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75화 (275/468)

275화. 약점을 찾아라 (2)

약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보이지가 않는다.

데미안 카이엔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황태자를 사로잡고서 대치하고 있는 거구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쟈빌론.’

앙부아즈 내전.

그 혼란의 끄트머리에서 자신에게 제압되었던 반란자. 그 후에 놈은 앙부아즈 왕국군에게 인계되었는데. 마법실험실로 끌려갔다고 들었는데. 한데 어떻게 여기에,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아니 그보다는, 대체 어찌하여 나는 놈의 행각을 막지 못하였나.

“…….”

막기엔 너무나 멀었다.

알아차린 후엔 늦었다.

애초부터 윗분들의 명령 때문에 시성식 행사장의 외곽인 광장 둘레에 배치되었던 자신이었다. 행사의 열기에 흥분한 군중이 광장으로 우르르 밀려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것. 그것이 오늘 자신이 맡은 임무였다.

물론 그럼에도 황태자가 있는 단상 쪽으로 신경을 쓰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예를 들자면, 일반적인 소드마스터를 능가하게 된 미친놈이 단상과 가까운 거리에서 감행한 급습 같은 것들.

하지만 그건 모두 핑계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윗분들의 명령이라 해도 따르지 말았어야 했다. 고집을 부려서라도 단상과 가까운 곳에 있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쟈빌론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황태자가 인질이 된 지금 같은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겠지.

‘전하.’

그는 초조한 시선으로 황태자와 쟈빌론을 살폈다. 상황은 일촉즉발이었다. 쟈빌론은 황태자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 황태자를 잡지 않은 맨손에서 오러소드를 줄줄이 뽑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다섯 줄기나.

“무슨 저런…….”

곁에서 나란히 검을 든 프란델 경이 창백해진 얼굴로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동안 데미안은 쟈빌론의 허점을 찾기 위해 모든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냈다.

‘내가 최대한의 속도로 급습을 하면? 가능할까.’

아니.

불가능.

맨손으로 검기를 뽑아내는 경지에 이른 쟈빌론이었다. 전보다 강력해졌다는 뜻이다. 자칫, 자신보다 쟈빌론이 먼저 반응을 하면 황태자의 신변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기만법은?

‘어떻겠습니까?’

데미안은 옆으로 눈짓을 보냈다. 그의 눈길을 받은 황실의 소드마스터, 키에르사 경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도 좀처럼 쟈빌론의 허점을 찾아내지 못하는 듯했다.

‘저격을 기대해야 하나. 아니. 그것도 별로 쉽진 않을 듯한데.’

광장 주위의 건물 옥상마다 배치된 샤프슈터들도 미덥지가 않았다. 아무리 그들이 명사수라고 해도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황태자가 방패막이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래서였다.

“…….”

역혈의 심법을 써야 하는 걸까.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황태자가 더 위험해진다면, 어쩔 수 없이라도…….

……라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데미안은 황태자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쟈빌론에게 붙잡힌 채로 빵긋 웃고 있는 황태자의 얼굴을.

‘…….’

저거, 보통 인질이 짓는 표정인 건가. 아닌데. 내 상식으로는 절대 아닌데. 그런데 전하는 왜 저러고 계신 것일까. 혹시 정신이 나가셨나. 그것도 아닌데. 원래 평소부터 정신이 좀 나가 계신 분이니까.

‘어째서입니까?’

눈짓으로 물었다.

황태자도 이쪽의 의아함을 알아본 건지 더욱 대놓고 씨익 웃어 보였다. 심지어 한쪽 눈을 찡긋거리기까지 했다!

“…….”

즐기고 계신 건가.

에이, 아니겠지 설마.

그런데 어째서 나는 전하의 저 웃음을 보는 순간, 안심이 되는 걸까.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아직 황태자가 적의 수중에 붙잡혀 있는 상황인데. 한데도 황태자의 미소를 보니까 마음이 놓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어쩐지 그랬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런 표정을 짓는 전하께는 언제나 계획이 있었으니까.’

항상 그랬다.

믿을 수 있었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슨 심산이신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기다리겠습니다.’

