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화. 친절한 살인마의 딜레마 (1)
- 쓰하아악? 하아악……?
걱정이 된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다.
새끼 드래곤의 뼈대로 만들어진 역병의 권속, 악티누스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번득였다.
- 하아악…… 쓰학……!
처음엔 그저 반가웠다.
드래곤의 냄새를 풍기던 인간. 그러나 좀처럼 다가갈 수가 없었던 인간. 아니, 찾아내는 것조차 요원했던 인간.
그런데 오늘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마주쳤다.
단지 너무나 반가웠을 뿐이었다. 하여 기쁜 마음에 다가갔을 뿐이었다. 뒤를 열심히 따라왔을 뿐이었다. 시가지의 복잡한 골목을 지나, 대로를 내달리고, 마침내 비좁은 광산에까지 들어왔다.
모처럼 신이 났다.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광산 내부는 비좁았지만 그만큼 스릴이 있었다. 자욱하게 피어나는 흙먼지 때문에 서로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던 바람에 아슬아슬한 맛도 있었다.
게다가 내달리는 철수레 술래잡기라니! 그런 건 상상도 못 했다. 기대해 보지도 못했다. 하여 실제로 해봤더니 기대 이상이었다. 너무나 즐거웠다. 행복했다. 반가운 인간이 탄 철수레를 따라 마음껏 내달리면서는 해방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 이대로 저 인간과 영원히 놀 수 있다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의 코어가 따뜻해졌다. 발산되는 방사선도 더욱 힘을 내는 것 같았다.
기뻤다. 신이 났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다. 어쩌면 수직갱도의 구조 때문에 더욱 흥이 오른 까닭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충동적으로 도약을 해 버린 것은. 하여 수직갱도를 따라 훌쩍 뛰어내리며 철수레 뒤쪽을 톡, 건드렸던 것은.
- 쓰하아악…….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이 센지, 레일에 의지해서 달리던 철수레가 얼마나 불안정한 물건이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톡, 건드려진 철수레는 달리던 속력과 관성을 버티지 못하고 탈선하고 말았다. 날려갔다. 코어가 철렁했다. 황급히 손을 뻗어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실패했다.
그래서 망연자실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철수레가 날려가고, 공동 내벽에 충돌하는 모습을. 그 와중에 철수레에서 튕겨 나온 반가운 인간이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괴로워하는 모습까지도.
- 스아하악……!
미안해.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그러려던 건 아니었어. 괜찮아? 어디 다치진 않았어? 정신이 들어? 아픈 곳은 없고?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부축해 줄까? 일어날 수 있겠어? 어지럽진 않고?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았다. 너무나 걱정이 됐다. 미안했다. 당장에라도 어딘가 숨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명백한 자신의 잘못이다. 그 때문에 반가운 인간이 고통을 받았고, 다쳤다. 그러니 피해선 안 된다.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양식 있는 드래곤 어린이의 모범적인 행동일 테니까.
- 스아아악?
악티누스는 라키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최대한 천천히, 몸을 낮추었다.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했다. 그래야 반가운 인간의 상태가 더 잘 보일 것 같았다. 초조했다. 코어에 금이 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꾹 참아냈다. 반가운 인간을 향해 더욱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덕분에 라키엘은 기겁했다.
‘……헉.’
미친.
이놈, 왜 이러지?
라키엘은 철렁 내려앉으려는 심장을 부여잡는 기분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떨리는 눈길을 들었다. 투구에 달린 특수경 너머로 보였다.
방사능을 뿜어내는 괴수적인 본드래곤. 놈이 바로 세 걸음 앞에 있었다. 미터 단위로 따지자면 1미터 조금 넘을 거리였다. 앞으로 폴짝 뛰며 손만 뻗으면 100퍼센트 닿을 거리에서, 놈이 거대한 턱을 바닥에 깔아둔 채로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
무섭다.
솔직히 차폐갑옷 안에 지릴 뻔했다. 가슴이 마구잡이로 쿵쿵 뛰어댔다. 당장 도망칠까. 조금이라도 물러나 볼까. 생존본능이 한쪽 귀를 잡아당기며 세차게 외치는 듯했다. 뛰라고. 살려면 당장 움직이라고.
반면, 이성은 그런 생존본능을 억눌렀다. 함부로 움직이면 놈이 자극을 받아서 공격을 시작할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자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숨도 절로 가느다랗게 나왔다.
‘어떡하지?’
투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눈동자 굴러가는 모습은 투구와 특수경에 가려져서 놈에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놈의 기색을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그럴수록 웃기게도, 말도 안 되는 가설이 문득 떠올랐다.
‘이상해.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거지? 어째서 날 가만히 살펴보고만 있지?’
정말로 이상했다.
한편으론 괴상했다.
기이하게도, 바로 앞에까지 다가온 본드래곤이 도통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 혹은, 걱정스러운 듯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낮은 울음소리를 흘려내기만 할 뿐.
‘설마 간을 보는 건가.’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쪽을 어떻게 죽이면 좋을지. 혹은 어떻게 씹으면 맛있을지를 고민하는 거 아닐까. 그런 거 있잖아. 마트에서 라면 봉다리 집어들고선 이거 끓여먹을까 뿌셔먹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그런데 왜, 자꾸.
- 스하아악……?
“…….”
놈이 이쪽을 걱정해주는 것 같을까.
말도 안 되는 느낌인데. 누가 말해줬다면 개소리라고 씹어 버릴 상황인데. 어쩐지 자꾸만 그런 기분이 치밀었다. 눈치가 말해주고 있었다. 정말로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라지만, 방심하지 말자.’
