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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401화 (400/468)

401화. 짓눌리고 쓰러져도 (3)

“흉수라는 놈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걸까?”

“뭐, 저라고 알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고.”

“후우. 빨리 집에나 돌아갔으면 좋겠지 말입니다.”

“가고 있잖아.”

“그래도 더 빨리 가고 싶습니다.”

“x끼. 엄살은.”

“엄살 아닙니다. 상병님도 아직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뭐, 하긴.”

두런두런 나누는 소리. 방사선 피폭으로 얻은 후유증을 토로하며, 때로는 이번에 겪은 일을 한탄하며 걷는 병사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정체 모를 흉수에 의해 초토화가 된 국경 지대. 그곳으로 출격했다가 아스라한 시로 퇴각하는 변경백의 주력 군대였다.

대부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걸음에는 힘이 없었다.

그나마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음이 다행일까. 하지만 그런 사실이 별다른 위안은 되지 못하였다.

행렬 한쪽에서 나란히 걷는 거대한 미노타우로스, 우루스도 마찬가지였다.

“누우우…… 누우.”

쿠웅, 지직, 쿠쿵, 지지직, 우루스는 단단한 뒷발굽을 바닥에 질질 끌다시피 하며 걸었다.

거대한 뿔을 지탱하는 머리는 아래로 축 처졌다. 태평양처럼 드넓은 어깨도 마찬가지였다.

기운이 없었다.

그저 울적했다.

방사선 피해 때문에 만성 피로를 얻어서? 병사들처럼 두통과 어지럼증, 까닭 모를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되어서?

아니었다.

워낙 튼튼하고 강인한 우루스였기에, 약간의 방사선 피해는 별다른 체감조차 주질 못하였다. 적어도 육체에 한해서는 확실히 그러했다.

그러나 황태자를 따라가지 못하게 됐다는 상실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누우우…….”

우루스의 콧김이 힘없이 푸슈슉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흉수를 잡으러 간 황태자. 자신을 놔두고 가 버렸다.

데리고 갈 수가 없단다. 미안하단다. 맞춤형 갑옷을 만들어 줄 수가 없어서. 그런데 무턱대고 데려갔다간 틀림없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거라서. 어쩔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 다음에는 꼭. 꼭. 반드시.

“누우…….”

속상해.

우루스는 툴툴거리듯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어깨 위에 올라타 있던 친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우루스를 달래었다.

“꾸꺄? 꾸우꺄!”

“꼬스슴? 꼬슴?”

“뽀복! 뽀오오?”

아피로스 애벌레 꾸꾸가 털복숭이 몸을 꼬물거리며 어깨 위에서 한 바퀴 굴렀다.

꼬슴이가 전신의 가시를 누그러뜨리며 우루스의 볼을 북북 문질러 주었다. 뽀복이는 따끈한 불꽃 지느러미로 어깨를 찹찹 토닥거렸다.

하지만 별다른 위안이 되질 않는다. 아무래도 그렇다.

“누우우우, 푸르륵! 누우!”

사실은 너희도 황태자를 따라가지 못해서 속상하잖아. 안 그래?

우루스가 콧김을 뿜어대며 작은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꼬슴이의 가시가 일순간 밤송이처럼 푱 부풀었다. 뽀복이의 지느러미 불꽃이 잠깐 깜빡거렸다.

“꼬스슴…….”

“뽀오…….”

실은 우루스의 말이 맞았다. 자신들도 울적한 요즘이었다.

항상 자신들을 데리고 다니던 황태자가 이번만큼은 예외를 선언하며 훌쩍 떠나 버린 탓이었다. 심지어 정체도 모르는 위험한 흉수를 때려잡겠다며!

그건 곤란했다.

황태자는 약해 빠졌으니까. 우리는 그런 황태자를 돕기 위해 이 땅에 불려온 존재들이니까. 그런 우리가 없다면 황태자는 언제 억, 하고 죽어 버릴지 모르니까. 안 된다, 그런 일은. 나쁘다, 황태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는.

하지만…….

“꾸꺄? 꺄꾸구? 꾸꺄아?”

우리 모두, 방사선이라는 걸 잔뜩 받으면 뀨얄, 하고 죽어 버릴 거라고 황태자가 그랬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방법이 없는 거잖아?

꾸꾸가 모두를 돌아보며 눈망울을 똘망똘망 빛냈다. 그 말에 우루스도, 꼬슴이와 뽀복이도 어쩔 수 없이 무거운 고갯짓을 끄덕였다.

