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10화 (409/468)

410화. 불신자의 치료법 (2)

“당장 썩 무릎을 꿇고 물러나십시오! 부정한 손길을 사죄하며 회개하십시오! 그러지 않는다면 이 신관장, 슈마이케가 직접 정화의 채찍질로 그대의 눈가에 피눈물을 찍어냄으로써 강제로라도 회개의 기도를 구걸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무엇을 망설이고 있습니까? 냉큼 신의 거룩한 이름 앞에 조아리질 못하고!”

“…….”

“어허! 안타깝도다! 비통하도다! 이토록 어리석은 자의 무도한 눈길을 어찌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꼬!”

“…….”

이 x끼 뭐지.

선 넘네.

라키엘은 어이가 터져나가는 눈길로 신관장이라는 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신경질적이고 교조적인 외침의 연속. 고막이 따끔거렸다. 한편으로는 의문스러웠다. 이 작자는 대체 뭐가 저렇게 불만인 걸까.

‘내가 이들의 기준으로는 불신자라는 것. 그게 제일 큰 이유겠지.’

문득, 소설 마검황의 내용이 떠올랐다. 마젠타노 제국의 인접국 하르미온. 이들의 정치 구조는 독특했다. 바로 신정일치의 체제를 지녔다는 점이었다.

‘왕이 곧 대신관이고, 대신관이 왕이야. 종교와 정치가 아예 하나로 묶여 있지.’

지구의 국가를 예시로 든다면? 중세 버전의 바티칸 왕국이 한반도 이상의 땅덩이를 지닌 나라라고 하면 될까.

‘덕분에 종교가 가장 큰 권력을 지녔지. 이들의 교리가 곧 국가의 법일 정도로.’

한데 이들의 교리 중에는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들의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 받는 치료는 불경하다는 것. 몸과 영혼을 더럽히고 타락케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래서였다.

이들은 오직 자신들의 신관, 혹은 같은 신을 믿는 신자에게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교리로 못을 박아두고 있었다.

‘……라지만.’

그것은 단지 교리일 뿐.

소설 속의 실상은 또 조금 다르긴 했다.

‘여기 사람들이라고 해서 교리를 100퍼센트 FM대로 지키며 살지는 않았어. 데미안이 하르미온에 방문한 에피소드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거든.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던 급박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불신자 의사에게 다녀왔다고. 그 후에 신관을 찾아가 사죄의 기도와 기부금을 봉양하고 죄의 사함을 받았노라고.’

그러니까 급하면 불신자에게 치료를 받아도 된다. 이후에 기부금과 익스큐즈(?)의 기도를 올리면 그럭저럭 만사 오케이. 결국, 이곳 하르미온의 사람들도 나름의 유도리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뭐. 살면서 사소한 일탈 한 번도 없이 완벽하게 법이나 교리대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그런 사람은 사실 없다. 막말로, 너튜브 한몽철 티비에 나올 법한 중앙선 침범 역주행 빌런이 적반하장으로 하이빔을 켜면서 당당하게 달려오면? 그건 부처님도 못 버티고 ‘나무아미타시불놈아’를 외칠 거다.

그래서 라키엘은 의문이었다.

‘다들 교리를 적당하게 유도리 있게 적용하면서 살고 있는 하르미온일 건데. 심지어 여긴 교리의 준수가 제일 빡빡하다는 수도도 아니고, 국경 지방의 도시인데. 그럼 오히려 좀 널널해도 될 건데. 이 신관장이라는 사람은 왜?’

나한테 이렇듯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가.

대놓고 불신자의 치료를 씹고 뜯어대며 깊숙한 태클을 집어넣는 것인가.

‘쓰읍. 기부금을 쎄게 바치라는 건가.’

나름의 결론이 살짝 보였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라키엘은 살짝 인상을 쓰며 신관장에게 물었다.

“저기, 실례합니다만. 소리는 좀 그만 지르면 안 되겠습니까?”

“……회개하십시오! 삶을 돌아보십시오! 신의 이름 앞에 몸을 조아려 자신의 나약함을 꾸짖으십시오!”

