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63화 (362/468)

363화. 역사적 위업 (3)

[용법, 용량 : 1회 1리터, 1일 3회 식후에 꾸준히 복용]

[사용상의 주의사항 : 중증 신장애 환자는 횡문근 융해증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복용을 금지합니다. 활동성 간질환 환자, 또는 담관간경화증 환자에게도 복용을 금지합니다. 임산부의 복용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저장 방법 : 4~21℃의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환경에서 보관]

[사용 기간 : 제조일로부터 5일]

[제조자 : 베르키스, 데미안 카이엔, 리빙아머, 살라만더,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

[보너스 발동 : 본 탕약은 당신이 조제에 참여한 것이므로, 탕약조제 스킬(Lv.12)의 보너스를 50% 적용받아 약효가 10.5% 증가합니다.]

“…….”

미쳤다.

성분 분석 결과를 보자마자 라키엘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제일 큰 문제가 해결됐는데?’

어째서?

왜?

어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똑같은 재료로 거듭 탕약을 만들던 때에는 이런 결과물이 나오질 않았던 까닭이었다.

‘코로나 치료 효과는 확실하게 나왔어. 다만, 끼니마다 1만 리터, 최소 2천 리터는 마셔야 한다는 결과가 나오는 게 문제였지.’

그건 마시는 것도 문제지만, 현실적으로 만드는 게 더욱 큰 문제였다. 하루에 세 번 2천에서 1만 리터의 탕약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달여댈 것인가 말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다. 혼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렇게 깔끔하게 1리터 복용으로 치료 효과가 나오는 탕약이 만들어졌다니.

귓가에는 오장육부의 환호성도 들려왔다.

딩동!

[오장육부가 성분 분석 결과에 환호합니다.]

[심장 : 핫하 어림없지! 이제 저 탕약 먹고 운기조식만 돌리면 코로나도 껌이라굿!]

[허파 : 허헣파핳ㅋㅋ]

[대장 : 운기조식!]

[간장 : 운기중식!]

[위장 : 운기석식!]

[콩팥 : 운기브런치!]

[비장 : 그만해 미친놈들아…….]

[오장육부가 회복 기원 축제를 벌입니다.]

[오장육부가 대 결전 코로나 탕약병기의 획득을 축하하며 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9,700]

“…….”

어휴 내가 방금 뭘 들은 건지.

라키엘은 귓구멍을 탈탈 털어내는 심정으로 대접을 집었다. 그리고 입가로 가져왔다.

‘시음, 해볼까.’

분석 결과를 보았으니, 이제는 몸으로 직접 확인할 차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접을 기울였다.

……츄릅?

엄청난(?) 맛과 향이 느껴졌다. 혓바닥 위에 배틀필드가 펼쳐졌다. 미각 세포가 손에 손잡고 멸망의 세레나데를 데스메탈로 불러제꼈다. 번지점프를 시전한 식도가 괄약근과 하이파이브 도원결의를 맺고 원위치로 복귀했다.

그러나 싹 무시했다.

꿀꺽!

삼켰다. 한 모금. 두 모금. 천천히. 나누어서.

“후아……!”

세 모금을 마셨는데 눈앞이 핑 돌았다. 너무나 썼다. 코로나 감염 때문에 미각이 둔탁해져 있는데도 그러했다. 고진감래? 그런 옛말을 하신 조상님들한테도 적극적으로 한 잔씩 돌리고 싶은 맛이었다. 그런 말 쏙 사라지게.

하지만 약효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마시자마자 오장육부가 덩실덩실 아주 난리가 났다. 천군만마의 지원군을 얻은 심장과 허파가 대반격에 나서는 것이 느껴졌다. 위장과 대장이 특공대를 조직하고, 간장과 비장이 선봉을 자처했다. 콩팥 지원팀에도 활력이 살아났다.

라키엘은 단 세 모금의 탕약이 자신의 몸속에서 불러오는 변화를 느꼈다. 그리고 데미안을 돌아보았다.

“이거, 괜찮네.”

“그렇습니까.”

“어. 인정하긴 싫지만.”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렇게 애를 쓰면서 연구를 할 때는 이렇게 되진 않았거든.”

“하지만 전하의 그 연구가 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도였습니다.”

“그런가.”

“당연히 그렇지.”

마지막 대꾸는 용왕에게서 나왔다. 베르키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너님이 짠 레시피, 제법 그럴듯하더라? 그런데 세 가지가 아쉽더라고.”

