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20화 (320/468)

320화. 왕녀와 미노타우로스 (3)

콰아앙-!

교통사고가 나면 이런 소리가 날까.

우루스가 내뻗은, 말 그대로 소형차 크기의 주먹이 왕녀 아델린의 몸통을 후려쳤다. 맞은 건 아델린인데, 순간 이쪽의 가슴이 철렁했다.

‘미쳤……!’

그녀가 걱정이 되어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대형 사고다, 이건. 외교 사절단으로 온 타국의 왕녀가 이쪽이 관리하는 별궁의 정원에서 심각한 중상을 입는 사고. 아니, 외교 대참사.

그때부터였다.

불과 1, 2초 남짓한 사이에 오만 가지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왕녀 아델린이 중상을 입고, 혹은 죽거나 해서, 앙부아즈와 제국 사이의 관계가 파탄 나고, 전쟁이 터지고, 그걸 책임지고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고, 기타 등등, 우여곡절, 세계멸망, 뭐 그런.

아니, 그보다는…….

“왕녀님!”

철렁하는 마음에 외쳤다.

한데 동시에 그 순간, 엄청난 위화감을 느껴야 했다. 공터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 확 몰린 것이었다.

‘어?’

뭔가가 좀 이상했다. 사람들의 저 눈빛, 낯설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딱 그거다. 연극 공연을 관람하러 갔다가 실수로 재채기라도 했을 때 날아와서 꽂히는 그런 눈빛.

‘어째서?’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백만 송이쯤 피어났다. 방금 대형 사고가 터진 건데, 어째서 다들 사고를 당한 왕녀를 걱정하지 않는 걸까. 오히려 걱정스러운 마음에 빼액 소리친 이쪽을 돌아보고 있는 걸까.

이게 정상인 걸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타합!”

왕녀 아델린의 단단한 기합성이 고막을 두드려 왔다. 설마 무사한 걸까. 얼른 돌린 눈길. 그곳에선 왕녀가 특유의 재빠른 스텝인을 선보이며 우루스의 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정권을 뻗었다.

투헉!

왕녀의 정권이 우루스의 복근을 후려쳤다. 커다란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우루스도 지지 않았다. 맞자마자 주먹을 당기고, 뻗었다.

후우우웅-!

또다시 왕녀를 덮치는 우루스의 맹렬한 주먹!

‘으읏.’

어째서 이쪽의 몸이 움찔거리게 되는 걸까.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는 한편으로, 이번에는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어째서 왕녀가 우루스의 주먹을 정면으로 맞고서도 멀쩡했던 것인지를.

“흡!”

그녀의 두 다리가 땅을 제대로 디뎠다. 전신의 근육이 모조리 활성화가 되었다. 경혈 스캐닝을 통해 그녀의 근육에 깃드는 마나의 폭포수 같은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루스의 주먹이 그녀를 후려쳤다.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힘을 살짝 뺀 채로.

콰앙-!

또다시 울려 퍼지는 살벌한 굉음.

아무리 마지막 순간에 힘을 뺐다고는 해도, 그래도 우루스의 주먹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맞는 순간 내장파열과 복합골절 당첨이었을 것이다. 최소 전치 12주는 거뜬히 나오고, 병원장의 지갑을 빵빵하게 채워줄 VIP 고객님으로 등극(?) 됐겠지.

하지만 아델린은 버텨냈다.

가까스로.

“……크헉!”

왕녀의 가쁘게 뱉는 기침. 그러나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재빨리 호흡을 가다듬었다. 주먹을 말아쥐었다. 우루스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을 내뻗었다. 우루스의 복근에서 상큼하게 터지는 북소리, 콰앙!

그 모습을 보며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미친 훈련인데.’

서로가 사이 좋게 죽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너 한 대, 나 한 대씩 주고받는 거다. 하는 모양으로만 보면 그냥 아예 미친 훈련이다. 그런데…… 의외로 효율적인 부분이 보였다.

‘우루스의 타격을 받는 순간에, 왕녀의 마나 심법이 가장 효율적인 대미지 감소와 회복을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저 왕녀가 깡맷집으로 타격을 버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경혈 스캐닝을 사용하는 이쪽의 눈에는 다른 부분이 보였다.

‘타격을 받는 순간에 마나 심법이 전신의 근육에 투입되는 마나의 양을 조율하고 있어. 단순히 마나를 투입만 하는 것이 아니라, 타격을 받는 지점과 주위의 근육들에 투입되는 마나의 양을 섬세하게 분배한다고 해야 하나.’

덕분에 전신의 근육이 모두 제각각의 수준으로 단단하게 뭉치거나, 반대로 느슨하게 이완이 되었다. 근육과 근막 자체가 다층구조로 이루어진 유기적 방어막으로 기능했다.

