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내가 입원이라니 (1)
오해는 가볍게 풀렸다.
“그러니까, 그게 치료의 과정이었다는 말씀입니까?”
“예, 그렇죠.”
“…….”
황태자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앙부아즈의 하프엘프 장군, 에두아르는 무방비하게 수긍을 하게…… 될 뻔했다.
‘그게 치료였다고? 어디가? 어떻게?’
절로 뽀송뽀송하게 피어나는 의문의 꽃다발! 장군은 아까 목격했던 광경을 떠올렸다. 아니, 그건 광경이라기보다는 참상이라고 표현해야 어울릴 법한 모습이었다.
침상에 누워 있던 중년의 남성. 그 남자의 상체에 무수히 꽂혀 있던 가시. 작은 것도 아니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길이가 한 뼘은 될 법한 가시였다. 그게 고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치료란다.
그러면 이제부터…….
“저도 그런 걸 받는 겁니까?”
“뭐, 일단은 진맥부터 해보고요? 손목 좀 보여주시죠.”
“…….”
에두아르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 맥을 짚으며 눈을 감는 황태자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과연…….’
황태자는 제대로 사람을 진료하는 것이 맞을까. 풍문에는 엄청난 명의라는 말들이 자자하던데. 조카인 아델린도 이 사람의 치료를 받고서 대단히 만족했다 했고. 하지만, 그럼에도 의심이 든다.
‘황태자가? 굳이? 왜?’
이런 고생을 해가면서 사람들을,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서 치료하는 걸까.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나? 아니, 딱히 없을 것 같은데. 굳이 이러지 않아도 황태자라는 신분만으로도 사람들이 우러를 텐데. 그런데 왜?
“…….”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딱히 이득이 없을 일을 위해 온종일 진료에 매달리는 황태자라니. 눈으로 보면서도 잘 믿기지가 않았다. 오히려 선입견이 무럭무럭 솟구쳤다.
‘아마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거겠지. 성군이 될 재목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어필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고.’
딱 그럴 것 같았다. 황태자에 대한 풍문은? 물론 과장된 것이겠지. 어쩌면 제국의 황실이 직접 나서서 부풀려 준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앞뒤가 맞는 기분이 들었다.
‘즉, 황태자는 의사인 척만 하며 생색을 내고 있다는 거로군. 아델린도 이런 분위기에 휘말렸던 것일 테고.’
나름의 결론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한숨도 나왔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생색에 장단이나 맞춰줘야 하는 꼴이 되었는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만약, 눈앞의 상대가 제국의 황태자가 아니었다면? 무례고 뭐고 간에 당장 자리를 박차고 여길 나갔겠지. 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자칫 그랬다간 조카가 애쓰는 제국과의 협상에 악영향이 갈 테니까.
‘쯧.’
척만 하는 치료라면 얼른 끝내면 좋겠다. 장군 에두아르는 찡그려지려는 표정을 애써 관리하며 기다렸다.
그 사이, 라키엘은 진맥 스킬의 결과를 열심히 검토하고 있었다.
딩동!
[종합검진표]
[검진 대상 : 에두아르 앙부아즈]
[종족 : 하프엘프]
[성별 : 남자]
[연령 : 57세]
[신장 : 184.6 Cm]
[체중 : 85.9 Kg]
[혈액형 : Rh+ E]
[종합 소견 : 대체적으로 매우 강건한 신체입니다. 다만, 위의 유문전정부 소만 부위에 호발한 만성적인 위궤양(gastritis ulcer)이 감지되었습니다. 원인은 위산과다 및 점막의 저항력 약화로 보이며, 궤양부의 위벽 세포가 소실되어 점막의 분비선만 남아 있는 <중증>의 단계입니다. 이 경우, 조직의 이형성에 이어 위암으로 발전될 징후가 뚜렷하니 조속한 치료를 권장합니다. 또한, 위 점막과 점액 사이에서 대량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 infection)의 감염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또한 조속한 조치를 권장합니다.]
……흐음.
‘난리 났네, 아주.’
라키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애초부터 장군의 위궤양 상태가 좋지 않다고는 생각했다. 한데 각 잡고 진맥을 하면서 보니까, 예상보다도 훨씬 좋지 않았다.
‘이 정도면 심각한데?’
거의 위암으로 진행되기 직전의 상태다. 게다가 종합 소견의 말미에 언급된 헬리코박터 감염까지 더해지니 더욱 골 때리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오장육부, 너희가 실시한 상담 결과는?’
라키엘이 물었다.
곧 오장육부의 대답이 돌아왔다.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에두아르 앙부아즈의 위궤양 상태에 경악합니다.]
[심장 : 와 씨. 뭐냐 저거.]
[허파 : 허어어…… 파하아아아…….]
[대장 : 위벽 한쪽이 아주 녹았지 말입니다.]
