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33화 (432/468)

433화. 홀리워터탕 페스티벌 (2)

황도 마젠타의 봄은 이르다.

특유의 계절풍이 불어오는 지형 덕분에 체감상 이르게 다가오는 봄의 첫머리는, 오후를 맞이하는 사람들을 괜한 졸음의 유혹으로 밀어 넣곤 한다.

하지만 황제, 아스테리온 테스타로사 마젠타노는 예외였다. 지금 그 어떠한 졸음이 몰려와도 잠이 번쩍 깰 내용의 보고를 받고 있는 까닭이었다.

“폐하, 하르미온의 테니온에서 올린 첩보가 도착했사옵니다.”

마젠타노 황실 특수정보부 요원이 머리를 조아렸다. 황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가느다랗게 뜬 눈에 이채를 띠었을 뿐.

요원의 보고가 이어졌다.

“테니온의 본드래곤이 제압되었사옵니다.”

“……제압?”

“그렇사옵니다, 폐하.”

“격퇴가 아닌 제압이라. 누구에게?”

“황태자 전하이옵니다.”

“…….”

황제의 콧수염에 가려진 왼쪽 콧구멍이 남몰래 벌렁거렸다.

“어떻게?”

“그것까진 알아낼 방도가 없었사옵니다. 다만-”

“다만?”

“테니온의 광산을 이용하여 본드래곤을 격멸하려던 계획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크나큰 차질을 빚었으며, 일련의 시행착오 끝에 황태자 전하가 직접 미끼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이옵니다.”

“미끼……? 그 아이가, 직접?”

“그렇사옵니다.”

“하.”

황제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차며 웃어 버렸다. 기쁨의 웃음? 그건 아니었다.

“위험한 일에는 나서지 말라고 그토록이나 신신당부를 하였거늘.”

자신의 아들은 끝끝내 아비의 말을 듣질 않는다. 언젠가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이런 일에 직접 나서 버리고 만다.

아스라한 변경백의 안전한 영지의 머물러 있지 않고서 본드래곤의 토벌에 나섰던 선택부터가 그러했다.

하여 한숨이 나왔다.

황태자를 향한 한숨?

아니었다.

황제 자신의 과거를 향한 책망의 한숨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너무나 가혹하게 몰아붙였음이야. 그 때문에 저 아이가 아직도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야. 필시 그럴 테지.’

과거가 떠올랐다.

자신의 아들을 믿지 못했다. 하여 시종일관 압박하고, 시험하려 들었다. 새끼를 절벽에서 떠미는 사자의 심정으로 그리하였다.

지나고 보니 그것이 가장 큰 실수였고, 잘못이었다. 아들에게 잘못된 강박을 심어 버리고 말았다.

뭐든지 직접 해결하여 능력을 증명하려는 강박. 그런 강박이 가슴 깊숙이 박혀 버렸음이 분명하다.

내 탓이다.

짐의 탓이다.

이 아비의 잘못이다.

하여 너는 이번에도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며 불길 속으로 뛰어든 셈이 되어 버렸구나.

“이 녀석을 어찌하면 좋을꼬.”

거듭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쪽의 쓰라린 자책과 별개로, 요원의 보고는 건조하게 이어졌다.

“상기한 보고대로 황태자 전하는 직접 미끼가 되어 광산으로 뛰어들었으며, 이후 격전의 과정 끝에 본드래곤을 제압하여 길들인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뭣?”

황제는 깜짝 놀랐다.

제압은 그렇다 치고, 길들였다고?

“본드래곤을?”

“그렇사옵니다, 폐하.”

요원이 고개를 조아렸다.

“현재 본드래곤은 황태자 전하에게 완전한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옵니다. 그 충성의 수준은 가장 충실한 충견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사료되고 말이옵니다.”

“충견이라……. 하면, 본드래곤이 내뿜던 ‘방사능’이라는 저주는?”

황제가 물었다.

사실 본드래곤은 그게 가장 문제였다. 처음 국경지대의 피해 상황을 보고받았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을 정도였다.

일정 거리 안쪽으로 다가서기만 해도 사람이 죽어나가는 강력한 저주. 정체를 짐작할 수도 없고, 따라서 대응책의 감도 잡히지 않던 불가사의한 저주.

이후 황태자의 발언을 통해 저주의 이름이 ‘방사능’이라는 정보까지는 입수하였지만, 정작 그 방사능이 무엇인지가 또 오리무중이었다.

요원이 보고했다.

“3호 요원이 올린 첩보에 따르자면, 본드래곤의 저주 또한 제어, 혹은 봉인된 것으로 사료가 되옵니다.”

“저주가 사라졌다고?”

“그렇사옵니다, 폐하. 본드래곤은 황태자 전하에게 제압된 이후로는 어떠한 난동의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가까이 다가서는 이들 또한 저주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는 상태로 보이옵니다.”

“허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주를 억누르기까지 하다니.”

황태자는. 그 아이는. 내 아들은.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방사능이라니.

