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뜻밖의 재능 (2)
“평생 최고 수준의 귀금속과 세공품만 접하며 살아온 내 안목으로 보건대, 마부, 당신의 아들이 선물한 물건은 절대로 가짜가 아니야.”
황태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눈에는 정말로 당연했으니까.
그저 그렇게 말했다.
“시계라고 했나? 조금 낯설긴 하지만 본질은 팔찌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하고.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장인이 만든 진품을 판별하는 요소는 세공법과 마무리 상태라 할 수 있겠지. 그래서다. 그걸 가짜, 짝퉁이라 볼 수 없는 이유는.”
“지금 무슨…….”
택시 기사는 당황했다. 지금껏 묵묵히 있던 다른 손님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니, 일단 그것보다는…….
“저기, 그런데 손님은 왜 반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음?”
“나이도 아직 지긋하지 않은 분이 초면부터 그러시면 못 쓰죠, 쯧쯧.”
“…….”
“계속 그러실 거예요?”
“아, 아니…… 그건…….”
쿡!
라키엘이 팔꿈치로 황태자의 옆구리를 쑤셨다. 황태자는 당황하면서도 나름의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아……. 방금 그 말은 이쪽한테 한 겁니다.”
“친구분한테요?”
“그렇……죠. 예, 뭐.”
“그렇다고 보기엔 방금 저보고 마부라고 부르셨던 거 같은데.”
“이 친구의 별명이 마부라서……요.”
“당신의 아들이 선물한 물건 어쩌고는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근데 말씀이나 좀 더 들려줘 봐요, 손님. 이 시계가 짝퉁이 아니라고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황태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 그걸 자세히 좀 볼 수 있을까요?”
“예? 아, 그럼 여기…….”
기사님이 시계를 건네주었다. 그걸 살펴보는 황태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동안 택시는 침묵 속에서 잘도 달렸다.
마침내 황태자의 입이 불쑥 열린 것은, 택시가 일산 백석동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확실합니다. 아까 잠깐 봤을 때도 느낀 건데, 자세히 살펴보니 더 대단한 수준의 세공과 마감입니다.”
“아니, 어떤 부분이요?”
기사님의 물음에 황태자가 술술 답했다.
“우선 여기. 이 시계라는 물건의 몸통, 케이스로 보이는 테두리의 마감이 마치 크레포피르나 스타일을 닮았습니다. 그건 크레모의 장인들이 크레모필레라고 불리는 특별한 세공품으로 열흘에 걸쳐 여섯 방향의 각도로 금속 테두리를 깎아내는 기술인데…… 이건 어쩌면 그것보다 한 단계 발전한 형태의 세공법으로 보이는군요.”
“그게 무슨…….”
“또 있습니다. 이 크리스탈 안쪽의 바닥면은 아예 자개 장식으로 보이는데, 그걸 단순히 접합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리는 구조로 구현을 했어요. 심지어 미세한 오차도 없이 말이지요. 이것 또한 최상의 전문 세공사가 아니면 구현할 수 없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여기.”
“…….”
“손목을 두르는 팔찌 구조의 브레이슬릿은 전형적인 비대칭 5열 링크 구조인데, 이런 형태의 링크는 조금만 마감이 틀어져도 전체가 어긋나며 착용감이 대단히 떨어지는 특징이 있지요. 그런데 이건 그렇지 않습니다. 링크의 맞물림, 서로를 지지하는 구조, 그걸 구현한 마무리까지 완벽에 가까워요. 또 있습니다. 여기, 크리스탈의 한쪽 부분에 작은 렌즈가 붙어 있지 않습니까?”
“아, 예…….”
“크리스탈을 세공할 때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바로 빛의 굴절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난제입니다. 유리에 각종 첨가물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빛의 굴절율과 고유의 빛깔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건, 한 가지의 면에 두 가지의 굴절율을 구현하면서도 접합부가 보이지 않고 빛의 산란이 서로를 간섭하지 않습니다. 이 또한 대단한 설계이고, 실로 훌륭한 마무리 실력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예. 다른 부분도 할 말이 무척 많지만 대강은 이 정도면 무슨 뜻인지 아신 듯하니 결론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건 최상급의 물건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일류의 세공 장인들이 지닌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여 만든 물건임은 확실합니다.”