“세 가지나……요?”

“그래. 온도, 강도, 일정한 흔들기.”

베르키스의 말이 이어졌다.

“그냥 부뚜막에서만 얌전하게 달이면 결과물도 얌전한 놈들만 나온다는 거지. 안 그래? 기왕이면 좀 강력하게 지져야지. 그래서 살라만더를 동원했고.”

“더덕!”

마침 리빙아머 밖으로 빠져나온 살라만더가 베르키스의 어깨에 올라타며 야물딱진 추임새를 넣었다. 베르키스가 말했다.

“이 녀석이 덩치는 작아도 화력은 끝내주거든. 어지간한 용광로? 비교도 안 될 거야. 덕분에 부뚜막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화력으로 탕약을 팔팔 끓였지. 그 온도를 버티기 위해 리빙아머가 동원된 것이고.”

“아…….”

엄청난 화력의 살라만더와, 그걸 능히 버텨내는 리빙아머. 그것이 온도와 강도였고, 비결이었던 걸까.

“그렇게 화력으로 지지고, 물이 줄면 계속 붓고, 버티면서, 열심히 흔들었지. 자고로 국물은 꾸준하게 잘 휘저어줘야 제맛이 난다, 이 말씀이거든.”

“…….”

아니 좀.

그건 아닌 거 같지 말입니다.

하지만 용왕의 열변(?)은 더욱 뜨거워져만 갔다.

“그 결과! 엄청난 고열과 격렬한 흔들림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살아남은 정예 중의 정예인 약 성분들만 이 탕약에 남았다, 이런 뜻인 거지.”

“…….”

“강한 놈이 살아남아? 아니야. 살아남은 놈들이 강한 거야. 그래서 살아남은 놈들만 추리고 또 추려낸 소수정예의 그 탕약이 약효가 빵빵한 거고.”

“…….”

아, 뭐라고 반박하고 싶은데. 그건 진짜 아닌 거 같다고 일침을 놓고 싶은데. 그런데 못하겠다. 정말로 완성된 결과물이 짜잔 하고 나와 버린 판국이다 보니, 반박을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이건 마치 주법이고 뭐고 없이 마구잡이로 뛰었는데 100미터 달리기 7초대를 끊어 버린 동네 아저씨 앞에서 우사인볼트가 할 말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랄까.

결국, 라키엘은 쓴웃음만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군요. 이건 인정을 안 할 수가 없겠습니다.”

“인정? 나님이 그런 거나 바랐을 거 같아?”

“예?”

“인정이고 뭐고 필요 없고. 너님이나 얼른 나아 버리라고.”

“아, 예…….”

라키엘은 움찔했다.

예상 못 했던 말이 용왕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움직이기 귀찮아하던 용왕이 직접 나서서 탕약을 달이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던 이유가…… 이쪽의 쾌유를 바랐던 거였다니.

솔직히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일까.

가슴 한쪽이 조금은 뭉클해졌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는 무슨. 너님이 빨리 나아야 볼일 다 보고 여기서 꺼질 거 아니냐고.”

“……예?”

“그래야 나님도 다시 평화로워지지. 생각해 봐. 사실 지금이 얼마나 황금 같은 찬스인데. 무려 10년 만에 꼬맹이, 아니, 아내가 외출한 탈압박 찬스인데. 이 보물 같은 시간이 지금도 재깍재깍 아깝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나님 가슴이 얼마나 쫄깃하게 찢어지는지 상상이 가니? 응?”

“…….”

“죄송하다고 안 해?”

“죄송합니다.”

“엎드려서 받는 절은 됐고. 죄송한 줄 알면 얼른 나아서 꺼져 버리렴?”

“…….”

감동 바사삭.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본격적인 셀프 치료에 집중하였다. 사실 별 거창한 과정은 없었다. 그저 하루에 한 번, 리빙아머의 탕약 제조를 점검했다. 용왕배길수탕에 들어가는 재료의 배합과 상태를 체크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 치 3리터의 탕약이 제조된 뒤부터는 온종일 쉬었다. 제때 식사를 하고, 식후에는 끔찍한 맛을 자랑하는 용왕배길수탕을 홀짝홀짝 1시간에 걸쳐 1리터를 마셨다. 그리고 푹 잤다.