결과적으로, 왕녀는 엄청난 타격을 받으면서도 내장과 주요 신경계에는 거의 충격을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엄청난데, 저건.’

결코 공짜로 얻은 능력이 아니다. 지난 며칠 동안 우루스의 타격을 맞고 버티는 혹독한 과정을 겪으며 몸에 각인한 심법인 거다. 그 증거로, 지금 이 순간에도 타격을 받을 때마다 왕녀의 마나 심법이 조금씩 효율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즉,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라키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왕녀 아델린의 일견 무식해 보이는 훈련이 의외로 깊이가 있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구석이 느껴졌다.

혹시 우루스가 힘 조절에 실패해서 왕녀가 크게 다칠까 봐?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왕녀가 우루스를 공격할 때가 좀 이상한데.’

뭔가 쌔한 느낌이 들었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더 자세히 관찰을 해봐야 알겠지만, 뭔가가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기분이 볼수록 짙어졌다.

‘특히 동작의 균형이 좀.’

아주 미묘하게 틀어진 느낌이다. 예전에 맞서서 대련할 때는 몰랐는데, 3자가 되어 관찰을 하니까 비로소 보이는 그런 부분들.

그러니까…….

‘잠깐이라도 중단시켜야겠어.’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노파심 같지만, 일단은 점검을 해보고 다시 훈련을 이어가도록 해야겠다. 안 그랬다간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촉이 자꾸만 왔다.

그래서였다.

라키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왕녀에게 목청을 높여 말하려 했다. 미안한데 잠깐 훈련을 중단해 줄 수 있겠느냐고. 당신의 안전을 위해 확인을 해보고 싶은 부분이 있노라고.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콰아앙!

왕녀가 우루스의 복근을 후려쳤다. 그리고…… 나와선 안 될 불길한 뼛소리가 그녀의 어깨에서 울려 퍼졌다.

……끄득!

“어깨 탈구, 이건 그중에서도 방카르트 병변(Bankart Lesion)입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야밤의 진료실에서 라키엘은 안타까운 표정을 삼키며 말했다. 그는 조금 전까지 벌어졌던 일을 떠올렸다.

왕녀의 어깨에서 나왔던 뼛소리. 그 직후에 오른 어깨를 감싸 쥐며 주저앉던 왕녀의 뒷모습. 보자마자 달려가 살폈더랬다. 왕녀의 어깨가 심하게 탈구되어 있었다.

응급처치를 했다. 즉석에서 접골을 통해 빠진 어깨 관절을 끼워 넣고, 나뭇가지와 천을 부목으로 삼았다. 어깨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진료실로 데려왔다. 경혈 스캐닝과 진맥으로 그녀의 어깨 상태를 자세히 관찰했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왕녀님, 어깨 관절 이거…… 처음 빠진 거 아니지요?”

“…….”

왕녀는 입을 다물었다.

아직도 통증의 여파가 남은 걸까. 혹은 오늘 훈련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걸까. 딱히 내색하는 표정이 없어서 그녀의 생각을 알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알릴 것은 알려야겠다.

“아까 관절을 맞출 때도 느낀 거고, 이후에도 확인을 한 건데 말입니다. 이거,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이렇게 탈구가 일어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닌 걸로도 보이고요.”

“…….”

“몇 번째입니까?”

“처음입니다.”

마침내 왕녀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라키엘은 딱 잘라 대꾸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닙니다. 황도에 오고 난 후로는 처음이니까요.”

“그러니까 거짓말인 거지요. 앙부아즈에서는요?”

“모르겠어요.”

“……그 정도로 자주 빠졌던 겁니까?”

“그렇게까지 자주는 아니고요. 그냥 딱히 일일이 세지는 않았던 거라서…….”

“…….”

이번에는 라키엘이 입을 다물었다.

어이가 없어서였다.

“왕녀님, 왜였습니까?”

“네?”

“왜 어깨가 이만큼 망가질 정도로 무리를 했느냐는 겁니다. 분명 전에 처음 황도에 왔을 때도, 앙부아즈에서 내전을 겪던 때에도 어깨가 이렇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궁금해졌다. 대체 그 사이에 왕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깨가 이렇게나 망가진 걸까. 하지만 왕녀는 대답 대신, 오히려 물음을 던져 왔다.

“그럼, 며칠만 조심하면 다시 훈련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 거겠죠?”

“아뇨.”

“네?”

“이 상태로는 당분간 훈련 금지입니다.”

라키엘은 딱 잘라서 말했다.

