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42화 (341/468)

342화. 때로는 거짓말도 예술이 된다 (2)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고민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에게 미세먼지 팁을 투척합니다.]

[심장 : 우리 몸뚱이가 넉 장쯤 가지고 있는 거짓말 이용권? 어쩌면 이쪽 세상에서도 유효할지도? 우후훗?]

‘……허?’

난데없이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라키엘은 흠칫했다.

거짓말 이용권?

‘그게 여기서도 적용이 된다고?’

그때였다.

딩동동!

[허파가 토와이스의 ‘YES and YES’를 열창합니다.]

[대장이 괄약근을 뚱두당땅 두드리며 찰진 베이스를 깔아줍니다.]

[간장이 여자사람친구의 ‘차원을 달려서’ BGM을 아침 알람으로 추가 설정합니다.]

[위장이 BGM 이용권은 어디서 질렀냐며 궁금해합니다.]

[비장이 개인 귀속템은 차원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콩팥이 지릴 듯이 감탄합니다.]

어…… 오장육부가 뭘 말하려는 건지 알겠다.

‘그러니까, 거짓말 이용권의 능력은 나 개인에게 귀속되는 능력이기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도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인 거지?’

딩동!

[오장육부가 손에 손 잡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

역시나.

라키엘은 집어들고 있던 치킨 다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대뇌피질 뇌주름을 풀가동하며 생각에 잠겼다.

‘정리를 해보자. 나한테는 434 GDP가 있으니까, 그걸로 변환할 수 있는 거짓말 이용권은 총 네 장이 있어. 방금 오장육부가 알려준 대로라면 그걸 한국에서도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거고. 그렇다면…… 네 장의 거짓말 이용권을 어떻게 사용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낭비나 무리 없이 병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

쉬운 듯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병원 출입문을 지키는 건 사람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야 거짓말 이용권을 쓰면 된다지만…… 백신 패스 기계는 어떻게 하지?’

그게 문제였다.

그런데 계속 생각을 해보니……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잠깐만.’

불현듯 번득 떠오른 생각 한 줄기.

라키엘은 다급히 시스템창을 열었다. 그리고 거짓말 이용권 사용안내 항목을 선택했다. 이윽고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사용안내 문구가 좌르륵 떠올랐다.

[거짓말 이용권은 100 GDP로 1장의 수량을 구매할 수 있는 쿠폰입니다.]

[거짓말 이용권을 사용할 시, 대상은 당신이 꺼내는 하나의 거짓말을 무조건적으로, 영구적으로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거짓말 이용권은 1회용입니다.]

[거짓말 이용권을 사용할 시, 당신은 이용권의 효과를 받을 대상을 지정해야 합니다.]

[거짓말 이용권으로 지정할 수 있는 대상은 1회당 하나로 제한됩니다.]

[거짓말 이용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짓말은 1회당 한 가지의 거짓말입니다.]

[사용 시 주의사항 : 대상이 신화적 존재, 혹은 그에 근접한 존재일 경우 당신의 이용권 사용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이거다.’

라키엘은 사용안내문의 한 문구에 주목했다.

[거짓말 이용권으로 지정할 수 있는 대상은 1회당 하나로 제한됩니다.]

‘……사람한테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냥 하나라고만 했다.

살펴보니 이용권이 적용되는 대상이 인간이라거나, 생물체라거나 라는 등등의 제한 조건이 딱히 없었다. 그저 유일한 조건이라면 ‘신화적 존재에게 사용하다간 뽀록날 가능성이 있음’이라는 것 정도였다.

그 말은 곧…….

‘백신 패스한테도 거짓말 이용권, 통하겠는데?’

열심히 접았다 편 뇌주름 사이로 일말의 가능성이 반짝 떠올랐다. 동시에 라키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책상 서랍을 뒤적여 수첩을 꺼냈다.

“……뭐 하십니까?”

데미안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어왔다.

라키엘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 잠시만. 해볼 게 생각나서.”

대답 대신 볼펜을 집었다.

