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뱀파이어 로드의 고민 (3)
발기부전(勃起不全, Erectile Dysfunction, ED).
국제 질병 분류 기호로는 F52.2와 N48.4.
성욕이 있음에도 음경이 발기하지 못하는 남성의 성기능 장애를 뜻하는 용어이다. 이건 절대로, 결코, 비하적이거나 야시시한 목적의 성적인 용어가 아니다. 엄연히 질환이고, 병원에서의 진료 과목이며, 당사자들이 현실로 느끼는 고통이다.
실제로 발기부전에 시달리는 이들은 심각한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된다. 또한, 이를 치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시에는 법적인 이혼 사유가 되기도 한다. 평화로운 한 가정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질환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한데 어째서.
도대체 어떻게.
뱀파이어 로드씩이나 되는 분께서…….
“혹시 여기서, 발기부전 치료가 가능한가?”
“…….”
뱀파이어 로드, 힐데르트의 표정은 진지했다. 눈빛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지하다 못해서 아예 비장할 지경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어떻게 반응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려낼 뻔하기는 했다. 같은 남자로서 느끼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며 탄식을 참아내고, 삼켰다. 그건 자신의 질환을 밝힌 환자가 절대로 받아서는 안 되는 리액션이니까.
‘안 되지. 안 돼. 그냥 다른 질환도 아니고 성기능 장애, 발기부전인데 그걸 밝히는 자체만으로도 고민과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테니까. 엄청나게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자기비하적인 감정이 소용돌이가 치고 있을 테니까. 그걸 어렵사리 참아내고 극복한 끝에 자신의 입으로 밝혔는데…… 탄식을 흘려 버리면?’
환자가 느낄 수치심은 수백 배로 증폭될 것이다. 아무리 이쪽이 호의를 지닌 채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라도 그렇다. 공감은 그런 곳에 쓰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의료인은 공감이라는 감정을 정말로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환자 앞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에서 한의사로서 쌓은 오랜 경험.
덕분에 라키엘은 뱀파이어 로드의 말을 듣고서도 완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함부로 안타까움을 드러내거나, 안됐다는 눈빛도 보내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평범한 점심 메뉴를 들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게 환자를 위한 최선이기 때문이었다.
“흠, 발기부전이라고요. 앞서 방문한 의사들에게서는 어떠한 처방을 받았습니까?”
“약초와 각종 심리적 치료를 받았네.”
“효과는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내가 여기에 오지 않았겠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솔직히 힘들다.
환자를 위해서 반응을 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데, 그 환자라는 게 뱀파이어 로드다 보니까 인간적으로 무반응을 유지하기가 정말로 힘들었다. 안타깝기 이전에, 신기했다. 궁금했다. 좀이 쑤실 정도로!
라키엘은 원장실 책상 아래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자신의 양쪽 허벅다리를 두 손으로 꼬집듯이 꽉 붙잡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힘껏 컨트롤하며 양쪽으로 휙휙 곁눈질을 보냈다. 다행히 함께 있는 데미안도, 아니스도 열심히 무표정을 유지하는 모습이었다.
자, 그럼 나도 다시 건조한 한의사 모드로.
“그럼 증상은 언제부터 시작되셨지요?”
“처음부터였네.”
“예? 처음부터라니요?”
“태어나던 때…… 아니, 내 경우엔 탄생하던 순간부터라고 해야 할까.”
로드, 힐데르트의 목소리가 회한에 젖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나는 뱀파이어일세. 평범한 뱀파이어도 아닌, 로드에게만 전해지는 진혈의 일족이지. 그렇기에 나는 심장이 뛰질 않네.”
“태생적으로 말입니까?”
“그렇다네. 한 번도 심장이 뛰어본 적이 없지. 기나긴 내 생애를 통틀어 단 한 번도.”
힐데르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정말로 그러했다.
