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87화 (386/468)

387화. 균형을 되찾을 방법 (1)

조화와 균형은 중요하다.

저 두 가지 개념은 어떤 상황에서건 중요하지만, 사람의 신체와 건강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이 더욱 중요해진다.

조화와 균형이 깨지면 건강이 무너지고, 질환이 생겨나 삶을 힘겹게 하기 때문이다.

‘보통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건강하다고 믿고 있지. 기본적으로 그래.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니야. 신체의 조화와 균형이 깨진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 사실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권장한다.

네 몸은 네가 믿는 것만큼 건강하지 못하니까, 하다못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서 죽을 병이 스타트 버튼을 누르려고 대기 타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 아스라한 변경백 가문의 사람들은 어떨까. 이제 라키엘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집안 사람들, 건강검진 받게 하면 볼 만하겠다고. 검진 결과 나오는 날 병원에서 걸려오는 다이렉트 전화를 받을 거라고.

심장에 문제가 있으니까 정밀검진 받으러 빠른 시일 내에 꼭 오세요. 블라블라 기타등등. 이라고 말이다.

‘개량형 아스라한 심법. 이것 때문이야.’

콰콰콱! 투콱!

라키엘은 두 눈을 번득였다. 그리고 아르민이 연달아 내리치고 베는 검격을 만년설로 능숙하게 막아내며 녀석의 심장 주위를 관찰했다.

아까부터 발동하고 있던 경혈 스캐닝.

덕분에 훤히 보였다.

보통의 것보다 훨씬 큰 마나써클 하나가 심장을 둘러싸고서 회전하고 있었다.

한데 그 회전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거칠었다. 자신이 아는 아스라한 심법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건 뭐 거의 고속으로 회전하는 원심분리기 중심에 심장이 놓인 수준인데?’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하나로 제한된 마나써클.

그 한계를 깨기 위하여 이들 가문이 어떤 종류의 방식을 선택했는지를 말이다.

‘원래 아스라한 심법으로 만들어지는 써클 하나하나의 위력은 거의 일정해. 개인차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소유자의 신체가 지닌 한계를 넘지는 않아.’

그래서 아스라한 심법에서는 써클의 숫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위력을 높인다. 일정한 규격의 건전지 숫자를 늘리며 출력을 올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랄까.

‘심지어 써클이 많아질 수록 서로 증폭되는 곱연산으로 위력이 증가하지. 그게 아스라한 심법의 진짜 무서운 점이고.’

거기에 더 대단한 점은, 써클이 늘어나도 신체에 별다른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써클 하나하나의 위력은 신체의 한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만들어졌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이들 가문의 개량형 써클은 매우 달랐다.

‘그냥…… 하나의 써클을 무식할 정도로 키웠어.’

낮에 아르민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물론 그때도 상식을 초월한 업적이라고 느끼긴 했다. 그런데 그 위력을 직접 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엽기적일 정도야. 사용자의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어. 고작 열대여섯 살밖에 안 된 녀석의 써클 주제에.’

아르민을 보는 라키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녀석이 천재라서 써클의 위력이 엄청난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과도할 정도로 거칠고 강력한 하나의 써클. 이것이 개량형 아스라한 심법의 특징인 거겠지.

‘저런 특성이 신체와 심장에 부담을 주는 거야.’

부담이 켜켜이 쌓인다.

시간이 흐르며 더 쌓인다.

그동안 심장이 과도한 부하를 받으며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적응을 한다.

신체 한계를 넘은 수준의 써클 회전. 그 회전이 불러오는 엄청난 압력. 그 압력을 버텨내기 위하여 심장이 스스로 철벽을 쌓는다.

그것이 바로 심장 근육 비대라는 결과의 철벽이었다.

카아앙-!

다시금 만년설을 때려오는 철검. 그 건너편의 아르민을 바라보는 라키엘의 눈빛에 연민이 새겨졌다.

비로소 알겠다.

