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티끌도 밟으면 꿈틀한다 (2)
1형 당뇨(type 1 diabetes, Insulin dependent diabetes mellitus : IDDM). 국제질병분류기호(ICD-10)로는 E10.
일명,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이라고 불리는 난치병, 혹은 불치병.
이건 위험하다.
그냥 당뇨병이 아니다.
잘못된 식습관이나 비만 등으로 인하여 유발되는, 일반적인 성인병인 2형 당뇨병과는 발병 원인부터 위험성까지 모든 것이 차원이 다를 정도다. 아니, 그냥 아예 다른 병이다.
“그러니까,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으음. 네 몸속 장기 중에 췌장이라는 놈이 있는데, 그 췌장에서 인슐린을 생산하는 베타 세포가 파괴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하게.”
“베타 세포…….”
데미안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어쩐지 자꾸만 입술이 바짝 마르는 기분. 실제로도 목이 말랐다. 온몸에 힘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황태자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왜 파괴된다는 겁니까?”
“통상적으로는 몸속의 면역 체계가 꼬여서. 외적으로부터 몸을 방어해야 할 백혈구가 베타세포를 적으로 인식해 버려서.”
“공격을 하는 겁니까?”
“어. 팀킬이랄까. 그게 자가면역질환의 전형적인 증상이지만.”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사흘 전의 일이 떠올랐다. 평범하게 바쁜 하루였다. 왕녀의 재활치료를 돕고, 일반 환자들을 진료하고, 그 와중에 짬짬이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의 끝이었다.
그 마지막에 잠시 숨 좀 돌리려고 산책을 했더랬다. 데미안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지극히 무난한 저녁이었다.
그리고 데미안이 쓰러졌다.
아무런 전조나 기색도 없이 그냥 픽 쓰러졌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날 줄을 몰랐다. 갑작스러운 이쪽의 외침에 몰려들던 근위병들. 그 와중에 진맥을 했다. 덕분에 깨달았다.
‘혈당이…… 엄청나게 치솟아 있었지.’
종합검진표를 보면서 눈의 의심해야 했다. 위험 수치를 아득하게 넘은 혈당이 나왔다. 그 원인은 췌장 랑게르한스섬의 베타 세포의 괴멸이었다. 즉, 몸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내는 인슐린의 생산이 거의 끊어졌다는 뜻이었다.
“그래서야. 인슐린(Insulin)은 몸속에서 일종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거든.”
“중개자…… 역할 말입니까?”
“어. 혈액에 담긴 영양소를 몸에서 쓸 수 있도록 소개팅을 주선해주는 놈.”
“그럼…….”
“맞아. 네 몸이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건, 혈액에 있는 영양소를 하나도 쓰질 못한다는 뜻이야. 인슐린이 없으니까. 소개팅을 주선하지를 못하니까. 영양소가 남아돌아도 근육이며 신체 기관에서 하나도 쓰이질 못하고 모조리 빠져나가 버리는 거지. 소변으로.”
그러하다.
쓰질 못해서 혈액에 남아도는 영양소.
그게 바로 고혈당의 실체이다.
일반적인 2형 당뇨병이 인슐린이 있어도 신체가 인슐린에 둔감해져서, 소개팅 눈만 잔뜩 높아져서 주선자가 소개를 해줘도 시큰둥한 나머지 에너지를 잘 못 쓰고 혈당이 올라가는 거라면?
1형 당뇨병은 소개팅 주선자가 아예 멸종된 상황인 거다.
그래서 더 심각한 거다.
“그럼 전하? 하면 그 인슐린이라는 걸 구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해봐야지.”
안 하면 끝이다.
아마도 데미안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남짓이겠지. 그 시간을 넘기도록 인슐린을 투여하지 못하면? 죽을 거다. 아마도 아니고 확실하게 100%. 당뇨병성 케톤산혈증과 각종 급성 합병증을 무더기로 겪으며 급격한 죽음을 맞이하겠지.
그러면…… 마계왕이 데미안의 몸에서 깨어나는 거고.
‘젠장.’
라키엘은 내심 이를 갈았다. 그리고 확인을 위해 데미안의 맥을 짚었다.
‘진맥.’
딩동!
[진맥을 시작합니다.]
[스캔 중.]
[3…… 2…… 1……]
[진맥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래의 <종합검진표>를 확인해주세요.]
결과가 나왔다.
내용은 역시나였다.
[종합검진표]
[검진 대상 : 데미안 카이엔]
[종족 : 인간(+?)]
[성별 : 남자]
[연령 : 3,913세]
[신장 : 186.6 Cm]
[체중 : 71.1 Kg]
[혈액형 : He+ D]
체중이 많이 줄었다.
