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02화 (302/468)

302화. 수술 준비 (2)

“전하? 대체 무슨 일이신 겁니까? 그리고 안색은 왜 그러십니까?”

화창하고도 이른 아침.

그러나 안녕하지는 못한 아침을 보내고 있던 가르딘 경이었다. 당연했다. 자신이 모시는 황태자 전하가 어제 아침부터 하루 꼬박 자리를 비운 탓이었다. 물론 이유는 알고 있었다. 황제의 호출을 받았으니까.

“혹시 폐하께 꾸중을 많이 들으신 겁니까? 밤새도록?”

전날 아침에 황제에게 부름을 받은 황태자. 그리고 거의 24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온 황태자. 가르딘 경은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세상에 얼마나 혼이 많이 났으면 온종일 붙잡혀 있다가 이제야 별궁으로 돌아온 걸까.

솔직히 말해서 가끔은 황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들이 아닌가. 예전부터 느낀 건데, 확실히 황제는 황태자에게 너무나 매정한 구석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던 것이겠지.’

아침부터 불려 가서 불호령을 들었겠지. 족히 몇 시간은 한자리에 서서 혼이 났을 것이다. 그 뒤에는 어떤 일을 당하신 걸까. 혹시 체벌? 황태자의 체면에 그것까지는 아닐 테고. 아마도 방에 갇혀서 반성이라는 이름의 감금을 당하다가 겨우 풀려나신 게 아닐까.

‘그토록 위대한 공적을 세운 전하이시건만, 또 무슨 트집을 잡혀서. 쯧쯧!’

라키엘을 보는 가르딘 경의 눈빛에 인간적인 안쓰러움이 배어났다. 덕분에 라키엘은 어이가 팡팡 터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허. 내가 꾸중을? 밤새도록 혼이 나고 왔을까 봐 걱정을 하는 거야?”

“예, 전하.”

“어째서?”

“제가 전하의 주치의니까 말입니다.”

“경이 내 주치의인 거랑, 내가 혼나는 걸 걱정하는 거랑 무슨 상관?”

“당연히 연관이 있습니다, 전하. 윗사람에게 과도한 훈계나 질책을 받게 되면 마음에 울화가 쌓이고, 그러한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전하의 주치의인 제가 당연히 이러한 사태를 걱정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가르딘 경은 진심으로 말했다.

요즘 부쩍 건강해지신 전하가 예전의 한참 병약하여 오늘내일하던 상태로 돌아간다면? 끔찍하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러한 가르딘 경의 진심 덕분이었다. 라키엘의 어이가 더더욱 상큼하게 퐝 하고 터졌다.

“허 참. 내가 폐하에게 혼이 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건강이 상해? 그럼 좀 따져볼까.”

“예?”

따지다니요?

뭘요?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라키엘의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가르딘 경의 가슴을 콕 쑤셨다.

“내가 폐하에게 혼나는 걸 그렇게 걱정하는 사람이, 폐하께 고자질을 해? 심지어 잘못된 정보를 흘려가면서?”

“……예?”

“내가 고자라고?”

“……예에?”

“고자라고 고자질을 했잖아. 폐하께 불려 가서는.”

“…….”

“사실?”

“…….”

“실화?”

“……즈어어언하아!”

“아 씨, 깜짝이야. 그거 하지 말랬지.”

“저, 저는 다만-”

“다만?”

“전하의 안위와 황실의 미래가 실로 염려가 되었을 뿐이옵니다.”

“갑자기 사극체 써가면서 정색하지 말고. 그런다고 있던 죄가 사라지는 거 아니거든.”

“하, 하지만 전하?”

“어. 변명해봐.”

“폐하께서 이미…… 전하의 그곳 상태를 그렇게 확신하며 하문하시는 통에…….”

“장단에 맞춰드릴 수밖에 없었다?”

“예, 전하.”

“날 위해 변명해줄 수는 없었고?”

“…….”

“에잇, 쯧. 이거, 진짜로 걱정해서 그랬다는 걸 아니까 뭐라고 더 추궁할 수도 없고 진짜.”

“그, 그럼…….”

“용서해 주는 거냐고? 천만에. 지금 내가 그런 한가한 이야기나 하러 아침부터 경을 찾아온 줄 알아?”

“예에?”

“수술하자.”

“예에에?”

가르딘 경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침 댓바람부터 대뜸 수술하자, 라니. 저건 또 무슨 소리일까. 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오랜만에 또 무슨 미친 짓이라도 벌이려는 걸까.

