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때로는 거짓말도 예술이 된다 (1)
이곳에 온 뒤부터 항상 그런 얼굴이다, 당신은. 스스로는 웃고 있노라 생각하겠지. 태연해 보일 거라 여기겠지.
하지만 달라.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웃을 때에도, 뻔뻔한 눈길을 돌릴 때에도, 당신의 눈빛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에 온 뒤부터, 항상.
“…….”
데미안은 이불을 끌어당겼다. 약간은 눅눅한 냄새가 나는 이불은 그럼에도 포근했다. 안타까웠다.
컴퓨터라는 물건 앞에 앉은 황태자. 라키엘. 그의 뒷모습이 지금 이 순간 유독 애처롭게 보이는 것은 자신만의 착각일까.
아니.
어깨가 떨리고 있으니까. 미처 숨기지 못한 숨소리가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으니까. 이러니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다.
뭔가 충격적인 것을 보았구나. 무너지려는 마음을 애써 붙잡고서 버티는 중이구나, 라고.
‘당신은…….’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겁니까. 이곳에 남겨두었던 그 무엇이 지금의 당신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겁니까.
묻고 싶었다.
다만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숨소리와 눈빛이, 마우스를 쥔 손이 떨림을 누르며 황망히 움직여대는 까닭이었다.
따르륵……!
라키엘의 손에 들린 마우스 휠이 세차게 돌아갔다. 단톡방에 켜켜이 쌓인 수많은 대화들. 그 기록의 지층을 거슬러 올라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전까지. 자신에게는 2년 전이지만, 이곳의 시간으로는 고작 100여 시간 남짓한 과거의 순간.
그곳에 자신이 단톡방에 마지막으로 남겼던 메시지가 보였다.
[내일 신촌 ㅇㅋ?]
……그래.
기억이 났다.
다음 날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신촌에서 모이기로 했었지.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오후에 남겼던 저 톡을 마지막으로 양화대교에서 떨어졌으니까.
‘자살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냥 취한 채로 좀 걸었다. 내가 처해 있던 현실이 너무나 속상해서. 그렸던 미래가 자꾸만 어그러지는 느낌에. 무너지려는 마음을 추스르려 마셨던 혼술 때문에. 몸이 뜨거워서 시원한 바람을 좀 맞고 싶었다.
그렇게, 그저 걷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떨어졌다.
그리고 이곳, 단톡방에 그 이후의 기록들이 남겨져 있다. 친구들의 다급한 연락과 대화들. 그걸 하나하나 읽는 동안…… 이곳에 남겨진 자신의 원래 육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모두 알 수 있었다.
[원호 : 친구들아. 큰일 났다. 한쓰 지금 응급실에 있다고 연락 왔다.]
[은수 : 어? 왜?]
[영진 : 무슨 일인데?]
[원호 : 나도 방금 연락받아서 자세하게는 모르겠는데 한쓰 한강에 빠졌던 거 같다. 일단 병원 가보고 다시 톡하께.]
[다호 : 한쓰 전화 안 받네]
[성진 : 이거 뭔 일임? 진짜?]
“…….”
소식을 알리는 원호와 당황하는 친구들.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원호 : 방금 병원 왔는데 어, 일단은 한쓰는 무사함. 양화대교에서 뛰어내린 건지 떨어진 건지는 모르겠고, 지나가던 운전자가 바로 신고해서 119가 엄청 빨리 출동한 덕분에 구조했다고 그러네.]
[영진 : 무사함? 와 씨…… ㄹㅇ 놀랬네]
[은수 : 다친 데도 없고?]
[원호 : 어. 외상 없음. 저체온증이 좀 오긴 했는데 그건 괜찮아질 거 같다 그러고. 아직까지 의식은 없다.
뭐 별 이상은 없다니까 일단 기다려보라네. 근데 이놈 이거 혈중 알콜농도가 제법 있다고 함ㅎㅎㅎ]
[다호 : 술 먹다 떨어졌나?]
[성진 : 아마 그런 듯. 요새 점마 쫌 힘들었자나.]
[은수 : 하긴 그렇지……]
걱정하다가 안도하는 친구들. 저 톡 하나하나가 음성지원이 되는 듯한 착각. 혹은 그리움. 스크롤을 계속 내렸다.
그 뒤로도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주로 이쪽의 안부를 묻는 이야기와 대답하는 원호, 그리고 이쪽이 깨어날 때까지 돌아가며 연차를 써서 곁을 지켜주자는 이야기들까지.
