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32화 (431/468)

432화. 홀리워터탕 페스티벌 (1)

딩동!

언제 들어도 상큼한 알림음.

새로운 성공을 알리는 소리를 고막에 담으며, 라키엘은 눈길을 들었다. 그가 바라보는 곳. 그곳에 반가운 메시지가 야물딱지게 떠올라 있었다.

[당신은 아피로스 애벌레의 침 성분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였습니다.]

[새로운 레시피의 결과물로 ‘홀리워터탕’이 성공적으로 조제되었습니다.]

[이 도전적인 시도가 당신에게 크나큰 경험이 되었습니다.]

[탕약 조제 스킬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명 : 탕액조제 (중급 Lv.3)]

[당신이 조제하는 탕약은 기존의 탕약보다 약효가 23% 증가합니다.]

[스킬 전용 옵션 ① 성분 분석 / ② 약재 배합 미리보기 / ③ 약재 관심법]

“…….”

제대로다.

마침내 목표로 했던 약효와 생산성을 두루 갖춘 탕약이 개발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어.’

뭐든지 제대로 확인을 해봐야 한다. 근로계약서의 내용이 그렇고, 방금 시킨 삼겹살의 1인분당 그램수가 그렇다.

함께 탕수육을 먹을 사람의 성향이 찍먹인지 부먹인지도 미리 확인해야 한다. 그건 중대사항이니까.

지금 또한 그렇다.

‘홀리워터탕, 효능 좀 볼까.’

그는 탕약 그릇 속 회갈색 빛깔의 액체를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그러자니 슬금슬금 반응이 왔다.

딩동!

[당신이 직접 조제한 탕약을 감지하였습니다.]

[탕약조제 스킬 옵션 : 성분 분석을 발동하시겠습니까?]

[YES / NO]

시선으로 예스를 꾹 눌렀다.

곧바로 옵션이 발동되었다.

[탕약조제 스킬 옵션 : 성분 분석을 발동합니다.]

[스캔 중]

[3…… 2…… 1…….]

[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

딩동!

온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이윽고 홀리워터탕에 대한 내용이 주르륵 떠올랐다.

[홀리워터탕]

[유효 성분 : 아피로스 유충 침샘 분비액, 프러시안 블루(ferric ferrocyanide), 글리코사이드(glycoside), 에페드린(ephedrin), 호모젠티식산(homogentisic acid), 에스트라골(estragole), 아니스알데히드(anisaldehyde), 그 외 기타 등등]

[성상 : 탁한 회갈색의 액상]

[효능과 효과 : 방사성 요오드, 스트론듐 등의 체내 침착 해소 및 배출, 소변 배출량 증대를 통한 세슘 등의 알칼리 금속 성분의 체내 축적 방사능 물질의 제거, 우라늄 화합물의 신장 요도세관 침착 방지, 혈관 내피 장해 치료, 소화관 점막 재생 촉진을 통한 괴사 방지, 폐섬유화 방지, 조혈모 기능의 회복, 손상 염색체에 대한 복구 기전의 활성화 등등]

[권장 복용량 : 1일 1회, 10mg]

[부작용 : 본 탕약은 복용자의 미각을 일시적으로 교란 및 마비시킬 수 있으므로 강인한 정신력이 동반되지 않는 복용은 정신적, 신체적 충격을 가할 수 있음]

[저장 방법 : 1~10℃의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서늘한 환경에서 보관]

[사용 기간 : 제조일로부터 8일]

[제조자 :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

[스페셜 땡스 : 쟈빌론 플랑베르 앙부아즈]

“…….”

쟈빌론, 확실히 수고가 많았구나.

라키엘은 잠시 숙연한(?) 기분을 느꼈다. 이번 탕약 개발을 위해 거의 고문에 가까운 미각 테러를 인고와 인내의 시간으로 버텨낸 쟈빌론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렇듯 신속하게 홀리워터탕을 개발할 수 있었을까.

