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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304화 (304/468)

304화. 일어나라, 뱀파이어 로드의 혼이여 (2)

짹, 째재잭, 째잭…….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아침이 밝았다. 쪽빛 하늘 사이로 비치는 구름. 그 아래 여리게 흔들리는 커튼. 새하얀 천의 춤사위를 바라보며 뱀파이어 로드, 힐데르트는 눈을 떴다.

다시금 청량한 새 소리가 그의 청각을 두드렸다.

꼬끼오오오오옭-!

“…….”

아 저거도 새가 맞기는 한데.

하지만 지금은 닭의 족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늘 아침, 그에게는 훨씬 중요한 확인할 것이 있었다.

두근…… 두근…….

뛰지도 않는 가슴 속 심장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짝 말랐다. 떨리는 확인의 순간이다. 그는 긴장과 기대가 짬짜면처럼 버무려진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고간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거대한 텐트가 있었다.

이불이 불룩.

바지춤도 불룩.

덩달아 기분도 불룩.

눈물샘도 힘차게 불룩불룩.

“하. 하하…… 하.”

세상에.

텐트(?)를 친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던 거였구나. 그래. 다른 일반 뱀파이어들도, 인간들도 전부 아침마다 이런 기분을 느끼며 사는 거였어. 사실은 이게 당연한 거였어. 이걸 나도 마침내 느껴보는 거구나.

“여보…….”

그는 저도 모르게 감격으로 눈가를 훔쳤다. 먼 과거, 은인을 만나 마룡굴에서 풀려났던 때가 떠올랐다. 인간의 피를 빨아가며 살아야만 하는 저주에서 풀려났던 순간도 떠올랐다. 지금 느끼는 감격이 당시와 견줄 만했다.

그때였다.

똑똑똑?

누군가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 아니, 병원장이자 황태자인 라키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어나셨습니까?”

“어, 그렇다네. 나도, 여기도.”

로드 힐데르트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텐트를 힐끗 가리켰다. 라키엘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놀랍군요. 벌써 이럴 정도로 회복이 되시다니 말입니다. 솔직히 사흘쯤 걸릴 줄 알았는데.”

“그런가?”

“예. 미니 심장을 이식하기 위해서 고환은 물론이고, 음경과 그 안쪽 혈관이 있는 곳까지 온통 메스질에 바느질에 손을 댄 곳이 한둘이 아니었어야 말이지요.”

“그, 그런…… 가?”

“예. 좀 놀랍습니다. 인체…… 으음, 뱀체의 신비랄까.”

“후우. 내 회복력이 좀 대단해야 말이지.”

“…….”

“미안하네.”

“아닙니다. 인생 첫 텐트라면 충분히 의기양양해질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어쨌건, 통증은 없으십니까?”

“있네.”

“얼마나 아프지요?”

“죽고 싶을 정도로.”

“……예?”

라키엘은 깜짝 놀랐다. 로드 힐데르트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일말의 고통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난감을 선물받은 아이처럼 기쁜 기색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죽을 정도로 아픈 거였다니.

로드의 말이 이어졌다.

“아프네. 정말일세. 당장 혀를 깨물고 기절하는 것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아프네. 당연한 일이지. 그대가 말한 것처럼 고환은 물론이고, 음경과 그 안쪽 혈관이 있는 곳까지 온통 메스질에 바느질에 손을 댄 곳이 한둘이었어야지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참고 있느냐고? 인생 첫 텐트니까. 충분히 의기양양하게 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

우리들 남자에게 텐트라는 건 대체 뭘까. 라키엘은 순간 심오한 화두에 빠질 뻔하였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로드의 어깨를 짚었다.

‘아침 회진을 일찍 돌길 잘했네. 일단 통증부터 누그러뜨리자.’

역시나 이럴 때는…….

“내 손은 약손~ 내 손은 약손~ 에헤이야아아↗”

로드 힐데르트의 골반 어름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로드의 표정이 한결 풀렸다. 아울러 이쪽을 바라보는 로드의 눈빛에 욕심이 살짝 배어났다.

“……후우. 아픈 게 줄었어. 대단하군.”

“과찬이십니다.”

“이걸 전용 진통제로 확 잡아갈 수도 없고.”

“……예?”

“아, 아닐세. 잠깐 딴생각을 하였네.”

“잠깐 본심이 나오셨던 거 같은데…….”