그걸 어디서 안 것일까.

짐작이 되지가 않았다.

그저 뛰어난 지성?

혹은 방대한 지식?

모르겠다.

자신이 모르는 어떠한 행운, 혹은 기적 같은 인연의 인도를 받아 남모를 초월적 능력을 부여받은 것인지도.

“하여 현재 본드래곤은 황태자 전하의 명에 따라 도시의 복구작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새로운 이름까지 부여받은 것으로 파악이 되었사옵니다.”

“새 이름이라. 어떤?”

“뚜식이……라고…….”

“…….”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불사가의한 인도에 따라 초월적 능력을 얻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자신의 아들에게도, 정상적인 작명 센스는 미처 주어지지 못했나 보다.

하지만 황제는 아버지였다.

“어, 흠흠! 좋은 이름이구만. 구수하고. 부르기 편하고. 그렇지 않은가?”

“그, 그렇……사옵니다.”

“흐음.”

“…….”

“방금 그대가 말을 조금 더듬었던 것 같은데.”

“착각일 것이옵니다, 폐하.”

“착각? 무려, 짐이?”

“요즘 황태자 전하를 무척 걱정하시느라 잠을 통 이루지 못하신 것이 원인이 아니시올는지…….”

“감히 그대가, 짐의 수면 건강을 걱정하는 것인가?”

“폐하의 건강이 곧 제국의 건강이고, 저를 포함한 만백성의 행복이기 때문이옵니다.”

“쯧쯧. 이제는 마음에도 없는 아첨까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마음에도 없는 성은은 찾지 말고. 보고부터.”

“……커흠! 흠! 다음 보고를 올리겠사옵니다.”

요원이 어쩐지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이며 보고를 이어갔다.

“다음 내용은 하르미온의 대응에 대한 것이옵니다.”

“하르미온의 대응이라. 어떤?”

“저들의 1왕자가 왕도를 출발하여, 황태자 전하가 체류 중인 테니온을 향해 출발하였다는 첩보이옵니다.”

“저들의 1왕자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요원의 건조한 대답이 이어졌다.

“1왕자 및 대주교를 호위하는 5천의 병력이 테니온을 향해 출발하였으며, 그 표면적인 목적은 예고 없이 국경을 넘어서 내방한 황태자 전하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적 움직임으로 보이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폐하. 물론 내부적으로는…….”

“우리를 압박하기 위함인가.”

“정확한 혜안이시옵니다, 폐하.”

요원이 보고하였다.

“저들 하르미온의 입장에서 이번 황태자 전하의 내방은 협의 없는 국경침범 행위이며, 저들이 주장할 근거 또한 국경에 대한 권리일 것으로 예상이 되옵니다.”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겠군.”

“황태자 전하의 공식적인 사과 또한 요구할 것으로 보이옵니다.”

“거부한다면, 더 큰 것을 요구할 테고.”

“일정 기간 황태자 전하를 강제로 억류할 가능성 또한 있을 것이옵니다.”

“강제로 억류라. 하.”

황제가 피식 웃어 버렸다.

“본드래곤을 길들인 내 아들을? 저들이? 어찌?”

“저들은 아마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옵니다.”

“1왕자의 성향 때문인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저들의 1왕자 제로스 마스트리히 하르미온은 대외에 알려진 성정대로 지극히 오만함에도 불구하고, 그 오만함에 걸맞은 냉철한 판단력은 갖추지 못한 인물이옵니다.”

“그렇겠지. 살면서 고난을 겪어본 적이 없었을 터이니까.”

“폐하의 말씀대로이옵니다.”

“허허. 허.”

자신의 주제도 모르는 놈이 감히 제국의 황태자에게 알량한 요구를 할 예정이라. 황제는 다시금 피식 웃어 버렸다. 그리고 요원에게 물었다.

“하면, 내 아들이 저들의 요구에 굴복할 확률은?”

“전혀 없사옵니다.”

“반면, 내 아들이 오히려 저 도시의 깃발을 갈아치워 버릴 확률은?”

“절반 이상으로 사료가 되옵니다.”

“좋군. 매우 좋아.”

훌륭하다.

만족스럽다.

과연 내 아들이다.

황제는 비로소 마음을 놓으며 권좌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줄곧 어깨며 목덜미에 매달려 있던 긴장감이 비로소 풀리는 기분이었다.

한 달이 넘도록 얼마나 불면의 밤을 보내었던가. 성막이 발동된 테니온. 그 안에 갇힌 자신의 아들. 성막 밖에서 기회를 노리듯 서성인다던 본드래곤.

그 보고를 받은 뒤로는 거의 한숨도 자질 못하였다.

대응을 위한 모든 방면의 준비를 갖추느라. 여차하면 테니온은 물론이고 하르미온 전체를 밀어 버릴 각오까지 다지면서.

그토록 노심초사하며 보낸 시간이었건만.

