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심야 진료 스캔들 (2)
“저기, 혹시 들으셨어요?”
“뭘?”
“그거 있잖아요, 그거.”
“그게 뭔데?”
“그거, 그거, 황태자 전하랑 앙부아즈의 왕녀랑.”
“아아, 그거?”
“들으셨어요?”
“응. 들었는데. 왜? 동생은 못 들으셨어?”
“저야 당연히 들었죠.”
이곳은 별궁 한의원의 입원실. 퇴원을 앞둔 어느 아주머니 환자가 옆 병상의 할머니 환자에게 속닥거렸다.
“아니, 그런데 듣고도 좀 안 믿겨서 말예요. 그거, 두 사람이 아침마다 원장실에서 함께 나온다던데요?”
“응. 그거 사실이여.”
“……진짜로요?”
“어. 내가 봤는데 뭘.”
“보셨단 말인가요?”
“그렇지. 내 말 못 믿어?”
“아뇨. 형님 말이라면 믿죠. 그러면, 혹시 그거도 진짜예요?”
“뭐가? 황태자 전하가 녹초가 돼서 실려 나온다는 거?”
“예에. 바로 그거.”
“아. 요즘은 진짜는 아니고.”
“요즘은, 이라뇨?”
“처음 며칠은 나오면서 문 앞을 지키던 카이엔 경한테 부축을 받았는데, 요즘은 그냥 원장실에서 바로 주무시는 것 같다 하더라고. 소파에서.”
“……얼마나 힘을 많이 쓰셨으면.”
“그 힘, 어디에 썼을까?”
“그러게 말이죠. 혹시 의사나 간호사들한테 따로 들으신 이야기는 없었어요?”
“에잉. 당연히 없지, 이 사람아. 여기 의사랑 간호사들이 얼마나 입이 무거운데.”
할머니 환자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저었다.
“뭐 어쨌건간에, 밤새도록 원장실에서 둘이만 있다가 나오는 건 확실하다는 거지. 땀 뻘뻘 흘리고 녹초가 돼서.”
“와아…….”
“그런데 더 흥미진진한 점이 뭔지 알어?”
“뭔가요?”
“그 와중에도 앙부아즈의 왕녀는 개운한 표정이더구만?”
“……아하?”
“딱이지?”
“예에, 완전.”
두 환자의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가 무럭무럭 펼쳐졌다. 오해(?)가 생성되는 건 비단 환자들 사이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별궁 한의원의 하인과 하녀들도 틈만 나면 재잘재잘. 특근대원과 근위병들도 눈치를 보며 블라블라. 만약 별궁 한의원에 프린터기가 있었다면, 프린터기도 알아서 소문을 위이잉 출력할 기세였다.
심지어 환상종들마저도 예외가 아니었다.
“꼬슴? 꼬스슴?”
“뽀보복? 뽀?”
“코오! 코몽!”
“……꾸꺄아?”
“누우우우-! 푸륵!”
꼬슴이가 모두를 돌아보며 물었다. 불사복치 뽀복이가 불꽃 지느러미를 파닥거렸다. 아기 코끼리 코몽이가 확신하며 코를 끄덕였다. 아기 아피로스 애벌레 꾸꾸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루스는 므흣한 콧김을 풍 뿜어냈다.
모두는 흐뭇하게 확신했다.
아, 우리 황태자가 성장(?)했구나.
항상 비리비리한 줄로만 알았는데, 저래서 언제 사람 구실 하나 싶었는데. 어느새 벌써 이렇게 컸구나. 이젠 세상에 내보내도 당당할 한 사람의 어른이 되었구나. 참으로 장하다, 장해.
“……라는 내용의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전하.”
“응, 그래서 폐하의 반응은?”
“없습니다.”
대답한 데미안이 묘한 눈빛으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전하? 괜찮으십니까?”
“응? 뭐가?”
“잘못된 소문 말입니다.”
“응. 괜찮아.”
라키엘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저녁 산책을 즐기던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어차피 소문이란 게 다 그런 거니까. 그렇게 다들 즐기는 거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사실이었다.
그동안 별궁에서, 황도에서 지내며 느낀 점이 있었다. 이곳 세상의 귀족가에는 정말로 무수한 소문들이 끝도 없이 유행처럼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어느 귀족가의 누구가 어느 영애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라. 어느 집안의 둘째가 상사병에 걸렸다더라. 무슨무슨 가문의 아들내미한테 기묘한 취미가 생겼다더라, 기타 등등, 등등.