‘뭐, 그놈 아니어도 다른 사람 먹이면서 실험했으면 됐던 거니까.’

이렇게 쟈빌론의 숨겨진 업적(?)은 간단하게 무시!

라키엘은 홀리워터탕의 효능을 거듭 꼼꼼히 읽어보며 감탄했다.

‘확실히 제대로 만들었어.’

효능이 확실했다.

방사선 피폭 치료의 가장 핵심인 조혈모세포 기능의 회복, 소화관 장해의 방지, 혈관 내부 손상에 따른 혈액 누출에 대한 대책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게다가 생산성도 딱이야.’

탕약의 가장 핵심 재료인 꾸꾸의 침을 가장 최소한으로 쓰면서도 이만큼의 효능이 나온다는 점이 중요했다.

지금의 계산으로는 대략 꾸꾸가 한 번 퉤! 뱉어내는 양으로 무려 100인분의 탕약 생산이 가능할 정도였다.

물론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맛이 없나.”

라키엘은 문득, 시스템이 알려주는 홀리워터탕의 부작용 항목에 주목했다. 일시적으로 복용자의 미각을 마비시킬 수 있단다.

얼마나 맛이 없길래 그러는 걸까. 이건 사람들에게 먹여보기 전에 꼭 ‘직접’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쟈빌론은 안 돼. 그는 이미…… 미각을 잃었어.’

거듭된 실험 강행군 때문이었다.

이미 어제쯤부터 쟈빌론은 거의 정줄을 놓은 상태였다. 따라서 그에게 홀리워터탕을 먹여본다 한들, 이제는 정확한 맛 평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후우.”

깊은 심호흡으로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탕약 그릇을 입가로 가져왔다.

순간 라벤더와 딸기를 섞은 듯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어? 이거…… 향은 엄청 좋은데?’

향기만으로도 잠깐 행복감이 밀려왔다. 내가 오늘 이 향기를 맡기 위해 하루를 보냈구나, 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잠깐 들었을 정도였다.

덕분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래.

이렇게 향긋한 탕약이라면 맛도 그럭저럭 괜찮겠지. 아무리 최악이라도 평타는 치겠지. 설마 사람을 잡기야 하겠…….

“……푸왋!”

뿜었다.

첫 모금?

아니.

첫 방울이 입술을 비집고 혓바닥 끄트머리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순간, 미각신경이 총 맞은 것처럼 칠성장어 승천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커억! 쿠, 쿠으엛, 겕! 긃!”

혀가 사라지는 기분이 이런 걸까. 맛? 모르겠다. 무형문화재급 장인이 1,000일 동안 정성껏 삭힌 홍어가 혓바닥 미뢰돌기를 스테이지 삼아서 헤드뱅잉을 도는 느낌이었다.

혹은, 광활한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광개토대왕 시절에 타임캡슐로 묻어놓은 청국장을 지금 시식하면 이 정도로 구린 맛이 나지 않을까.

“컭! 걁! 꽓!”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콰당!

이쪽이 난데없이 난리부르스를 춘 덕분이었을까. 바깥에 있던 세르지오와 프란델 경이 기겁하며 뛰어들어왔다.

“전하? 이게…… 무슨……!”

“세르지오, 어서 전하를, 여기로!”

두 사람이 창백해진 얼굴로 이쪽에게 응급처치를 시도하려 했다. 이쪽을 눕히려 들었다. 덕분에 가슴이 철렁했다.

‘응급처치 말고! 물! 물!’

물을 마시고 싶었다. 입을 좀 씻고 싶었다. 그런데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미각의 마비와 더불어 혀도 멈춘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데미안 녀석마저도 마침 잠깐 자리를 비운 채였다. 덕분에 두 사람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으읍! 걹!’

거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들처럼 치고 올라오는 구역질! 라키엘은 가까스로 구토를 참아내며 저항했다.

자신을 눕히려는 두 사람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리고 탕약 그릇 속으로 손을 뻗었다.

춉!