이어지는 황태자의 행동을 보자니, 과연 마지막 서글픈(?) 추측이 제대로 들어맞은 듯했다.

“자, 이걸 봐봐. 내가 궁정마법사 자네티스 경한테서 강탈…… 아니, 받아온 거야.”

황태자가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이게 뭡니까?”

“병 안에 동동 떠 있는 거, 보이지?”

“예. 아몬드 크기에…… 꼭 작은 생물의 심장처럼 보이는데요?”

“어. 심장 맞아.”

“예?”

“자네티스 경이 인공적으로 배양한 미니 심장이야.”

“이걸 어디에 쓰시려고…….”

“말했잖아. 수술하자고.”

“무슨 수술을…….”

“이식 수술. 이 심장을 심을 거야.”

“예? 심는다고요? 이 심장을요?”

“어.”

“어디에 심으시려는 겁니까?”

“뱀파이어 로드의 고환.”

“…….”

“왜 그런 표정이야? 이런 내가 이상해?”

“…….”

예.

x나게 이상합니다.

라고 차마 대답할 수는 없었다.

“저기, 전하?”

“응?”

“물론 진지한 발언이신 거겠죠?”

“어. 당연하지.”

“그런데 그런 용건으로 저를 찾아오셨다는 건…….”

“응. 이번 수술의 집도의가 가르딘 경이야.”

“제가요? 왜요?”

“왜긴. 침대는 과학, 웹소설은 네이버, 수술은 가르딘 경. 이런 법칙도 몰라?”

“모릅니다. 게다가 네이버는 또 누굽니까.”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경이 이 미니 심장을 뱀파이어 로드의 고환에 이식해줬으면 하는데. 할 수 있겠지?”

“전하?”

“어. 궁금한 게 많을 테니까 물어봐.”

“대체, 왜, 그런 수술을 해야 하는 겁니까?”

“좋아. 이유를 말해주지.”

촵촵!

라키엘이 혓바닥을 풀었다.

“얼마 전에 내가 경에게 고민 상담을 했었지? 발기부전에 대한 고민.”

“예, 그랬지요.”

“그거, 사실은 뱀파이어 로드의 질환이야.”

“……예?”

“좀 더 설명을 하자면…….”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하여 그동안 함구하고 있던 뱀파이어 로드, 힐데르트의 내원과 그의 발기부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이제 수술을 집도하게 될 가르딘 경이니, 더는 감출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설명을 다 들은 가르딘 경의 안색이 망연자실해졌다.

“무슨 그런……. 심장이 안 뛰고, 혈액이 아예 없어서 발기가 안 되는 안타까운 종족이 존재했다는 겁니까?”

“그래. 그게 진혈의 뱀파이어인 거고.”

“어휴, 쯧쯧!”

“안쓰럽지? 나도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도와야지. 특히 경이.”

“……잠깐만요, 전하?”

“응. 또 궁금한 게 생겼지?”

“물론입니다. 그 미니 심장 이식수술 말입니다. 그걸 왜 고환에 하는 겁니까? 그걸 하면 어떤 효과가 있길래 그러시는 겁니까?”

“아 그래. 궁금할 거야. 마저 설명해 주지. 우선 뱀파이어 로드는 심장이 뛰지 않아. 그게 발기부전의 첫 번째 원인이야. 그렇지?”

“예, 전하.”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고. 심장이 안 뛰면? 뛰게 하면 되지. 그런데 뛰게 할 수가 없어? 그럼 잘 뛰는 새로운 심장을 달아주면 돼.”

“아, 예…….”

가르딘 경이 얼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들어보면 맞는 말이긴 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여기서 다시 잘 생각해봐. 새로운 심장을 달아주는 건 좋다 이거야. 그런데 굳이, 커다란 심장을 달아줘야 하나? 오직 거기를 세우기 위해서? 아니지. 그건 좀 아니지. 너무 비효율적이지. 수술 난이도도 너무 올라가고.”

“그,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딱 거기가 발기될 정도로만 최적화가 된, 적절하게 다운사이징이 된 미니 심장을 달아주면 되는 거지. 어디에? 고환에. 그래야 펌프 출력이 약해도 해면체를 빵빵하게 채워줄 정도의 혈압을 만들어주기가 쉬울 테니까. 일종의 산지직송이랄까. 오케이?”

“아, 예…… 그럼…….”

“혈액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예, 전하.”

“유사 혈액을 조금만 넣어줄 거야. 아, 물론 유사 혈액이 음경과 고환 사이에서만 순환할 수 있도록 음경 밖으로 나가는 혈관은 전부 차단해야 하고.”

