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오해도 때로는 실마리가 된다 (1)
접수는 완료했다.
결국, 뱀파이어 로드를 진료해 주기로 했다.
“후우.”
모두가 자리를 비워 혼자 남은 원장실. 그곳에서 라키엘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아침에 일어나던 때까지만 해도 이런 하루를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버라이어티? 차라리 그러면 다행인데.
‘이제부터가 고민의 늪이겠네, 아주.’
그는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로드 힐데르트와 진료 상담을 마치기 직전, 다시금 그의 몸을 상세하게 스캔했더랬다. 덕분에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로드의 몸속에 흐르는 도도한 마나의 기세. 가히 바다와 같았다. 그런데 정작 심장으로 들어가는 마나의 흐름은 전혀 없었다.
‘맥박이 없었어. 그의 말대로 심장이 뛰질 않는 거야. 아니, 차라리 그것만이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
단순히 심장이 안 움직이는 거라면? 그래서 발기부전이 오던 거라면?
심장을 뛰게 만들면 된다.
전극을 심건 뭘 하건 그거 하나만 해결하면 만사 오케이일 것이다. 심장이 뛰면 혈액이 돌고, 혈액이 돌면 음경의 해면체가 채워질 수 있게 되고, 해면체가 채워지면 로드의 성기능도 우뚝 살아나겠지.
그런데 지금 로드 힐데르트의 상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심장만 안 뛰는 게 아니야. 혈액도 없어. 아예. 그냥 혈관이 텅텅 비어 있어.’
사실상 그게 제일 큰 문제였다. 혈관은 그냥 무늬만 남았을 뿐, 몸에 혈액 자체가 없었다. 대신 강대한 마나가 그를 움직이게 하고 있을 뿐. 그렇다고 그 마나가 혈관을 따라 흐르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골치가 아팠다!
‘마나가 혈관으로 흐르고 있으면…… 그냥 마나로 해면체를 채우면 될 테니까. 그런데 이 경우엔 그것도 안 돼. 마나가 흐르는 경로가 혈관과 완전히 따로 놀고 있어.’
라키엘의 미간이 콱 찡그려졌다.
차라리 마법이라도 써야 하나.
어쩌면 그게 더 빠를 듯한데.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동시에 로드 힐데르트가 했던 말도 함께 떠올랐다.
‘마법? 당연히 써보았네. 아예 전용 마법을 창안해보려고도 했지. 하지만…… 불가능했어. 나름 갖가지 수를 다 써보았지만…….’
그래도 실패했단다.
다른 이도 아닌, 드래곤과 가히 쌍벽을 이룰 마법의 마스터인 뱀파이어 로드가 말이다.
“…….”
사실 진혈의 뱀파이어의 음경이라는 거. 그냥 애초부터 기능하는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어진 거 아닐까.
슬슬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래도 지레짐작으로 포기할 수는 없어.’
어쨌거나 접수를 받은 환자다. 게다가 아까 이쪽을 쳐다보던 로드의 애절한 눈빛이 뇌리를 떠나질 않았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만큼…….
‘치료에 성공하게 되면, 보상 또한 어마어마할 테지.’
생각해보면 그랬다.
다른 이도 아닌, 무려 뱀파이어 로드였다. 그런 강대한 존재의 절박한 고민을 해결해 준다면 얼마나 많은 이득을 누리게 될까. 최소한 저런 존재와 친분을 다질 수도 있을 거다. 어쩌면 강력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도 있겠지.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 손해는 아니다.
“……라지만, 이거, 쓰읍.”
아무리 고민을 해도 좀처럼 답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난감했다. 결국, 라키엘은 고개를 내저었다.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일단은 지금의 일부터 하자.
남은 고민은 저녁에 하자.
그러면 뭔가 떠오르겠지.
♣
……라는 생각은 만용이었다.
닷새가 더 지났지만, 여전히 답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래서, 저한테라도 상담을 하시겠다는 겁니까?”
“어.”
