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67화 (366/468)

367화. 1.5마리의 토끼를 잡는 법 (2)

“그럼 제게 멤버십 혜택을 다 주시고, 그 뒤에 대가 없이 함부로 요구를 하는 저를 한 번 죽여 주시고, 대신 한국으로 탕약 레시피를 배송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

라키엘이 말했다.

베르키스는 말을 잃었다.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꼬슴이는 무의식중에 온몸의 가시를 잔뜩 세웠다. 만티코어의 갈기가 부풀었고, 리빙아머가 삐그덕 헛다리를 짚었다.

이내 마룡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내 라키엘을 제외한 모두가 깨달았다. 방금 라키엘이 한 발언 속에 담긴 미친 의도를.

“저기, 용왕님?”

“…….”

“제 말씀이 잘 안 들리신 건지…….”

“어. 잘 들렸다만.”

“예. 그래서 용왕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나님의 생각이라.”

베르키스의 눈빛이 깊어졌다.

“너님, 나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보려고 잔머리를 썼구나?”

“물론 완전한 두 마리를 잡는 건 불가능했지만요.”

“그래서 1.5마리라도 잡아 보시겠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대입했을 때, 이게 이득이 가장 큰 방법이었습니다.”

“너님이 못 떠올린 방법도 있을 텐데?”

“그건 제 머리의 한계일 테고요.”

“죽는 게 두렵진 않고?”

“여벌의 목숨을 주신다 하셨으니, 크게 걱정이 되진 않습니다. 게다가-”

라키엘이 빙긋 웃었다.

“죽었다가 살아나면 지병이 싹 사라지거나 완전히 건강해지는 건 무리라도, 죽기 전보다는 육체의 컨디션이 개선된다 하셨지 않습니까? 제겐 체질 개선, 아니, 체질 개혁의 큰 기회일 수도 있지요.”

“그래서, 용왕 후원 멤버십의 혜택 중에서 목숨 하나를 내놓고 재물 이용권을 획득하는 동시에, 한국으로 탕약 레시피를 전달하겠다는 선택지도 누리겠다?”

“예.”

너무나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라키엘. 마침내 베르키스의 입가에 어이가 없다는 웃음이 걸리고 말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용왕은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라키엘이라는 인간을 조금은 더 알 것 같았다.

‘계산적이고 교활해. 얄미울 정도로. 그런데 정작 그 교활함으로 남을 해치지는 않아서 멍청하군. 이렇게 똑똑하면서 멍청한 놈은 보기 드문 법인데.’

보통 세상살이가 만만하지는 않다. 아니, 험난하다. 거친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똑똑하면서 이기적인 인간이 더 많은 이득을 누리는 것이 인간들의 사회다.

눈앞의 라키엘도 마찬가지다. 저 정도 지위와 영민함을 지니고 있다면, 조금만 이기적이기만 해도 엄청나게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본인도 그런 사실을 알겠지. 그런데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니.

웃겼다.

이타적인 자비심? 헌신? 봉사?

남들이 보기에는 아름다운 인생일 수는 있겠지만, 그걸 실천하는 사람은 타인의 상상을 불허하는 고통을 감내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만큼 찬사를 받는 것이겠지. 대대로 회자되기도 하는 것이겠지.

참으로 웃긴 세상이다. 인간들의 사회는. 그래서 이런 놈을 보면 미워하기가 어려워진다.

‘이건 300년 전에 후원했던 놈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서.’

……재미있다.

“좋군.”

베르키스의 입가에 다시금 실소가 걸렸다.

“너님의 선택을 존중하겠다.”

“정말이십니까?”

“그럼 나님이 헛소리를 할 것 같니?”

“죄송합니다.”

“빠른 인정과 사과를 받아들이지.”

“그럼, 저를 용왕 후원 멤버십에 가입시켜 주시는 거지요?”

“그래. 이렇게.”

따악!

베르키스가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이걸로 가입 완료.”

“……예?”

“놀랐니?”

“아, 예. 조금, 뭐랄까. 허전해서 말입니다?”

“허전하기는.”

베르키스가 한쪽 입술로만 피식 웃었다.

“그럼 무슨 빛이 번쩍번쩍하고, 신비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온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식의 난리부르스를 펼쳐야 하는 거니? 그런 게 굳이 필요해?”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실감이 안 나서 말입니다.”

라키엘이 솔직하게 말했다.

“회원가입이 됐으면 절차가 완료됐다는 페이지가 뜨거나, 최소한 문자라도 와야 뭔가 됐구나 하고 실감이 날 텐데 말입니다. 이건 그냥 용왕님께서 손가락만 딱, 하고 튕기시고 끝이 나 버리니까…… 가입이 잘 됐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고, 좀 지나치게 심플하지 않나 싶어서…….”