“진찰은 안 하나? 진맥? 뭐 그런 거도 할 차례 아닌가?”

“말 돌리시는 거 같은데…….”

“……크흠! 흠!”

“우선 수술 부위 상태부터 좀 살펴보겠습니다.”

라키엘은 로드의 환부를 살폈다. 다행히 아침 텐트 때문에 실밥이 터진 곳은 없었다. 아마도 가르딘 경이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서 봉합을 한 덕분이겠지. 새삼 가르딘 경의 꼼꼼하고도 섬세한 외과수술 실력에 감탄이 나왔다.

또한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의미의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아까도 혹시나 싶었는데, 회복 속도가 정말로 빠르시군요.”

사실이었다.

겉으로 보아도, 경혈 스캐닝으로 살펴도 그랬다. 수술이 끝난 지 겨우 하룻밤이 지났을 뿐이다. 한데 로드의 환부는 보통 사람의 닷새에 버금가는 회복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이쪽의 감탄에 로드가 싱긋 웃었다.

“빠른 회복이라. 당연하지. 진혈의 뱀파이어니까.”

“진혈의 뱀파이어라서요?”

“그래. 이건 축복이자 일종의 저주야. 밤의 귀족, 진혈의 뱀파이어이기에 다른 이들보다 압도적인 회복력을 지녔지만, 대신 회복 마법의 혜택을 누릴 수는 없지. 아니, 그냥 없는 정도가 아니라 회복 마법을 맞으면 오히려 생명력이 갈려나간다고 해야 할까.”

“아…… 그런 겁니까?”

“그런 셈이지.”

“그럼 저주 마법을 맞으면요?”

“어?”

“반대로 회복이 되지 않을까요?”

“어?”

“……설마, 한 번도 시도를 안 해보신 겁니까?”

“아, 아마도?”

자신의 체질을 말하며 씁쓸해하던 로드 힐데르트가 흠칫, 얼떨떨한 기색을 내보였다. 라키엘도 얼떨떨해지긴 마찬가지였다.

사실 방금 로드에게 말한 방법은 별다른 생각 없이 내뱉은 발언이었다. 그냥, 힐링 마법을 받아서 타격을 입는 거라면, 반대로 저주 마법을 맞으면 힐링이 되지 않을까, 하고 문득 떠오른 걸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로드도 그걸 시도해본 적이 없다니.

“……해볼까요?”

“……그래볼까?”

그때부터였다.

뱀파이어 로드 힐데르트, 그의 수술 부위에 대한 신개념 회복법이 실시되었다. 궁정 마법사를 또 불러왔다. 첫 시도는 시험 삼아 약한 저주부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정말로 저주마법을 맞자마자, 힐링(?) 반응이 왔다.

“진짜였군…….”

“이게 왜 되는 거죠?”

“그건 내가 물어야 할 말 같은데.”

“오히려 제가 로드께 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어쨌건. 기쁘군. 회복이 빨라져서. 그만큼 아내에게 돌아갈 날이 가까워져서.”

로드 힐데르트가 순수한 기쁨으로 웃었다.

라키엘도 흐뭇하게 웃었다.

문득, 한국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시절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아. 이럴 때가 제일 좋지.’

환자가 자신의 아픈 부위를 정확하게 깨닫고, 치료에 임하고, 서서히 효과를 체감하는 단계. 그럴 때만 나오는 환자의 표정이 있다. 지금 로드의 표정이 그렇다. 이 과정일 때가 제일 재밌다. 가장 뿌듯하고, 흐뭇하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다.

하지만 라키엘은 그런 티를 내진 않았다. 의료인이 환자 앞에서 함부로 너무 기뻐하는 것도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 표정을 보고서 환자가 기대감을 품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이대로면 빨리 나을 거라고. 마냥 낙관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지나친 기대감은 실망과 조급함으로 이어지고, 스트레스라는 이름의 독이 되니까.’

오랜 경험이 주는 교훈을 새삼 떠올리며, 표정과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힐데르트 님? 저주 마법에만 의지해선 안 됩니다.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저주 마법은 보조적인 의미로 최대한 약하게만 적용할 거고요. 주된 회복 치료는 원래 계획된 단계를 밟아갈 겁니다.”

“원래 계획된 단계?”

“예. 침, 뜸, 탕약. 이렇게 3종 세트입니다.”

“그, 그런가?”

