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49화 (348/468)

349화. 내 키는 내가 늘린다 (2)

딩동!

[추나요법 스킬 옵션 ① : 레고 조립술이 패시브로 함께 발동됩니다.]

뚜기두둣! 뚜룻뚜! 뚯! 뚜!

이한.

자신이 살아왔던 이름의 몸.

그 친숙하고도 낯선 등줄기를 꾹 눌렀다. 등줄기 속 3번과 4번 척추 사이가 미세하게 탈구되었다. 마치 소스를 한껏 들이붓고 30분이 지난 탕수육 튀김옷처럼 녹신녹신. 혹은 갓 전자레인지에서 꺼낸 핫바처럼 탱글말랑하게.

살포시 늘어났다.

라키엘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돋아났다.

‘이거 살 떨리네.’

솔직히 제법 긴장이 됐다. 다른 곳도 아닌 사람의 척추를 탈구시키는 일이었다. 자칫 힘이 과하게 들어가서 척추가 완전히 뽑혀 버리면? 연골이나 척수 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하반신 마비 당첨일 것이다.

그때였다.

뽀그닥?

“……!”

이한의 척추에서 살짝 불길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경혈 스캐닝으로 그곳을 살펴보았다. 척추를 흐르는 기혈의 흐름이 잔치국수처럼 길고 가늘어지는 게 보였다.

‘헉.’

지나치게 늘리고 있다.

라키엘은 두 친구를 향해 재빨리 속닥였다.

“야야. 빼. 힘 빼. 2단계. 2단계.”

“2단계?”

“어. 아까 내가 5단계로 힘을 나누자고 했잖아? 그거. 2단계. 빨리.”

“이…… 이 정도쯤?”

원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한의 팔을 당기던 힘을 조금 약하게 했다. 은수도 눈치를 보며 발목을 덜 잡아당겼다.

라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딱 좋아. 2단계 유지.”

방금은 살짝 위험할 뻔했다. 아니, 사실은 욕심을 과하게 부려서 사고를 칠 뻔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경혈 스캐닝을 켜고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좋아. 계속.’

라키엘은 다시금 이한의 등줄기를 주무르고, 눌러댔다. 그때마다 뽀각뽀각 상큼한 뼛소리가 났다. 척추와 척추 사이가 조금씩 멀어졌다. 굽었던 허리가 펴지고, 틀어졌던 골반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술을 하는 내내 진땀이 잔뜩 배어났다. 게다가 마냥 시술에만 집중할 수도 없었다. 야간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간호사가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시술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1단계.”

“요 정도?”

“어. 딱 좋아.”

친구들의 당기는 힘을 약하게 했다. 그 상태에서 마무리 마사지를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 소프트한 창법으로 노래하듯 부드럽게 했다. 강제로 늘려지느라 미세한 데미지를 입었을 근육과 근막, 골막과 연골을 두루두루 달래주는 과정이었다.

“자, 0.5.”

“이렇게?”

“오케이. 0.2.”

“……아 씨.”

“0.1.”

“무슨 우리가 정밀 기계도 아니고.”

“시끄럽고. 0.”

“후우!”

“와아.”

두 친구가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마무리 마사지까지 걸린 시간은 총 30분. 어느새 두 친구의 셔츠와 이마도 진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일은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성과 확인부터. 그동안 망 좀 봐주라.”

친구들을 감시조(?)로 돌렸다.

그리고 자신은 원래 자신의 몸, 이한의 상태를 진단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진맥.’

딩동!

[진맥을 시작합니다.]

[스캔 중.]

[3…… 2…… 1……]

[진맥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래의 <종합검진표>를 확인해 주세요.]

[종합검진표]

[검진 대상 : 이한]

[종족 : 인간]

[성별 : 남자]

[연령 : 42세]

[신장 : 171.1cm]

[체중 : 67.3kg]

[혈액형 : Rh+ B]

‘……됐다!’

종합검진표의 신체 기본 정보가 뜨는 순간,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키가 171.1cm로 커져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신장이 169.5 정도였는데, 무려 1.6센티미터나 자란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추나요법 레고조립술 시술로!

‘이러면 해볼 수 있겠어.’

라키엘의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팍팍 돌아갔다. 한 번에 1.6센티미터 성장. 물론 지금이야 시술 직후니까 저렇게 늘어나 있는 거겠지. 아침이 오면 절반 정도는 줄어들겠지. 게다가 첫 시술이라서 이만큼 많이 늘어난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충분해. 최대 열흘 정도만 꾸준하게 척추와 경추, 다리쪽 관절들을 늘려주면 할 수 있겠어. 그렇지, 황태자 씨?’

