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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404화 (403/468)

404화. 야비한 티키타카 (1)

“기왕이면 기발한 수법이라고 불러주지 않을래?”

부우웅! 웅웅우웅-!

손아귀가 아릿해지도록 진동하는 만년설. 품속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듯 공명하는 만년필. 같은 드래곤이 만들었다는 두 형제 무구.

동시에 이쪽을 홱 돌아보는 흉수. 방사능 본드래곤. 놈이 다급하게 지면을 박차는 모습이 보였다. 이쪽으로 몸을 날려오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추격하는 치타처럼. 혹은 출근시간 전철을 향해 달려오는 직장인처럼. 이쪽을 무조건 잡고 말겠다는 결의마저 느껴지는 걸음. 몸짓.

그걸 보자니 한 가지 가설이 대뇌피질 전두엽에 두둥실 떠올랐다.

“저놈이 전하의 무구에 반응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어.”

데미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

녀석의 어깨에 들쳐 업힌 채 라키엘이 말했다.

“아까 말이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직후에. 그때도 이랬거든. 내 품속에서 무구들이 공명하듯이 진동을 하니까 저놈이 반응했어. 날 대놓고 째려보더라고.”

“그리고 전하를 집요하게 노리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까?”

“어. 아직은 짐작일 뿐이지만.”

“확인이 필요하시겠군요.”

“아마도?”

터업!

말이 끝나자마자 라키엘이 만년설을 데미안의 손아귀에 넘겼다. 품속에서 재빠르게 꺼낸 만년필도 마찬가지였다.

“엇?”

데미안이 얼결에 두 무구를 건네받은 순간.

파앗.

아스라한 심법의 마나를 모조리 동원했다. 녀석의 어깨를 두 팔로 밀었다. 전신이 부웅 떴다. 그리고 데미안 녀석이 달려가던 쪽과 반대편에서 착지.

촤아악!

“지금부터는 네가 확인용 미끼야.”

“……!”

당혹감을 살포시 드러내듯 흔들리는 데미안의 투구. 녀석을 향해 빵긋 웃어 주었다.

물론 이쪽의 웃음도 투구에 가려서 보이지 않겠지. 하지만 의도만큼은 잘 전달된 듯했다.

마치 이쪽의 패스(?) 플레이에 화답을 하듯, 방사능 본드래곤이 무지막지한 포효를 내질렀기 때문이었다.

- 쓰어어어억!

살아 있는 그 어떤 생명체의 것과도 닮지 않은 이질적인 괴성. 그와 함께 방사능 본드래곤이 돌진 방향을 살짝 틀었다. 데미안을 향해서였다.

“역시!”

확인 완료.

라키엘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면, 졸지에 방사능 본드래곤에게 딱 찍힌 데미안은 존경스러운 황태자를 향한 깊은 빡침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실 생각이십…… 크읏!”

콰드드드드!

데미안의 물음이 채 끝맺어지기도 전에 돌풍이 몰아닥쳤다. 아니, 돌 폭풍이 쏟아졌다.

방사능 본드래곤이 땅을 통째로 갈아엎듯 머리를 지면에 박고서 돌진해 왔다. 엄청난 수의 파편과 함께였다.

“……!”

데미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다 피할 수는 없다.

리베르사 심법?

안 된다.

그건 힘의 소모가 너무 크니까. 자칫 그걸 썼다간 순식간에 저혈당 쇼크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면 모든 게 끝장이겠지. 하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낭비 없이. 간결하게.

스카카칵-!

데미안의 검집에서 섬광이 뽑혀 나왔다. 풀려 나온 검이 그대로 바람을 가르는 송곳니가 되었다. 위로, 아래로, 좌우로, 그 사이의 공간으로, 베고, 치고, 갈랐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동작 속에 총 47덩어리의 암석 파편이 서슴없이 잘려 94조각이 되었다. 그의 몸을 스치듯 지나갔다. 머리칼 한 올 건드리지 못하고서.

타앗!

가장 위협적인 암석 파편을 모조리 처리한 직후, 데미안이 마지막으로 휘두른 검의 기세를 그대로 살리며 지면을 박찼다.

전신이 허공에 떴다. 머리와 다리의 위치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섬전 같은 문설트였다.

그 직후, 허공에서 물구나무를 선 그의 머리 아래로 방사능 본드래곤의 거체가 성난 파도처럼 지면을 부수며 지나갔다.

