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48화 (347/468)

348화. 내 키는 내가 늘린다 (1)

평수의 역체감이라는 말이 있다.

이사를 많이 다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좁은 집에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새로운 느낌이 충만해진다. 그런데 의외로 그 기분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금방 적응이 된다. 한두 달만 살다 보면 넓어진 면적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엔?

좀 다르다.

넓은 집에서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역체감이 확 느껴진다. 불편함이 충만해진다. 심지어 그런 불편함이 좀처럼 사라지지가 않는다. 적응이 되지도 않는다. 좁아서 느껴지는 갑갑함과 불편함이 몰려올 때마다, 예전에 살던 넓은 평수의 집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 불편한 기분은, 예전처럼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 때까지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 사는 내내 그냥 계속 불편하고 넓은 집 생각만 더 난다.

그때마다 화딱지가 나고. 매번 스트레스를 받고. 언젠가는 다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리라 주먹 불끈 쥐고서 다짐을 하게 만드는 감각. 그것이 바로 평수의 역체감이다.

그런데 이런 역체감은 거의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비슷하게 작용한다.

‘고급 세단을 타다가 급을 낮춰도 승차감의 역체감이 확 몰려온다지. 혹은 KTX만 타고 다니다가 무궁화나 새마을호를 탄다든가. 아니면 찐라면 매운맛만 먹던 사람이 우연찮은 기회에 순한맛을 먹어본다든가.’

모든 경우에 역체감이 확 온다.

그것이 당연한 사람의 심리다.

한데 그건…… 영혼이 느끼는 육신의 키에도 적용이 되는 거였나 보다.

- 좁다. 비좁아. 아니, 짧다. 세상에. 사람의 다리가 이렇게 짧을 수가 있나 싶군. 대체 이런 다리로 어떻게 세상을 걸어 다녔지? 드워프가 이런 기분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너무나 불편해서 신기하고 흥미로울 정도야.

‘…….’

그만.

- 이런 다리 길이로 돌아다니려면 아마 남들이 두 걸음을 걸을 때 세 걸음을 내디뎌야 했겠지? 혹은 억지로 부자연스럽게 보폭을 늘려야 했거나. 어떤 경우에라도 편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대는 참으로 힘겨운 인생을 살았겠군.

‘…….’

그마안.

- 그것뿐만이 아니야. 다리는 짧은데 허리는 쓸데없이 길군. 그건 다행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의자에 앉았을 때 다른 이들과 눈높이는 비슷했을 터이니 말이지. 그런데 또…… 하아, 목은 왜 이렇게 짧지? 머리는 왜 이렇게 큰가 말이다.

‘…….’

그만해, 미친놈아.

-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역시나 몸 전체를 통합한 길이인 것 같구나. 너무 짧아. 다리를 펼 수도, 목을 편안하게 둘 수도 없다. 이 짧은 껍데기 속에 어거지로 나를 맞추어서 구부정하게 있어야만 하다니, 이런 짧은 육신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실존하는 고문이나 저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어오. 진짜 씨.’

결국, 참다못한 라키엘은 황태자의 디스를 중단시켰다.

‘내가 짧게 태어나고 싶어서 짧은 것도 아니고. 적당히 좀 합시다. 예?’

- 하지만…….

‘하지만 뭐. 뭐.’

- 흥분했군. 키가 작다는 말이 그렇게나 모욕적인 언사였나?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말하였을 뿐인데.

‘그게 더 아프다고!’

차라리 악의를 담아서 말했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황태자의 영혼이 너무나 순수(?)하고 태연하게 저런 말들을 하니까 가슴에 더 푹푹 꽂혔다.

라키엘은 호빗으로 살아야 했던 과거의 서글픔을 애써 추스르며 말했다.

‘그래도 깔창 깔면 170 넘거든?’

- ……깔창이 뭔가?

‘그런 게 있고.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 그럼?

‘일단은 원인을 찾은 것 같네. 싱크로 고자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 설마.

‘맞아. 내가 보기엔 방금까지 그쪽이 그토록 불평했던, 내 원래 몸의 작은 키 때문인 거 같아.’

- 역시.

……역시는 개뿔!

라키엘은 다시금 울컥하는 기분을 애써 누르며 설명했다.

‘후우. 잘 들어봐. 내가 추론한 내용은 이래. 이한으로 살았던 내 육신은 168cm. 내 영혼은 거기에 감각이 맞추어져 있었지. 그래서 내 영혼이 176cm인 댁의 육신에 들어갔을 때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은근히 편했겠지. 더 넓어졌으니까. 마치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를 간 것처럼.’