그는 황태자 라키엘의 영혼을 향해 물었다.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 어, 으음. 방금, 설마 몸을 늘려준 것인가?

‘정답. 어떠셔? 느낌은?’

- 이전보다는 아주 조금 편해졌다. 다리를 조금 더 펼 수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건 절대로 아니지만.

‘그렇겠지. 그래도 가보자고.’

첫 시술의 성과 확인까지 마쳤다. 성공적이다. 비로소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레고 조립술을 시도하면서도 내심 긴가민가 했었는데, 이제는 각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이거면 돼. 아직 한 달의 시간이 있으니까. 그동안 매일 꾸준히 시술을 해주면 충분히 목표치만큼 키를 키울 수 있을 거야.’

- 그러면 좋겠군. 싱크로인지 뭔지가 됐으면 싶기도 하고. 그런데 만약 싱크로가 되면, 나는 이 몸으로 눈을 뜨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 …….

‘뭐. 왜. 뭐.’

-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서.

황태자의 영혼은 씁쓸한 웃음을 짓는 걸까.

- 20대의 창창하던 몸을 빼앗기고 얻는 것이 40대의 늙은 육체라니. 손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허. 하? 와.’

- 왜 그러는가?

‘90일 뒤면 죽을 몸이었으면서, 뭐?’

- 하지만 내가 지니고 있던 부귀영화는?

‘…….’

- 솔직히 나도 모르겠군. 이런 낯선 세상에서 눈을 떠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도. 아니, 이 몸을 지닌 채 그대를 따라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가야 할 것인지 또한.

황태자의 영혼은 어쩌면, 울먹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죄책감?

책임감?

모르겠다.

라키엘은 콧등을 찡그리며 톡 쏘듯 말했다.

‘고민은 나중에 하고, 일단은 살아나기부터 하자고.’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라키엘은 이한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손짓했다.

“야. 숨자.”

시술과 확인을 마쳤으니 이제는 야간 당직 간호사들의 눈을 피할 차례였다. 라키엘은 망을 보던 두 친구와 함께 병실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갔다. 2인실에 딸린 화장실인 데다 세면장도 겸하고 있어서 그럭저럭 남자 셋이서 있을 만은 했다.

철컥.

“후우, 됐다.”

문을 잠그자 비로소 긴장감이 풀렸다.

“아침까지 여기서 버티자.”

“여기서?”

“어.”

은수의 물음에 라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지금 시간에 움직이면 눈에 띄기 딱 좋으니까. 어차피 여기 병실에 다른 환자나 보호자도 없고. 혹시나 간호사가 노크하면 큰 거 누느라 앉아 있는 척하면 되는 거고.”

“그리고 아침에 어수선해지면 그때 한 사람씩 차례대로?”

“바로 그거지.”

라키엘은 세면대 앞쪽 바닥에 대강 자리를 잡고 앉았다. 뒤늦은 노곤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어서 청각을 곤두세웠다. 다행히 뱀파이어 로드의 정혈이 주는 축복은 이곳 차원에서도 똑같이 유효했다.

바스락, 바스락…….

야간에 3배로 증폭되는 신체능력.

청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제법 먼 복도를 지나가는 어느 간호사의 옷자락 사락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거면 됐다. 아침까지 눈치껏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였다.

“한쓰야. 시술 결과는? 좀 어떤데?”

“어. 다행히 성공.”

“성공?”

“생각했던 대로 효과가 좀 있네. 앞으로 꾸준히 시술하면 괜찮아질 거 같고.”

“그래……. 다행이네. 근데 그다음은?”

“어?”

“저대로 네 원래 몸이 눈을 뜨면, 그다음엔 어떡할 건데?”

“……모르겠다, 나도.”

황태자의 영혼과 똑같은 걱정을 하는 친구들.

라키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그 생각을 하면 조금 막막했다. 황태자의 영혼이 자신의 원래 몸으로 눈을 뜨면, 그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가 행복해지는 각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까닭이었다.

“사실 좀 그래. 결국엔 양자택일이라서.”

라키엘은 솔직하게 말했다.

“황태자를 저 몸인 상태로 저쪽 차원에 데려가면…… 내가 다칠 거 같아서.”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쨌거나 영혼은 황태자니까. 자아도 황태자의 것이니까. 다른 몸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황태자로서의 지위와 권력을 되찾으려 들 것이다. 어쩌면 황제에게 자신을 증명하려 들 수도 있겠지.