“예. 거기에 최소 보름 정도는 이식된 미니 심장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는지도 관찰해야 하고요.”

“역시 쉽지 않군.”

“원래 그런 겁니다. 어쨌건, 이제 통증은 많이 가라앉으셨죠?”

“그렇다네. 고마워.”

“별말씀을. 그럼 잠시 후에 간호사가 탕약을 가져올 겁니다. 그거 잘 드려 주시고요. 오후에는 침과 뜸을 맞게 될 테니, 그때까지 푹 쉬고 계세요.”

“알겠네.”

그때부터였다.

꾸준한 회복 치료가 시작되었다.

아침에는 내손 약손으로 하루치의 통증을 누그러뜨렸다. 낮에는 침과 뜸으로 신체의 면역력과 회복력을 끌어올렸다. 끼니마다 탕약 원샷으로 소실된 체력을 보충하였다.

“꿀꺽, 크으으……!”

“역시 맛이 없으시죠?”

“음? 아닐세. 맛이 아주 좋아. 훌륭해. 이 탕약의 이름은 뭐지?”

“인진호탕(茵蔯蒿湯)입니다.”

수간호사 아니스가 당혹감을 누그러뜨리며 대답했다. 인진호탕이 맛있다니.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원래 이거, 환자들 사이에서는 맛이 쓰고 비리기로 유명한 탕약인데. 혹시 뱀파이어 로드는 입맛이 변태인 걸까.

더 들어보니 그건 아니었다.

“그래. 인진호탕이라. 이걸 성실하게 마실수록 내 아내와 재회할 날이 가까워지는 거겠지. 그러니 아무리 쓴맛이라도 내겐 달콤해. 세상 그 어떤 와인보다도.”

“…….”

“왜 그런 눈으로 보나?”

“아, 아뇨. 아닙니다.”

아니스는 황급히 물러났다. 저런 사랑꾼이라니. 잠깐 손발이 오글거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뱀파이어 로드의 아내가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로드는 회복 치료의 모든 과정에 전력으로 적극 협조하였다. 그런 덕분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모든 치료가 무사히 끝났습니다.”

“…….”

“힐데르트 님?”

“…….”

“저기, 힐데르트 님?”

“어?”

“괜찮으십니까?”

라키엘이 물었다.

로드, 힐데르트가 황급히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어, 흠! 크흠! 내가 왜 이러지?”

“충분히 그러실 만합니다. 열심히 노력하셨으니까요.”

“그럼 난 이제, 인간의 방식으로 아이를 만들 수 있게 된 건가?”

“예.”

“그럼 난 이제, 진혈의 방식으로 후계자를 만드느라 소멸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건가?”

“예, 맞습니다.”

“그럼 난 이제, 그대에게 목숨을 빚진 것이로군?”

“……예?”

라키엘은 멈칫했다.

로드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이쪽을 보는 눈빛 또한 그러했다.

“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곳에 처음 왔던 때에 말이야. 진혈의 뱀파이어는 단 한 가지의 방법으로만 후계를 만들 수 있다고. 선택된 자에게 진혈을 넘겨줘야 한다고. 그 후에는…… 진혈을 넘겨준 이전의 로드는 소멸된다고. 그것이 진혈의 숙명이라고 말일세.”

“예, 그러셨지요.”

“그래. 그렇기에 그대가 나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뜻이야.”

덥석!

돌연, 로드 힐데르트가 손을 뻗어왔다. 어찌 반응할 틈도 없었다. 꼼짝없이 로드에게 두 손을 붙들리게 되었다.

그 상태에서 로드가 말했다.

“고맙네, 진심으로. 그리고 이건 내 감사의 선물이야. 거부하지 말게.”

“예에?”

……라고 대꾸하는 순간.

후우욱-!

맞잡은 로드의 손을 통하여 뜨겁고도 낯선 기운이 훅 몰려왔다. 손을 지나, 팔뚝을 거쳐, 어깨와 가슴으로 들어오더니 심장을 감싸고 물들였다.

그 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딩동!

[당신의 신체에 진혈의 뱀파이어 로드가 선사하는 영구적 버프가 깃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니고 있던 ‘뱀파이어 로드 힐데르트의 정혈’이 불완전한 상태를 벗어납니다.]

[완전해진 ‘뱀파이어 로드 힐데르트의 정혈’이 당신의 마나써클에 이롭고도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당신의 아스라한 심법과 마나써클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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