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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406화 (405/468)

406화. 가까이서 보면…… 어? (1)

투콰학!

맹렬하게 쏘아지는 열폭풍.

전신을 밀어붙이는 가속.

지상으로부터의 해방감.

방사능 본드래곤이 순식간에 멀어지고 있었다. 이쪽을 보며 주춤하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데미안에게 받은 타격을 수복하느라 미처 더 움직이지는 못하는 처지. 그런 자신의 상황 때문에 화가 난 걸까. 그래서 저토록 포효하는 걸까.

- 쓰하아아아악-!

포효?

모르겠다.

분노의 포효라기보다는 안타까운 외침처럼 들리는 이유가 뭔지. 마치, 가지 말라고 매달리며 애원하는 것처럼.

“…….”

하지만 지금은 묘한 감상에만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느새 지면이 다시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착지? 아니, 이 속력이면 거의 추락에 가까울 테지.

‘지금!’

라키엘은 두 눈을 빛냈다.

지면과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싶은 순간, 만년필을 아래로 겨누었다. 최소한의 마나를 밀어 넣었다. 곧 반응이 왔다.

투확-!

다시금 쏘아지는 사나운 열폭풍.

가까워지나 싶었던 지면이 멀어졌다.

방사능 본드래곤과의 거리가 더욱 벌어졌다.

- 하학! 하아아하학!

멀어질수록 더욱 애절하게 변하는 괴성. 이상했다. 어째서 저걸 들을수록 묘한 죄책감이 들어야 하는 건지. 이쪽에게 들쳐 업힌 데미안 녀석도 비슷한 걸 느낀 듯했다.

“전하……. 저 본드래곤……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 그러게. 그나저나 너는? 괜찮냐?”

“아뇨. 안 괜찮습니다.”

“기절할 것 같아?”

“예. 그래서 일부러 전하께 말을 걸고 있는 겁니다.”

“잘했어. 좋은 판단이야. 기절하지 마. 명령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괜히 기절하고 싶어지는데요.”

“하여간 말은 죽어라 안 들어요, 쯧.”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이래 보겠습니까.”

“그러냐.”

“예.”

“그럼 꽉 잡기나 하셔.”

투콱-!

다시금 쏘아내는 열폭풍.

그러나 이제는 본드래곤과의 거리가 멀어지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좁혀지고 있었다. 착실하게. 본드래곤이 아티팩트에게 보이는 지나칠 정도의 집착의 크기만큼.

- 하쓰하악-! 하아악!

본드래곤이 숨을 헐떡일 줄도 알았던가.

이쪽을 추격해 오는 놈의 몸짓이 전에 없이 절박해 보였다. 그만큼 더욱 거리가 좁혀졌다. 서서히. 착실하게. 보고 있자니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렇다고 쉽게 잡혀줄 줄 알았냐!’

투크학-!

다시금 분출.

더욱 다급해지는 본드래곤.

그사이 가까워지는 도시의 성곽.

저기다.

저기까지만 가면 된다.

‘앞으로 두 번.’

라키엘은 뒤를 힐끗 돌아보며 남은 거리를 가늠하였다. 대략 두 차례의 열폭풍 부스터(?)라면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놈에게 잡히지 않고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조금 애매한데.’

생각보다 본드래곤의 반응이 빨랐다. 덕분에 이대로라면? 다다음 분출과 도약을 하는 사이에 놈에게 따라잡힐 듯했다.

재수 없으면 공중에서 앞발 싸다구에 찰싹. 파리채에 맞은 하루살이 꼴이 날 수도 있겠다.

‘그건 안 되지!’

라키엘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열폭풍을 쏘았다. 몸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사이에 잔머리를 최대 출력으로 짜냈다. 그리고 떠올렸다. 그래서 다음 열폭풍을 쏘지 않았다. 대신 용천혈의 써클을 발동하였다.

키이이잉-! 투슉!

마나의 분출과 함께 추락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균형을 잡았다. 착지했다. 양쪽 무릎의 도가니가 연차를 선언하며 몸에서 탈출하려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럭저럭 참아냈다. 쓰러지지 않았다.

대신 들고 있던 만년필을 확 치켜들었다. 풀스윙으로 휘둘렀다. 최대한의 힘으로. 멀리 던지듯이.

후우웅!

- ……!

이쪽을 거의 따라잡을 듯이 돌진해 오던 본드래곤이 흠칫 놀랐다. 급히 멈추었다. 이쪽이 만년필을 던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몸도 돌렸다.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 순간, 라키엘이 ‘던지는 척만 하고 사실은 던지지 않은’ 만년필을 지면으로 겨누었다.

“훼이크다!”

투확-!

