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61화 (360/468)

361화. 역사적 위업 (1)

“…….”

그 언젠가 속리산에 갔던 날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었던가. 온 가족이 함께 산을 탔다. 그러다가 심하게 넘어져 버렸다.

아버지에게 업혀 내려오던 산길은 푸르렀다. 너무나 짙은 녹음이었다.

아마도 살짝 뇌진탕이 와서, 현기증 때문에 더 그래 보였던 것이리라고 의사쌤이 말했던가.

그런데 지금 보는 눈앞의 고구마잎이 그러하다.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짙은 녹색을 본 적이 있던가. 아니. 없는 것 같다. 열

두 살의 속리산 녹음보다도 더 짙은 푸르름. 아마존 산신령이 16비트 자진모리장단으로 어깨춤을 치얼쓰 출 것 같은 녹색의 광휘.

이 녹색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환자에게 유용한 약호를 지닌 약초는 형광성 연녹색으로 표시됩니다. 약초가 지닌 약효가 강력할수록 표시되는 색깔이 선명해집니다.]

약성.

이 엄청난 약성이란!

“……미쳤는데?”

과거 크라노스에서 약초 탐색 스킬을 얻었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발견했던 긴뿌리 감초의 뿌리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지금까지 수없이 본 그 어떤 약초보다도 짙은 약성이었다.

“혹시, 이래서 절 부른 겁니까?”

“삐가각! 삐각!”

물음을 받은 리빙아머가 투구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러더니 자신의 투구를 쑥 벗었다.

“삐각!”

“예?”

“삐가각!”

“투구를…… 받으라고요?”

“삐!”

“그럼?”

“각!”

“예? 설마?”

“삐각각!”

“아, 저기, 투구를 소쿠리로 쓰는 건 좀…….”

“삐각?”

“아뇨. 위생상 문제가 된다는 뜻은 아니고.”

“삐가각?”

“……잘 쓰겠습니다.”

어쨌건 이 리빙아머가 온몸(?)을 바쳐서 도움을 주려 한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투구를 받았다. 바닥에 지천으로 널린 고구마잎을 똑똑 따다가 고이 말아서 투구에 담았다.

한편으로는 잠깐 욕심이 나기도 했다.

‘이 고구마, 별궁에 가져가서 정원에 심고 싶다…….’

하지만 맹렬한 녹색을 보이는 엄청난 약성이 어떤 성분인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리라. 하여 라키엘은 주방으로 고구마잎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용왕비의 주방용품을 빌려 팔팔 달였다.

“……라지만, 왜 뚝배기가 여기에 있냐.”

라키엘은 묘한 친근감을 느끼며 주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뭐랄까. 드래곤 레어의 주방이라기보다는 마치, 시골 할머니네 부뚜막 같은 친숙함이 들었다.

‘저쪽에 있는 저건 가마솥이고. 탕약기도 있고. 저기 건너편엔 고추도 말려놨고. 가만. 그러고 보니 용왕비가 쇼핑을 하러 간 목적이…… 10년 치 김장을 담그겠다는 거였잖아? 그런데 이쪽 세계에도 김장을 담그는 사람이 있나?’

혹시 한국인이세요?

라고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잡생각을 떠올리고 지우고 하는 사이에 고구마잎이 넉넉히 달여졌다.

“……콜록, 쿨룩!”

조금씩 목구멍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 편도가 붓는 느낌. 슬슬 뻗어오는 코로나의 기운을 실감하며, 한편으로는 애써 무시하며 라키엘은 달여진 고구마잎 엑기스를 지그시 관찰했다.

딩동!

[당신이 직접 조제한 탕약을 감지하였습니다.]

[탕약조제 스킬 옵션 ① : 성분 분석을 발동하시겠습니까?]

[YES / NO]

당연히 예스다.

그러려고 고구마잎을 달인 거니까.

[탕약조제 스킬 옵션 ① : 성분 분석을 발동합니다.]

[스캔 중]

[3…… 2…… 1……]

[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

딩동동!

청량한 소리와 함께 결과물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내용이…….

[구마구마잎탕]

[유효 성분 : 철분, 베타카로틴, 파이토스테롤,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기타 등등…… 비타민 A, 루테인……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페노피브레이트(Fenofibrate)]

“뭐?”

결과물을 보던 라키엘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페노피브레이트가 왜 여기서 나와?”

