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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299화 (299/468)

299화. 오해도 때로는 실마리가 된다 (2)

“네가 발기불능이 되었다는 말이 사실이더냐?”

“…….”

뭘까. 이 다짜고짜 다이렉트 직배송 스트레이트 어처구니 대소멸 유발성 질문은.

라키엘은 마른침을 꿀꺼덕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정해진 예법을 떠올리며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가 이 모든 땅의 합당한 지배자이신 황제 폐하를 뵙사옵니…….”

“인사는 되었고.”

“…….”

“당장 대답부터 하거라. 네가 발기불능이 되었다는 말이 정녕 사실인 것이더냐?”

“…….”

당황스럽다.

왜, 어째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 걸까.

이미 사방에서는 신하들이 수군거리는 중이었다. 아니, 대놓고 소리를 내며 수군거리지는 못했지만, 눈빛만은 서로 파파팍 주고받는 게 다 느껴졌다. 흥미진진하겠지. 핵꿀잼이겠지. 아침 일찍부터 황제에게 호출받은 황태자가 다짜고짜 이런 질문을 받는 상황이.

‘이건 무슨 아침 드라마도 아니고.’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일까.

일단 파악부터 해보자.

라키엘은 벌렁벌렁 나대려는 당혹감을 꽉 눌러두며 침착한 눈빛을 들었다.

“저야말로 궁금하옵니다. 폐하께서 어찌하여 제게 그런 하문을 건네시는 것이온지가 말이옵니다.”

“정녕 모르겠다는 말이더냐?”

황제가 옥좌에 앉은 채 상체를 앞으로 쭈욱 기울였다. 그렇게 이쪽을 굽어보는 표정이란. 저 양반이 저런 눈빛을 하는 건 처음 봤다. 그러니까, 아주아주 슬프면서 다급하고 초조하고 안타까운 감정들이 전주비빔밥처럼 찰지게 버무려진 그런 눈빛이랄까.

거기에 한 숟갈 참기름을 붓듯이 톡 떨어져 오는 충고까지.

“황태자여, 이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숨길 일은 더더욱 아니로다.”

“…….”

“또한, 이는 너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엄연히 제국과 황실의 사직과 근간이 흔들리고 위협받을 중차대한 국가적 위기가 아니겠느냐.”

“…….”

제 그곳(?)이 그렇게 소중했군요.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저 발기부전 그런 거 아닌데.

‘대체 이런 오해는 왜 생긴 거야?’

어이가 없었다.

알현을 하자마자 초 다이렉트성 질문을 받아 버리는 바람에 잠깐 당황했는데, 당혹감을 누르고서 살펴보니 황제가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대략 알 것 같았다.

‘내가 발기부전? 그러니까 황태자가 후손을 볼 수 없게 된 초긴급,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고 여겨서 날 호출했고, 진위를 확인하려는 거구만?’

확실해 보였다.

황제의 저 초조한 눈빛. 같은 남자로서 느낄 수 있는 애잔함(?)의 심정까지. 저 양반이 이쪽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이런 오해가 왜 생겨났는지도 감이 왔다.

“폐하, 혹시 가르딘 경이나 프란델 경에게 보고를 받으신 것이시옵니까?”

며칠 사이 그들과 고민상담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발기부전에 대한 것을 물었더랬다. 그래서 가르딘 경과 프란델 경이 은근히 오해를 하며 이쪽을 걱정해 주었지. 아마도 그들이 고자질을 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추측은 틀린 듯했다.

“너의 측근들 말이더냐? 틀렸도다. 짐이 지닌 눈과 귀가 그것만 있을까.”

“…….”

다른 정보원이? 이건 무슨 별궁에 CCTV를 달아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황도에서 짐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이 있겠느냐. 그렇기에 너의 고충을 알게 되었고, 지난밤 너의 측근들을 불러 사실을 확인하였음이야.”

“가르딘 경 등을 말이옵니까?”

“그렇지.”

황제, 아스테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지난 자정 무렵이었던가. 황태자에게 붙여둔 특수정보부 소속 3호 요원의 긴급보고가 올라왔더랬다. 잠결에 보고를 받고는…… 잠이 확 깼더랬다.

