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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322화 (322/468)

322화. 추나 받는 왕녀님 (2)

와드득!

“……!”

이것이 정녕 내 목에서 나는 소리인가. 혹은 우주가 탄생하는 울부짖음인가. 아니, 그도 아니라면…….

‘암살법?’

앙부아즈의 왕녀, 아델린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황태자의 손길은 나긋했다. 부드럽고, 촉촉했으며, 봄날의 잔디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했다. 나긋하던 손길이 머리와 목덜미를 꽉 쥐었다. 촉촉하던 움직임이 철커덕 단호해졌다. 그리고 봄날의 잔디를 와드득 뽑아 버리듯 과격하게…….

‘내 목을, 꺾었어?’

확실하다.

방금 목에서 난 요란한 뼛소리가 그 증거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이대로 목이 부러져 죽음의 구렁텅이로 무력하게 떨어지는 걸까. 이제라도 어떻게든 뭔가 대응을 해야 하는 건…….

“힘 빼세요, 힘.”

위기감이 무럭무럭 피어나려던 순간, 황태자의 평범한 목소리가 고막을 콕콕 찔러왔다. 덕분에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시원해?’

목덜미에서 뒤늦은 시원함이 확 몰려왔다. 뭐랄까. 그동안 묵었던 피로 한 덩어리가 통째로 사르르 녹아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단지 목을 우드득 꺾었을 뿐인데!

“반대쪽 갑니다?”

뽀드득!

“……!”

이번엔 왼쪽이었다. 턱이 홱 돌아가는 느낌과 함께 상큼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까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대신 신기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기이하면서도 시원한 감각. 비뚤어져 있던 몸의 어느 한쪽이 차곡차곡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

“시원한가요?”

“……네.”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 짧은 순간 그녀는 발견할 수 있었다. 황태자의 입가에 아주 잠시 걸렸다가 사라진 흐뭇한 미소를.

그때부터였다.

처음 받아보는 생소한 추나요법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차츰 사라졌다. 그녀는 몸의 긴장감을 풀었다. 황태자를 온전히 믿어서? 아마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확실한 것은, 이 기이한 시술이 무척이나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라키엘의 귓가에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딩동!

[당신은 추나요법 코스 2. 릴렉스 모드를 사용 중입니다.]

[시술 대상인 환자 : 아델린 보아르네 앙부아즈가 부드러운 이완감을 느끼며 꿀잠 태세에 돌입합니다.]

“……코오.”

낮게 코를 골며 잠들어 버린 왕녀!

라키엘의 입가에 만족도 100%의 미소가 번졌다.

‘스킬 성능 확실하구만.’

써보니 제대로였다.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마냥 스킬에만 기대며 추나 시술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왕녀가 생각보다 훨씬 긴장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불안해하는 모습이 딱 보였다. 혹은, 이쪽을 뭔가 오해하는 듯도 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선빵(?) 날리듯이 경추 우두둑 시술부터 냅다 꽂아 버렸다. 놀라기는 하겠지만, 추나요법의 효과를 몸으로 제대로 체감할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런 의도가 잘 먹혔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써먹던 손기술을 발휘했고, 그렇게 만든 ‘우두둑’ 두 방에 왕녀의 긴장감과 의구심이 증발되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쇼타임.’

첫 순서는 이완이었다.

근육과 근막, 관절을 제대로 풀고 교정하려면 이완이 우선이다. ‘릴렉스 모드’를 발동했다. 덕분에 왕녀의 영혼이 아예 꿀잠의 나라로 짐 싸들고 떠났다.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그녀의 전신 관절을 적절하게 흔들고, 당기고, 비틀며 근막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충분히 이완 상태가 되었다고 판단되는 무렵부터 추나 모드를 전환했다.

딩동!

[추나요법 코스 3. 우두둑! 모드를 발동합니다.]

……뽀그닥?

꺾었다. 비틀었다. 그때마다 왕녀의 틀어졌던 경추와 요추 하나하나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덕분에 잠깐 꿀잠에 들었던 아델린도 다시 깨어났다.

“헉, 흡!”

“아픕니까?”

“아, 아뇨.”

“시원하죠?”

“으읍, 네.”