실제로도 황태자의 말이 맞았으니까. 자신들도 요즘 컨디션이 떨어진 것이 스스로 느껴질 정도니까.

그러니까 방사선인지 방사능인지 하는 놈이 나쁘다. 할 수만 있다면 때찌 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안 돼. 우린 방사선을 막을 방법이 없는 못난 미노타우로스고, 환상종이거든.

“누우우…….”

“꼬스음…….”

“뽀보오…….”

한숨을 푸욱.

우루스와 꼬슴이, 뽀복이가 세상만사 근심을 다 짊어진 것처럼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리고 방사선 피폭 후유증을 달래듯 서로의 어깨를 가만히 주물러 주었다. 우루스는 손가락으로 세심하게. 꼬슴이는 까칠한 궁디로. 뽀복이는 통통한 뱃살로.

한데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문득, 꼬슴이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꼬슴?”

그러고 보니까 꾸꾸는? 요즘 들어서 헛구역질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꼬스슴? 꼬슴?”

꾸꾸야, 정말로 그래?

꼬슴이는 불현듯 떠올린 의문을 꾸꾸에게 던졌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꾸꾸의 대답은…….

“꾸꺄! 꾸!”

괜찮단다.

헛구역질도, 어지럼증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단다.

“……누우?”

그게 가능해?

우루스가 커다란 소머리를 갸웃거렸다.

꾸꾸가 해맑게 입을 쩍 벌렸다.

“꾸꾸꺄! 꾸꺄! 꾸!”

컨디션이 묘하게 안 좋아지려고 할 때마다 침을 꼴깍꼴깍 삼켰단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어쩐지 그러고 싶었단다.

그랬더니 침을 삼킬 때마다 몸 상태가 확 좋아지곤 했단다. 지금까지 계속. 줄곧. 쭈욱, 그랬단다.

대답하며 꾸꾸가 벌려 보인 입속. 그 안에는 잔뜩 고인 황금색 침이 보였다.

“…….”

우루스와 꼬슴이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설마. 에이 설마. 혹시. 그럼? 정말?

미노타우로스와 똥 싸는 선인장 사이에 수없이 오간 추측과 짐작, 가설 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 순간, 우루스와 꼬슴이는 거의 동시에 뽀복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우!”

“꼬슴!”

네가 얼른 저거 먹어봐!

“……뽀복?”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꾸꾸는 우루스와 꼬슴이의 재촉을 받으며 황금색 침을 모으고는 뽀복이를 향해 건넸다.

“퉤!”

찰팍!

졸지에 침 세례를 받은 뽀복이의 표정이 썩었다. 인생, 아니, 종생 진짜. 환상종으로 태어나 이런 일까지 겪어야 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어쩔 수가 없겠다.

지금은 꾸꾸의 황금색 침이 무슨 성분인지를 분석하길 모두가 원하고 있으니까.

“뽀오…….”

츄릅!

눈 질끈 감고서 꾸꾸의 침을 춉 핥았다. 그리고 죽었다.

“뽀오오오오……!”

꽥 하고 눈을 뒤집고. 혀를 뷁 내밀고. 바닥으로 추락하고. 그리고 다시금 살아나고.

“……뽀복!”

눈을 반짝 떴다. 한데 뽀복이는 평소처럼 성분 분석 리포트부터 쓰지를 않았다. 대신 놀라움에 가득 찬 눈으로 꾸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뽀…… 뽀복.”

대박…… 초대박.

느껴졌다.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방사선 피폭 피해가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다고!

“뽀복! 뽀보보복! 뽀오!”

뽀복이는 침을 튀겨가며 친구들에게 꾸꾸의 황금색 침이 지닌 성분에 대해 설명했다. 우루스와 꼬슴이, 꾸꾸 본인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그때부터였다.

“퉤! 퉤퉤! 투엣!”

꾸꾸는 친구들과 병사들에게 먹일 침을 마구마구 열심히 뱉고 다녔다.

왕년에 침 좀 뱉었다는 분들보다 더한 솜씨였다. 덕분에 물에 희석해서 병사들에게 지급할 양이 충분히 모였다.

그렇게 닷새쯤이 지난 후.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누우우!”

우루스가 거대한 도시락 보따리를 짊어지고 출발의 발굽을 박찼다. 꼬슴이와 뽀복이, 꾸꾸를 머리 위에 태운 채였다.

“꼬스슴! 꼬!”

“뽀! 뽀복!”

“꾸꺄아!”

가즈아아아, 황태자가 있는 곳으로!

