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05화 (404/468)

405화. 야비한 티키타카 (2)

내 힘으로 소중한 이를 지키고 싶다.

그 힘이 올바르게 쓰이면 좋겠다.

엇나가지 않고서.

내가 원하는 곳에.

온전하게 쓰이는 것.

그것만이 내가 내내 바라던 바였다.

……투확!

세찬 소리.

데미안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내뻗고 있는 자신의 검. 손잡이만 간신히 남은 녹다 남은 검. 그 끝에서 찬란한 오러의 섬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마나하트가 갈라졌다고.

‘두 갈래.’

처음으로 분열한 두 갈래의 마나하트가 포효하고 있었다. 모여든 혈당. 폭발적으로 변환되는 마나. 오른쪽의 마나하트가 자신을 불사르듯 혈당을 마나로 변환하고 있었다. 반면, 왼쪽의 마나하트는 시종일관 잠잠하였다.

마치, 자신을 지켜주려는 듯이.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듯이.

콰하학-!

검 손잡이를 타고 쏟아져 나간 오러의 다발이 얽혔다. 퍼졌다. 99갈래의 폭류. 거침없는 쇄도. 끝끝내 다다른 목표점. 황태자를 향해 돌진하던 본드래곤의 후방을 후려쳤다. 아니, 강타했다.

순간, 본드래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놈의 뻥 뚫린 안와 구멍. 당황한 걸까. 안구가 없음에도 그런 기색이 느껴졌다.

이윽고 놈의 상반신이 섬광에 휩싸였다.

……!

소리도 없었다.

소리가 오기 전에 퍼져 나온 빛이 모든 사물을 일순간 휘감았다. 이윽고 다가오는 굉음. 지면을 뒤흔들며 달려오는 진동. 데미안은 초조한 손짓으로 특수경의 유리에 들러붙은 흙먼지를 닦아냈다.

일렁이는 흙먼지 속에 선 실루엣이 엿보였다. 휑한 바람에 흙먼지가 걷혀갔다. 실루엣이 또렷해졌다.

- 쓰하학……!

제자리에 멈추어 선 본드래곤. 놈의 한쪽 어깨를 포함한 상반신 일부가 사라진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데미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냈다.’

기뻤다.

단순히 강력한 적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어서? 아니. 온전히 컨트롤이 되는 힘으로 황태자를 구할 수 있게 되어서. 그걸 해냈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황태자는 감사한 분이니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니까.

내 힘으로 그 소중한 이를 지키고 싶었다. 내 힘이 올바르게 쓰이길 바랐다. 엇나가지 않고서. 내가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온전하게 쓰이는 것. 그럼으로써 황태자의 가장 든든한 방패이자 검이 되어주는 것.

그것만이 내내 바라던 것이었다.

그 언젠가 붕괴하던 협곡에서 폭주했던 날. 마침내 마계왕의 강림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뻔하였던 순간. 황태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마계왕의 폭주를 잠재웠던 바로 그날 이후로 항상 그러하였다. 그 소망과 바람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당시 자신이 발산했던 너무나 강대하고 파괴적이었던 힘. 그 힘이 황태자를 다치게 하고, 죽일 뻔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후우.”

강력한 힘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그 힘이 올바른 방향에,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쓰여야 한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야 비로소 진정으로 황태자의 곁을 지킬 자격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 생각에 노력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혈당을 이용한 새로운 마나심법을 만들 때도. 그걸 제어하기 위한 멀티 마나하트를 익히려 애를 쓰던 때에도. 언제나 그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

벅차는 감격.

손이 떨렸다.

그러나 데미안은 마음을 놓지 않았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비록 상반신 일부가 사라졌다 해도 상대는 상식을 초월하는 유형의 괴수. 그렇기에 함부로 방심을 하다가는…….

그때였다.

- ……쓰륵! 츠륵!

큰 타격을 입은 뒤로 잠시 잠잠하던 본드래곤이 몸을 웅크렸다. 크게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뼈대로만 이루어진 남은 한쪽 날개를 활짝 펼쳤다. 놈의 전신 뼈대가 검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사라졌던 부위의 복구가…… 시작되었다.

츠츠츠츠츠……!

나뭇가지가 자라나듯, 통째로 증발되었던 부위의 뼈대가 자라났다. 연결되었다. 순식간에. 견제할 틈도 없었다. 불과 5초 남짓. 놈의 뜻밖의 행동에 눈을 둥그렇게 뜨는 그 잠깐 사이에, 놈의 상반신이 모조리 복구되었다.

“와나 미친.”

라키엘도 그 모습을 보았다.

입에서 절로 욕설이 나온 것도 물론이었다.

‘저거 진짜 미친 거 아냐?’