심장이 뛰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경험해보질 못했으니까. 그 어떤 순간에도. 그 어떤 긴박한 찰나에도. 머나먼 과거, 마룡이라 불리던 카이저투스에게 패배하여 포로가 됐던 때에도, 어느 인간 소녀를 만나 구원받았던 나날에도.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심장은 한 번도 뛴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내게는 혈액도 없다네.”
“혈액이…… 말입니까?”
“그래. 내 혈관은 비어 있지. 인간들 사이엔 이런 말이 있을 텐데. 찔러도 피 한 방울도 안 나올 놈. 맞네. 그게 바로 나일세.”
“잠깐, 그럼…….”
로드의 말을 듣던 라키엘은 멈칫했다. 돌연 머릿속이 파파팍 돌아가며 발기부전의 원인이 퍼즐처럼 착착 맞추어진 까닭이었다.
‘심장이 뛰질 않고, 혈액이 없어? 그럼 혈압이 0이라는 소리고. 혈압이 없으면 남성의 성기 내부의 해면체를 채울 수가 없으니까…… 발기가 불가능한 거로구나.’
그럼 내 눈으로 확인.
그는 다시금 경혈스캐닝을 발동하며 로드를 더욱 자세히 관찰했다. 아까는 일반적인 드래곤을 능가하는, 그야말로 도도한 마나의 흐름 때문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정말이었다.
전신에 흐르는 마나는 엄청난데, 정작 심장으로 통하는 마나의 흐름은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니고 있을 혈액의 흐름도 느껴지는 바가 없었다. 게다가 헤모글로빈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인지, 경혈 스캐닝의 업그레이드 기능도 적용되지가 않았다.
‘저 말이 진짜였네.’
비로소 알겠다. 어째서 뱀파이어 로드가 태생적인 고ㅈ…… 아니, 발기부전 환자인 건지. 그런데 동시에 한편으로는 더욱 궁금해졌다.
“그러면, 로드시여?”
“지금은 자네의 환자이니 편하게 힐데르트 님, 이라고 불러주게. 인간의 황태자이자 별궁 한의원의 원장이여.”
“예. 감사합니다, 힐데르트 님. 일단 힐데르트 님이 발기부전에 시달리는 이유는 알겠습니다. 심장이 뛰지 않고, 혈액이 없기에 음경을 채워줄 혈압이 낮은 것이 원인입니다.”
“그런가?”
“예.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는 눈초리군. 기나긴 시간을 이런 상태로 살아왔을 내가, 갑자기 이제 와서 발기부전 치료를 원하는 이유가 뭔지. 그게 궁금한 거겠지?”
“……죄송합니다.”
“아닐세. 어차피 말하려 했네. 내 목적을 알아야 자네도 더욱 치료에 협력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절실한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물론.”
로드 힐데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차근차근, 차분하게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
“기나긴 생애를 살아오며 처음으로,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네.”
“여인이…… 말입니까?”
“으음. 첫사랑일세. 그리고 하늘이 내려준 행운과 축복 덕분에 고백에 성공했고, 그녀가 날 받아들여 주었지.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하였네. 3년 전에 말일세.”
“아,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하지만…… 그래서 문제가 생겼지.”
“후손을 만들어야 하는 문제인 겁니까?”
“아니.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로드 힐데르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폭탄 같은 발언을 했다.
“내 아내는 평범한 인간일세.”
“……예?”
“놀랍겠지. 나도 놀라워. 내가 하필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 여성에게 한눈에 반하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야. 하지만 어쩌겠나. 이것이 인연이고 운명인 것을. 그런데 문제는…… 내 아내가 뱀파이어의 방식으로 후손을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지.”
“뱀파이어의 방식이라시면…….”
“아, 깨무는 것은 아닐세. 그건 일반 뱀파이어들의 방식이고. 나 같은 진혈의 뱀파이어는 선택된 존재에게 진혈의 권능을 승계하지. 그렇게 로드의 혈통을 이어갈 후손을 ‘생성’할 수 있네.”