분명 황태자가 뭔가를 파악하고 계획을 세운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며 자신이 할 일은 하나다. 황태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에 때를 맞추어 적절하게 호응하는 것.

그때부터였다.

스윽…….

데미안은 손에 쥔 검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렸다. 전신의 긴장을 풀었다. 여전히 열은 펄펄 끓고 컨디션은 엉망이었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감각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덕분에 라키엘의 마음도 든든해졌다.

‘좋아.’

다행히 데미안이 이쪽의 뜻을 어느 정도 파악한 듯했다. 마음이 놓였다. 이쪽이 움직이기 전에 주위에서 섣불리 움직이면 망하니까. 방금 자신이 파악한 쟈빌론의 상태를 적절하게 이용할 수 없게 될 테니까.

‘이놈, 분명 정신지배를 당하고 있어.’

라키엘은 곁눈질로 쟈빌론의 옆얼굴을 살폈다. 방금 진맥 스킬을 통해 파악한 내용 또한 떠올렸다. 심각한 수준의 인지부조화와 강박증. 그리고 세뇌에 가까운 정신지배를 받는 상태라고 하였던가.

‘정신지배 마법이라.’

문득, 소설 마검황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소설 속 데미안이 정신지배 마법에 구속된 8인의 광전사와 대결했던 에피소드가 새록새록 기억 속에서 피어났다.

‘그 에피소드에서 데미안은 거의 죽을 뻔했지. 8인의 광전사 하나하나가 강력했을뿐더러, 마치 한 사람이 조종하는 것처럼 너무나 유기적으로 공수일체의 압박을 가했거든.’

하지만 결국 데미안이 이겼다.

비결은 간단했다.

위기의 순간에 정신지배 마법의 사소하지만 중대한 약점을 역이용한 덕분이었다.

‘그것은 바로…… 정신지배 마법의 시전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각의 공유.’

정신지배 마법은 무적이 아니다.

당연히 대가를 바쳐야 한다.

그것이 ‘감각의 공유’였다.

‘마검황의 내용에 따르자면, 정신지배 마법을 시전할 때마다 시전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한 가지의 감각이 공유되며 묶인다고 했지. 말 그대로 무작위, 랜덤으로 한 가지만.’

때로는 통증일 수도 있다.

혹은 미각이나 후각일 수도 있다.

아마 쟈빌론과 흑마법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뭘까.’

자세히 파악해보자.

‘진맥!’

다시금 진맥 스킬을 시전했다.

딩동!

아까와 다름없는 종합검진표와 종합소견이 떠올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신경쓰지 않았다.

‘오장육부, 이번엔 확실하게 더 자세히 상담을 했겠지?’

잠시 기다렸다.

역시나 상담 결과가 떠올랐다.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쟈빌론의 오장육부와 다시금 실시한 상담 결과를 보고합니다.]

[심장 : 일단 공유된 감각이 심장박동은 아님ㅋ]

[허파 : 허파도 아님…… 허픕ㅋ]

[대장 : 장의 연동운동이나 괄약근 움직임도 공유되진 않았지 말입니다?]

[간장 : 아깝다!]

[위장 : 응? 왜?]

[콩팥 : 생각해봐. 괄약근이 공유된 거였으면 그냥 게임 한 큐에 터지는 거 아니겠음?ㅋㅋ]

[비장 : 그게 말이 됨? 아무리 그래도 한쪽이 힘 꽉 주고 참으면서 틀어막으면?]

[콩팥 : 그래도 상관없음. 무거운 덩어리로 뚫으면 됨ㅋ]

[비장 : 어떻게?]

[콩팥 : 크하핫 ㄸ……아니, 천근추!]

[비장 : 천 근? 요즘은 그런 단위 안 쓰는데?]

[콩팥 : 크하핫 1322.77357 lb추!]

[무단으로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하여 사회질서에 크나큰 혼란을 불러온 콩팥이 근신형에 처해졌습니다.]

“…….”

그만해 미친놈들아.

상담을 하고 오랬더니 이게 무슨.