그는 방사능 본드래곤의 주위로 흐르는 마나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딱히 경혈 스캐닝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다. 원체 강력한 마나의 흐름이었기에,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하는 것만으로도 대략적인 흐름이 다 느껴질 정도였다.

‘데미안이 멀티 마나하트를 생성하는 데에 성공했어. 덕분에 혈당을 이용한 엄청난 위력의 오러를 저혈당 쇼크의 부작용 없이 성공적으로 날렸고, 치명타에 가까운 손상을 입혔는데…….’

본드래곤의 코어.

임계질량을 넘긴 핵분열 물질.

그곳으로부터 엄청난 기세의 마나가 흘러나왔다. 특이한 패턴으로 배열되었다. 증폭했다. 그러더니 짠. 손상된 부위의 시간을 되돌리듯, 완벽한 복구를 시전했다.

라키엘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물질 생성? 아니. E=mc²의 물리법칙을 생각하면 그건 불가능해. 저놈의 상반신 일부를 모조리 수복할 수 있는 양의 물질을 생성하려면…… 거기에 필요한 순수한 에너지는 저 정도론 턱도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마법진이다.

모종의 마법진이 핵분열물질 코어와 연계되어 작동하고 있는 것이리라.

……라는 라키엘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부우웅! 웅웅!

“……!”

손에 쥔 만년설과 만년필이 맹렬하게 공명했다. 어느새 복구를 마친 본드래곤이 이쪽을 향해 쇄도해 오는 모습도 보였다.

한데 그때였다.

쐐애애액-! 쉬쉬쉬쉭!

별안간 위쪽에서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날아온 수백 발의 석궁 볼트가 본드래곤을 뒤덮었다. 물론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다만 놈의 걸음을 아주 잠깐 주춤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 틈으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의문의 기사여! 이쪽이오!”

수백 기의 기병대가 이쪽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내달리고 있었다. 외침은 그 선두의 사내로부터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기병대장이자 테니온 시의 시장인 브레다 테니바흐외다! 지금 우리의 도시 성벽으로부터 신호가 왔소! 어떤 외적의 침략도 능히 저지할 수 있을 성막의 발동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신호요!”

외침과 함께 이름을 밝힌 시장, 브레다가 도시를 가리켰다. 그 손길을 따라 돌아보니 과연 도시 성벽 위로 치솟은 붉은 깃발이 있었다. 아까는 없던 깃발이었다.

시장 브레다의 외침이 재차 날아왔다.

“그러니! 어떻게든! 저 괴물을 따돌리시오! 도시로 들어오시오! 발사!”

철컥!

그의 구령과 함께 기병대가 장전된 석궁을 겨누었다. 다시금 쏟아지는 볼트의 세례. 덕분에 잠시나마 주춤하는 본드래곤. 그와 함께 대뇌피질 전두엽에 쏙쏙 떠오르는 새로운 계획까지.

“세르지오!”

라키엘은 외치며 만년설과 만년필을 던졌다. 쭉 뻗어간 두 아티팩트가 특근대의 최연장자, 세르지오의 품에 안겼다.

“이제부터! 다들! 잘 들어!”

모두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추격대의 나머지 인원들도 그럭저럭 타격을 수습하고서 모여들고 있었다.

“모두! 데미안만 제외하고서! 도시를 향해 도주한다! 실시!”

외치는 동시에 몸을 돌렸다.

데미안에게 손짓하며 달렸다.

“우리는 도시와 반대 방향으로!”

“……!”

모두 경악하는 걸까.

세르지오의 외침이 들려왔다.

“전하! 어디로 가십니까!”

“닥치고 아티팩트나 다시 던져! 공격받기 전에! 얼른!”

아닌 게 아니라, 이미 방사능 본드래곤이 세르지오의 지척까지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를 향해 손을 벌렸다. 잠깐 망설이던 세르지오가 뭔가를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날아오는 만년설과 만년필. 차례로 받아들었다.

“나이스 패스!”

“전하아-! 어떡하려고 그러십니까!”

근위대 프란델 경이 당장이라도 이쪽으로 달려올 것처럼 다급하게 외쳤다. 아닌 게 아니라 변경백도, 세르지오를 비롯한 나머지 모두도 이쪽을 구하러 금방이라도 뛰어올 태세였다.

라키엘은 그들을 향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작전이고 명령이다! 어기는 자는 역모의 죄를 물을 것이야!”

“……!”

“파직은 물론이고! 퇴직금도 없다! 연금도 당연히 다 짜를 거고! 대신 평생 가족 동반 무기한 휴가권을 안겨주지! 그래서 미리 묻는 건데! 다들! 선호하는 귀양지는 어디?”

“……!”

“늙은 부모님이랑 어린 자식들이 귀양지에서 썩어가는 모습 보고 싶은 놈은 나한테 오고! 아닌 사람은 날 믿고 당장! 도시로! 뛰라고!”