아델린은 진심이었다. 울고 싶었다. 너무나 시원해서. 황태자가 등이며 허리를 누르고 꺾고 할 때마다 뼛소리가 찰지게 울려 퍼지는데, 그때마다 온몸이 재조립되며 다시 태어나는 기분마저 들었다.

정녕코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이 사람, 뭐지?’

아델린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황태자를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황태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잘 안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성급한 착각이었던 것 같다. 이제 보니 자신은 아직 황태자를 한참 모른다.

설마하니, 이런 기술마저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으니까.

‘이 사람은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는 걸까. 아니, 이 사람의 끝은 어디일까. 보면 볼수록 더 모르겠다. 자신의 등허리를 누르는 손길, 그 틈새로 타고 들어오는 뜻밖의 마나의 흐름처럼.

……어?

아델린은 흠칫했다.

황태자의 손길을 따라 따스한 마나가 허리로 들어왔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등과 목덜미의 근육을 한 올 한 올 어루만지듯 포근해졌다.

그런데 이내 어깨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으읏.”

그렇잖아도 빠졌다가 끼워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깨였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아델린은 미간을 찡그렸다.

황태자의 물음이 곧바로 날아왔다.

“엇. 아팠습니까?”

“조, 조금요?”

“참을 만은 하고요?”

“으읍, 네…….”

그렇다.

참을 만은 하다.

사실은 생각보다 제법 아프기는 한데, 불로 달군 꼬챙이가 어깨 관절을 찌르고서 마구 휘젓는 것처럼 아프기는 한데, 그래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가까스로 억누른 거긴 한데…….

그래도 참을 만은 하다.

황태자니까.

그가 해주는 시술이니까. 나한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믿으니까. 이 모든 게 치료를 위한 통증일 거니까. 그러니까 참을 수 있다. 얼마든지 괜찮다. 그러니까…….

“저는 좋으니까, 계속…….”

“계속하라고요?”

“으읏, 네…….”

“그럼 안 되는데요?”

“네?”

“아파도 무조건 참으면 치료가 아니죠. 고문이죠.”

“…….”

“설마, 혹시…… 그런 걸 즐기시는?”

“…….”

당장 일어나서 한 대 때릴까.

아델린은 엎드린 채로 고개만 돌려 도끼눈을 부릅떴다. 라키엘의 입가에 쓴웃음이 피어났다.

“방금은 마나 투입이 너무 많았던 것 같군요. 미안합니다, 아프게 해서. 또 아프면 꼭 말하고요.”

“……네.”

“그럼 다시.”

츠즈즈즛…….

황태자의 손길이 다시금 움직였다. 아까보다 다소 나긋해진 마나가 등줄기를 타고 들어와 전신을 돌았다. 특히 어깨와 주변을 집중적으로 감쌌다. 마치, 마나로 이루어진 솜방망이 여럿이 어깨 관절을 꾸욱, 꾸욱, 누르는 듯했다.

아까처럼은 아프지가 않았다. 여전히 쑤시기는 했지만, 한결 나았다.

‘편안해…….’

마치 전신이 부웅 뜨는 기분. 구름 위에 올라탄 느낌. 전신이 이완되고, 눈이 스르르 감기고, 이대로 편안하게 온몸을 맡겨도 될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럼 잠깐…….’

눈을 붙여도 될까. 이대로 나만 편안하게 잠들어도 괜찮을까. 그런데 황태자는, 혹시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걸까.

“괜찮습니다. 잠시 눈 좀 붙이세요.”

부드럽게 전해져 오는 목소리. 혹은, 배려. 그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저절로 눈꺼풀이 감겼다. 잠들 듯이. 안기듯이. 쌔근쌔근 숨을 내쉬며. 편안하게. 이렇게 잠드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로.

아델린은 꿈속 세상에 몸을 맡겼다.

밀물과 썰물.

드나들듯이.

전신을 부드럽게 감싸는 상냥한 감촉. 포근하고 폭신했다. 그래서 눈을 뜨는 것이 아쉬웠다. 이대로 10분만 더 자고 싶은데.

“…….”

왕녀 아델린은 눈을 떴다.

처음에는 조금 멍했다. 온몸이 개운하면서도 여전히 잠투정을 하는 아이라도 된 것처럼 나른했다. 눈길을 들었다. 비로소 깨달았다.

‘아.’

맞다.

나, 황태자에게 추나요법이라는 걸 받았지.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어 버렸지. 너무 편안하고 포근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대체 나는…….’