- 그랬겠군. 그럼 나는…… 반대의 경우를 겪은 건가?

‘그렇지.’

바로 그거다.

평수의 역체감.

거기서 오는 불편한 감각.

불편함이 적응도 되지 않는 상태.

‘댁의 영혼은 176cm의 신장에 감각이 맞추어져 있었던 거야. 20년이 넘도록 말이지. 그런데 한순간에 8cm가량 작은 몸에 강제로 구겨져 넣어지게 됐고. 그러니까 불편한 거야. 댁의 말처럼 다리나 허리를 펴지 못하고서 내내 구부정하게 지내야 하니까.’

그런 불편함이 적응이 될까.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이 되기는커녕 더 불편하고 괴로워질 것이다. 마치 벌을 받는 것처럼. 벌 받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고 뭉치고 저릿하며 괴로워지는 것처럼.

아마 황태자의 영혼도 같은 상태인 거겠지.

‘그게 싱크로가 안 맞는 근본적인 원인인 거 같네.’

- 후우. 그런가. 그럼, 나는 이제부터 어떡해야 하는 것이지? 설마 이런 끔찍하게 짧은 감옥에 영원히 갇혀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건가?

‘…….’

- 이건…… 이건 너무 잔혹한 일이야.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지?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이지? 나는 그저 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며 살아왔을 뿐인데, 대체 왜 이런 짧은 육신의 감옥이 날 괴롭히는 것인가 말이다.

‘…….’

- 말해다오. 그리고 도와다오. 나를 이 처참한 형벌에서 구해다오!

‘아오. 씨. 그 짧은 몸뚱이 갖고 살아가던 당사자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아주.’

- 그렇지만…….

‘그치만 뭐. 뭐.’

- …….

‘내가 보기엔 황태자, 댁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문제가 있어. 아주 평생을 오냐오냐 떠받듦만 받으며 살아서 그런가. 댁은 본인이 꺼내는 말이 상대를 어떤 기분으로 만드는지에 대한 자각이 좀 부족한 거 같거든.’

- 그, 그런……가?

‘당연하지. 그러니까 말을 할 때는 좀. 듣는 사람 기분도 살피고. 키가 짧네, 다리가 짧네 이딴 소리도 적당히만 하고.’

- 내 말 때문에 많이…… 불쾌했던 건가?

‘그걸 말이라고 해?’

- 미, 미안하구나.

‘됐고. 지금은 해결이 우선이니까 그쪽으로 집중합시다.’

라키엘은 선을 그었다.

사실은 차라리 잘됐다.

원인조차 모르고서 막막하게 있던 때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 최소한 원인에 맞춘 대책을 궁리할 수는 있게 되었으니까.

‘정리하자면 원인은 키 차이 때문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내 원래 육신의 키가 작아서, 댁의 영혼이 역체감의 불편함을 느끼는 게 원인이지. 그러니까 그걸 해결하면 돼.’

- 어떻게?

‘제일 좋은 건 댁이 그냥 마음을 고치고 적응을 하는 건데, 가능하겠어?’

- 아니. 절대로.

‘솔직해서 좋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지.’

- 무엇인가?

‘댁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까지 키를 늘려주는 거.’

라키엘이 딱 잘라 말했다.

황태자의 영혼이 뜨악했다.

- 그게 가능한 일인가?

‘어쩌면?’

라키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 원래 몸의 키는 168cm. 그런데 지금은 나흘째 누워만 있느라 살짝 커져 있어. 덕분에 현재는 169.5cm.’

- 그래도 한참 모자라는 것 같은데. 약 6.5cm 정도나.

‘그건 맞아. 하지만 내 원래 몸이 평소부터 좀 구부정했거든.’

- 구부정?

‘어. 댁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한의사였어. 공부하느라 종일 의자에 앉아 있었지. 환자들 몸에 침 꽂아주고 하느라 서서도 구부정하게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래서 거북목은 기본에, 어깨는 말리고, 골반은 틀어지고, 척추도 살짝 휘고. 뭐, 한의사라면 거의 다 겪는 직업병이랄까.’

- 듣다가 느낀 건데, 다리도 X자인 거 같구나.

‘……정답.’

-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구부러져 있는 부분들을 반듯하게 펴주면 키가 클 거란 뜻인가?

‘아마도?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겠지.’

- 문제라면?