함유 성분의 끝머리에 언급된 페노피브레이트.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야생의 고구마잎에서는 절대 나올 수가 없는 물질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페노피브레이트는…… 고지혈증 치료제인데?’

미국 화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에 등록된 CAS 등록번호로는 49562-28-9. 분자식은 C20H21CIO4.

그런데 이런 성분이 야생의 자연 고구마잎에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가 않았다. 너무나 황당했다.

이건 예를 들자면,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는데 그 안에서 고농축 우라늄이 튀어나오는 것보다 더 황당무계한 일이었다.

혹은…….

‘갖은 고난과 역경 끝에 식당을 차렸어. 어머니와 내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식당 이름을 지오디라고 짓고. 고사를 지내고. 밤이 깊어가도 아무도 떠날 줄 모르고. 사람들의 축하는 계속되었고. 그렇게 두근거리는 개업을 했는데 첫 손님으로 티라노사우루스가 쿵쿵 들어와서는 야이야아아 여기 치즈돈까스 1인분이yo, 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일이랄까.’

아무리 봐도 안 믿겼다.

그래서 보고 또 봤다.

한데 진짜였다.

‘이게 뭔…….’

황당함. 한편으로 점점 떠오르는 가능성. 그만큼 두근거리는 가슴. 수많은 감정을 되삼키며 눈길을 움직였다. 성분 분석의 나머지 내용을 읽어나갔다.

[성상 : 녹황색의 액상]

[효능과 효과 : 여성 갱년기 증상 개선, 피부 노화 방지, 면역력 증진 및 염증 억제, 뇌조직 내의 PPARα 활성화를 통한 파킨슨병 증상 개선, 체내 ACE2 수용체와 SARS-CoV-2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간 결합 방해를 통한 코로나19 억제]

미쳤다.

당장 환호하며 날뛰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라키엘은 자제력을 발휘하였다. 아직 성분 분석표를 다 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고로 한국말도, 설명서도 끝까지 확인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역시나(?) 뒤쪽에 함정카드가 숨어있음을 라키엘은 발견할 수 있었다.

[용법, 용량 : 1회 10,000리터, 1일 3회 식후에 복용]

“…….”

x발.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배 터져서 죽겠네.

‘아니, 이건 마시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부터가 문젠데?’

끼니당 1만 리터를 달일 수 있을까. 아니. 절대로 아니.

1만 리터면 무게만 대략 10톤쯤 되는 분량이다. 그걸 끼니마다? 여기서? 어떠한 마법의 도움도 없이 꼬박꼬박 달인다고?

불가능하다. 설령 드래곤인 용왕 베르키스가 1만 리터를 손쉽게 원샷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애당초 이쪽이 그만한 분량의 약을 삼시 세끼 달이려다간 과로사 확정 엔딩을 맞이하겠지.

‘나도…… 점점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자꾸만 마른기침이 나왔다. 미열도 슬슬 올라왔다. 이쪽도 코로나에 감염된 상태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겠다.

코로나를 치료할 가능성이 있는 성분을 찾아냈는데, 그런 성분이 함유된 약재를 확인한 마당에 멈출 수는 절대로 없겠다.

‘끼니당 1만 리터? 그럼 약재를 농축하면 돼!’

달이는 방법을 바꾸면 된다. 다른 약재의 성분과 조합을 해도 된다.

여러 성분으로 시너지를 일으키면 된다. 그 상태에서 더욱 거세게 달여서 아예 졸여 버리면 된다.

‘그러면 돼. 할 수 있어.’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탕약 조제 실험을 시작하였다.

주된 약재는 마룡굴 고구마잎, 거기에 용왕에게 달여줄 숙면대보탕의 재료로 가져왔던 지황, 황금, 고삼을 조합하였다.

‘지황과 황금에 고삼이 조합되는 일명 삼물황금탕(三物黄芩湯)은 보통 교감신경이 과하게 흥분한 과항진 상태를 누그러뜨리는 데에도 쓰이지만…… 사실은 이 셋의 조합만으로도 염증으로 인한 출혈과 발진, 혈열(血熱)을 잡는 효과도 있으니까.’

잘만 조절하면 고구마잎의 약성을 충분히 도와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섰다.

거기에 라키엘은 산조인탕에 넣으려 하였던 지모도 추가하였다.

주로 몽골과 한반도 북부에 자생하는 약초인 지모는 아스포닌, 살사포케닌 성분이 풍부하여 해열제로서의 효능이 탁월했다.