왜 그런 대책 없는 짓을 벌였을까.

뒤늦은 자책감에 아델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타국의 황태자 앞에서 무방비하게 잠이나 들다니. 왕족으로서의 최소한의 절도와 품위를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안일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황태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민망해졌다.

‘황태자는?’

이제 얼굴을 마주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혹스러움 속에서 그녀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다.

“……어?”

황태자가 흔들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빨다가 덜 말린 셔츠처럼, 혹은 성의 없게 던져둔 장바구니 보자기처럼, 그도 아니라면…… 마치 모든 혼을 죄다 불태워 버린 좀비처럼.

‘이게 무슨…….’

황당했다.

한편으로는 다급해졌다.

기껏 자신은 편안하게 시술을 받으며 단잠을 만끽했는데, 그 사이에 황태자는 저렇듯 탈진해 버린 모습이라니. 상상도 못 했던 상황에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려 했다.

만약, 그때 덜 말린 시래기처럼 축 늘어진 황태자에게서 나직한 당부가 들려오지 않았더라면, 당장 벌떡 일어나 황태자에게 달려갔을 것이었다.

“왕녀님, 그러지 마요…….”

“……네?”

“그렇게 손으로 바닥 짚으면서 일어나면 큰일…… 어깨, 또 빠져요…….”

“아…….”

“난 괜찮아요오…….”

“…….”

“진짜로 괜찮아요오…….”

“괜찮다니, 어딜 봐서요?”

“전반적으로……?”

“전혀…….”

“혹은, 대체적으로……?”

“대체 이게 무슨.”

아델린은 조심스럽게 일어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잠깐 잠든 사이에 어째서 황태자는 저렇게 탈진해서 축 늘어진 걸까. 황당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이쪽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태자는 힘없는 미소를 애써 지었다.

“원래 이 시술이 좀…… 이렇습니다…….”

“원래요? 추나요법이?”

“아……. 제가 하는 추나가 이렇다는 뜻입니다…….”

“설마, 시술을 해주면서 녹초가 되는 거예요?”

“뭐, 대강은…….”

라키엘의 미소가 씁쓸해졌다.

사실이었다.

이번에 개방한 추나요법, 그중에서 아스라한 심법과 뱀파이어 로드의 정혈을 함께 동원하는 ‘스페셜 콜라보레이션 모드’가 특히 이랬다.

추나를 해주며 적절한 양의 마나를 왕녀의 신체에 밀어 넣고 회수할 수 있었다. 덕분에 회복을 촉진하고자 하는 부위를 마나로 안마할 수 있었다.

습관성 탈구가 생긴 왕녀의 어깨, 그곳의 연골 조직이 대상이었다. 해보니 효과 만점이었다. 성능 또한 확실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연골 조직이 회복되는 것이 보였다.

다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다.

“저, 너무 피곤하니까…… 잠깐만 눈 좀 붙일게요…….”

라키엘은 간신히 속삭이듯 말했다.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버렸다. 힘들었다. 말을 하는 것도, 눈을 뜨고 있는 것도, 전부.

‘힘들어…….’

전신이 쑤욱 꺼지는 기분. 지하로 빠져드는 느낌. 온몸이 늘어지고, 눈이 사정없이 감기고, 이대로 혼절하듯 잠드는 것만이 최선일 듯한, 그런 기분.

‘그러니 잠깐…….’

눈 좀 붙여야겠다. 한데 환자를 앞에 두고 이래도 될까. 안 될 거 같은데. 잠깐 걱정이 들었다. 한데 왕녀는 혹시 이런 내 마음을 알아준 걸까.

“괜찮아요. 제가 살펴드릴 테니 잠시 눈 좀 붙이세요.”

부드럽게 전해져 오는 목소리. 혹은, 배려. 그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저절로 눈꺼풀이 감겼다. 잠들듯이. 안기듯이. 쌔근쌔근 숨을 내쉬며. 편안하게. 이렇게 잠드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로.

라키엘은 꿈속 세상에 몸을 맡겼다.

그를 바라보는 아델린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한편, 같은 시각.

마젠타노의 황궁에서는 황제 아스테리온이 어느 보고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서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황태자의 호위, 데미안 카이엔과 마계왕의 위험성에 대한 종합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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