수첩에 뭔가를 슥스슥 그렸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휴대폰에 백신패스를 켜면 띄워지는 화면 모양이었다. 물론 얼기설기 비뚤빼뚤 엉망진창이었다. 그 모양새를 본 데미안의 평가 또한 야박하기만 했다.

“전하? 혹시 은은하게 미치셨습니까?”

“어?”

“조금 전까지 가을 타는 사람처럼 씁쓸하고 아련하게 미소를 머금으시다가, 대뜸 혼자 중얼거리시더니, 이제는 광인의 추상화 같은 그림을 마구잡이로 그려대시니까 말입니다.”

“추상화 아니거든. 병원에 들어갈 증명서거든.”

“정신병원이요?”

“…….”

“죄송합니다.”

“쓰읍. 환자만 아니었으면 진짜.”

“하지만 전하. 이런 걸로 전하가 조금 전에 말씀하신 백신 패스……라는 걸 대체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어.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조금 그래. 하지만 시도는 해보려고.”

라키엘은 피식 웃어 버렸다.

말은 저렇게 해도, 데미안이 이쪽을 걱정하는 게 너무나 잘 느껴졌다. 녀석은 거짓말 이용권의 존재를 모르니까 더 걱정이 되겠지.

그는 롱패딩을 주섬주섬 챙겨입었다.

“그래도 뭐, 해봐야지. 실패해도 잠깐 미친놈 취급 받으면 그만이고.”

“지금 가시려는 겁니까.”

“어. 네가 그랬잖아. 미련을 남겼다가 후회하면 그땐 늦다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네가 워낙 협박을 해서 말이지. 뭐라고 그랬더라? 맞다. 전하께서 안 다녀오시면, 저도 안 돌아가겠습니드아? 저 때문에 전하께서 미련과 후회에 오래도록 몸서리치시는 모습을 볼 바에야, 저쪽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입늬드아?”

“…….”

“뭐, 고맙다고.”

“감사는 조금 솔직하게는 안 되시겠습니까.”

“누가 할 소릴.”

비난과 고마움이 섞인 눈짓으로 인사하며 현관을 나섰다. 전복죽 밥상을 앞에 두고서 앉아 있는 녀석의 모습이 잠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긴 그럴 법도 하다. 내가 살던 원룸, 이곳에 자연스럽게 있는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이라니.

“다녀올게.”

바깥으로 나오자 한겨울 특유의 칼바람이 귓불을 시리게 반겨주었다. 택시를 잡았다. B 병원으로 갔다.

병원 건물은 별궁만큼이나 컸다. 지역을 대표하는 종합병원답게 널찍한 입구에는 깐깐한 방역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코로나 19 방역을 위하여 출입자의 동선을 제한하오니, 안내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과 함께였다.

‘후우.’

절로 치솟는 긴장감.

과연 준비해온 것이 효과가 있을까.

심박수가 올라가는 걸 느끼며, 쿵쿵 뛰는 맥박이 귓가에 울리는 것을 실감하며 출입문으로 들어갔다. 그런 이쪽을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휴대폰으로 백신 패스를 찍는 QR 기기였다.

재빨리 수첩을 꺼냈다.

QR 기기에 수첩을 갖다 대었다.

‘거짓말 이용권 적용.’

딩동!

[현재 들고 있는 수첩의 내용에 거짓말 이용권의 효력을 적용합니다.]

[거짓말 이용권 1장이 구매와 함께 소모됩니다.]

[100 GDP가 감소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GDP : 334]

스아아앗……!

희미한 광채가 수첩에 잠깐 서렸다. 아까 집에서 비뚤빼뚤하게 그렸던 백신패스 화면 모양에 거짓말 이용권의 효력이 깃들었다.

‘제발. 돼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QR 기기를 노려보았다. 아까 떠올렸던 가능성, 이론대로라면 거짓말 이용권의 대상은 생물체 한정이 아니니까. 저 기기도 대상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기계와 서버의 정령이시여. 한 번만 속아 주세요!