손가락 끝에 홀리워터탕이 묻어났다. 그걸 확인한 즉시 세르지오에게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홀리워터탕을 싣고서(?) 세르지오의 벌어져 있던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헙?”

세르지오가 흠칫.

이내 특근대 최연장자의 믿음직하던 표정에 멸망의 오선지가 7옥타브의 선율로 새겨졌다.

“……으꺄아아아앙아아뿌다아알갸!”

“전하, 너무하셨습니다.”

“……어.”

“정말로 심하셨습니다.”

“어, 미안.”

30분 후.

라키엘은 고개를 푹 숙였다.

수척해진 얼굴로 병상에 누운 세르지오를 향해서였다.

그러나 정작 세르지오는 아무 말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눈길을 건네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 잎새를 찾듯 가녀린 시선만을 고요히 창밖으로 보낼 뿐. 그렇게 한 떨기 서러움의 눈물을 볼따구로 또르르 흘려낼 뿐.

그의 모습을 침통하게 바라보던 데미안이 물었다.

“그럼,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세르지오 경은 혀가 굳어서 아마도 내일이나 되어야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으음, 아마도?”

“그럼, 전하께서는요?”

“나도 아직 혀가 얼얼하긴 해. 그나마 세르지오보다 복용량이 적어서 혀가 완전히 굳진 않았지만.”

“그걸 저나 프란델 경이 먹을 수도 있었다는 말씀이로군요.”

“……미안.”

라키엘은 거듭 미안한 마음으로 세르지오의 투박한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러나 세르지오는 아직도 살짝 삐쳤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혼이 돌아오지 않은 것일지도.

그 모습을 보며 라키엘은 홀리워터탕의 부작용을 제대로 실감했다.

“쓰읍. 어쨌건 이번 탕약은 이대로는 사람들한테 못 먹이겠네.”

“동감입니다. 몇 방울만 먹였는데도 이런 결과라니.”

“몇 방울 아니거든? 좀 더 많이 먹었거든?”

“어쨌건 이 정도면 거의 맹독 수준 아닙니까?”

“쓰읍.”

라키엘은 미간을 콱 찡그렸다.

“그러니까 물을 좀 타서 먹이면 될 듯?”

“그걸로 되겠습니까?”

“돼야지. 안 되면 곤란해.”

정말로 그렇다.

이 도시는 방사능에 직간접적으로 오염된 상태다. 본드래곤이 도시로 들어온 날 뿌려댄 방사선이 워낙 강렬했던 탓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처음 본드래곤과 제대로 조우했던 기병대원들은 아직도 병상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당장 해보자.”

라키엘은 아까 완성한 홀리워터탕을 가지고 왔다. 1회 복용량인 10mg의 분량에 1리터가량의 물을 부었다. 그리고 마셨다.

“……컭, 푸걱!”

마시자마자 속이 확 뒤집혀서 사레가 들릴 뻔했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미각이 통째로 마비될 정도는 아니었다.

비로소 마음이 살짝 놓였다.

“좋아. 그럼 가자.”

“어디로 말입니까?”

“기도소. 이거 기병대원들한테 먹이러.”

세르지오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준 라키엘은 곧바로 기도소로 향했다. 그리고 기도소에 들어가자마자 우렁차게 외쳤다.

“테니온의 용맹한 아들들이여!”

“……덟?”

“므, 뭡?”

잠들어 있던 기병대원들이 깜짝 놀라며 깨어났다. 하지만 라키엘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과 눈빛으로 병상 사이를 저벅, 저벅, 걸었다. 한 손에는 양푼이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때나 쓸 법한 빅사이즈 그릇을 들고서였다.

“자, 우선 그대부터 이것을 받도록.”

다짜고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병대원의 품에 빅사이즈 그릇을 안겼다. 기병대원이 얼떨떨한 기색으로 그걸 받는 사이, 뒤를 따르던 데미안에게 눈짓했다.

“따르도록.”

“예, 전하.”