대부분이 근거 없는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터무니없는 내용도 많았다.
당연히 그때마다 소문의 당사자들은 펄쩍 뛰곤 했다. 아니라고. 절대 그런 일 없다고.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반응을 더 즐기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게 실수인 거야. 그렇게 막 떡밥을 던져주면 안 돼요. 아예 물어 뜯어달라고 소매 걷고 꿀 발라서 내밀어 주는 꼴이라니까?”
“그래서 전하께서는 무반응으로 대응할 생각이신 겁니까?”
“어. 아마도.”
“하지만 전하.”
“응. 왜?”
“소문이 전하의 생각처럼 간단하게 사그라들 것 같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으음, 예를 들자면?”
“앙부아즈의 에두아르 장군이 청첩장 양식을 고민하는 걸 봤습니다.”
“……뎃?”
“위궤양 치료가 다 끝나고 퇴원 준비를 하면서 말입니다. 간호사들과 잡담을 나누며 너무나 기뻐하더군요. 조만간 경사가 생길 것 같다고. 자신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그래서 고민이라고 말입니다.”
“설마, 청첩장 양식을?”
“예.”
“미친 거 아냐?”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또 있어?”
“당연하지요. 다음은 가르딘 경의 소식입니다.”
“저기, 뉴스 리포터세요?”
“가르딘 경이 밤마다 개인 호위를 대동하고서 황도 인근의 야산과 들판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또…… 왜?”
“약초를 찾으려는 것 같더군요.”
“약초는 별궁 한의원에 많은데?”
“남자에게 좋다는 특별한 약초를 찾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설마.”
“생각하신 설마가 맞을 겁니다.”
“나한테 선물하려고?”
“예, 확실히.”
“…….”
“다음 소식입니다.”
“저기, 잠깐만?”
“폐하께서…….”
“폐하는 반응이 없으시다며? 아까 그렇게 말했지 않아?”
“딱히 반응은 없긴 하신데…….”
“하신데?”
“최근 집무실에서 독서에 빠지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독서에 빠지셔? 왜? 무슨 책을 그렇게 재밌게 보는데?”
“최신 유행 혼수 스타일, 신혼여행지 정보, 각국 왕가의 결혼 관례, 평생 행운 가득 아기 이름 베스트 작명법 등등에 대한 책자를 은근슬쩍 탐독하기 시작하셨다고…….”
“아 이 사람들이 진짜.”
……그만해, 미친 자들아.
그냥 진료라고.
추나요법이라고.
그런데 환자가 왕녀라서, 추나를 받으며 온몸이 비틀리고 꺾여대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게 할 수가 없어서,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장실에서 시술을 하는 거라고.
‘게다가 추나요법 옵션인 스페셜 모드는 밤에만 쓸 수 있고…….’
단지 그래서일 뿐이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밤에, 원장실에서 단둘이 시술을 해왔다. 데미안과 수간호사 아니스? 문 앞을 지키게 했다. 치료받는 모습을 보이며 왕녀가 느낄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한데 주위에서는 벌써 김칫국을 사발로 원샷하고 있다니.
‘언제는 나 보고 고자라며…… 발기부전이라고 쑥덕거려 놓고선…….’
그러다가 이제는 졸지에 변강쇠가 된 건에 대하여.
“…….”
라키엘은 잠시 쑴펑쑴펑 샘솟는 비애감(?)을 다스렸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내 환자가 어떤 치료를 받는지 공개할 수는 없잖아?”
“그런 겁니까.”
“어. 절대로 지켜야 하는 거.”
사실이다. 환자의 개인정보를 누설할 수는 없다.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설령 지금과 같은 경우라도 마찬가지이고.
“어차피 왕녀는 치료 다 받으면 협상 마무리하고 앙부아즈로 돌아가겠지. 그럼 잠깐 피어났던 스캔들도 알아서 가라앉을 거고. 그때쯤 새로 생겨나는 다른 소문에 이목이 쏠리면서 다들 금방 잊겠지, 이런 헛소문은.”
“과연…… 그럴까요.”
“아마도?”
라키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2주가 지나는 사이에 왕녀의 어깨가 생각보다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페셜 모드의 성능(?)이 확실했다. 손상된 연골과 인대의 회복세가 매우 좋았다. 왕녀가 재활치료에 적극적인 점도 긍정적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최근에 얻은 추나요법 스킬의 옵션인 ‘레고 조립술’ 덕분에 추나 시술 자체가 좀 더 편해지기도 했다.