“…….”
고맙다, 친구들아.
그런데 난 어떡해야 하는 걸까.
병원에 누워 있는 내 몸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혹시 저대로 깨어나지 못하는 걸까. 영혼이 없어서 계속 식물인간 신세로 남는 걸까. 혹은, 저 몸이 눈을 뜨는 순간 내 영혼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가보고 싶다.’
충동적인 기분이 들었다.
당장 저 병원으로 달려가 보고 싶어졌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된 건지, 직접 살펴보고 싶어졌다. 그러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제 와서 저길 가봐야 뭘 해.’
이쪽은 이미 황태자 라키엘의 몸속으로 들어와 2년 남짓한 시간을 살았다. 저곳에서 많이 애썼고, 많은 것들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이곳에 남겨진 원래 몸을 살펴보러 가본들 뭐가 달라질까. 이쪽에겐 이미 더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 있는데.
“……데미안. 좀 어때?”
“예?”
“혈당, 어지럽거나 하지 않느냐고.”
“네, 전하. 괜찮습니다.”
“……그래. 식사나 하자.”
애써 단톡방 창을 닫고 컴퓨터를 껐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서 데미안과 나란히 앉았다. 이쪽이 단톡방을 둘러보느라 시간을 끈 탓일까. 밥상 위의 전복죽이 살짝 식어 있었다.
“데워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
“예. 뜨거운 건 잘 못 먹어서.”
“우리 데미안, 고양이 입천장이었어? 보기보단 연약하네.”
“전하만 하겠습니까.”
“그런가.”
피식,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데미안이다. 데미안의 육신을 통해 강림하려는 마계왕을 저지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그걸 위해 용왕을 찾아갔고, 여기까지 왔으며, 마침내 인슐린 샘플까지 구했다.
이곳에서의 목표를 이루었다.
그러니 돌아갈 일만 남았다.
이제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서, 용왕에게 숙면대보탕을 달여주고, 보답으로 인슐린 대량 복사 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그거면 되는 거다. 그러면 되는 건데…….
‘…….’
어째서 음식에 손이 가질 않는 걸까. 그렇게 먹고 싶었던 이쪽 세상의 치킨인데. 가끔은 이 길거리 음식 특유의 맛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는데.
그런데 막상 눈앞에 그 치킨이, 통닭이 놓여 있는데 쉬이 손이 가질 않았다.
이걸 먹는 일이 이곳 세상에서 치를 마지막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 먹고 나면 돌아가야 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서. 도저히. 차마.
“꼬슴?”
이쪽의 기색이 이상했던 걸까.
혹은 뭔가 티가 났던 걸까.
꼬슴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까만 눈망울로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은 척 웃어 보였다.
“아. 잠깐 고민 좀 하느라고. 포크로 찢어서 먹을지. 손으로 집어서 먹을지.”
“꼬스슴?”
“손에 기름 묻으면 불편하잖아.”
“꼬스스슴?”
“그런 고민 맞거든?”
“꼬슴……?”
“일단 너부터 먼저 먹고 있어. 자, 다리. 이거 아무나 안 주는 거야.”
“꼬스슴!”
고소한 치킨 다리 냄새 덕분에 반짝반짝 빛나는 꼬슴이의 눈망울. 그걸로 어찌어찌 녀석의 걱정을 피했다.
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밥상 너머엔 꼬슴이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전하.”
“…….”
“고민하고 계신 거, 압니다.”
“…….”
데미안 녀석 특유의 서늘한 눈길이 정면으로 꽂혀 왔다.
“방금 말입니다. 제가 제멋대로 만졌던 저 물건…… 컴퓨터라고 했던가요. 저걸 통해서 뭔가를 보신 것이로군요. 맞습니까?”
“…….”
“역시.”
“쯧. 무슨 범죄자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아닙니다. 그러니 전하의 선택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뭐?”
무슨 뜻일까.
녀석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곳에서 걱정되는 일이 있으신 것이라면…… 돌아가기 전에 해결하고 가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무슨. 나는…….”
“이곳 세상이 고향이라는 것. 이 집이 살던 장소라는 것. 모두 압니다. 또한, 앞으로 전하의 생애를 통틀어 이곳을 들르는 것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사실도 압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미련을 남기지 마십시오. 돌아간 후에는 후회마저도 늦을 겁니다.”
“야, 지금 뭔…….”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데미안은 솔직하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황태자, 아니, 라키엘. 당신도 언제나 나를 돕고 보살피는 일에 진심이었으니까.’