데미안이 노리던 순간이었다.

본드래곤이 자신의 정수리 아래를 지나가는 바로 그 순간, 데미안이 검을 세 번 찔러 넣었다.

세 갈래의 검기가 본드래곤의 정수리와 경추, 척추를 연달아 파고들었다. 물론 깊은 상흔까지 내지는 못했지만.

츠크칵……! 카각!

“쯧!”

얕다.

적어도 몇 센티 정도의 검흔이나 균열은 새길 줄 알았는데. 저놈의 뼈대가 상상 이상으로 단단한 탓이겠지. 그렇다면 수십, 수백, 아니, 수천 번이라도 더 찌르리라. 베고, 가르리라.

……라는 각오와 함께 데미안이 착지와 함께 검을 그러쥐던 순간이었다.

“멍청아! 누가 대놓고 싸우래!”

황태자의 외침이 데미안의 고막을 빼액 뒤흔들었다. 덕분에 흑발 호위의 굳은 다짐도 움찔.

“전하?”

“이쪽! 거리 벌리면서 넘기라고! 얼른!”

어느새 황태자가 서른 발짝 떨어진 곳을 지나치며 달려가고 있었다.

이쪽을 향해 내민 황태자의 두 손. 다급한 손짓. 데미안은 금방 그 뜻을 알아차렸다. 즉각 이행하였다. 방사능 본드래곤을 향해 맹공을 퍼붓는 대신 물러났다.

그리고 아까 받았던 두 아티팩트, 만년설과 만년필을 황태자에게 던졌다.

“나이스 패스!”

빨랫줄처럼 팽팽하게 40미터가량의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두 아티팩트! 라키엘이 재빠르게 뛰어오르며 아티팩트를 받았다.

그러자 방사능 본드래곤도 즉각 반응했다.

- 쓰르하악……?

거대한 머리뼈가 홱!

놈은 바로 근처에 데미안이 있음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직 아티팩트만 보이는 듯이, 혹은 공 가져오기 놀이를 하는 멍멍이처럼, 뻥 뚫린 시선을 라키엘의 손에 들린 아티팩트를 향해서만 던졌다.

그리고 무지성 돌진!

- 쓰하아아악-!

쿠쿠쿠크그그가각-!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초월적인 압도감. 그러나 라키엘은 어깨를 움츠리지 않았다. 압박감에 눌리는 대신 자신의 패스(?)를 받을 다음 대상을 순식간에 찾아냈다.

“변경백!”

“예?”

이쪽을 구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를 품고서 달려오던 변경백, 알칸타르 아스라한.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온 만년필과 만년설을 얼결에 받았다.

그리고 방사능 본드래곤의 다음 타겟이 되었다.

- 싸흐하아아아악-!

“……헛!”

변경백이 기겁하며 용천혈의 써클을 발동하였다. 아직 온전히 제어되지 못한 마나가 터지듯 분출하며 그의 몸을 상공 20미터 높이로 쏘아 올렸다.

“변경백님! 이쪽!”

데미안이 달려오며 손을 뻗었다.

변경백도 그 모습을 보았다.

“흡!”

허공에 떠오른 채로 두 아티팩트를 던졌다. 그러나 불안정한 자세 때문인지 던져진 아티팩트의 궤적이 제각각으로 흩어졌다.

데미안이 몸을 던졌다.

슬라이딩을 하며 만년설을 받아냈다. 몸을 굴리며 뒤쪽으로 검을 던졌다. 직선으로 날아가는 검신 옆면에 만년필이 맞아 위로 튕겨 올라갔다.

그 사이, 방향을 전환한 데미안이 달려왔다. 허공에 떠오른 만년필을 낚아챘다. 착지와 동시에 땅에 꽂힌 검을 회수했다.

나이스 캐치.

스스로 잠깐 만족했다.

그러나 만족의 시간은 길지 못했다.

“야! 뒤! 뒤!”

다급히 들려오는 황태자의 외침.

아닌 게 아니라, 순식간에 두 아티팩트의 궤적을 추격해 온 방사능 본드래곤이 코앞까지 쇄도해 오고 있었다.

- 쓰르하아가아각!

“……!”

피할 수 있을까.

막을 수 있을까.

아니면 아티팩트부터 던져야 할까.