“왕녀님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째서 대답을 회피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겁니다. 지금 왕녀님의 어깨는 완전히 망가지기 직전이라는 거. 그러니 당분간 훈련은 물론이고 오른팔 자체를 쓰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런 부상, 그대로 방치하다간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될 겁니다.”

라키엘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만큼 왕녀의 어깨가 많이 망가져 있었다. 만약, 현대의 운동선수가 이 정도라면? 당장 선수 생명을 걱정하거나 은퇴를 결심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황태자님? 저는 이 정도는…….”

“참을 만했겠지요. 조금 아프고 마는 걸로 느껴졌겠지요. 이런 걸로 엄살을 부리는 건 나약한 짓이라 여겼겠지요. 압니다. 어떤 생각인지.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런……가요?”

“네.”

“반론의 여지도 없이?”

“예. 게다가 왕녀님의 어깨 탈구는 뭐랄까, 어깨만 치료한다고 끝이 나는 게 아닐 듯해서 말입니다.”

“그게 무슨?”

“밸런스 말입니다.”

휘둥그레지는 왕녀의 눈초리. 그 눈빛을 마주하며 라키엘이 말했다. 아까, 우루스에게 달려들던 왕녀를 보며 느꼈던 쌔한 감각을 되새기며. 이제는 원인을 알게 된 그 불길한 위화감의 정체를 말했다.

“골반부터 척추, 견갑과 목까지, 전부 미묘하게 틀어져 있습니다.”

“네?”

“왕녀님의 몸이 말입니다. 이렇게. 이런 방향으로.”

라키엘은 일어서서 자신의 몸으로 골반을 살짝 요염하게(?) 틀어서 보여주었다. 왕녀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제가 그렇게 하고 다닌다고요?”

“네. 이렇게. 요렇게.”

“그 정도까진 아닌 거 같은데.”

“이 정도 맞습니다. 격투 훈련을 오래 해서 그런 겁니다. 이렇게, 항상 비스듬하게 서 있는 게 습관이 되어서 말입니다.”

사실이었다.

왼손을 앞으로.

오른손을 뒤로.

비대칭으로 두고서 상대와 비스듬히 마주 서는 것. 그것이 왕녀의 몸에 뼛속까지 배어 있는 기본자세였다. 덕분에 그 자세 그대로 전신의 뼈와 관절까지 틀어진 상태였다.

그것이 바로 어깨 탈구의 원인이었다.

“미묘하게 틀어진 신체 밸런스 때문에 한쪽 어깨에 과도한 부하가 걸리는 겁니다. 이렇게. 이런 식으로. 물론 평소에 티가 나지는 않았겠지만, 그 대미지가 누적이 되다가 터지는 거죠. 어깨 관절 탈구라는 결과로 말입니다.”

“그런…….”

“그러니까 어깨 탈구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이라는 겁니다. 물론 어깨 자체도 치료를 해야겠지만, 앞으로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근본적인 원인부터 교정해야 합니다. 틀어진 골반과 척추를 말입니다.”

라키엘은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사실은 왕녀가 자신에게 치료를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굳이 어깨 탈구 치료를 해준다고 해서 보너스 수명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치료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당신이 정상적인 몸으로 앙부아즈의 왕관을 쓰기를 바랍니다. 그게 저한테도 도움이 될 테니까.”

“……제가 친 제국파라서요?”

“정답입니다.”

“그럼, 제가 마젠타노 제국을 적대하면 치료를 안 해주시겠다는 소리?”

“당연한 거 아닌가요?”

라키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델린이 미간을 찡그렸다.

“사람 치료하는 의사는 그런 발언, 조심해야 하지 않나요?”

“죄송하지만 저는 한편으로는 황족이기도 해서.”

“그럼 황태자께서 말씀하신 그 척추와 골반 교정이라는 거, 어떻게 하는 거죠?”

아델린은 궁금해졌다.

한편으로는 의구심도 느꼈다. 아무리 황태자의 의술이 뛰어나다지만, 틀어진 관절을 바르게 고쳐주는 약이라도 있는 걸까 싶었다.

‘그런 약은 없을 거 같은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어째서 황태자는 저런 미소를 짓는 걸까. 마치, 이쪽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혹시 추나요법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네?”

“축하드립니다. 이곳 로라시아 대륙의 의료 역사상 최초로 추나요법을 받는 환자가 되시겠네요.”

“……네?”

그게, 무슨 뜻?

아델린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반대로 라키엘은 인심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동안 야물딱지게 아껴뒀던 HP로 새로운 스킬을 개방할 때가 왔다고. 더불어 새 스킬의 효과를 제대로 실험(?)해볼 안성맞춤인 대상도 딱 생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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