사전에 교육(?)을 받은 데미안이 라키엘과 마찬가지로 표정을 관리하며 나섰다. 그리고 커다란 물통을 번쩍 들어 신중하게 기울였다.

쪼르르륵!

이내 탁한 회갈색의 홀리워터탕이 기병대원의 빅사이즈 그릇을 가득 채웠다. 찰랑찰랑 피어나는 달콤한 향기와 함께 함께였다.

“이건…… 뭡니까?”

기병대원이 홀리워터탕의 향기에 감탄하며 물었다.

라키엘이 얼굴 가득 철판을 깔고서 대꾸했다.

“그대의 강인함과 용맹을 되찾아줄 비약이다.”

“비약…… 말입니까?”

“그렇다. 그걸 단번에 마시는 순간, 그대는 이전처럼 사자 같은 심장과 비룡 같은 눈빛으로 그대의 고향인 이 도시와 가족을 지킬 수 있겠지. 단, 그러자면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시면…….”

“데미안.”

라키엘은 기병대원의 물음에 대답을 돌려주는 대신, 또다른 빅사이즈 그릇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데미안이 새 그릇에도 홀리워터탕을 가득 따랐다.

“잘 보도록.”

기도소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그릇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입가로 가져왔다.

기울였다. 벌컥벌컥, 보란 듯이 마셨다. 한 번도 입을 떼지 않고서. 숨도 쉬지 않고서. 너무나 태연하고 의연하게.

“……크으!”

홀리워터탕을 다 마신 라키엘이 노가다 십장 바이브를 내뿜으며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조금도 일그러지거나 찡그려지지 않은 태연한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비약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비결, 그것은 바로 원샷이다.”

“워, 원샷…….”

“그렇다. 숨도 쉬지 말아야 한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오직 타협 없는 단호한 의지! 그것 하나로 비약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단숨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만이 그대들의 가슴속 꺼진 용기의 등불을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을지니!”

주먹을 치켜들었다.

뜨겁게 외쳤다.

눈앞의 기병대원을 굽어보았다.

“자아, 그대는 할 수 있겠는가?”

“저는…….”

……꿀꺽!

그릇을 받아든 기병대원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격정적으로 외치는 황태자. 그의 웅변을 듣자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할 수 있다. 하고 싶다. 다시 건강해지고 싶다. 예전의 용맹을 되찾고 싶다.

“하겠습니다!”

“좋다, 마셔라! 용사여!”

“후읍!”

기병대원이 심호흡과 함께 빅사이즈 그릇을 기울였다. 그 직후, 그는 난생처음으로 미각을 타격하는 충격과 공포와 맞닥뜨려야 했다.

“……!”

1리터의 물로 희석되었지만, 홀리워터탕은 홀리워터탕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저도 모르게 뿜을 뻔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이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면 자신은 전사가 아니다. 기사가 아니다. 용맹의 자격을 잃는 것이다. 영원히. 낙오되고, 도태되어, 후회로 가득한 여생을 살아가야 하겠지.

‘그건 싫어!’

기병대원은 필사적인 의지로 참아냈다. 벌컥벌컥, 기절하고 싶은 구린 맛을 이겨내며 끝끝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삼켜냈다.

“……크아아!”

완벽한 원샷이었다.

나머지 기병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크아아!”

“크워어!”

“크앙아!”

연달아 거행되는 홀리워터탕 원샷의 퍼레이드! 차례차례 자신의 용맹함을 증명하는 상남자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나며 원샷의 행렬이 기도소를 넘어 도시 전체로 번져갔다.

원샷에 성공하면 건강해지고 용맹해지고 섹시해지고 쌈빡해진다는 황태자의 홀리워터탕. 그 증명을 위한 홀리워터탕 원샷 챌린지 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

물론 기병대원들은 물론이고 도시민 전체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제일 처음 시범으로 원샷을 선보인 라키엘의 입안에 자두맛 사탕이 남몰래 물려 있었다는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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