라키엘을 향한 데미안의 눈길이 깊어졌다.
황태자, 당신은.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랬다.
어둡고 퀴퀴하던 지하검투장. 그곳에서 처음 만났던 날부터 지금까지, 당신은 항상 그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쪽을 가장 먼저 걱정하고, 보살폈다. 정작 본인이 호위 대상이면서, 이쪽을 구하러 달려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쪽을 살리겠다며 뱀파이어 로드를 부르고, 드래곤의 왕을 찾아갔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차원으로 건너오는 것마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건너온 이곳에서 무수한 고생을 하면서도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이쪽을 살리고 보살피기 위해서만 최선을 다했다. 당신은 그러했다.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이 내내 똑같았다.
‘그런데 어찌…….’
내가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까. 보답하고 싶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말이다.
“다녀오십시오, 전하.”
“…….”
“마음 같아선 제가 직접 전하를 모시고서 다녀오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제 상태가 좋지 못하니, 혼자서라도 다녀오시라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죄송하고 송구하기 짝이 없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야, 하지만 그러면…….”
“저도 주사, 스스로 놓을 수 있습니다. 여긴 따뜻한 잠자리와 음식도 충분하고 말입니다. 전하께서 잠시 어딘가에 다녀오시는 동안 저 혼자 버티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이래도 걱정이 되십니까?”
“아니, 나는…….”
“안 다녀오시면, 저도 안 돌아가겠습니다.”
“뭐?”
라키엘은 흠칫했다.
데미안이 딱 자르듯 말했다.
“저 때문에 전하께서 미련과 후회에 오래도록 몸서리치시는 모습을 볼 바에야, 저쪽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어이.”
“진심입니다.”
그러니 부디, 지금 전하를 고뇌에 휩싸이게 만든 일을 처리하러 다녀오시지요.
데미안은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대신 물끄러미 라키엘을 바라보았다. 라키엘도 대꾸 없이 그 눈길을 맞받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전복죽에서 피어나던 김이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 라키엘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후. 알겠다. 그래. 마음은 알겠는데. 고맙긴 한데.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당장 고민을 해결하러 달려가고 싶은데. 그런데 현실적으로 문제가 좀 있어. 그래서 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뭐랄까, 헛걸음만 하게 될 거 같네.”
“현실적인 문제라니요?”
“백신 패스.”
라키엘이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곳 세상에는 대규모의 전염병이 퍼져 있지. 그래서 어딜 가든 백신이라는 걸 맞았다는 증명을 해야 들어갈 수 있어. 특히 병원은 더더욱 그렇고. 어제도 봤지? 약국 들어갈 때마다 백신패스 찍으라고 닦달하던 사람들이 있던 거. 내가 분위기 모르는 외국인인 것처럼 좀 어리바리하게 구니까 봐주곤 했잖아. 근데 병원에서는 그런 방법이 통하진 않을 거라서.”
“그럼, 따로 증명할 방법을 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어려워. 휴대폰이 없거든, 내가.”
“……예?”
“휴대폰도 없고. 신분증도 없고. 심지어 옛날에 썼음직한 꽁폰도 없어요. 그래서 입장이 안 돼. 불가능해.”
“…….”
데미안은 입을 다물었다.
휴대폰? 꽁폰? 그게 뭘까. 증명을 하는 장치인가. 대략적인 짐작만 갔다.
라키엘의 입꼬리에 쓴웃음이 번졌다.
“뭐, 어쨌건. 솔직히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현실적으로 갈 방법이 없다고 해야겠네. 가봤자 의미도…… 그건 모르겠고. 아무튼. 못 가. 가고 싶어도 불가능하니까, 그건 잊는 게 좋을 거 같다.”
말해놓고 보니 씁쓸했다.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거였구나, 나는. 내 원래 육신이 어떻게 된 건지, 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처지였던 거구나, 나는.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서 괜한 고민만 거듭하며 혼자 마음속으로 난리만 친 거였다.
가고 싶은데 안 가는 것과 못 가는 것의 차이.
그 차이가 가슴 한쪽을 서걱거리게 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라키엘은 눈을 질끈 감는 심정으로 다 식어가는 치킨 다리를 집었다.
한데 그때였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고민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에게 미세먼지 팁을 투척합니다.]
[심장 : 우리 몸뚱이가 넉 장쯤 가지고 있는 거짓말 이용권? 어쩌면 이쪽 세상에서도 유효할지도? 우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