“후우. 이렇게 잘 풀리니 허망하군. 그래서 좋고. 다행이고.”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래. 그대도 그동안 노고가 많았어. 이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본연의 임무를 이어가도록 하게, 0호 요원.”

“명을 받드옵나이다.”

0호라 불린 요원이 고개를 조아렸다. 다음 순간, 그의 모습 자체가 집무실에서 사라졌다.

황제는 그가 있던 자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쯧, 이런 일만 아니면 이 몸께서 이따위 촌구석에 방문할 일 따윈 없었을 텐데.”

달칵.

호화로운 마차 문이 열렸다.

시종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 문에서 내린 하르미온의 1왕자, 제로스는 바깥의 풍경을 보자마자 미간을 와락 찡그렸다.

변경의 대도시 테니온.

황량했다.

촌스러웠다.

그 어디에도 호화로움이 보이지 않았다.

즉, 자신의 품격에 걸맞은 느낌이 전혀 없는 시골 촌구석, 그 자체였다.

“한데 제국의 황태자씩이나 되는 것이 뭐가 좋다고 이런 곳까지 와서 난리를 부린 건지, 쯧!”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황태자의 예고 없는 내방, 혹은 국경 침범 소식을 듣자마자 호들갑을 떨던 부왕의 모습도. 이윽고 자신을 지목하여 이곳으로 보내 버린 부왕의 결정도. 전부. 이렇게나 난리법석을 떨 일인가 싶기만 했다.

‘그냥 병력만 보내서 도시를 둘러싸고, 건방진 황태자 놈을 압박해서 배상금만 뜯어내면 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생각하기엔 그게 제일 깔끔한 방법이다. 굳이 1왕자인 자신이 격을 맞춘답시고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부왕께서 1왕자님을 보내신 데에는 더 큰 뜻이 있으신 거겠지요.”

“하. 대주교님도 똑같은 잔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잔소리가 아닙니다. 1왕자님을 위한 조언이지요.”

“예에. 그렇겠지요.”

1왕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왕께서 자신과 함께 딸려 보낸 교단의 대주교. 이 사람이 문제다.

아마도 부왕의 부탁을 받고 자신을 감시하는 역할인 거겠지.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모두 지켜보고, 추후에 부왕에게 고자질을 할 예정인 거겠지.

‘성가셔.’

1왕자 제로스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이런 임무 따위, 다 때려치우고 왕도로 돌아가고 싶다.

신선하고 고급진 최상급 요리를 즐기며 오늘 하루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당장은 그럴 수가 없겠다.

대주교 때문이다.

대주교가 자신의 권력으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대라는 점이 제일 성가셨다. 교단과 척을 지면 곤란해지니까. 자신의 후계 구도에도 악영향이 생길 테니까.

그러니까 성가신 일은 빨리 치워 버리자. 무엇보다도, 자신을 이토록 성가시게 만든 황태자부터 제대로 엿을 먹여야겠지.

“그럼 갑시다, 재난 현장으로.”

헐레벌떡 마중을 나온 시장의 안내를 받았다. 재난 복구 현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1왕자는 빠른 일처리를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이런 변두리는 원래부터 가난할 테니, 지금은 더욱 궁핍해져 있겠지. 예고 없는 재난을 복구하느라 죄다 거지처럼 허덕이고 있을 거야.’

그러니 자신이 직접 방문하기만 해도 된다. 자신은 무려 1왕자니까. 개돼지 같은 변두리 거지들은 1왕자를 직접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하여 까무러치겠지.

눈물을 줄줄 흘리고, 눈길이라도 맞춰보려고 애를 쓰며, 어쩌다 악수라도 하게 되면 그 경험을 평생의 자랑으로 떠들고 다니겠지.

그거면 된다.

어차피 원래부터 쫄쫄 굶으며 지내던 거지 같은 것들에겐 이런 마음의 위로 정도면 감지덕지가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하던 도중이었다.

“원샤앗-!”

“……!”

별안간 엄청난 데시벨의 외침이 고막을 퍽, 하고 스트레이트로 치며 훅 들어왔다. 움찔, 생각의 맥이 끊겼다.

1왕자는 깜짝 놀라며 외침이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더욱 놀라고 말았다.

“원샷! 원샷! 원샷!”

어느새 수많은 시민들이 자신과 수행원단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구호를 우르르 외치며 서서히 다가왔다.

당황스러웠다. 저들의 광기가 서린 듯한 즐거운 눈동자도. 한목소리로 외치는 구호도. 그리고 이쪽을 향해 당연한 듯이 내미는 정체불명의 빅사이즈 국그릇 또한.

“이게…… 무슨…….”

1왕자는 잠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어쩌다 보니 마주친 광기의 현장.

이곳이 ‘홀리워터탕 원샷 챌린지 페스티벌’의 중심부이며, 이곳에 들어온 자신이 신분과 권력과 재력의 모든 편견과 굴레를 벗어던지고서 홀리워터탕을 원샷해야만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되어 버렸음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