내 아들이 ㄱ자가 될 위기란다.

순간 느껴졌던 번민과 애잔함이란!

하여 즉시 명을 내렸더랬다. 별궁의 가르딘 경과 프란델 경, 그리고 특근대의 선임인 세르지오라는 검투사까지 불러들였다.

그리고 추궁했다.

짐이 들은 바가 있는데, 이것이 모두 사실이더냐? 예, 폐하. 저희도 황태자 전하를 걱정하던 참이었사옵니다,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이 사실을 짐에게 알리지 않았더냐. 죽여주시옵소서 폐하, 블라블라. 뭐, 대강 그런 식이었다.

어쨌건 덕분에 확인은 마쳤다.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 큰아들이 불능의 위기에 빠져 버렸다. 중년에야 맞이해야 할 위기를 벌써부터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시급하고도 국가적이고 체계적인 대응과 관리가 필요하다.

황제는 결심했고, 아침 해가 뜨자마자 황태자를 궁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그러니 거듭 당부하고 싶구나. 이는 숨길 일이 아니다. 또한,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본디 갖가지 역경이 다가오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역경을 숨기고 피하기만 해서 되겠느냐? 아니지. 정면으로 맞서서 이겨내야 하지 않겠느냐.”

“폐하? 저는…….”

“어허. 짐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거늘.”

“…….”

“이번의 역경 또한 마찬가지다. 짐은 너를 믿는다. 이미 네가 크나큰 역경을 당당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란다. 프론테라 대광장에서, 그 핏빛의 마수에 맞서던 모습을 말이다.”

“…….”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짐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단다. 그날, 어떻게 네가 그토록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묻고 싶구나. 혹시 너의 발기불능은, 인간을 초월한 재빠른 움직임을 얻은 대가인 것이더냐?”

“물론 아니옵니다, 폐하. 저는…….”

“그래. 아니라니 믿겠다.”

“아니, 그 아닌 거 말고 저는 진짜…….”

“진짜 걱정이 되겠지. 짐도 마찬가지다. 어찌 아니 그렇겠느냐. 하지만 미리 말하노니, 이 문제로 하여금 너의 황태자 자격을 의심하는 따위의 짓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겠노라. 그러니 황태자여. 나의 아들이여. 너는 이번 일을 결코 숨기지 말거라. 솔직한 모습으로 맞서고, 이겨내거라. 그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겠으니 말이로다.”

“……크흑.”

아니, 이 양반아.

제발 내 말부터 좀 들어달라고. 쫌.

라키엘은 쑴펑쑴펑 솟아나는 비애감(?)을 삼키며 가까스로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잡았다.

“폐하, 아니옵니다.”

“아니야? 무엇이?”

“저는 발기불능이 아니옵니다.”

“어허.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숨기지 말라고 하였거늘.”

“…….”

확 뱀파이어 로드의 질환이라고 말해 버릴까.

아니.

그랬다가 그 발언이 로드의 귀에 들어가면 뒷감당이 제법 난감해질 테니까 참자. 대신……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걸 이득으로 만들어 버리자.

라키엘은 온몸의 모공이 쓸쓸해지는 기분을 삼키며 해탈의 미소를 지었다.

부정해도 안 믿으니 어쩔 수가 없겠다. 게다가 이걸로 황태자의 자격을 의심하거나 하지 않겠다니, 따지고 보면 손해를 볼 일도 없겠다. 아니, 이제부터 하기에 따라서 이걸로 이득을 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자면…….

“하오면 폐하, 약값이 많이 필요할 듯하옵니다.”

“……약값?”

“예, 폐하.”

작심(?)한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디 발기부전의 치료에는 오랜 시간과 공이 들어가는 법입니다. 하온데 별궁에 책정된 예산에는 한계가 있으니, 실로 난감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래서?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하여달라는 뜻이더냐?”

“예, 폐하.”

“좋다.”

“……예?”

“너의 건강과 황실의 후사를 위한 투자이니, 예산이라면 얼마든지 끌어다 쓰거라.”