라키엘은 한탄했다. 한편으로는 오장육부의 상담으로는 정신지배로 공유된 감각의 정체까지는 밝혀낼 수가 없음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내가 직접 알아내야지.’

결심한 라키엘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우렁찬 비명을 느닷없이 꽥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람 살려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질렀다. 아예 고막 뻥 터지라고, 달팽이관 무너지라고, 일부러 쟈빌론의 귀에 입을 바싹 붙이고서 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천하의 쟈빌론조차 기겁하고 말았다.

“……그읏? 무슨 짓이오? 조용히 못 하겠소?”

“싫어!”

“…….”

“인질인데 비명도 못 지르나! 끄아아아…… 읍읍!”

“…….”

무슨 이런 미친놈이.

미친 쟈빌론이 황태자를 미친놈 쳐다보듯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동안 라키엘은 전혀 개의치 않고 광장을 재빠르게 훑어보았다.

혹시 귀를 감싸 쥐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보였다.

‘오호?’

라키엘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살펴보았다.

광장 외곽에 가까운 자리. 귀빈석 말고 일반석. 그곳에 운집한 사람들 가운데 고개를 숙이고서 왼쪽 귀를 감싸 쥔 사람이 보였다. 나이가 많지는 않은 남자 같았다.

“…….”

영락없이, 아무런 대비도 없던 상태에서 귓가에 굉음을 접수(?)한 사람 같은 괴로운 몸짓이었다. 혹시 우연찮게도 방금 저 사람 주위에서 소리를 지른 이가 있었을까. 아니. 없는 거 같은데. 설마 공유된 감각이…… 청각인가.

그럼 한 번 더 확인.

‘흐읍!’

순간적으로 아스라한 심법을 사용했다. 체내의 마나를 증폭시켰다. 그 힘을 목과 턱 근육에 집중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입을 틀어막은 쟈빌론의 손바닥을 살짝 밀어내고 틈을 만들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그 순간, 재빠르게 비명 추가타를 날렸다.

“갸아아아아아악-!”

뜻밖의 고막 테러(?)를 또 당한 쟈빌론이 얼굴을 찡그리고 괴로워하며 목을 움츠렸다.

그리고 동시에…… 일반석에 있던 예의 그 사내가 쟈빌론과 똑같이 괴로워하며 왼쪽 귀를 부여잡는 것이 보였다.

찾았다.

확신이라는 감정이 찡긋 윙크를 날리며 전두엽을 똥똥 때렸다.

“저놈이다!”

라키엘은 즉시 그곳을 가리키며 고자질하듯 알렸다.

“저기! 일반석 바깥에서 다섯 번째 줄! 왼쪽 귀 감싸고 있는 저놈!”

“……!”

이쪽의 외침을 들은 걸까. 아마도 그런 거겠지. 쟈빌론과 청각이 공유되고 있을 테니까. 너무나 생생하게 들리겠지. 그러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 테고.

놈이 화들짝 놀라며 왼쪽 귀를 감싸던 손을 내리는 게 보였다.

‘넌 낚였어, x끼야.’

라키엘은 내심 쾌재를 부르며 즉시 외쳤다.

“저거저거! 방금 귀 감싸다가 놀라서 손 내린 놈!”

“……!”

“자긴 아니라는 듯이 어색하게 고개 갸웃거리면서 담 걸린 척 뒷목 주무르고 있네 저거저거!”

“……!”

“하얀 셔츠에 파란 망토! 유행 지난 느끼한 갈색 곱슬 장발! 뒤로 물러서려다가 뒷사람 어깨빵 때렸다! 어? 어어? 부딪친 사람한테 미안하다고도 안 해? 인성 봐라 참내!”

“……!”

“저놈이 인질범을 조종하는 진짜 흉수다! 저놈부터 밟아!”

“……!”

인파 속에 파묻혀 자신이 나설 타이밍을 재고 있던 사내. 오늘의 거사 계획이 완벽하다며 내심 만족스럽게 웃고 있던 흑마법사.

안심하고 있다가 졸지에 지목을 당한 아난샤는 몹시 당황하며 저도 모르게 허둥지둥, 영덕대게 스텝을 밟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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