“그럼…… 정말로 짝퉁이 아니라는 겁니까?”
“예.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에 이것이 짝퉁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시계는 짝퉁 이하의 것이라 불리어야 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것이 제 견해입니다.”
황태자는 솔직하게 감상을 말했다.
사실 그에게는 너무나 알아보기 쉬운 부분들이었다. 아니, 굳이 알아보려 애를 쓸 필요조차 없었다.
그냥 보면 보였다. 당연했다. 어릴 때부터, 태어나던 때부터 주위의 모든 물건이 최고가 아닌 적이 없었던 그이기 때문이었다.
강보, 젖병, 사소한 수건, 옷감, 신발, 바닥의 카펫, 커튼, 하다못해 사소하게 쓰다가 싫증이 나면 바꾸는 물잔에 박힌 보석까지. 일상의 모든 물품이 전부 명품 이상의 것이었다. 아예 제국 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당대의 최상품만 공기처럼 접하며 살아왔다.
안목?
굳이 기르려고 노력한 적도 없었다.
나무나 자연스럽게 최상의 물건들만 접하며 살다 보니, 그 이하의 물건들은 보자마자 흠결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지금 본 룰렉스 시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다른 세상의 물건이라 낯설까 싶어서 조심스럽긴 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의 명품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친숙했다.
살펴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이곳 물건만의 세공 특성, 장인의 제작 의도, 가격과 품질 사이의 균형을 설정하는 철학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덕분에 즐거웠다. 시계를 품평하는 잠깐 동안은 마치 제국 황태자의 호화롭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자, 여기. 다시 착용하시죠. 아드님이 선물한 진짜 귀한 명품을 말입니다.”
황태자는 잠시 느꼈던 즐거움을 애써 접으며, 기사님에게 시계를 돌려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기사님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시계를 돌려받으면서도. 신호를 받은 틈에 주섬주섬 손목에 두르면서도. 그저 때때로 내쉬는 한숨 외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택시 안에 두 번째 침묵이 찾아왔다.
그 침묵은 목적지에 도착하고서야 간신히 깨어졌다.
“……자, 다 왔습니다.”
요금은 어플로 미리 계산한 덕분에 따로 뭔가를 더 주고받을 일도 없었다. 기사님의 기색을 잠시 살핀 라키엘은 그대로 택시에서 내리려 했다. 아까 황태자가 갑작스럽게 시계 감별을 한 이후로, 어쩐지 택시 안의 공기가 너무나 어색해져 버린 까닭이었다.
그때였다.
“저기, 손님들? 아까 해준 이야기 말입니다.”
택시 기사님의 어렵사리 꺼낸 말머리가 이쪽의 발길을 잡았다. 돌아보니, 기사님이 고민에 잠긴 얼굴로 물어 왔다.
“그 이야기, 진짜일까요?”
“…….”
황태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만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을 뿐. 자신의 감별이 절대로 맞다는 확신이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대답은 이쪽이 대신해주어야 했다.
“진짜가 맞을 겁니다. 이야기도, 시계도, 모두요.”
“그런가요…….”
“예. 이 친구의 눈썰미가 좀 많이 좋거든요. 그리고 이건…… 으음, 제 짐작일 뿐이라서 말씀을 드려야 할까 싶기는 한데…… 아드님께서 말입니다.”
“예에.”
“선물해드리는 시계가 짝퉁이라서 죄송하다고, 다음엔 꼭 진짜로 해드리겠다고 하셨던 그 거짓말은 일부러 하신 거 같습니다.”
“거짓말을, 일부러요?”
“예.”
기사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를 향해 아까 황태자가 감별을 하던 때부터 떠올린 나름의 짐작을 말해주었다.
