴먼 전통의 민간요법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자신이 부항 요법의 고정관념에 휩싸여 있던 것은.

‘쉽고, 간단하고, 역사가 깊고, 그래서 오히려 쉽게 생각한 거였어, 내가. 다 안다고 지레짐작하며 자만했던 거지.’

그런데 지금 보니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깊은 경지가 있었다.

뱀파이어 변이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며 발버둥을 치다가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고정관념의 벽을 깨고 깊은 경지를 엿본 것이리라. 그 결과, 이러한 뜻밖의 옵션을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딩동!

상큼한 알림음과 함께 후속 메시지가 또르륵 떠올랐다.

[스킬 옵션 : 부항자국 아티스트는 당신이 이룩한 성과에 따라 활용 가능한 범위가 확장되는 성장형 옵션입니다. 당신은 부항 치료를 통해 뚜렷한 의료적 업적을 세울 때마다, 새로운 부항자국 도안과 버프를 획득할 것입니다.]

[현재 보유한 도안 개수 : 1개]

[도안의 상세한 목록과 내용을 열람하시려면 <여기>를 선택해 주세요.]

“…….”

꾸욱, 눈빛으로 <여기>를 눌렀다. 그러자 획득한 부항자국 도안의 내용이 펼쳐졌다.

딩동!

[보유 중인 도안의 개수 : 1개]

[도안 ① : 흡혈귀 퇴치의 도안]

[환자의 몸에 새겨넣을 시, 뱀파이어 변이증의 치료에 이로운 효과를 불러옵니다.]

“……뭐?”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의문사가 덩실 튀어나왔다. 덕분에 방금 완치된 환자가 흠칫, 놀랐다. 하지만 라키엘은 개의치 않고 도안의 설명을 거듭 읽었다.

‘이거 미쳤는데?’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오장육부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걸까.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이 획득한 새로운 스킬의 옵션 내용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심장 : 뭐? 부항자국에 그림을 그려? 각종 버프를 획득한다고? 그럼 여자 사람 그리면 환자한테 여자친구 생김?]

[허파 : 퍼허허……ㅋ]

[대장 : 그럼 우리 몸뚱이가 셀프로 부항 받고 그림 그리면요?]

[간장 : 응 그래도 안 생김.]

[위장 : 바랄 걸 바라야지ㅋㅋㅋ]

[콩팥 : 아 양심 좀ㅋㅋㅋㅋㅋㅋㅋ]

[비장 : 야야 살살 패라. 우리 몸뚱이 울면 혈당 떨어진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새로운 스킬과 옵션 획득을 축하하며 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19,400]

“…….”

아니 난 딱히 여자친구에 목매는 사람도 아닌데. 그런데 왜 갑자기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눈물 한 떨기를 배송하려는 걸까.

‘오장육부 이것들, 줄빠따 치고 싶네.’

언젠가는 저놈들을 의인화시켜서라도 반드시 해내고 만다, 내가.

라키엘은 눈꼬리에 맺히려는 눈물을 훌쩍 털어내며 부항 스킬과 옵션의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간단했다. 뱀파이어 변이증의 치료를 돕는단다. 그럼 혹시, 지금 활용하고 있는 대주교의 성물을 쓰지 않아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직접 해보면 알겠지.’

라키엘은 방금 완치된 환자를 내보냈다. 그리고 다음 환자를 불렀다.

“으으…….”

변이증과 웅녀 테라피에 동시 폭격(?)을 당하여 초췌해진 환자가 들어왔다. 50대 초반의 여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성물을 뚝 잘라서 만든 부항컵을 사용해야 할 차례. 그러나 라키엘은 이번에 다른 부항컵을 들었다. 유리 몸체와, 위쪽의 말캉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일반 부항컵이었다.

뿌븟!

부항컵 위쪽의 가죽 부위를 손으로 강하게 눌렀다. 그 상태에서 환자의 등에 부항컵을 붙였다. 손을 놓았다. 오므라들었던 가죽 부위가 펼쳐지며, 부항컵 안쪽에 음압이 발생했다. 즉, 문어 빨판처럼 환자의 등판에…….

……뿁!

하고 야물딱지게 달라붙었다.

‘이번엔 피를 빼지 않는 건식 부항으로.’

성물을 이용할 때는 성물 부항컵 안쪽에 피를 고이게 하여야 했다. 그래야 성물과 접촉되는 환자의 혈액이 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이해한 부항 스킬의 옵션 내용대로라면, 굳이 피를 빼지 않고도 뱀파이어 변이증의 치료가 가능해질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여러 개로 해보자.’