“……!”

변경백도, 세르지오와 프란델 경도 모두 이를 갈았다. 솔직히 당장 황태자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본드래곤이 괴성을 내지르며 황태자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죽더라도 황태자의 곁을 지키다 죽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겠다.

파직과 온 가족 귀양 협박이 두려워서? 아니. 그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우리 전하께서는 그런 짓을 할 분이 아니시니까.

다만 믿으라 하신다.

당신을 믿으라며 저토록 소리치고 계신다. 하니 도저히 믿지 아니할 수가 없겠다. 차마 저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겠다.

하여 원통했다.

“저, 전하!”

“크흑!”

모두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돌렸다. 퇴각하는 도시의 기병대 뒤를 눈 질끈 감고서 달렸다.

그동안 라키엘과 데미안은 도시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전하, 어떡하실 생각이신 겁니까?”

“전원 무사 귀환!”

“이렇게 전하와 저, 둘만 도시와 반대쪽으로 뛰는 건데 말입니까?”

“어!”

라키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데미안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묻는 건데, 너! 아까 멀티 마나하트를 만든 거지?”

“그렇습니다.”

“몇 개?”

“아직은 두 개입니다.”

“그럼 됐어. 아까 혈당을 한 번 끌어썼으니까, 아직 한 번은 더 쓸 수 있겠구만.”

정말로 됐다. 가능하겠다. 라키엘은 조금 전에 떠올린 계획을 다시금 점검하며 만년필을 꽉 쥐었다.

“이제부터 잘 들어. 내가 저놈을 유인한다. 그러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걸 써.”

“설마, 혈당을 마나로 변환하는 검술을 말입니까?”

“어. 그거 쓰고 쓰러져.”

“하면…….”

“뒤는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타악!

라키엘이 손을 뻗었다. 데미안을 밀어냈다. 녀석과 좌우로 떨어지며 내달렸다. 용천혈의 써클을 동원했다. 콰앙, 순간적인 단거리 가속. 더욱 멀어지는 녀석과의 거리. 그동안에도 뒤에서 달려오는 본드래곤의 섬뜩한 포효가 시나브로 가까워졌다.

‘아직.’

도시를 힐끗 돌아보았다.

아직 충분히 멀지 않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콰앙-!

다시금 단거리 가속. 내달리고. 구르고. 본드래곤이 사지를 휘두르고. 꼬리를 내질러 왔다.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데미안의 다급한 외침이 귓가를 스쳤다. 도약했다. 녀석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라고. 더 기다리라고. 도시와 충분히 멀어지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단속하듯.

혹은 독려하듯.

채찍질을 당하는 말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며 달렸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투구 차폐경의 먼지를 다급히 닦아내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호흡. 참아냈다. 현기증은 억눌렀다. 다시금 단거리 가속. 그리고 충돌.

터컥!

“……!”

단거리 가속의 끝에서 무언가와 부딪쳤다. 바위? 아니. 땅을 짚고 있는 본드래곤의 뒷발이었다. 놈의 거대한 몸이 그림자를 드리워 왔다.

하지만 라키엘은 웃었다.

그리고 외쳤다.

“지금!”

충분히 도시와 멀어진 바로 지금.

외침과 동시에 용천혈의 써클을 폭발시켰다. 단거리 가속에 이어 몸을 납작 엎드리며 굴렀다. 순간 보았다. 등 위를 스치듯 공간을 헤집고 지나가는 오러의 다발. 강타당하는 본드래곤. 거대한 폭발.

그리고 저 너머에서 천천히 쓰러지고 있는 데미안의 모습까지.

녀석을 향해 달렸다.

쓰러지기 직전에 받아 안았다.

“전……하……. 이제는…… 어쩌실…….”

남은 혈당을 다 써서 혼절의 길을 착실하게 밟아가는 걸까. 데미안 녀석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럴수록 녀석을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리고 도시를 등졌다. 한 손으로 만년필을 들었다. 손을 뻗었다.

“내가 말했지. 뒤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대답과 동시에, 만년필에 최소한의 마나를 밀어 넣었다.

투확-!

맹렬한 열폭풍이 쏘아졌다.

엄청난 가속.

지상으로부터의 해방감.

두 다리가 허공에 훅 떴다.

데미안의 오러 다발에 맞아 상반신 일부가 날아간 본드래곤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놈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놈의 주위로 걷혀가는 흙먼지도.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마나의 흐름도. 삽시간에 복구가 진행되는 모습까지도.

상관하지 말고, 다시 한 번.

……투크확-!

지면에 떨어지기 직전에 다시금 만년필을 폭발시켰다. 아까보다 더욱 거센 열폭풍이 쏟아졌다. 본드래곤이 한층 훅 멀어졌다. 그만큼 도시가 가까워졌다.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일단은 탈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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