“만약, 그 시계가 진짜 비싼 명품이라는 걸 기사님이 처음부터 아셨다면 말입니다. 그걸 지금처럼 편안하게 매일 착용하진 않으셨겠지요?”
“아…….”
“아마도 아드님은 그런 걸 바라지 않아서, 그래서 거짓말을 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뻔한 이야기였다.
어르신들 중엔 그런 분들이 많다. 아들이나 딸이 비싼 선물을 해주면, 쓰라고 준 물건을 절대로 쓰지 않고 모셔만 두는 분들이 말이다.
아깝다고.
우리 새끼가 고생하며 힘들게 번 돈으로 사준 물건이라고. 그런 귀한 걸 어떻게 함부로 들고 다니면서 쓰겠느냐고. 조금이라도 닳으면 큰일이 나는 거라고. 하니 그저 눈으로만 봐도 좋다고. 다만 그것으로 족하다고.
그게 부모님들의 마음이 아닐까.
아마도 기사님도 그런 듯했다.
“허허? 허허허, 허허…….”
마침내 진실을 짐작하고선 웃는 기사님. 이미 그 눈가가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그렇게 기사님을 보내드렸다. 원룸 건물 앞에는 다시금 이쪽과 황태자, 둘만 남았다.
“들어가자. 바람이 차갑구나.”
“잠깐만.”
겨울바람에 목을 움츠리며 들어가려는 황태자를 불렀다. 그가 무슨 볼일이냐는 듯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를 향해 물었다.
“아까 그거, 어떻게 된 거야?”
“무엇을 말이지?”
황태자가 미간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대로 말해줬을 뿐이다.”
“그럼 정말로 그게 진짜가 맞았던 거야?”
“당연하지. 설마 너는 내가, 앞으로 딱히 재회할 일도 없을 일개 마부에게 번거롭게 거짓말을 했다고 여기는 것인가.”
“일개 마부한테 눈치껏 존대말은 잘했으면서.”
“그야…… 상황과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고. 어쨌건, 내가 마부에게 해주었던 말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다.”
“그럼 혹시 돈의 정령이 도와준 거야?”
“그것 또한 아니다.”
“아니야?”
“쯧. 너는 내가 누구인지 잊었나? 설마, 존귀한 내 안목이 그 정도의 물건을 감별해내지 못할 것이라 여긴 것인가? 실로 가소롭기가 짝이 없군.”
“…….”
와 이 x끼, 진심이네.
황태자가 자신의 안목에 대해 지닌 자부심이 팍팍 느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지녔을 뜻밖의 재능과 가능성 또한 엿보였다.
아까 시계의 세공 상태를 분석하고 감별하던 황태자의 표정, 눈빛. 그 모든 게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저 소설 초반에 불행하게 죽은 병약한 황태자……. 딱히 능력도 없고. 타고난 핏줄과 지위 말고는 내세울 것도 없는 그런 미미한 존재. 그게 다인 줄로만 알았는데.’
딱 그저 그런, 어느 이야기에나 하나쯤은 있을 법한 단역 캐릭터. 그게 내심 이쪽이 줄곧 생각해왔던 황태자라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아니었다. 이쪽의 생각이 섣부르고, 성급했다. 황태자를 너무 쉽게 단면적으로만 평가하고 있었다. 실상은 달랐다. 그에게도 이쪽이 모르는 면이 있었다.
실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니까. 누구에게나 다양한 면이 있으니까. 그만큼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법이니까. 황태자도 마찬가지였겠지. 하지만 병마에 시달리다가 요절하는 바람에 지닌 가능성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것이고.
그러니, 어쩌면, 여기선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저기 말이야.”
머릿속이 팍팍 돌아갔다. 뇌세포가 번쩍거렸다.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쪽이 떠난 후에 홀로 한국에 남게 될 황태자. 그가 돈의 정령의 가호로 44억을 지키면서, 더 나아가 자신의 재능을 펼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방법이.
“너 혹시…… 명품 감별 컨텐츠로 뉴튜버 해보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