“진심이시옵니까?”

“그러하다.”

“…….”

와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발기불능이라고 뻐꾸기 날려볼걸.

문득, 별궁 한의원의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난리를 쳤던 과거가 떠올랐다. 크레모에서는 팔자에도 없던 우루스와의 로데오(?)를 벌였고, 나중엔 다이어트 약도 만들어서 팔았지. 생각해보면 나름 눈물겨운 나날이었어.

‘그런데 이게 이렇게 쉽게 되는 거였다니.’

덕분에 살포시 몰려온 현타!

‘뭐, 그래도 요즘 한의원을 찾는 환자가 팍 늘어나서 슬슬 운영비 압박도 오던 참이었는데 잘됐다고 치자.’

어쨌건 오해 풀기를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몸도 편해지게 됐다. 역시 포기하면 편해. 덕분에 돈벼락을 맞게 됐으니까.

그러니 이제는 쓸데없는 오해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치기 위한 탈압박의 시간이다.

“실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온데 제가 여쭙고 싶은 일이 있사옵니다.”

“짐에게? 묻거라.”

“예, 폐하. 혹여…… 쟈빌론에 대한 추적은 어찌 진행되고 있사옵니까?”

“쟈빌론이라. 후우. 너는 화제를 돌리고 싶은 것이로구나.”

“……송구하옵니다.”

“아니다. 되었다. 쟈빌론 플랑베르 앙부아즈, 그자는 여전히 짐의 정보원들에게 추격을 받는 중이다. 또한, 짐은 조만간 앙부아즈의 대사를 소환할 것이야.”

“이번 일의 책임을 묻기 위함이옵니까?”

“그렇지. 앙부아즈에 억류되어 있던 쟈빌론이 풀려나 난리의 단초를 제공하였으니까 말이다.”

황제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 맞다.

“예, 알겠사옵니다. 그럼 저는 폐하의 그러한 조치를 믿고, 이만 물러날까 하옵니다.”

“네가 묻고 싶은 것만 묻고 쏙 빠지려는 것이로구나.”

“…….”

“참으로 어찌 이런 고약한 황태자가 있을까.”

“…….”

“짐이 밤새도록 노심초사 품었을 걱정은 생각도 안 하는 것이더냐?”

“소, 송구하옵니다.”

“말로만 송구하지.”

“그 또한…….”

“되었다. 물러가거라.”

황제가 피식 웃었다. 그걸 보니 이제는 좀 알겠다. 저 양반, 이쯤이면 즐기고 있는 거 맞다니까. 그렇게 속으로 툴툴거리며 예를 표하고, 물러났다. 머릿속으로는 뱀파이어 로드의 발기부전을 어떻게 치료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면서였다.

그런데 알현실에서 완전히 나오기 직전이었다. 뒤늦게야 뭔가가 생각이 났는지, 황제가 이쪽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아스라한 심법을 활용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예?”

저건 무슨 말일까.

황제의 조언이 이어졌다.

“써클 말이다. 그중의 하나를, 혹은 일부를 이동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드는구나.”

“써클을…… 말이옵니까? 설마, 거기로?”

“그렇지. 그곳으로.”

“…….”

“써클 하나가 그곳 근처에서 직접 힘을 불어넣어 준다면, 그곳이 능히 힘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

“…….”

어?

잠깐만?

……황제 당신, 천재?

뜻밖의 조언을 듣는 순간이었다. 그 조언이 힌트가 되었다. 라키엘의 대뇌피질 33번째 주름 사이로 상큼한 전류가 반짝 몰아쳤다. 새로운 발상이 좌르륵 떠올랐다.

‘써클 일부? 보조적으로? 거기 근처에? 하지만 뱀파이어 로드는 아스라한 심법을 모르고…… 당연히 마나 써클이 없지만…… 그래도 이걸 뱀파이어의 방식으로 응용하면…… 그렇게 하면…….’

된다.

될 것 같다.

마침내, 떠올랐다.

그동안의 고민을 일거에 날려줄 치료법의 실마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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