예전엔 79킬로그램 정도였는데, 단기간에 거의 8킬로나 빠져 버렸다. 하지만 더 심각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종합소견 : 모든 항목에서 지극히 위독한 신체입니다. 전형적인 1형 당뇨병이 감지됩니다. 췌장의 베타세포 파괴로 인한 인슐린 분비의 결핍으로 혈당 항상성이 무너졌습니다. 신속한 인슐린 투여가 필요합니다. 이는 권장이 아닌 강제사항이며, 어길 시 생명의 유지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
혹시나 해서 다시 확인했지만, 여전히 암울한 결과였다. 지금껏 많은 환자들을 진맥하며 이 정도로 심각한 어조의 종합소견은 처음 봤다.
하지만 라키엘은 마냥 절망하지만은 않았다. 포기할 수 없다. 인슐린? 구할 수 없으면 만들면 된다. 물론 현대식 공장에서처럼 완벽한 공정으로 찍어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전통이 살아 숨 쉬는 1921년 토론토식 민간요법(?)으로!’
문득, 실제 역사 속의 사례가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딱 100년 전이었던가. 당시엔 1형 당뇨병은 걸리면 그냥 죽어야 하는 병이었다. 지금도 인슐린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지만, 당시는 인슐린이 아예 발견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그 시절 캐나다 토론토의 대학병원에 입원했던 14살의 레오나르도 톰슨이라는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1919년에 당뇨병 진단을 받은 레오나르도는 1921년 무렵엔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지고 뼈와 가죽만 남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신세였다.
그때 소년에게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고 했던가.
‘토론토 대학의 밴팅이라는 사람과 그의 조수가 놀라운 발견을 했지. 개의 췌장 추출물을 다른 실험용 개에게 주사했더니 혈당이 쭈욱 내려가더라는 발견.’
라키엘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밴팅과 조수가 썼던 방법이 뭐였더라.
그래.
떠올랐다.
“아니스?”
“네, 전하?”
“당장 소 한 마리 잡자.”
“……네? 설마?”
수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키엘은 황급히 오해(?)를 정정했다.
“우루스 말고 그냥 황소. 최대한 건강한 놈으로 하나 구해오라고 시종장에게 전달해줘.”
“아, 알겠습니다, 전하.”
아니스가 병실 밖으로 나갔다.
라키엘은 데미안을 향해 말했다.
“인슐린,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조금만 버텨.”
데미안은 대답이 없었다. 기력이 떨어진 탓일까. 금세 혼절하듯 잠이 든 모습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본격적인 전통식(?) 인슐린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먼저 황소를 한 마리 잡았다. 췌장을 빼내서 산성 알코올에 넣었다. 여기까지는 밴팅의 방법을 참고했다. 그리고 제임스 콜립(James Collip)이라는 생화학자가 이후에 보완한 방법을 첨가했다.
췌장을 담그는 알코올의 농도를 높였다. 그 상태에서 췌장과 알코올을 통째로 곱게 갈았다.
‘이렇게 알코올의 농도를 높이면 불필요한 지방과 단백질, 염분 등이 건더기처럼 전부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제임스 콜립이 발견했거든.’
하여 그렇게 했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야기로만 듣던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의 차이 때문이었다. 실수와 실패가 반복되며 켜켜이 쌓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꿋꿋하게 갈았다.
원심분리를 했다.
거기엔 수간호사 아니스의 공로가 컸다.
“아니스?”
“네, 전하.”
“변신한 상태에서 이걸 잡고 빙빙 돌려줄 수 있어?”
“네?”
“최대한 강력하고 빠르게. 멈추거나 놓치지는 말고 딱 10분만.”
“알겠습니다.”
아니스에게 췌장과 고농도 알코올을 갈아낸 혼합액이 담긴 용기를 건넸다. 용기를 받아든 아니스가 웨어울프 모드로 변신했다. 그리고 맹렬하게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크르릉! 워우우우-!”
야성적인 포효와 함께 힘차게 돌아가는 탈수기, 아니, 천연 원심분리기! 덕분에 10분이 지난 후엔 용기 속의 용액이 딱 반반으로 나누어졌다.
쓸데없는 단백질, 지방 등의 건더기는 침전되어 아래로 가라앉았다. 반면, 필요한 인슐린 등의 활성 성분만 알코올에 녹은 상태 그대로 찰랑거렸다.
그렇게 1차적으로 불순물을 걸러냈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남은 용액의 알코올 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렇게 90%가 넘는 농도로 알코올이 농축되었을 때, 마침내 필요한 췌장 추출물이 용액과 분리되어 아래로 침전되기 시작하였다.
“그럼 아니스?”
“또 변신해서 돌리면 되는 건가요?”
“응. 이번엔 15분. 미리 고마워.”
“……워우우우! 크르릉!”