이 또한 고구마잎의 약성을 돕기에 충분하리라 보았다.

‘일단 달이자.’

탕약기 앞에 앉았다.

마룡굴 한쪽을 감싸며 흐르는 맑은물을 부었다.

끓이며 약재를 순서대로 투입하였다. 달였다. 그 모든 과정을 눈으로 보고, 코로 맡으며, 피부로 열기를 느꼈다.

한편으로는 점점 열이 올라왔다.

미열?

이제는 아닌 것 같다.

‘어지러워…….’

점점 기침이 심해졌다. 자꾸만 식은땀이 났다. 오싹거리는 오한도 들었다. 열이 차츰 펄펄. 불 앞에 앉아 있기가 괴로워졌다.

그러나 참았다.

‘유일하게 찾은 해결법이야. 그런데 내가 손을 놓으면…… 끝장이겠지.’

그럴 수는 없다.

악착같이 버텼다.

첫 번째 실험 탕약을 달이고, 졸였다. 분석했다. 그러나 실패였다.

“…….”

한 번 더.

달였다. 약재의 비율을 바꾸었다. 졸였다. 그리고 실패했다.

“다시.”

달였다. 비율을 조정했다. 졸였다. 또 실패했다.

“……다시.”

도전했다.

어느새 하루가 꼬박 지났다. 전신의 열이 펄펄 끓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목은 부어서 침만 삼켜도 칼로 찢는 듯한 통증이 왔다.

그러나 라키엘은 쉬지 않았다. 마침 밤이라서. 뱀파이어 로드의 가호 덕분에 3배로 증폭된 신체 능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오장육부는 난리가 났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무리한 강행군에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심장이 당신을 말리고 싶어합니다.]

[허파가 괴로움을 호소합니다.]

[대장이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냅니다.]

[간장이 발을 동동 구릅니다.]

[위장이 경련합니다.]

[콩팥이 위기감에 몸을 떱니다.]

[비장이 울먹이고 있습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생존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1,0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9,200]

“…….”

물론 안다.

무리하고 있다는 거, 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겠다.

그저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 때문에? 용왕을 치료하겠다는 책임감 때문에?

아니.

사실은 너무나 화가 났다.

‘빌어먹을 코로나.’

까드득!

또 코로나다.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린다.

한국에서 나름 가난을 벗어나 살게 되었다고 여겼는데, 갖은 개고생 끝에 한의사가 되었는데, 앞으로는 천재지변만 아니라면 탄탄하게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안심했는데, 그런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이 코로나였다.

수백, 수천, 수만의 안타까운 인명을 앗아간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름 성실하게 쌓아왔던 자신의 인생도 허물어뜨렸다.

하지만 굴하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에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또, 코로나다.

고난과 역경 끝에 인슐린 샘플을 가져왔는데, 이제 다 해냈노라 여겼는데, 그런데 이 빌어먹을 코로나가 지긋지긋한 망령처럼 여기까지 따라와서 일을 다 망쳐놓았다.

생각할수록 머리끝까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렇게 화가 난 적이 있었을까. 아니, 사실 나는 두려워하는 것일까. 과거의 트라우마에 휩싸이는 것을 거부하고자 짐짓 분노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집착하며 연구에 매달렸다. 실패? 다음 시도를 향한 단계일 뿐. 실패할 때마다 달려들었다.

두려움을 잊고자 더욱 몸부림치며. 약재의 배합을 바꾸고. 달이고. 졸이고.

그리고.

‘……어?’

한순간, 세상이 기울어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지독한 현기증과 함께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탕약, 계속 달여야 하는데.

아직, 성공하지 못했는데.

조금, 더 하면 되겠는데.

그런데…….

딩동!

[WARNING!]

[아침이 밝았습니다.]

[뱀파이어 로드의 가호 효과 종료.]

[3배로 증폭된 면역력이 감소합니다!]

[누적된 혹사로 쇠약해진 신체에 코로나(SARS-CoV-2:GH형) 바이러스가 폭주하며 증식됩니다!]

[당신의 감염 상태가 <중증 단계>로 급속히 악화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한껏 기울어지는 세상.

얼굴을 때려오는 땅바닥.

차갑고 거친 감촉.

누구도 안아주지 않는.

‘해내야…… 하는데.’

그것이 라키엘이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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