‘내 예상으로는 굽어 있는 부분들을 다 펴서 숨은 키를 찾아줘도 172cm 정도가 한계일 거야.’

- 그럼 여전히 4cm가 모자라지 않나. 게다가 그렇게 일시적으로 펴준 키는 다시 줄어들 텐데. 내가 또 고통을 받는 건 아닐까?

‘그건 모르지. 한 번 만족하고 싱크로를 맞추면 그 뒤부턴 적응이 되길 바라야 하는 거고. 어쨌건, 최대치로 늘려도 4cm의 모자라는 키는 보충할 방법이 있어.’

- 아까 말한 깔창?

‘아니.’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깔창으로는 안 된다.

그건 몸의 키가 아니니까. 지금은 몸 자체를 늘려줘야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4cm의 불가능한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일단 지켜봐. 방법이 있으니까.’

라키엘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황태자의 영혼과의 대화를 끝마쳤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대기(?) 중인 친구들, 원호와 은수가 있었다.

녀석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치료를 시작할 건데, 니들 도움이 좀 많이 필요할 거 같다.”

“어떻게 도우면 되는데?”

원호가 물었다.

녀석을 향해 싱긋 웃어 주었다.

“일단은 너네 둘 다 화장실이든 어디든 병원 안에 좀 숨자. 밤까지.”

“……어?”

“왜?”

당황하는 원호와 은수.

“우리 셋이서 내 원래 몸 붙잡고 물리치료를 해야 할 거 같거든. 근데 간호사들한테 들키면 안 되잖아. 그렇지?”

“……어, 그렇지.”

“그렇긴 하네.”

“그러니까 숨어야지. 밤까지 어디 짱박혀서 숨어 있다가 슬금슬금 병실로 들어오라고. 밤중에 몰래 물리치료 시작할 거니까.”

“진짜…… 그래도 되냐?”

“야, 그러다가 우리 들키면?”

“그럼 내가 간호사한테 쓸게. 거짓말 이용권.”

라키엘은 안색이 어두워지는 두 친구를 안심시켰다. 이제 겨우 2장밖에 남지 않은 거짓말 이용권이지만, 그래서 가급적 아껴두고 싶지만, 여차할 땐 써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좀 도와주라.”

결국, 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각자 말년 병장 시절에 행보관의 눈을 피해 클로킹, 버로우를 시전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짱박힐 곳을 찾아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이 재깍재깍 흘렀다.

밤이 왔다.

두 친구가 버로우를 풀고서 병실로 살금살금 돌아온 것은, 병실들이 소등되고 야간 당직 간호사들만 남고도 제법 지났을 무렵이었다.

“다들 고생 많았다. 그럼 시작하자.”

라키엘은 두 친구를 반갑게 맞이하며 속닥속닥 지시했다.

“원호야. 넌 여기. 머리맡으로 가서 양쪽 팔 좀 잡고. 은수야? 너는 다리 잡고.”

“……팔?”

“다리?”

“빨리빨리.”

두 친구가 각자의 자리로 움직였다. 원호는 이한의 머리맡에서 두 팔을 잡아서 만세를 시켰다. 은수는 양쪽 발목을 잡았다.

라키엘이 지시했다.

“당겨.”

“어?”

“ㅈ나 땡기라고.”

“……어?”

“얼른.”

“……!”

영문을 모른 채, 그러나 일단은 시키는대로 이한의 몸을 양쪽에서 힘껏 잡아당기는 두 친구!

이윽고 라키엘이 움직였다.

줄다리기 줄처럼 팽팽한 강제 스트레칭을 당하는 자신의 원래 육신. 그 등줄기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추나요법 스킬을 발동하였다.

딩동!

[스킬 : 추나요법(Lv.6)이 발동됩니다.]

[추나요법 스킬 옵션 ① : 레고 조립술이 패시브로 함께 발동됩니다.]

[스킬 전용 옵션 ① : 레고 조립술 - 원하는 대상의 관절을 마음껏 조종할 수 있습니다. 탈구와 접골이 보다 능수능란해지며, 추나요법에 들어가는 힘의 소모가 50% 절약됩니다. 이 기술은 궁극의 경지에 달할 시, <척추교체술>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뚜기두둣! 뚯! 뚜룻 뚜!

레고 조립술 옵션이 발동되는 순간.

그중에서도 탈구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

잠든 이한의 척추 관절 마디마디가 정성껏 미세하게 탈구되며, 소스를 들이부은 탕수육 튀김옷처럼 살포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