‘이들 가문은…… 아스라한 심법을 어떻게든 계승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서서히 깎아내는 길을 선택한 거였구나.’

젊은 시절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심장의 이상? 없을 것이다. 자각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중년을 넘어서면?

40대에 접어들며 서서히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오랜 시간 개량형 아스라한 심법을 사용하며 쌓인 신체의 부하가 충분할 만큼 심장 근육을 비대화시킨 상태가 될 테니까.

‘격한 운동을 할 때마다 호흡이 힘들어지곤 하지. 혹은 전에 없던 급격한 피로감을 느낀다든가. 가끔, 아니, 종종 앉아서 몸을 웅크리지 않으면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는 기좌호흡(orthopnea)이나 야간의 발작성 호흡곤란을 겪었을 거고.’

그 외에도 뜬금없는 어지럼증, 더 나아가 실신하는 상황을 겪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비대해진 심장의 혈류 이상으로 인한 심부전증과 함께 돌연사를 맞이했겠지. 가문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이다.

‘하지만 그걸 개량형 아스라한 심법과 딱히 연관시키진 못했던 거야. 그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고.’

하나는 가문의 구성원이 모두 심법의 보유자라는 것. 또 하나는 심법을 익히는 시점과 증상 발현의 시점에 최소 30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는 점.

‘그런 점들 때문에 아스라한 심법이 원인이라고 딱 짚어내지 못했던 거겠지. 아니. 설령 그걸 짐작한 사람이 있었더라도 그 사실을 함부로 입 밖에 낼 수는 없었을 거야. 이들 가문에 있어서 개량형 아스라한 심법은 그만큼 중요하고, 소중하고, 위대한 것이었을 테니까.’

진실을 말하려면 엄청난 용기를 내어야 했을 것이다. 아니, 설령 말했다 한들 그게 받아들여졌을까.

아마도 불가능했겠지.

‘후우. 이제 좀 알겠군.’

확신과 함께 결론이 나왔다.

동시에 라키엘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후후후. 후후.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보너스 수명 노다지 광산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

온집안 사람들이 전부 환자다. 자신의 따끈한 손길을 기다리는 수명 보따리다.

눈앞의 아르민만 해도 그렇다. 이 녀석, 이대로 개량형 아스라한 심법을 대책 없이 펑펑 써대면 60살도 못 채우고 억, 하며 죽겠지.

반면, 대책을 마련해주면?

그보단 오래 살 것이다.

10년?

20년?

아무래도 좋다.

가문의 사람들을 다 합치면 100명 단위의 머릿수가 나올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허허. 허허허.’

생각할수록 절로 보람찬 웃음이 나왔다. 그저 데미안에게 멀티 마나하트를 장착시켜 주려고 찾아온 이곳에서 이런 노다지를 찾아낼 줄은 몰랐다.

수명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요즘 별궁 한의원 덕분에 보너스 수명을 제법 쌓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더 많으면 더 좋으니까.

‘돈이랑 똑같은 거지!’

일단 많아서 나쁠 일은 없다.

오히려 많을수록 더욱 좋다.

결론을 내린 라키엘은 만년설을 고쳐잡았다. 그리고 살짝 자세를 낮추었다. 마침 아르민의 다음 검격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검격을 받아내지 않았다.

츠슷!

그의 두 발이 유려하고도 교묘한 방위로 지면을 딛고, 박차며, 그림자처럼 미끄러졌다.

왕녀 아델린에게 빡세게 배웠던 앙부아즈 왕가의 격투술, 그 기초 단계의 보법이었다.

아르민 같은 소년의 검격을 흘려내는 데에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후웅……!

“……어?”

처음으로 검에 깃든 허전한 감각. 무언가를 치지 못하고 허공만 헛되이 가른 싸늘함. 여지껏 내내 성공적(?)으로 만년설을 두드리기만 했던 아르민은 자신의 검이 빗나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리고 눈앞에서 황태자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더욱 경악했다.