“아, 귀 아픈데.”

“불신자의 숨결이 퍼지니 연못이 검게 물들고 먹구름이 맺혔도다! 오르무스께서 불신자의 목을 친히 조르시니 해가 떠올라 황금빛 물결이 산하를 적셨노라! 또한! 오르무스께서 이를 보시니 매우 흡족하시며 불신자의 시신을 거두어 대지를 비옥하게 하셨음이니!”

“……이봐요. 좀 적당히 합시다. 원하는 게 뭡니까.”

“이에 여섯 불신자가 타락을 통감하며 무릎을 꿇었으며! 차례로 손을 끊어 스스로 타락을 정화하는 용기를 보였도다!”

“회개하려면 무려 셀프로 손목을 잘라야 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어, 이제 대화가 좀 되려 하네.”

“이에 광명이 비치어 여섯 불신자의 등을 비추노니! 불신자는 더는 불신자가 아님이니라! 그들이 흘린 순백의 의지로 땅과 연못을 적셨으며!”

“……아오 x발.”

“어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상스러운 말로 공기를 더럽히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이야기 좀 하자고요.”

“싫습니다!”

“어째서요?”

“그대와 같은 불신자의 타락한 숨결과 말이 귀와 영혼을 어지럽히기 때문입니다!”

“쯧, 그러니까 얼마면 되는데요.”

“……하?”

신관장이 처음으로 멈칫했다.

라키엘은 실낱같은 희망을 느꼈다.

‘통했나? 역시 돈인가?’

돈이 최고다.

세상사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 그것이 험난한 세상의 유일한 진리이며, 빛이요, 광명이다.

라키엘은 그러한 철칙을 새삼스럽게 되새기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됐어. 이젠 내 고막도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은 섣부른 방심에 불과하였다.

“닥치십시오오오오오오-!”

잠깐 멈칫하나 싶었던 신관장이 목까지 벌게지며, 십이지장까지 토해낼 기세로 빼액 외쳤다. 그리고 차마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이 자신의 귀를 찰싹찰싹 때리기까지 했다.

“훠어! 훠이이! 감히 금전으로 신의 눈을 가리고 귀를 흐리는 더러운 종자여! 썩 물럿거라!”

“…….”

하 진짜.

라키엘은 울고 싶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 깨달았다.

‘이 신관장, 진짜 순수하네. 그러니까 이건, 맑은 신앙심의 광인인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기부금?

뒷돈?

눈앞의 신관장은 그런 것들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순수한 종교인, 그 자체였다. 그런데 너무 순수해서 오히려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지경인. 머릿속에 틀어박힌 교리와 법칙 외에는 그 어떤 것과도 소통하고 타협할 생각이 없는, 그런 사람 말이다.

‘쯧.’

차라리 돈으로 해결이 되는 거면 편할 수 있었는데.

라키엘은 혀를 차며 신관장을 쳐다보았다. 신관장은 여전히 이쪽을 향해 경전의 내용을 외치고 있었다. 저러면 목이 쉬지는 않을까. 폐활량도 좀 치는(?) 거 같은데. 차라리 지구에서 메탈밴드 보컬로 태어났다면 훨씬 재능을 꽃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

‘완전 내가 절대적으로 타도해야 하는 악귀라도 된 거 같네.’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마음속의 여유가 조금씩 사라졌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당장 주위에만 해도 1시버트, 혹은 그 이상으로 피폭된 환자들이 스물아홉 명이나 누워 있다.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하는.

당장 치료를 받아야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그런 환자들을 눈앞에 두고서 쓸데없는 신관장 따위와 실랑이를 벌이며 시간을 날려야 한다니. 아니, 자칫 치료를 시작하지도 못할 수 있을 거라니.

그건 안 된다.

어떻게든 신관장을 설득해야 한다. 아니, 말로 안 되면 힘을 써서라도.

“이보세요. 그쪽 말만 소리치지 말고 제 말도 좀 들어보시죠.”