더없이 맹렬한 분출과 함께 전신이 훅 떴다. 반대쪽으로 돌진의 스타트를 끊던 본드래곤이 움찔 놀라며 이쪽을 돌아보는 모습이 보였다.

놈의 텅 빈 눈길이 황당한 망연자실함에 젖어 있었다. 출근길 마지막 버스를 코앞에서 놓친 사람 같았다. 놈을 향해서 수중의 만년필을 흔들어 보였다. 던지는 ‘척만’ 했던 만년필이 이쪽의 손에 들려 있는 걸 보자, 놈이 포효했다.

- 나하아아악!

그러나 이미 너무나 늦은 포효였다. 완벽한 역동작에 걸린 본드래곤이 다시 방향을 돌려 이쪽으로 달려오려 했지만, 거리가 확 벌어진 상태였다. 놈의 포효는 그저 부질없이 허공만 긁어냈을 뿐.

그사이, 이쪽은 도시의 성벽 위로 빠르게 접근했다. 아니, 추락했다.

“전하아!”

먼저 도시 성문을 통과했던 일행이 보였다. 변경백과 세르지오, 프란델 경 등이 모두 성벽 위로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서 이쪽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즉, 이쪽을 받아내려 들고 있었다.

“비켜! 이 인간들아!”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쪽을 구하겠다는 그들의 뜨거운 충성심을 말리기엔 너무 늦어 있었으니까.

콰아앙-!

“컥!”

혹시 당신은 사나이들의 뜨거운 단체 포옹을 갑옷째로 받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네,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봉고차에 치이는 기분이 들어서 짜릿하더라구요.

아팠다.

이쪽과 저쪽의 갑옷이 그대로 부딪치며 온몸이 쾅 하고 울렸다. 일순간 정신이 가출을 선언할 뻔했다. 그나마 아스라한 심법 덕분에 기절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후, 후읍! 흉수…… 본드래곤은?”

간신히 기절을 모면한 라키엘은 황급히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성벽 너머를 쳐다보았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본드래곤이 보였다. 쿵쿵텅텅, 지축이 울렸다.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철렁해졌다.

‘뭐야. 성막은? 준비가 다 됐다며.’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사아아아……!

성벽 둘레를 따라, 지면에서부터 성스러운 빛이 솟구쳐 올라왔다. 새하얀? 아니. 색을 감히 표현할 수 없을 투명한 빛무리. 춤을 추듯 솟구치고. 너울거리며. 성벽을 감쌌다. 도시를 뒤덮었다. 마치 반짝이는 거대한 물방울을 도시 위로 씌우듯이.

‘이게 성막?’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럼, 이 성막이 방사능 본드래곤을 저지할 수 있을까? 떠오르는 의문과 거의 동시에 본드래곤이 성막에 온몸을 들이받았다.

……!

소리도, 섬광도 없었다.

폭발이나 진동도 없었다.

대신 본드래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마치, 1만 겹으로 둘러진 택배 뽁뽁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다가 튕겨 나가는 우랄산맥 떡멧돼지 같은 모습이었다.

- 쓰하악?

본드래곤도 이상함을 느낀 걸까. 나동그라졌던 놈이 고개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성막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성막은 부드러운 저항감과 탄력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본드래곤을 튕겨냈다. 토옹.

- 쓰학! 나하악-!

연이어 돌진이 가로막히자 본드래곤이 이쪽을 올려다보며 무어라 외쳤다. 여전히 영문 모를 절박한 외침이었다. 아니, 어쩐지 애절하게 들린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하지만 라키엘은 더는 본드래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성막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지금, 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데미안? 이봐, 데미안!”

녀석의 투구를 벗겼다.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칼과 창백해진 얼굴. 거의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당연했다. 두 갈래의 마나하트로 두 차례에 걸쳐 혈당을 변환하며 모조리 쏟아냈으니, 저혈당 쇼크가 오는 중이겠지.

라키엘은 재빠르게 간이 배낭을 뒤졌다. 밀봉된 나무 병을 열었다. 고농축 꿀을 데미안의 입에 흘려 넣었다.

“마셔. 얼른.”

“……큽, 쿨룩!”

“삼켰으면 심호흡.”

“후우…….”

녀석이 심호흡을 하는 사이에 다른 주머니를 꺼냈다. 꼬슴이에게서 미리 잔뜩 뽑아서 가지고 온 가시였다.

톳!

첫 시침 자리는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의 청궁혈(聽宮穴). 귓구멍에서 얼굴로 나오는 방향에 있는 아래턱뼈 관절돌기(condylar process of the mandible) 뒤쪽의 오목한 곳.

그곳에 1촌 깊이로 가시를 찔렀다.

토톳!

다음은 입꼬리 옆쪽 0.4촌 거리의 지창혈(地倉穴). 일명, 위유(胃維)라고 불리는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의 구성혈에 3푼 깊이로 가시를 찔렀다. 다섯 번 숨을 쉴 동안 관찰하고, 뽑았다.