“아하. 그럼 지금 당장 죽어볼래?”

“……예?”

“확인하고 싶다며.”

“그, 그렇긴 한데.”

“잘됐네. 그럼 온몸으로 확인해 보렴?”

“네?”

설마?

에이.

진짜?

라키엘은 한편으로는 얼떨떨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에이 그래도, 라는 심정으로 베르키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베르키스가 빙긋 웃었다. 너무나 인심 좋게. 가입한 회원(?)의 요청을 기꺼이 들어주겠다는 듯이 넉넉하게.

그리고 죽음이 찾아왔다.

파삭.

혹시, 누군가의 시선을 받자마자 전신이 가루가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제부터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건네온다면,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진짜로.

실화로.

가루가 되었으니까.

“……!”

용왕 베르키스가 이쪽을 쳐다보는 순간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어? 하는 기분이 아주 잠깐 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갔다.

흔한 주마등도 없었다.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와닿지도 않았다. 압도적인 허무와 부재. 인식의 끄트머리. 조각조각 부서지는 기억의 파편. 그 사이에서 외쳐보는 소리 없는 신음. 이내 충격처럼 다가오는 실낱같은 자각.

‘……나, 진짜로 죽었어?’

소름이 싸악 몰려왔다.

아니, 소름을 느끼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감각을 느낄 육신 자체가 일순간에 가루가 되어 버렸으니까. 그럼 이 생각은 뭘까. 진짜로 내가 떠올리는 생각이 맞는 걸까. 혹은 착각인 걸까. 내 영혼의 잔재가 흘리는 인지부조화의 결과물인 걸까.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용왕이 진짜로 이쪽을 다짜고짜 죽여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거, 약속 하나는 제대로 지키시는구만.’

억울한가?

그건 아니다.

사실 죽여 달라고 한 것은 이쪽이었으니까, 억울하면 그게 이상한 거다. 다만 이쪽을 죽여 버리는 일을 이렇게 서슴없이, 예고편도 없이,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한 큐에 저질러 버릴 줄은 몰랐다는 거지.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라키엘은 가만히 기다렸다.

인식의 파편 너머에서.

조각난 기억의 잔해 속에서.

가루가 되어 번지는 공간 사이에서.

이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다행히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순식간이었다. 그의 몸은 베르키스의 시선을 받고서 가루가 된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곧바로 부활의 시곗바늘에 올려졌다.

거꾸로 도는 시계 초침.

죽음의 역순으로 재생되는 육신.

샤아아아아……!

가루가 되어 흩어졌던 라키엘의 몸이 다시 뭉쳐졌다. 그 언젠가 까마득한 태고에 우주의 먼지가 뭉쳐서 항성이 되었던 시절처럼. 빛나는 태양 주위로 이글거리는 행성이 빚어지던 때처럼.

라키엘의 육신이 순식간에 재구성되었다.

완전히 멀쩡하게.

죽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오애애액.”

부활의 절차가 끝나자마자 라키엘은 헛구역질부터 게워냈다. 속이 왕창 뒤집혔다. 죽음과 부활의 과정에서 겪은 재구성의 충격 때문이었다.

“콜록콜록! 오애액……! 애액……! 겍!”

어지러웠다.

호기심에 탔던 롤러코스터? 비교도 되지 않았다.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감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쪽을 죽인(?) 용왕 베르키스는 그런 사실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어때? 느낌이?”

“……오애애액.”

“생각보다 유익한 경험이지?”

“……궤애애액.”

“아아. 나님은 왜 이렇게 자비로운지 몰라. 이런 귀한 경험을 티켓도 안 끊어주고 막 시켜줘요. 이런 걸 어디 가서 겪어보겠어. 안 그러니?”

“……갸애애액.”

“그런데 이런. 아직도 속이 안 좋아?”

“……구애애액.”

“한가하게 구역질만 하지 말고 너님 호위 좀 말려주지 않을래? 당장 검 뽑아서 달려들 기세인데.”

“……아애애액.”

“쓰읍. 혹시 육신이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언어 중추가 잘못 조립됐나? 부활권 하나 더 주고 또 죽여봐야 하나?”

“아닙니다.”

“으음. 다행이야. 말 잘하네. 잘됐네.”

“……오애애액.”

“죽을래?”

“아닙니다.”

“쓰읍.”

“…….”

라키엘은 목구멍으로 치고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억지로 참아냈다. 그리고 억울한 마음을 한가득 담아서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으읍, 용왕님? 이렇게 다짜고짜 진짜로 죽여 버리실 줄은 몰랐는데요.”