한 마리의 미노타우로스, 두 마리의 환상종, 또 하나의 아피로스 애벌레가 퐁실퐁실한 궁디를 씰룩거리며 황폐한 방사능 오염지대를 용맹하게 가로지르기 시작하였다.

둥! 둥! 둥! 둥! 둥!

대지를 울리며 가슴을 때려오는 북소리.

그 사이로 떠오르는 메시지.

[WARNING!]

[근방에서 핵연쇄반응에 필요한 임계질량(Critical mass)을 초과한 핵분열성 물질의 코어가 감지됩니다. 경고! 경고! 방사능 피폭(radiation exposure)을 방지하기 위하여, 코어와 신속히 멀어지기를 강력히 권고합니다!]

섬뜩한 붉은 글씨.

라키엘은 긴장된 눈길을 들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격하는 도시의 요격 기병대. 기병대의 창끝이 향하는 곳. 그곳에 뒤틀린 나무처럼 서 있는 기이한 형상.

비로소 알겠다.

저놈이 흉수다.

‘저게 무슨…….’

흉수의 크기는 거대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어림짐작으로 머리 높이는 10미터 남짓? 몸 전체가 빛바랜 듯한 흑회색 뼈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럼 본드래곤? 아니.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작았다.

마치, 새끼 드래곤의 뼈대를 억지로 얼기설기 기워내어 맞춘 듯한 기이한 형태랄까.

“전하, 저놈입니다.”

변경백도 같은 직감을 받은 것일까. 그의 목소리가 숨김없이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나란히 선 추격대원 모두가 긴장된 몸짓으로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전하,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근위대 출신 프란델 경이 물어왔다.

라키엘은 섣불리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쓰읍. 이건 예상 못했던 상황인데.’

추격이 이어지면 언젠가 흉수와 마주치는 것은 필연일 것이었다. 하지만 흉수의 정체가 듣도 보도 못한 몬스터, 혹은 그 비슷한 것일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던 그였다.

당연한 추론이었다.

설마 방사능 물질을 지닌 놈이 몬스터? 그보다는 사람, 그중에서도 특수한 목적과 장비를 갖춘 집단의 인간들이 의도적으로 방사능 물질을 뿌려댄 테러일 가능성이 훨씬 높았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사람이 아니다.

몬스터다.

그것도, 종류조차 짐작이 되지 않는 주제에, 피아의 구분조차 없는 몬스터가 방사능 물질을 몸에 품고서 날뛰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로 어떡하지?’

조금은 막막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상대가 사람이면 속임수를 쓰든 뭘 하든 해서 방사능 물질을 빼앗든가 할 텐데. 저런 처음 보는 몬스터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심지어 저런 건 원작 마검황에서도 나온 적이 없어.’

라키엘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사이, 흉수에게 돌격하던 요격 기병대의 선두 대열이 크게 흐트러지는 것이 보였다. 이유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핵분열성 물질이 내뿜는 엄청난 열기에 전투마가 겁을 먹은 탓이겠지.

그 뒤의 과정도?

안 봐도 뻔하다.

기동력이 묶인 채로 방사선에 노출될 것이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지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하긴, x발. 다들! 뛰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거?

당연히 안타깝기는 했다.

하지만 그저 그것 때문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저놈을 놓치면 안 돼!’

지금이 천금 같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만 하면 한 도시급 병력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어쩌면 영영 저 흉수를 못 잡게 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엔 또 국경지대가 탈탈 털리겠지. 더 많은 인명이 죽어갈지도 모르고.

“다들! 흉수가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모르는 상태니까 적극적인 교전은 피하고! 기병대가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시간을 만들어 주는 쪽으로! 함부로 나서다가 죽는 놈은 나한테 죽는다, 아주!”

라키엘은 외치며 몸을 일으켰다. 몸을 숨기고 있던 숲의 끝자락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물론 일행의 선두에서 서지는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저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간을 보듯 상황을 살펴보며 몸을 사릴 생각이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스륵!

“……!”

평원 한가운데.

멀리 떨어져 있던 흉수가 기괴한 형상의 머리를 이쪽으로 홱 돌렸다.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고.

그때였다.

부그그그극!

흉수와 눈이 마주쳐 버린 그 순간, 품속의 아티팩트, 만년설과 만년필이 공명하듯 미친 듯이 진동했다. 이유? 몰랐다. 다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었다.

만년설과 만년필이 공명하는 것과 동시에, 흉수가 이쪽을 딱 노리고서 일편단심 민들레(?) 같은 돌진을 개시했다는 사실이었다.

“……하?”

잠깐만.

나한테?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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