무료한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솔직히 얼마 만에 이렇게 손 놓고 쉬는 건지 모를 정도로 편했다.

‘처음인가.’

아마도 황태자 라키엘의 몸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덕분에 조금은 낯선 실감도 났다. 내가 그동안 정말 애쓰며 살았구나, 하고. 이렇게 며칠 누워서 쉬는 걸 행복으로 여길 정도로 쫓기며 살았구나, 하고.

‘한국에 있던 때는 쉬는 거 자체가 절망이었는데.’

솔직히 그러했다.

적어도 한의원이 망해가던 시점엔, 확실히 그랬더랬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한의원. 재깍재깍 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만 건조하게 울리던 진료실. 그 침묵과 고요가 얼마나 불안했던지.

나름 한의원 운영에 잔뼈가 굵었다고, 이쯤이면 자영업 내공이 쌓였다고, 그때까지 나름 품고 있던 자부심이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나던 시기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통렬한 깨달음을 얻은 시기이기도 했다.

바로, 자영업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손님 없는 기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막막함, 그 시간을 견뎌내는 인내심이라는 것을.

‘나는 그걸 못 견뎠던 거고.’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지금 돌아가서 그때를 견디라고 하면?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도 잘 해낼 자신이 별로 없다. 생각할수록 거친 한국 땅에서 풀뿌리처럼 질기게 살아가는 자영업자분들이 존경스러워진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말입니다, 전하. 이번엔 침술은 안 쓰시는 겁니까?”

“어. 지금은 안 해.”

“어째서입니까?”

“피곤하잖아.”

라키엘은 저녁 식사를 가지고 온 데미안을 향해 피식 웃었다. 격리를 위해 리빙아머에게 식사 전달을 부탁해 두었는데도 부득부득 직접 식사를 가지고 오는 데미안이었다. 아마도 이쪽이 걱정되어서일 터다. 그 마음을 알기에 이렇게 타박을 놓는 것이기도 하고.

“침술도 아무 때나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지금은 약 먹고 푹 쉬는 게 제일가는 보약이라서. 어쨌건 그러니까 이제 그만 좀 와주지 않을래?”

“하지만 전하.”

“병 옮아요. 네가 이렇게 여기 들어와 있으면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거든. 게다가 너 나가고 나서도 안심하고 벗질 못한다? 혹시나 허공에 대고 기침하면서 튀겨둔 비말에 네가 접촉될까 봐.”

“비말이 뭡니까?”

“침방울.”

“아.”

“지저분하지? 아주 난리지? 게다가 너 지금 1형 당뇨까지 앓고 있잖아. 당뇨가 있는 사람은 코로나 치명률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말 좀 들어라.”

“……예, 알겠습니다.”

라키엘은 일부러 매몰차고 까칠하게 말했다. 결국, 데미안은 순순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질문을 홀로 되삼켜야 했다.

사실은 당신의 원룸, 그곳 책장에서 자신의 너무나 생생한 초상화를 찾아내었노라고. 물론 그것으로 인하여 당신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궁금하다고.

당신의 친구가 날 보며 유달리 반가워했던 것도. 때로 이곳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훤히 알고 있는 듯한 당신의 모습도.

‘하지만 지금은……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황태자 당신이 건강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데미안은 정성껏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라키엘의 방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직접 준비했다. 리빙아머가 식사를 전달하고 돌아올 때마다 라키엘의 상태를 물었다.

라키엘의 회복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꼬슴이도 마찬가지였다.

“꼬슴, 꼬스슴!”

“코로롱? 코롱?”

꼬슴이는 늙은 만티코어와 인근의 산과 들을 부지런히 누볐다. 그리고 예쁜 꽃이 보일 때마다 정성껏 따다가 가시에 꽂아서 마룡굴로 가져왔다. 찹쌀떡 같은 손바닥으로 얼기설기 꽃다발을 만들었다. 격리되어 만날 수 없는 라키엘의 침실 앞에 수북하게 쌓아두었다.

그렇게 마룡굴의 모두가 라키엘의 회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했다. 용왕은 귀찮은 놈이 빨리 꺼져 주길 기원하며. 데미안과 꼬슴이는 진실된 충성심과 우정으로. 마룡굴의 마수들은 모처럼의 손님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엿새가 지난 아침.

……딩동.

[역사적 위업 달성]

모처럼 상쾌해진 컨디션으로 깨어나는 라키엘의 눈앞에, 처음으로 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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