뿁, 뿁! 뾰뵵! 뿁!

총 5개의 부항컵을 등판 이곳저곳에 추가로 붙였다. 그리고 기다렸다. 부항컵이 환자의 등에 빨갛고 동그란 자국을 확실하게 새길 때까지. 뜸을 들이는 심정으로. 라면 면발이 딱 적당하게 익어 주기를 기다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렇게 10분이 흘렀다.

‘좋아.’

라키엘은 손을 뻗어 부항컵 위쪽의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푸슈웁!

공기가 부항컵 안쪽으로 들어가며 음압이 풀렸다. 부항컵이 환자의 등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왔음은 물론이었다.

그 자리에 남겨진 새빨간 부항자국.

그걸 보는 순간, 자동으로 스킬 옵션이 발동되었다.

딩동!

[당신은 방금 시술된 부항자국을 감지하였습니다.]

[부항 스킬 옵션 ① : 부항자국 아티스트의 발동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부항자국 아티스트를 발동하려면 붓, 펜 등의 필기구를 들고서 환자에게 접근해 주세요.]

“…….”

시키는 대로 했다.

마침 근처에 작은 사이즈의 붓이 있었다. 붓을 들어 잉크로 적셨다. 그랬더니 스킬 옵션이 본격적으로 발동되었다.

딩동!

[부항 스킬 옵션 ① : 부항자국 아티스트가 발동됩니다.]

[보유한 도안의 개수가 1개이므로, 도안 선택의 과정이 생략됩니다.]

[보유 중인 <흡혈귀 퇴치의 도안>을 사용합니다.]

스윽!

붓을 든 팔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어떻게 말리고 자시고 할 사이도 없었다. 일필휘지의 기세로 환자의 등판 부항자국에 도안을 새기기 시작하였다.

슥슥! 스슥! 슥!

마치 컴퓨터로 레이저 각인을 하는 듯한 거침없는 손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그마한 그림이 동그란 부항자국에 싹싹 새겨졌다. 그러한 도안의 실물은 송곳니가 뽑혀서 엉엉 우는 뱀파이어의 얼굴이었다.

한데 그림의 실력이 가관이었다. 정교해서? 아니, 절대로. 이건 그냥…….

‘차라리 내 손재주로 직접 그리는 게 낫겠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삐뚤빼뚤했다. 유치원생이 고사리손으로 그린 그림을 보는 듯했다.

한데 이쪽의 항의(?)를 들은 걸까.

메시지의 얄미운 대답이 즉각적으로 돌아왔다.

딩동!

[출력되는 도안의 예술성은 스킬 보유자의 실제 그림 실력을 기반으로 합니다. 불만 금지.]

“…….”

네, 얌전히 닥치겠습니다.

팩트로 후드려맞은 라키엘은 입을 찰싹 다물었다. 그 사이, 스킬 옵션의 인도를 받는 그의 손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5개의 부항자국에 똑같은 도안 5개를 새길 수 있게 되었다.

한데 그런 이쪽의 모습이 심히 괴상했던 걸까.

“저기…… 전하?”

스킬 발동을 마치고 보니, 수간호사 아니스가 당혹감에 젖은 눈길을 보내오고 있었다. 갑자기 뭔 돌아이짓을 하시느냐는 뜻을 나름의 예절로 포장한 눈길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럴 법도 했다. 잘 쓰던 성물 부항컵을 던져놓고 일반 부항컵을 쓰는 것도 의아한데, 그 부항자국에 다짜고짜 유치원생 수준의 그림을 빼곡하게 그리는 황태자라니.

하지만 라키엘은 아니스의 의문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눈앞에 떠오를 추가 메시지에 집중하였다.

‘자, 스킬 옵션을 썼으니까 결과를 보여줘.’

아까 읽은 내용에 따르면 도안이 환자에게 각종 버프를 걸어준다고 했다. 특히, 이번에 얻은 <뱀파이어 퇴치의 도안>은 뱀파이어 변이증의 치료에 이로운 효과를 불러온다고 했는데…….

딩동!

‘떴다!’

과연 도안의 효과가 눈앞에 숑숑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효과의 내용이…….

‘미쳤는데, 이건?’

라키엘은 마른침 한 덩이가 덩실덩실 환호와 기쁨의 탭댄스를 밟으며 식도를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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