자신이 그걸 막을 수 있을까.

아니. 잠깐은 가능하겠지만, 결국에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황제의 정보력은 매번 이쪽의 예상을 뛰어넘곤 했으니까, 결국에는 진짜 황태자가 어느 쪽인지 알아내겠지.

이쪽이 저 황태자를 죽이지 않는다면.

“…….”

그건 싫다.

살인이라니.

게다가 원래 자신의 몸을?

하지만 그렇다고 저 황태자를 한국에 놔두고 떠나려니, 그것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남겨두면 황태자 저거, 100퍼센트 거지꼴 될 거 같거든. 사실 그렇잖아. 저쪽 세상에선 황태자였지만 이곳 기준으로는 뾰족한 능력도 없는 부적응자 신세인 거. 저 상태로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싶고. 그렇다고 내가 쌓아둔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두 친구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라키엘의 고민도 깊어졌다.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은 사이, 아침이 밝았다. 낮 동안 병실을 지키기로 한 원호를 제외하고, 라키엘과 은수는 무사히 병원을 탈출(?)했다.

“그럼 난 집에 좀 갔다가 저녁에 올게. 그때 보자.”

“데미안 씨 챙겨주러 가는 거?”

“어. 겸사겸사. 나도 좀 쉬어야지.”

“그래……. 그럼 너네 집까지 내가 차 태워다주는 김에…….”

“응 안 돼.”

“…….”

“우리집에 올라가서 데미안 보려는 거지?”

“와 눈치 진짜.”

“그건 다음에. 지금은 데미안도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라서.”

“쯥. 그래, 알았다. 저녁에 보자.”

“어.”

못내 아쉬워하는 은수를 보내고 원룸으로 올라왔다. 곤히 잠든 데미안이 보였다. 한쪽에는 사용을 마친 인슐린 주사도 보였다. 이쪽이 별궁 한의원에서 자체 제조한 인슐린 주사였다.

‘그래도 혼자서 주사 잘 놨네.’

혹여나 잠든 녀석을 깨울까, 조심조심 진맥을 했다. 다행히 혈당은 잘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보였다. 원룸 한쪽의 책장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

이 녀석, 혹시 이것저것 뒤적거린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혼자 좁은 방에서 온종일 있으려니 심심해서 그랬던 거겠지.

‘자는 놈 깨워서 뭐라고 타박할 수도 없고.’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책장을 정리했다. 그러다가 문득, 책장 한쪽에 놓인 하얀 용지에 눈길이 닿았다.

반으로 접어둔 로또 용지였다.

“…….”

아, 이거.

양화대교에서 떨어지기 전날 샀던 건데. 홧김에 번호를 마구잡이로 찍었던 기억이 났다. 심지어 수동인 주제에 세 줄 정도를 똑같은 번호 조합으로 도배했던가.

‘보인 김에 맞춰볼까.’

5천 원이라도 당첨이면 3줄 곱해서 만 오천 원이니까. 나름 개이득이지 않겠는가.

주섬주섬 컴퓨터를 켰다.

로또를 검색했다.

최근 회차의 당첨번호가 떠올랐다.

[로또 제 946회 당첨번호 (2021년 1월 16일)]

[9, 18, 19, 30, 34, 40]

누구나 걸리길 소망하지만, 절대로 걸리지 않는 여섯 개의 조합.

하나씩 로또 용지와 비교해보았다.

9, 18, 19, 30, 34, 40

9, 18, 19, 30, 34, 40

9, 18, 19, 30, 34, 40

3, 11, 14, 15, 23, 27

9, 32, 36, 37, 43, 45

“……어?”

이럴 리가 없는데.

로또 용지를 다시 보았다.

역시나 번호가 동일했다.

그것도 세 줄이나 똑같이.

9, 18, 19, 30, 34, 40

“…….”

따라라락!

저도 모르게 마우스휠을 내렸다.

화면 아래쪽에 믿기지 않는 숫자가 떠올랐다.

[946회 당첨 결과]

[1등 : 2,157,656,182 원 (세전)]

[실수령액 : 1,478,629,642 원]

잠깐만.

그러니까.

세 줄을 맞췄으니까.

곱하기 3을 하면…….

‘실수령액…… 44억 3천 5백만 원…… 당첨?’

살짝,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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