“그런데 와이프분, 아니, 사모님께서는…….”
“그래. 인간의 방식으로 아이를 만들고, 낳기를 원하고 있어.”
힐데르트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심적인 고통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는 아내의 뜻이 이해가 되지 않았네. 어째서? 왜? 라는 생각만 들었지. 하지만…… 그녀는 나를 위해 그렇게 하려는 것이었어.”
“힐데르트 님을 위해서요?”
“그래. 진혈의 방식으로 후손을 남기면, 그 즉시 내가 소멸할 테니까.”
“……소멸이라니요?”
저건 무슨 소리일까.
로드 힐데르트가 씁쓸한 미소를 내보였다.
“원래 그런 것이라네. 진혈은 단 하나의 존재에게만 허락된 권능일세. 세상에 둘은 공존할 수가 없지. 하나가 생겨나면, 하나는 사라져야 해. 그것이 정해진 순리이고, 진혈의 뱀파이어 로드가 지닌 숙명일세.”
“그렇다면,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선택된 존재에게 진혈의 권능을 승계한 뒤엔, 힐데르트 님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뜻입니까? 죽는 것처럼요?”
“바로 그러하네.”
“…….”
이건 무슨 짝짓기 끝나자마자 요단강 건너가는 딱정벌레도 아니고.
라키엘은 문득 든 잡념을 얼른 집어넣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방식으로 아이를 낳겠다는 사모님의 생각은 모두 힐데르트 님을 위한 것이었군요.”
“그렇지. 내가 소멸하지 않으면서도 둘 사이의 아이를 만들 방법이랄까. 아내가 말했어. 우리의 아이가 반인반혈의 혼혈 뱀파이어이기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울고, 웃고, 때때로 사랑하며 이 세상의 한 곳을 자신만의 색채로 채우게 될 거라더군. 대를 이어서, 면면히. 그것이 인간이 영생을 누리는 방법이라고도 했지. 그리고 나는…… 그녀의 뜻을 존중하며 따르고 싶어.”
“그렇군요.”
“그래. 이쯤이면 내가 발기부전 치료를 받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았겠지?”
“예, 충분히 알겠습니다.”
비로소 알겠다.
강대한 뱀파이어 로드와 평범한 인간 여성이 사랑 끝에 결혼을 했다. 둘만의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 로드의 생존을 유지하도록, 인간의 방식으로, 평범하게, 행복을 담아서.
그런데 그게 불가능해진 거다.
강대한 뱀파이어 로드가 밤에는 강대하지(?) 못해서. 고개 숙인 남자가 되어서. 그는 당혹스러웠을 테고, 아내는 걱정이 가득해졌겠지. 그래서 로드는 전국 방방곡곡의 명의를 찾아다녔음에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다.
일단 궁금증은 풀렸다.
증상의 원인도 알겠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어떡하지?’
솔직히 ㅈ됐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발기부전은 절대로 만만한 질환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러할진대, 평범하지 않은 뱀파이어 로드의 발기부전은 대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걸까. 진짜로 감도 잡히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료를 거부해야 할까? 치료가 어렵겠다며 정중히 달래서 돌려보내야 할까?
‘아니.’
그건 싫었다.
뱀파이어 로드이기 이전에, 진료를 받고자 자신을 찾아온 환자였다. 그런데 아무런 시도도 해보지 않고 돌려보낸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게다가 같은 남자로서도 그런 잔인한(?) 짓은 차마 못 하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부디…… 크흡…….”
자신의 사연을 모두 말한 로드, 힐데르트가 갑작스러운 북받침을 느낀 건지, 살짝 울컥하며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그렁그렁하게 젖은 눈으로 이쪽을 애절하게 쳐다보았다.
“부디, 제발, 나를 좀 세워주게.”
“…….”
문득, 나도 울고 싶어졌다.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