“여기다.”

“……!”

황태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언제?

어떻게?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황태자의 다음 말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휘감았다는 것과,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의식이 아득한 어둠의 꿈나라로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청소년은 잘 시간이야.”

투컥!

“……!”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커튼이 순식간에 세상을 가리듯 눈앞이 캄캄하게 물들었을 뿐. 쓰러지는 몸의 감각마저도 느끼지 못하고서 삽시간에 꿀잠 같은 혼절 상태로 돌입했을 뿐.

그렇게, 라키엘에게 귀중한 검진 데이터(?) 한 무더기를 제공한 아르민은 한 큐에 기절하고 말았다.

아침이 밝았다.

라키엘은 곧장 아스라한 변경백을 찾아갔다.

“좋은 아침!”

“…….”

“음? 변경백께서는 어째서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거지?”

“……이런 눈빛인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어째서?”

“황태자 전하께서는 지금이 저를 방문하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는지…….”

“어째서? 아침인데?”

“아침이긴 하지요. 방금 해가 뜬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응. 아침이지. 그래서 무슨 문제라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자칫 무엄할지도 모르겠사오나, 황태자 전하께서 제 침실 문을 무작정 벌컥 열어젖히며 들어오셨다는 사실에서 또 다른 문제점을 찾고 싶습니다.”

“아. 프라이버시.”

“게다가 저는 아직 침대에서 벗어나지도, 잠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상태라서 말입니다.”

“알아. 그래서 사실은 나도 살짝 후회 중이야.”

라키엘은 솔직하게 말했다.

워낙 급한 사안이라 ‘제법’ 이른 시간에 ‘다소’ 급하게 변경백의 침실로 다짜고짜 쳐들어온 마당이긴 했다. 그래도 설마하니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변경백의 잠옷 취향이 ‘딸기무늬 땡땡이 무늬’라는 사실 같은 것을 말이다.

“괜찮아. 사람마다 선호하는 게 있는 법이니까. 취향일 테니 존중하겠어.”

“손녀가 만들어 준 옷입니다.”

“아아. 괜찮다니까.”

“정말입니다.”

“어, 으음. 그래요. 그래.”

“…….”

아스라한 변경백은 굳은 표정으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아침이 밝자마자 이렇듯 무례하게 남의 침실에 들어오는 자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황태자라 해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자신과 황태자 사이엔 이렇듯 허물없이 서로의 침실을 드나들 만큼의 친분도 없다.

하지만 변경백은 황태자의 상식을 벗어난 무례를 탓하지 못하였다.

상대의 신분 때문에?

아니었다.

난데없이 침실로 뛰어들어온 황태자. 일부러 사람 복장을 긁으려고 저러나 싶은 발언만 골라서 하는 황태자. 그런 황태자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언제부터?

침실에 들어오던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일관되게. 황태자는 시종일관 딱딱한 표정이었다.

입으로는 농담 같은 말을 꺼내고는 있는데, 눈빛만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리고 변경백은 그러한 상대의 기색을 놓칠 정도로 눈치가 느린 인물이 아니었다.

“……주위를 물리길 원하십니까?”

“그래주면 좋고.”

“알겠습니다.”

딸랑!

변경백이 침대 머리맡의 종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침실이 있는 층에서 아침 세숫물과 식사를 준비하던 하인들이 썰물 빠지듯 아래층으로 물러났다.

“긴히 하실 중한 말씀이 있기에 이렇듯 찾아오신 것이겠지요.”

“물론.”

라키엘은 의자를 침대 곁으로 당겨와 앉았다. 그리고 변경백을 향해 서류 한 장을 팔랑 내밀었다.

“이거. 우선 여기에 서명부터.”

“예?”

변경백은 의아한 기분으로 서류를 받아들었다. 라키엘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상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를 포함한 가문 식구 전체를 살리기 위한 신체포기 각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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