[간장 : 저러고 어떻게 살았지? 엄청 아팠을 건데ㄷㄷㄷ]
[위장 : …….]
[콩팥 : 위장아? 왜 말이 없어?]
[비장 : 문화 컬쳐 받은 듯ㅋㅋ]
[오장육부 리포트 : 위궤양 상태가 심각함.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3년 이내로 반드시 뒈짓 당첨임. 얘 살리고 싶으면 당장 입원치료ㄱㄱ]
“…….”
그래, 알겠다.
라키엘은 고개를 들었다.
이쪽을 무표정하게 마주 보는 장군 에두아르가 보였다. 아니, 얼굴은 무표정이되, 눈빛은 묘하게 까칠하고 불만이 가득하다. 그걸 본 순간 라키엘은 내심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름 익숙해진 눈빛인 까닭이었다.
‘또 날 패션의사로 보는 사람의 등장이구만.’
자신이 황태자라서.
그래서 가끔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이쪽을 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처음 만나던 때의 왕녀 아델린이 그랬고, 황제 또한 예전엔 다르지 않았다.
지금 눈앞의 장군 에두아르도 마찬가지였다.
‘응 괜찮아, 익숙해.’
사실 상대의 입장에서는 저럴 법도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면 이쪽이 환자의 손목만 짚고서 가만히 있는 걸로 보일 테니까. 그걸로 어떻게 병을 진단하겠느냐는 의심이 쑴펑쑴펑 솟구치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아무리 의심해봤자, 정작 치료를 받으면서 호전되는 상태를 몸으로 체험하면 태도가 바뀔 테니까.
‘그때 가서 매달리지나 맙시다.’
라키엘은 내심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위궤양이 맞습니다. 그리고 상태가 좀, 진행이 많이 됐군요.”
“진행이 많이 되었다 하심은?”
“위산과 펩신의 과도한 공격에 의해 위장 점막이 심각하게 결손되었습니다. 그러한 점막의 결손 부위 깊이가 점막하층 이하까지 진행이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위천공이 발생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은 단계입니다. 천공이라 함은 위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말하며, 이로 인하여 위 내부의 내용물이 복막으로 흘러나와 급성 국한성 복막염을 일으킬 수도 있지요.”
“……예?”
장군 에두아르는 흠칫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황태자가 분명 사람의 말을 하고 있기는 한데, 어째서 자신의 귀는 저 말들을 알아먹을 수가 없는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황태자의 혓바닥은 개의치 않고서 쌩쌩 잘만 움직였다.
“또한, 위 내부에 대량으로 증식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또한 확인이 되었습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란, 일명 위 나선균이라고 불리는, 위 점막과 점액 사이에 기생을 하는 나선 모양의 그람 음성 간균입니다. 이놈은 특이하게도 산성도가 높은 곳을 좋아하는 변태 같은 놈인데, 그런 특성 때문에 사람의 위장에서 대량으로 증식을 하고, 위궤양의 발병을 더욱 부추기기도 하지요.”
“무슨…….”
“간단히 말하자면 당장 때려잡아야 할 아주 작은 기생충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런 놈들 수백억 마리가 지금 장군의 위장 속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는 상황이고 말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됩니다. 그래서 당장 입원을 하셔야겠습니다.”
“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장군 에두아르는 흠칫했다.
자신이 오랜 시간 복통에 시달려 온 것은 사실이었다. 수시로 검은색 변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에 크게 지장이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은 장군이니까.
막중한 책임이 있으니까.
그런 정도의 사소한 통증 때문에 내색을 하거나 징징거릴 수는 없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내가 왕국의 북방을 지키며 얼마나 많은 전투를 거쳤던가.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병사들을 잃었나. 적의 공격에 수하들의 목과 팔다리가 잘려 날아가고, 몸통이 꿰뚫리는 참상을 얼마나 많이 목격하였나.’
그런데 고작 배가 조금 아프다고 해서 내색할 수 있을까.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자신은 병사들을 이끄는 몸이니까. 수하들의 생존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니까. 절대로 나약한 꼴을 보여선 안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위궤양의 고통을 오랜 시간 겪으면서도 묵묵히 참아왔던 장군이었다. 그런데 입원이라니. 병원 침상에 얌전히 누워서 지내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니. 심지어 조국도 아닌, 남의 나라에 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장군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입원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제국의 황태자시여.”
“지금은 원장입니다.”
“어쨌건 저는 입원하라는 말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제게는 막중한 책무가 있습니다.”
“아하. 귀국의 왕녀님을 호위하는 책임인 거겠죠?”
“잘 아시는군요.”
“그런데 어떡하죠? 장군이 지켜야 할 왕녀께서 제게 특별히 당부의 서신을 미리 보내셨는데.”
“……예?”
서신을?
아델린이?