결심한 라키엘은 신관장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손을 뻗어 신관장의 한쪽 어깨를 짚었다. 너무 세게는 말고. 적당한 악력으로만. 소리치는 데에만 열중하는 그의 주의가 다른 곳으로 분산되도록. 최소한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도록.

……꽈악!

“으읏?”

효과가 있는 걸까.

귀 따갑게 울리던 신관장의 샤우팅이 비로소 멈추었다. 그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불신자여?”

“대화를 하자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소리만 치는 거 말고요.”

“지금, 감히, 제 몸을 만졌습니까? 그 더럽고 타락한 손길로?”

“예? 이건 그냥…….”

“불신자가! 내 몸에 타락의 씨앗을 심었다!”

신관장이 버럭 외쳤다.

그리고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짧은 몽둥이였다. 말릴 틈도 없었다. 그가 치켜든 몽둥이로 자신의 어깨를 후려쳤다. 이쪽이 손으로 짚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저 통?

아니.

빠악-!

……허우야.

보는 이쪽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부러지진 않았나?’

절로 걱정이 되어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신관장의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저건 빼박이다. 분노가 아니라 엄청 아픈 걸 이 악물고서 참는 표정이야, 저건.

“저기, 괜찮습니까?”

설마 손으로 살짝 붙잡혔다고 해서 그 자리를 때리기까지 할 줄이야. 그것도 몽둥이로. 인간적으로 조금 미안해졌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방금 신관장이 셀프 몽둥이질 자해(?)를 했던 자리를 매만졌다.

“이러면 타박상이 제법 있을 텐데…….”

“으아악! 불신자는 검은 손길로 타락을 전파하지 마십시오!”

빠악!

“……!”

또다.

또 신관장이 이쪽에게 만져진 자신의 몸을 몽둥이로 후려쳤다.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진짜 광기다. 말이 통하지 않는 광기.

‘그렇다면…….’

환자는 스물아홉.

결론은 하나.

라키엘은 환자 제일주의라는 나름의 원칙을 떠올리며 결심했다. 주님, 부처님, 알라신님. 오늘 제가 피치 못하게 여러분의 이웃사촌일지도 모를 신의 충실한 신자에게 나쁜 짓을 좀 하겠습니다.

‘후우.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진짜.’

잠깐의 자괴감 소각 타임.

이후로는 결행의 시간.

짧은 한숨으로 독한 마음을 다진 라키엘은 난리 법석을 떠는 신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빠르지도 않았다. 힘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신관의 이마를 손바닥을 짚어 주었을 뿐이었다.

“쓰읍. 열은 없으신데.”

“으으읏? 무슨 짓입니까!”

투옹!

신관장의 셀프 정화(?)의 몽둥이가 자신의 이마를 강력하게 후려쳤다. 그의 두개골이 온 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를 흘려내며 뇌진탕의 세레나데를 불렀다.

그걸로 끝이었다.

“끄억…….”

신관장의 눈이 살짝 하얗게 뒤집혔다. 그의 고개가 서서히 뒤로 젖혀졌다. 무릎이 꺾이며 몸이 아래로 허물어졌다.

라키엘은 재빨리 손을 뻗어서 신관장을 부축했다. 그리고 살짝 확인.

“이런, 쯧쯧쯧.”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축 늘어진 신관장을 빈 침상에 눕혔다. 그리고 그의 건강 상태를 진맥했다. 다행히 일시적인 충격으로 살짝 기절한 것일 뿐. 그 외의 심각한 외상은 진단되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는.

“기병대 환자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기절한 신관장을 묶어서 한쪽으로 치워놓았다. 그리고 매우 애석하고도 안타까운 감정을 담아 모두를 돌아보며 선언했다.

“우리의 충실하고 신실하신 신관장님께서는 방금, 타락을 정화하려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영면, 아니, 숙면의 길로 접어드셨습니다.”

“…….”

그나마 의식이 있던 몇몇 기병대원들이 마른침을 꿀떡 삼키며 이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라키엘은 맑은 눈빛을 반짝이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럼 우리 이제부터, 힘차게 건강해져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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