‘거기에 환상종들도 많은 보탬이 되고 있고.’
매일 가시를 제공하는 꼬슴이는 물론이었다. 불사복치 뽀복이는 따뜻한 불꽃 지느러미로 온열찜질을 해주었다.
아기 코끼리 코몽이는? 재활훈련을 하는 왕녀 곁에서 열심히 숨을 쉬었다. 그것만으로도 실내의 산소 농도가 살짝 올라갔다. 인체의 재생력을 높이는 산소치료가 자동으로 이루어졌다.
그밖에도 꾸꾸는 물리치료를 받는 왕녀에게 폭 안겨서 심리적인 포근함을 선물했다. 우루스는? 제자(?)의 회복을 기원하며 열심히 되새김질을 했다.
“그러니까 뭐, 하루빨리 왕녀가 완치되고 앙부아즈로 돌아가 주길 바라야지.”
이대로면 원래 계획했던 12주보다 더 빠르게 완치될 수 있을 것 같다. 제발 그러면 좋겠다. 이쪽도 밤마다 힘이 드는 게 사실이니까.
“어쨌건, 그나저나 너는?”
“예?”
이쪽의 질문이 뜻밖이었을까. 데미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연스럽게 탈압박용 화제 전환을 시도하며 다시 물었다.
“요즘 너는 어떠냐고. 컨디션.”
“아.”
“괜찮아?”
“예, 그럭저럭.”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서 전보다 갈증이 좀 나긴 하는데 심하진 않습니다. 아마 여름이라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 거겠지요.”
“딱히 어지럽거나 하지는 않고?”
“예. 다만-”
“다만?”
“살이 조금 빠졌습니다.”
“흐음, 그러고 보니 턱선이 좀 갸름해졌다?”
“예. 아주 살짝.”
“왜? 입맛이 없어?”
잠깐 걱정이 들었다.
사실 주위의 사람들 중에 제일 신경을 써야 하는 존재가 데미안이다. 녀석의 내면에는 마계왕이 잠들어 있으니까. 녀석이 자칫 중병으로 목숨이 위태롭게 되면, 마계왕이 그 즉시 녀석의 육체를 강탈할 테니까.
다행히 데미안 녀석은 별일 아니라는 듯 한쪽 입술로 웃었다.
“그건 아니고, 전하 때문에 수면이 부족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나 때문에?”
“예. 전하께서 왕녀를 치료하시는 내내 저는 원장실 문 앞을 지켜야 했으니까요. 매일. 밤새도록.”
“어…… 미안…….”
“괜찮습니다. 덕분에 아니스 양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 친해지기도 했고 말입니다.”
“어? 친해져?”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닙니다.”
“어라라? 부정이 강한데? 설마아?”
“진짜로 아닙니다.”
“진짜아?”
“아닙니다.”
“그래애?”
“아. 닙. 니. 다.”
“흐음, 알았어. 네가 아니라니까 일단은 그렇게 알고 있을게.”
“…….”
“그런데 말야. 방금 그게 내가 요즘 헛소문을 들으면서 느끼는 기분이다?”
“그걸, 저한테 시전하신 겁니까?”
“응.”
“…….”
“나만 당하면 억울하잖아?”
“…….”
“너는 내 호위니까, 호위 대상의 아픔을 함께 느껴보는 것도 소중한 체험 아니겠어?”
“…….”
“아. 이런 호위 대상이 또 없어요. 진정한 호위의 마음가짐을 딱 장착시켜 주는 체험 교육, 펄떡펄떡 살아 있는 체감 훈련, 이런 귀한 경험을 너는 나 말고 누구한테서 느껴보겠냐. 안 그래?”
“…….”
“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
“…….”
“어이?”
“…….”
혹시 삐친 걸까.
데미안은 도통 대답이 없었다.
‘허 참. 까칠한 녀석.’
피식 웃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녀석을 돌아보았다. 서너 걸음 뒤쪽, 풀밭에 쓰러진 데미안이 보였다.
“어?”
이상하다.
저럴 리가 없는데.
갑작스럽다. 고약한 장난이라도 치는 걸까.
“데미안?”
그런데 대답이 없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혹은 위급한 환자처럼.
“……데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