“…….”

“일종의 발기 전용 엔진오일을 넣어주는 거랄까. 하. 하. 하.”

“엔진오일은 또…… 뭡니까?”

“그런 게 있어. 어쨌건. 할 수 있겠지?”

라키엘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 할 수 있을 거야. 우리 가르딘 경이니까. 수술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가르딘 경이니까. 이럴 때 내가 경이 아니면 대체 누굴 믿고 수술을 맡기겠어. 안 그래?”

“저기, 켈로드는…….”

“응 안 돼. 아직 애송이야. 의과대학에서는 수석이었겠지만 감히 어디 우리 가르딘 경의 수술 솜씨에 비비려고. 택도 없어.”

“그럼 발렌티노는…….”

“아 좀. 우리 가 선생님 왜 이러실까. 합시다, 수술 좀.”

“하지만 전하?”

“응.”

“왜 자꾸 이런 수술을 저한테 맡기시는 겁니까?”

“좋잖아.”

“좋다니, 뭐가요?”

“가르딘 경, 혹시 이런 수술을 누군가가 했다는 자료나 기록을 본 적이 있어?”

“없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래. 누가 뱀파이어 부ㄹ…… 아니, 고환에 인공 미니 심장을 장착하는 수술을 해봤겠어. 역사상 처음일 거거든, 이런 미친 수술은.”

“아, 예…….”

“그러니까 이건 기회라는 거지. 의학계의 역사와 기록에 길이길이 남겨질 최초의 사례. 거기에 경의 이름을 올리는 거야. 지난번에 했던 드래곤 대장내시경 시술처럼 말이야. 그때 그거, 벌써 의학사전에 등재됐다? 최초의 드래곤 대장내시경 시술에 관한 기록과 통계 사례 어쩌고저쩌고, 거기에 경의 이름이 당당하게 떡하니 박혔거든. 어때? 또 할 수 있다구.”

“……그게 싫은 거란 말입니다아!”

결국, 참지(?) 못한 가르딘 경이 한떨기 눈물을 흩뿌리며 뛰쳐나갔다. 하지만 라키엘은 개의치 않았다. 당장의 반응은 저래도 결국엔 수술을 집도할 거니까. 그게 가르딘 경이니까. 그만큼 믿으니까.

‘후우. 좋아. 일단 가르딘 경에게는 잘 알렸고.’

이만큼 말해줬으면 알아서 마음의 준비를 해둘 것이다. 사실은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이 미친 수술을 받게 될 당사자의 반응이다.

‘뱀파이어 로드한테 찍히면 좀 빡쎄질 텐데.’

라키엘은 목을 움츠리며 로드 힐데르트의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로드 힐데르트의 반응은 의외로 세상 쿨했다.

“내 고환에 미니 심장을 이식한다고?”

“예, 로드시여.”

“흐음. 기발하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아, 화가 나거나 하진 않으신지.”

“전혀. 걱정 말도록.”

“그러십니까?”

“으음. 솔직히 말해서 이미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있는 기관이 아닌가. 자르든 붙이든 작동만 되면 나는 만족일세.”

“그, 그렇습니까?”

“그래서 수술 일자는?”

“아, 정밀 검사와 수술 계획, 그리고 미니 심장의 출력을 제대로 점검해야 하니까…… 5일 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쯧. 오늘 당장이 아니고?”

“…….”

“서둘러주게. 이 순간에도 내 아내는 나의 치료 성공을 오매불망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을 테니.”

“아, 예…….”

사랑의 힘(?)은 저토록 위대한 것이로구나.

라키엘은 새삼스럽게 감탄하며 수술 준비를 서둘렀다. 수술에 앞서 로드 힐데르트의 신체를 수차례 정밀검사했다. 특히 로드의 고환과 음경, 해면체 조직의 혈관 위치와 구성을 상세하게 살폈다.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수술 계획을 수립했다. 환자의 신체가 받을 대미지와 위험성을 최대한 낮추고, 수술 성공률을 끌어 올릴 효율적인 절개 부위와 수술 순서를 수립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닷새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짝!

“다들, 준비됐지?”

라키엘이 수술용 장갑을 꽉 조이며 가르딘 경 등의 수술 스텝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수술대에 누워 있는 뱀파이어 로드를 바라보았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는 지를 때다.

그렇게, 역사상 최초의, 뱀파이어 로드 땅콩(?) 수술의 서막이 올랐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