“제가 전하의 고민을 덜어드릴 만한 뾰족한 수를 내어드릴 수는 없을 텐데요.”
“어. 알아.”
다시 햇살 화창한 점심시간.
몰려드는 환자를 피해 물 마시듯이 음식을 우물거리며 라키엘이 식탁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을 받은 데미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쳐다보셔도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전하께서 모르시는 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역시 그렇지?”
“예.”
“그래도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없습니다.”
“매정하구나, 우리 데미안은.”
“솔직한 거라고 해주시죠.”
“그게 그거지.”
“신기루 같은 희망을 흔들어 보이며 고문을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런가.”
“예.”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거니까. 조금은 더 고민해봐야겠다.”
그러하다.
이제 고작 닷새다.
사실 벌써부터 로드 힐데르트가 매일 실망하는 기색이 확 보이긴 하지만, 아직은 포기하기엔 일렀다. 무려 뱀파이어 로드다. 저런 큰손 고객(?)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라키엘은 다른 이들에게도 고민을 상담하기 시작했다.
“가르딘 경?”
“예, 전하?”
“실은 내가 고민이 조금 있는데 말이야.”
“고민 말입니까?”
“으음. 내 이야기는 아닌데, 혈압이 거의 없다시피 할 만큼 낮아서 발기부전이 오는 케이스는 어떻게 치료를 하면 좋을까?”
“…….”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건데, 내 이야기 아니다.”
“……아, 예. 그럼, 단순한 의학적 고민이신 겁니까?”
“뭐 대강은?”
라키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은 최근 내원한 뱀파이어 로드의 증상이라고 속 시원히 밝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뱀파이어 로드의 프라이버시(?)와 직결되는 문제인 까닭이었다.
‘첫 내원 당시의 로드 힐데르트는 자신의 증상을 밝히길 굉장히 수치스러워했지. 그럴 만한 질환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원장실에는 나와 데미안, 수간호사 아니스만 있었어.’
즉, 로드 힐데르트의 질환을 아는 사람은 별궁 한의원에서 셋밖에 없는 셈이다. 한데, 그런 정보를 다른 이들에게 알려줘야 할까?
아니.
절대로.
‘환자의 개인정보, 특히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사항을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어.’
사실 따지고 보자면 가르딘 경은 별궁 한의원의 의료진이니까 크게 상관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환자의 보통의 질환일 때의 이야기고.
무려 뱀파이어 로드의 그곳(?)에 관련된 비밀을,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떠벌리고 다녔다가 몰려올 후폭풍을 감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였다.
라키엘은 나름 끝까지 시치미를 떼고서 고민을 말했다.
“어쨌건, 혈압이 너무 낮아서 발기가 불가능한 환자는 어떻게 진료를 해야 할까? 혹시 가르딘 경이라면 어떤 치료법을 사용할 것 같아?”
“으음, 모르겠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다만-”
“다만?”
“전하, 괜찮으신 거, 맞지요?”
“아 이 사람이 진짜. 내 이야기 아니라니깐.”
“그, 그래도…….”
“아니라고. 아니라고. 쫌.”
“……예.”
아무래도 가르딘 경에게선 힌트를 얻기가 틀린 것 같았다. 라키엘은 깔끔하게 포기하고서 머리나 식힐 겸 정원을 걸었다. 그러다가 별궁의 근위대장, 경비책임자 프란델 경과 마주쳤다.
“어, 잘 만났다, 프란델 경.”
“전하? 혹시 절 찾으셨습니까?”
“찾은 것까진 아니고. 내가 조금 고민이 있어서 걷던 중이었는데 말이야.”
“예, 전하. 고민이라시면……?”
“내 이야기는 아니긴 한데, 발기부전 치료법을 고민 중이거든.”
“발기…… 부전이요?”
“응. 어떤 건지는 알지?”
“예, 대강은…….”
“다행이네. 어쨌건 내 고민은 이거야. 혈압이 너무 낮아서 아침에 텐트를 치질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니, 그냥 아예 발기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고 쳐.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발기불능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뭐. 왜. 뭐. 도대체 왜 그런 눈빛인 건데.”