또다시 힘차게 돌아가는 웨어울프표 원심분리기! 마침내 얻어낸 순수한 췌장 추출물!
다음 순서는 멸균이었다.
‘방식은 여과멸균법(濾過滅菌法, Filter sterilization)으로.’
췌장 추출물을 함부로 가열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성분이 모조리 변질되어 버릴 테니까. 그래선 안 된다. 하여 전통적이면서도 간단한 방법을 사용했다. 바로 밀랍을 먹인 밀랍지 여러 겹으로 추출물을 걸러내는 방법이었다.
‘이게 단순해 보이지만 은근 효과적이거든.’
원리는 매우 간단했다. 추출물 속에 남아 있을 세균이 밀랍지의 미세한 틈을 지나가지 못하는 원리였다. 말하자면 매우 미세한 체를 써서 잡균을 걸러내는 방식이랄까.
총 7겹의 밀랍지로 3회에 걸쳐 추출물을 여과했다. 마침내 거의 무균 상태의 최종 추출물을 얻었다. 소의 췌장에서 만들어진 천연 분비물, 인슐린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인슐린을 데미안에게 사용할 수는 없었다. 데미안은 지극히 쇠약해진 상태였다. 만약 인슐린의 성분이 조금이라도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면? 곧바로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하여 실험부터 했다.
실험 대상은 라키엘 본인이었다.
그는 소량의 인슐린을 자신의 팔뚝에 주사했다. 그리고 기다리며 진맥하고, 관찰했다. 혹여나 인체의 거부반응이나 염증이 생기지는 않을까.
다행히 거의 없었다.
주사 부위가 모기에 물린 듯이 약간 붉어졌을 뿐. 미약한 알러지성 반응을 제외하고는 큰 거부반응이나 부작용이 보이진 않았다.
그 확인을 마치자마자였다.
라키엘은 주사 준비를 서둘렀다. 인슐린을 가지고 데미안의 병실로 뛰어갔다. 마침 데미안은 병상에 누운 채로 깨어 있었다.
“후우! 준비됐냐.”
“……그걸 저한테 주사하시겠다는 거겠지요?”
“어. 아네. 어떻게?”
“간호사들에게 들었습니다. 전하께서 이틀 내내 뭔가를 갈고, 농축하고, 걸러내느라 진땀을 흘리셨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일찍이 말씀하셨던 인슐린을 만들기 위한 시간이었겠지요.”
“맞아. 그리고 이렇게.”
“성공하신 겁니까?”
“그러니까 딱 대.”
“…….”
“뭐. 왜. 뭐. 어째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어째 주사를 맞는 저보다 전하께서 훨씬 긴장하고 계신 듯해서 말입니다.”
“긴장? 내가?”
“예. 얼굴로는 웃고 계신데, 손은 아니셔서요.”
“…….”
데미안의 담백한 지적.
비로소 라키엘은 깨달았다.
나, 주사기 든 손을 떨고 있었구나.
‘후우.’
데미안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많이 긴장됐다.
혹시나 추출물이 효과가 없으면? 예상 밖의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하면? 걱정이 태산이었다.
반면, 데미안 녀석은 피식 웃기만 했다.
“괜찮습니다, 전하. 해내실 수 있습니다.”
“……무슨. 주사 맞는 네가 날 응원하면 어떡하냐.”
“전 죽으면 그저 끝이니까요.”
“…….”
“제가 죽어서 육신이 그……놈에게 넘어가는 일이 생기면, 그때부터 고생길은 전하 혼자만 걸으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하. 어차피 넌 죽은 뒤니까 오히려 편할 거다?”
“이해가 빠르시군요.”
“후우, 한 대 때리고 싶어지게.”
“환자를 폭행하시려고요?”
“…….”
“놓아 주시죠, 주사.”
“후, 알았다.”
비로소 피식 나오는 웃음. 데미안 녀석의 뻔뻔한 대꾸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마당이다. 망설여봤자 나아지는 것도 없겠지. 심호흡을 했다. 확신을 불어넣듯 주사기 속 용액을 노려보았다.
‘첫 투여량은 5ml.’
주사기를 움직였다.
찔렀다. 주입했다.
그 순간이었다.
- 타차원의 티끌이. 감히.
“……!”
머릿속에 거대한 음성이 울렸다. 영혼으로 느껴지는 압도감. 눈앞이 캄캄해졌다. 세상이 암흑으로 물들었다. 이것은 환각일까. 아니다. 겪어본 적이 있다. 크라노스에서. 무너지던 협곡에서. 데미안의 내면에서 깨어나려던 존재를 막아서던 중에.
‘마계왕……?’
그놈이다.
깨닫는 순간.
마치 치료를 방해하려는 듯.
신화적인 압도적 존재감이 영혼을 짓눌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