‘아니, 모두를 한꺼번에.’

단순히 피하기엔 늦었고, 막기엔 버겁다. 아티팩트를 던질 시간도 모자라다. 하지만 셋을 동시에 실행한다면 가능하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지금은 그게 될 것 같다.

멀티 마나하트의 기예.

그것을 익히기 위한 훈련.

극한의 멀티 태스킹을 온몸으로 연마했으니까.

콰악!

판단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실행.

상체에 실린 체중을 미세하게 이동시켰다. 두 다리로는 지면을 번갈아 밀었다. 유령처럼 미끄러지는 이동. 한편으로 번득이는 검광. 다른 손에 쥔 아티팩트는 이미 던질 준비, 완료.

회피와 반격, 던지기까지.

모든 동작이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스팟……!

몸을 이동시키는 동시에 낮추었다. 쇄도하는 본드래곤의 턱밑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왼손에 움켜쥔 아티팩트를 던졌다.

만년설과 만년필이 본드래곤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를 가로질러 황태자에게 날아갔다.

물건을 던진 반동. 그 힘을 실어 상체를 숙였다. 오른손의 검을 왼쪽 옆구리 너머로 찔렀다. 카각, 반응이 왔다.

그 순간, 숙였던 몸을 오른쪽으로 거세게 회전시켰다. 지면을 박찼다.

순식간에 다섯 바퀴 회전하는 주위의 풍경. 뻗어가는 검기의 폭풍. 본드래곤의 경추와 흉수에 새겨지는 수많은 검흔.

그중의 한 줄기 검기가 본드래곤의 가슴 정중앙에 닿았다.

악티누스의 코어.

핵분열 물질이 뭉쳐진 부위였다.

터컹-!

“……!”

검이 튕겨 나왔다. 아니, 튕겨 나옴과 동시에 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차례차례 녹아내렸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토록 맹렬한 반발력도. 전신이 튕겨나 버리는 이런 경험도.

“데미안!”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르며 나뒹군 걸까. 어째서 황태자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리는 걸까.

‘일어나야 하는데.’

간신히 일어난 걸까. 어째서 나는 내 앞을 지나치는 본드래곤을 막아서질 못하는 걸까. 이대로 저놈이 황태자에게 달려가는 걸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나. 전하가 무사하려면 저 아티팩트, 다시 넘겨받아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전하.’

뛰었다.

황태자가 아티팩트를 던지면 안정적으로 받을 위치를 점찍으며 달렸다. 여전히 정신은 멍했다.

이쪽을 향해 뭐라 외치는 황태자의 외침이 뭉개진 케이크처럼 고막에 눅진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인마! 오지 마! 너 갑옷! 망가…… 채로 가까……면 안 된……고!”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

휘젓는 손짓.

어째서 전하는 아티팩트를 던지지 않으시는 걸까. 잘 받을 수 있는데. 그래야 전하가 안전해질 텐데. 저러다가 타이밍이 늦으면 위험해지는데. 왜. 어째서. 자꾸 무어라 외치기만 하시는 걸까.

“멍충아! 오지 말라고! 너 차폐 갑옷 망가졌다고!”

괜찮습니다, 저는.

전하께서 괜찮으신 걸로 저는 괜찮을 겁니다. 역시나 진심입니다. 진지한 양 까칠하게 말씀드리곤 했던 특별수당 같은 거, 사실은 처음부터 필요 없었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전하.

저는.

츠츠츠…….

앞으로 달려나가는 데미안의 걸음이 달라졌다. 그 안에 실린 힘이 증폭되었다.

뇌진탕을 겪으며 흐트러진 의식. 그 속에서 피어난 무의식. 갈고 닦은 기예의 기초. 황태자를 안전하게 해주겠다는 곧은 일념.

그 모든 것들이 걸음에 스몄다. 하나로 집중된 마음이 마나하트를 착실하게 갈랐다. 쪼갰다. 염원의 횟수만큼. 절실한 걸음의 숫자만큼. 갈라지고. 분열하고. 공명하다가. 마침내 분출되었다.

……투확!

손잡이만 간신히 남은 데미안의 검자루. 절박한 마음을 담아 악티누스의 뒷모습을 겨눈 의지의 끄트머리.

멀티 마나하트가 피워낸 99갈래 오러의 섬광이 찬란하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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