“…….”
“내 이야기 아니라고. 단순한 의학적 고민이라고.”
“…….”
“진짜라고.”
“크흠! 흠!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잠깐 위기감이 느껴져서 그만.”
“…….”
“어쨌건, 전하께서 말씀하신 경우라면 운동부족이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운동부족?”
“예, 전하. 예를 들어서 달리기를 격렬하게 하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맥박이 날뛰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전하께서 말씀하신 고민의 저혈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듯한데 말입니다.”
“흐음…….”
라키엘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나름 정석적인 답이기는 한데, 운동 부족과는 인연이 없을 뱀파이어 로드에게는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알겠군. 고마워. 참고하도록 하지.”
“예, 전하. 힘내십시오.”
“…….”
뭔가 오해를 사는 기분인데.
라키엘은 찜찜한 기분을 누르고서 계속해서 고민했다. 여전히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해답. 그걸 찾고자 계속 노력했다.
혹시나 자신이 놓친 부분이 있을까 봐. 자신이 고정관념에 갇혀 있어서 답을 못 찾는 것은 아닐까 해서.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의학적’ 고민을 말하고, 그에 따른 버라이어티한 대답을 들었다.
한때 무리의 왕이었던 우루스는 해본 적도 없는 고민이라며 콧김을 뿜었다. 환상종 3총사 꼬슴이와 뽀복이, 코몽이, 그리고 아기 아피로스 꾸꾸는 ‘발기부전’이 뭐야? 라는 해맑은 눈빛으로 이쪽의 죄책감(?)을 자극했다.
그런가 하면 세르지오를 비롯한 특근대원들은 뜨악할 정도로 과격한 대답을 내놓았다. 다들 거친 인생을 살았던 까닭일까. 그들이 꺼낸 대답을 추려보자면…….
“전하, 술을 진탕 마시면 됩니다.”
“아닙니다, 전하. 그냥 심장에 구멍을 내 버리면 되겠지 말입니다.”
“심장에 구멍을? 세르지오 형님, 그게 무슨 말이요?”
“아, 심장이 약하다며. 그래서 피가 잘 안 돈다며. 그럼 심장에 구멍 팍 뚫고 빨대 하나 꽂아서 입김 좀 훅 불어넣으면 안 되나?”
“……응, 창의적으로 훅 가기 딱 좋겠네.”
역시나 주변인들의 의견은 참고가 안 되겠다. 혼자 더 맹렬하게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차라리 전립선에 장침 하나 꽂아서 전류라도 때려 박아 볼까.’
어쩌면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로드 힐데르트가 들었다면 충분히 기겁했을 온갖 치료법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또 떠올랐다.
덕분에 라키엘은 몰랐다.
자신이 깊은 고민에 빠져 버린 사이, 이쪽을 보는 주위의 시선에 깊은 걱정(?)이 담기기 시작했음을. 모두가 모종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응원하듯 이쪽을 바라보게 되었음을.
그러한 이들 중에는 마젠타노 황실의 특수정보부 소속 3호 요원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
3호 요원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심각해진 눈길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오늘도 원장실에서 혼자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황태자. 너무나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래.
충분히 고민이 되겠지.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발기부전이 왔다니. 그래서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주변인들에게 상담을 하는 모습이라니.
‘이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제국의 존망이 걸린 국가의 중대사다. 자칫 황가의 핏줄이 끊길지도 모르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런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일을 하는 존재다.
‘상부에 알려야겠군.’
지난번, 뱀파이어 로드에게 기척을 들켜 자리를 비웠던 탓에 로드의 질환을 모르게 된 3호 요원이었다. 덕분에 그조차도 사태를 오해(?)하고 말았다.
3호 요원의 긴급보고가 황제에게 올라갔다. 오해의 크기가 국가적 단위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다음 날.
황제가 유례없이 다급한 기색으로 황태자를 호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