장군이 믿기지 않는 눈길을 던지는 가운데, 라키엘이 책상 서랍에서 서신 한 장을 꺼냈다.
“이겁니다. 직접 읽어보시죠.”
“…….”
장군은 홀린 듯한 기분으로 서신을 세 번 거듭 확인했다. 그런데 맞았다. 우리 당숙을 ‘입원시켜서라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필체도 조카인 왕녀 아델린의 것이 확실했다. 공식적인 직인마저 찍혀 있었다.
설마 이거, 오늘 아침에 쓴 걸까.
“이게…… 무슨…….”
“보셨지요? 그러니 지금은 왕녀 호위의 책무를 혼자서 짊어지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음 편히 입원하시죠. 그래야 제대로 치료가 됩니다.”
“제대로 치료라니, 어째서 말입니까?”
“헬리코박터 때문입니다.”
라키엘이 자르듯이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아주 미세한 기생충 같은 그놈들이 장군의 위장에서 설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잘 죽지도 않지요. 그래서 제대로 조제한 약물로 그놈들을 조져…… 아니, 제대로 죽여서 씨를 말려야 합니다.”
“그럼 약물만 받아가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식단 관리도 병행해서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탕약의 복용 시간도 지켜야 하고, 생활습관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휴식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니 입원을 해야지요.”
“하지만…….”
“한 번 치료를 할 때 제대로 관리를 해서 헬리코박터를 제대로 박멸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나중이 더 힘들어집니다.”
“어째서 말입니까?”
“놈들을 어설프게 짓밟아서 일부가 살아남으면, 그놈들은 약물에 내성을 지니게 되고, 그다음부터는 제거하기가 더 어려워지니까요. 그런 경우에는 당장의 위궤양이 완치가 된다고 해도 재발률이 70퍼센트에 육박하기도 합니다.”
“그, 그렇지만 그땐 다시 약을 더 많이 먹으면…….”
“장군? 생각해보시죠. 유혈이 난무하는 전투에서 생존한 경험이 있는 병사와, 그걸 처음 겪어보는 병사, 어느 쪽이 더 죽이기 쉽겠습니까?”
“당연히 처음 겪는 병사겠지요.”
“헬리코박터도 똑같습니다. 한 번 어설프게 밟았다가 살려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죽이기가 엄청나게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제대로 치료를 해야 하는 거고, 그걸 위해 입원을 권유하는 겁니다.”
“권유가 아니라 강요 같습니다만…….”
“그렇게나 입원이 싫은 겁니까?”
“예.”
장군 에두아르가 숨도 안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위궤양?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런 걸로 입원을 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없이 강건하고 튼튼하지요. 그 누구보다도 말입니다. 그런데 입원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하아. 튼튼이라.”
“왕국의 북방을 30년째 지킨 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위장은 지키지 못했지요.”
“그깟 사소한 질병은 강건한 육체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강건한 육체라.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라키엘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데미안을 슬쩍 가리켰다.
“그럼, 이 친구와 대련을 해보시지요.”
“대련을 말입니까?”
“예. 이 친구와 맞서서 5초를 버티면, 충분히 강건하심을 인정하도록 하지요.”
“……예?”
장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냥 대결도 아니고, 달랑 5초를 버티라고? 그 조건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모욕적인 조건인 까닭이었다.
‘이게 무슨…….’
장군 에두아르는 어이가 없는 눈으로 데미안을 보았다. 황태자의 흑발 호위. 소문을 들어본 적은 있다. 시성식장에서 소드마스터들과 함께 엄청난 신위를 선보였다지.
하지만…….
‘정작 실제로 만나보니 그런 기세는 느껴지지 않는데.’
그러했다.
데미안을 아무리 보아도, 강자 특유의 저릿저릿한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생김새와 눈빛이 제법 까칠하며 날카롭긴 하지만, 딱히 긴장감이 몰려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웨어울프 간호사가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런 것보다도.
“…….”
조건 자체가 굴욕적이다.
상대가 아무리 강한 이라 해도, 설령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고작 5초를 버텨보라니. 검을 처음 쥐는 애송이에게나 들이밀 법한 조건을 선심 쓰듯이 내밀다니.
‘수많은 마물과 이민족에 맞서서 혹한의 북방을 30년간 방어한 내게?’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가 갈렸다.
“좋습니다.”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심 다짐했다. 5초? 어림도 없는 소리. 최소 10분은 애를 먹게 만들어 주마.
‘내 모든 기량을 걸고서!’
꽈드드득!
황태자를 따라 연무장으로 내려가며 온몸에 투지를 불태웠다. 연무장에서 데미안과 맞섰다. 고독한 사자의 심장으로 대검을 뽑아들었다.
“가겠소.”
스르릉!
그리고 2초 후.
그의 정신이 혼절의 테마파크로 여행을 떠났다. 입원(물리)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