그리고 녀석의 목을 강하게 주물렀다. 아스라한 심법으로 소량의 마나를 지속적으로 주입하면서였다.

다행히 응급처치가 효험이 있어서일까. 차츰 녀석의 눈동자 초점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불안하게 흐트러졌던 기혈의 흐름도 안정되었다.

“후우. 정신이 드냐.”

“예, 조금.”

“그래도 죽지는 않았네.”

“그러게 말입니다.”

두 사람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그사이, 둘 주위로 인파가 제법 몰려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연신 라키엘과 데미안을 보며 숙덕거렸다. 저분들이야. 저분들이 우리 도시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기사님들이래.

라키엘과 데미안. 그리고 나머지 일행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 감격과 존경의 빛이 서렸다. 그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가오는 사내, 테니온 시의 기병대장이자 시장인 브레다 테니바흐의 눈빛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이들이란 말인가.’

경이로웠다.

존경스러웠다.

아까의 급박하고 아찔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더더욱 그러하였다.

‘나를 포함한 우리의 기병대는 그 어느 한 사람도 저 괴수의 곁에 감히 다가서지도 못하였건만…….’

괴수를 향해 기병 돌격을 감행하던 당시가 떠올랐다. 거침없던 질주. 그러나 거리가 좁혀지며 급격히 느껴지던 뜨거움. 기이한 어지러움. 미증유의 공포에 질린 나머지 거품을 물고서 쓰러지던 전투마. 줄줄이 이어지던 낙마. 지면과의 충돌. 이성을 뒤덮어 오던 아득한 절망.

이대로 다 죽는구나 싶었다.

최후를 직감하며 이를 꽉 깨물었더랬다.

한데 그때, 저 의문의 갑옷을 입은 이들이 홀연히 나타났던가. 도시와 어떤 연관도 없어 보이는 자들. 그럼에도 온몸을 던져 괴수를 저지하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용감한 영웅들.

“반갑소. 나는 이 도시의 시장인 브레다 테니바흐라고 하오.”

시장 브레다는 의문의 기사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몰아쉬던 기사들이 멈칫. 차례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시장은 그들 중에서 대표로 보이는 이에게 다시금 말했다.

“아까부터 그대의 용기와 용맹을 눈여겨보았소. 가장 앞서 괴수의 공격을 감당하고, 수많은 기지를 발휘하여 괴수를 유인하고, 마침내 스스로를 미끼로 삼아 다른 이들이 피신할 시간을 벌어주었던 그대를 말이오.”

“…….”

“하여 감히 이 도시를 책임지는 시장의 이름으로 청컨대, 이 도시를 구원한 영웅인 그대의 용맹한 얼굴을 보여주실 수 있겠소?”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오.”

독특한 외양의 투구 속에서 반문이 돌아오는 순간, 시장은 흡족하게 웃었다. 상대, 영웅 기사의 음성이 생각보다 앳된 젊은이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런 용맹한 자를 내 수하로 거둘 수만 있다면…….’

남몰래 희망이 피어났다.

미증유의 괴수를 맞이한 재난을 극복하기가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이후로도 도시의 방위를 튼튼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경 너머에서 도사리고 있을 마젠타노 제국의 군세를 막아내고 견제하기가 더욱 쉬워질 테지.

“기왕이면 그대의 얼굴을 보며 감사를 표하고 싶소. 그것이 영웅적인 용맹을 선보인 이에게 어울릴 감사일 테니까 말이오.”

“예, 후우. 그럼 뭐.”

한숨을 내쉬는 기사.

투구로 손을 가져가는 기사.

어떤 용모를 지닌 자일까.

기왕이면 헌앙하면서도 다부진 인상이면 좋겠다. 그래야 가증스러운 마젠타노의 병사들이 보자마자 겁을 집어먹을 테니까. 용맹함을 포장하기에 한결 수월할 테니까.

그러니까…….

철컥.

기사가 투구를 벗었다.

땀에 젖은 채로 드러나는 은발. 다부짐과는 약간은 거리가 있어 보이는 턱선과 다소 까칠한 인상의 푸른 눈동자. 그리고 마지못해 지어 보이는 특유의 쓴웃음까지.

어쩐지 아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재적 적국인 마젠타노.

그 제국 황제와 황태자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얼굴은 자다가 깨어나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달달 외우고 있으니까.

“…….”

그러니까, 내가 보는 이게, 맞아?

시장이 자신의 안구 성능에 대한 심각한 의구심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라키엘이 상큼하게 인사하며 그의 의구심의 범위를 청각으로까지 넓혀 버렸다.

“반갑습니다. 마젠타노의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입니다.”

“……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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