“너님이 요구했던 거잖아?”

“예, 그게 맞기는 한데.”

“죽였으니까 그다음 요구도 들어달라고?”

“옙.”

라키엘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키스가 피식 웃었다.

“그래. 좋다. 해주지. 다만 다음부터는 주의해.”

“주의라니……. 뭘 말입니까?”

“만약 지금 나님이 변덕을 부려서 요구를 안 들어주겠다고 해 버리면 어떡하려고 그랬어?”

“어, 그건…….”

“방법이 없었겠지? 일방적으로 손해만 봤겠지?”

“그랬겠지요?”

“그렇지.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얻을 것부터 얻은 뒤에 너님이 줄 걸 주라고. 알겠어?”

“…….”

이런 조언은 억울하다. 이쪽이 준비고 뭐고 하기도 전에 다짜고짜 죽인 게 누군데!

하지만 라키엘은 그런 사실을 따지진 않았다. 대신 안면 가득 사회생활용 미소만 상큼하게 띄웠을 뿐!

“역시 용왕님의 조언은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아무렴요. 새겨듣겠습니다. 그럼…….”

“탕약 레시피 전달?”

“옙.”

“해줘야지, 뭐.”

베르키스가 새삼스러운 귀찮음을 억누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마법진을 펼쳤다.

샤아아아……!

허공에 생성되는 입체 마법진. 그 속으로 마룡굴 거대 고구마 종자 다섯 줄기와 두 장의 편지지가 도동실 떠올랐다.

“편지 하나에는 코로나 치료 탕약 레시피. 나머지 하나에는 이걸 보내는 사연을 담아서. 이러면 되겠지?”

“예, 옙! 보내는 주소는…….”

“너님이 살던, 이제는 황태자가 살게 된 원룸. 맞나?”

“예, 맞습니다.”

그거면 된다.

원룸에는 황태자가 있고, 뉴튜브 촬영을 돕기 위해 은수가 매일 들락거릴 테니까. 아마도 이쪽이 보내는 레시피의 의미와 용도를 금방 알아차리겠지. 거기에 나름 대기업 연구소에서 높은 직책으로 일하는 원호의 인맥과 도움까지 더해지면 레시피가 유익하게 잘 활용될 것이다.

“좋아. 그럼 이대로 보내도록 하지.”

베르키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소리와 함께 차원이동 입체 마법진이 섬광을 뿜어냈다. 사라졌다. 허공에 떠올랐던 고구마 종자와 레시피, 편지도 함께.

“……후우.”

정말로 보냈구나.

이거면 됐다.

비로소 라키엘은 한숨을 돌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심 가슴을 아프게 쳤다. 얻을 것도 얻었고, 해낼 것도 해냈지만, 그럼에도 잃은 것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까닭이었다.

‘아이고 내 여벌 목숨……!’

생각할수록 아까웠다. 안타까웠다.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여벌 목숨을 내놓고 나머지를 다 얻는 거니까,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라 자평했다. 그런데 막상 정말로 목숨 하나를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나니까 기분이 달라졌다.

‘체질 리셋의 기회고 뭐고 간에…… 그래도 목숨 하나 더 있는 게 얼마나 든든한 건데…… 아이고오!’

아까웠다.

너무나 아까웠다.

설마하니 용왕이 진짜로 이쪽을 다짜고짜 죽여 버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막상 당하고 나니까 식도부터 위장을 거쳐 십이지장과 소장 대장에 괄약근 융털돌기까지 씁쓸해질 정도로 아까워서 눈물이 나고 콧물이 났다.

하지만 이미 잃은 마당.

그는 씁쓸해지는 속을 애써 달랬다.

‘쯧. 그래. 목숨은 하나 날려 먹었지만, 그래도 체질 개선의 기회가 왔으니까 그걸로 만회하면 돼. 그럼 더 건강해져서 오래 살 수 있어. 떵떵거리는 인생을 늘릴 수 있어!’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도중이었다.

딩동!

생각지 못했던 알림음이 귓가를 통통 두드렸다. 그리고 이내 눈앞을 채우는 메시지는…….

[당신은 순식간에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의 육신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숨이 날아갔다가 돌아오는 충격적 자극에 의하여, 새로운 장기가 각성의 절차에 돌입합니다.]

[수(水)의 성질을 지닌 방광(膀胱)이 각성의 눈을 뜹니다.]

[방광 : 크크큭…… 마침내 날 깨워 버린 건방진 인간에게…… 금단의 힘을 줘볼까나…… 소변 참기 능력…… 1.5배…… 크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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