……라고 염원하는 순간이었다.

- 삑! 접종 완료자입니다.

QR 기기에서 온세상을 울리는 상큼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됐다!’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됐다. QR 기기, 아니, 이 경우엔 기기를 통합 관리하는 백신패스 서버가 거짓말 이용권에 속은 거겠지.

그는 재빨리 수첩을 품속에 숨기고서 열 체크를 받았다. 이쪽의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태도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체열 체크를 하는 사람은 수첩을 보지 못한 듯했다. 체열 체크를 통과하고 병원 로비로 들어갔다. 곧바로 원무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 입원 환자 보호자 등록을 하려고 하는데요.”

살랑 웃으며 원무과 직원에게 수첩의 다른 장을 넘겨서 보여주었다.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작성한 가짜 문서였다. 거기에 다시 100 GDP를 소모하여 거짓말 이용권을 묻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알림톡 도착]

[일산X구 임시선별검사소 코로나19 검사결과 알림]

[검사기관 : 일산X구 임시선별검사소]

[검사일 : 20210118]

[검사방법 : 비인두도말 PCR]

[성명 : 라키엘님은 COVID-19 검사결과 음성(Negative)입니다.]

[검사결과 설명 : COVID-19 음성(Negative)]

[검사결과 해석 : 코로나-19 환자 아닙니다.]

[문의 : 일산X구 자치행정과([031-1234-5678)]

“아…….”

100 GDP가 줄어들었다는 알림과 함께, 수첩을 본 원무과 직원의 눈빛이 일순간 몽롱해졌다.

원무과 직원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본 코로나 선별검사 결과 알림 중에 가장 완벽하고 깔끔하며 아름답다고. 모름지기 모든 검사결과 알림은 저래야 한다고. 저게 바로 모범이라고.

수첩에 손글씨로 휘갈겨 쓴 내용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원무과 직원은 직업만족도(?) 100점 만점에 1,000점짜리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여기, QR 출입카드 받으시고요. 입원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한…… 이한입니다.”

내 이름이 이렇게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구나. 라키엘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물론 원무과 직원은 그런 이쪽의 기분을 알아채진 못한 듯했다.

“병실에선 환자 1인당 1인의 보호자만 머무를 수 있으세요. 그 점 꼭 유의해 주시구요. 물론 환자분 앞으로 보호자 여러 명을 등록할 수 있기는 한데, 여러 보호자가 병실에 함께 있으시면 안 되세요.”

“네, 알겠습니다.”

QR 카드를 받았다. 태연하게 걸음을 돌렸다. 원무과가 보이지 않는 모퉁이를 돌고서야 비로소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

“……후아.”

해냈다.

설마 하며 노심초사했는데.

‘이게 되네…….’

덕분에 거짓말 이용권 2장으로 보호자용 출입증 획득 완료!

입원 병동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였다. 의심을 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며 병실 문 옆에 붙은 이름표를 살펴보았다. 자신의 원래 몸이 입원한 병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나 다녔을까.

‘……찾았다.’

[이 한]

보자마자 심장이 한 차례 쿵, 하고 뛰었다. 내 이름을 이렇게,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럼 내 원래 몸은 어떻게 있을까. 이제부터 어떡해야 할까.

문득, 이대로 걸음을 돌려 원룸으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가 않았다. 솔직히 여기까지 오고 나니, 묘한 기분보다는 겁이 났다. 불안해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이다. 이를 질끈 깨물며 걸음을 떼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

미처 병실 문으로 손을 뻗기도 전에, 반쯤 닫혀 있던 문이 먼저 열렸다. 덕분에 안쪽에서 나오던 사람과 정면으로 딱 마주치고 말았다.

“어?”

이쪽을 보며 움찔 놀라는 사람. 친숙한, 아니, 친숙하다 못해 반가운 녀석. 하지만 지금 같은 이런 상황에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1순위의 대상.

“누구……세요?”

오랜 불알친구, 원호가 미심쩍은 눈초리를 위아래로 던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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