물론 그런 기분이 들수록 라키엘은 더욱 긴장했다. 이런 상황에까지 몰려서 방심이라니. 말도 안 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맨정신으로 잡아먹혀서 더 아플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뭔가 시도해 볼 건덕지라도 생겨나는 법이니까.
게다가 지금은 시간이 많지도 않았다.
이런 대치,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딩동!
[WARNING!]
섬뜩한 알림음과 함께 시뻘건 경고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당신은 지속적으로 방사선 외부 피폭을 당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쏟아지는 방사선 입자의 수와 밀도가, 당신이 현재 착용 중인 장비의 피폭방지 기능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착용 중인 차폐갑옷의 일부가 충격으로 손상되어 피폭량이 더욱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당신의 예상 기대수명이 실시간으로 감소합니다.]
[경고 : 예상 기대수명 10일 감소!]
[예상 기대수명 : 2,431일]
“…….”
미치겠다.
이게 문제다.
심지어 피폭 경고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본드래곤과 눈싸움(?)을 하는 사이에도 수시로 떠올랐다. 체감상 거의 30초에 한 번씩?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있다간…….
‘한 시간이면 기대수명이 다 깎여 버릴지도.’
예전, 테니온의 성벽 바깥 들판에서 처음 본드래곤과 조우하고 드잡이질을 벌였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도 놈과 가까워졌을 때 이런 식의 피폭 경고가 뜨긴 했더랬다. 하지만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다.
‘거리가 더 가까워. 밀폐된 공간이야. 게다가…… 아까 철수레가 전복되고 바닥을 뒹굴면서 차폐갑옷 곳곳이 찌그러지고 찍혔어.’
덕분에 차폐갑옷 외부에 도금한 납 등의 방사선 차폐물질이 일부 벗겨진 것 같았다. 주로 그곳을 통해서 방사선이 침투해 들어오는 거겠지. 이대로라면 피폭량이 누적될 테고. 아마도 기대수명이 깎여나가는 기세에도 가속이 붙을 거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그건 싫은데.’
이쪽의 기분을 반영하듯, 오장육부도 실시간으로 난리가 나는 중이었다.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따끈한 피폭 사태에 실시간 멘붕 상태로 빠져듭니다!]
[심장 : 야야 방사능 좀 막아라! ㅠㅠ]
[허파 : 허어……파하학…… ㅠㅠ]
[대장 : 못 막을 거 같지 말입니다 ㅠㅠ]
[간장 : 아아 방사능……. 내 인생에 멋대로 들어와선 마음 어지럽게 만들고, 보이면 보여서 신경 쓰이고, 안 보이면 안 보여서 그게 또 진짜 미칠 거 같음 ㅠㅠ]
[위장 : 눈 감아도 걔 모습이 선해서 불면증 당첨임 ㅠㅠ]
[콩팥 : 라붕이의 몸에 방사능의 등장이라…… 재밌어지겠네ㅋ]
[비장 : 라몸방등ㅋㅋㅋㅋㅋ ㅠㅠㅋㅋㅋㅋㅋㅋ]
[방광 : 아 미쳤나고ㅋㅋㅋㅋㅋㅋㅋㅋ]
[멘붕에 빠진 오장육부가 어떻게든 신체기능을 지켜보려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무사 탈출을 기원하며 500 HP를 후원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27,600]
“…….”
그래. 나도 미치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다.
이대로 가만히 얼어붙어만 있다가는 확실하게 끝장이 나리라는 것. 당장, 신속하게, 어떤 수라도 내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어떡하지?’
긴장된 눈길을 들었다.
살얼음 같은 대치.
조금이라도 섣부르게 움직였다간 당장 놈의 공격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을까. 기절한 데미안을 업고서 무사히 도망치려면 보통의 수법으로는 불가능할 텐데.
혹은, 발상을 바꾸어서 놈을 물러나게 하면 어떨까. 과연 어떻게? 무슨 수단으로?
‘생각하자. 생각을 해라, 이한!’
실시간으로 자꾸만 떠오르는 피폭 알림.
온갖 소란을 떨어대는 오장육부.
그 불안감과 공포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현재 상황에만 집중했다. 관찰했다. 분석했다. 방법이 있을 거라고. 단지 떠올리지 못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독려하며 머리를 굴렸다.
현재 처해 있는 상황.
눈에 보이는 것들.
느껴지는 분위기.
본드래곤의 태도.
그것들을 모두 종합했을 때 취할 수 있을 행동들. 그에 따른 변수와 결과. 가능성. 그 모든 요소를 떠올리고, 조합하고, 해체하며, 다시 쌓고, 융합하고, 부수었다가, 포기 없이 그리고, 연결하여, 마침내 떠올렸다.
‘……이거다.’
희미한 가능성 하나가 보였다.
이쪽을 대하는 본드래곤의 분위기와 태도 덕분이었다. 어쩐지, 은근히, 이쪽을 걱정하는 듯한 놈의 태도. 그걸 이용하면,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한편으로는 그 판단에 대한 의심 또한 떠올랐다.
나, 미친 건가.
그런데 될 것 같다.
머리 한구석에 희망의 불씨처럼 떠오른 작은 가능성.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 이쪽이 해볼 수 있는 유일하게 유의미한 시도.
‘해 보자.’
어차피 다른 방법은 전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을 실감하며 결심하자 마자였다.
스윽.
한쪽 손을 뻗었다. 쓰러진 데미안의 허리춤의 단검을 뽑았다. 뽑자마자 칼날을 자신의 목에 갖다 댔다. 망설임 없이. 동선의 낭비 없이. 신속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외쳤다.
“가까이 오지 마! 물러나! 안 그러면 이걸로 내 모가지를 콱 찔러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