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화. 국경도시의 아이돌 (2)
“여러부운! 이제부터 우리의 기도를 받을 분은 누구?”
“라! 키엘!”
“그러며언! 이제부터 우리가 존경해야 할 분은 누구!”
“라키! 엘!”
“한 글자씩 정확하게 발음하면!”
“라키엘 할 때 라! 라키엘 할 때 키! 라키엘 할 때 엘! 라! 키! 엘!”
“그분이 우리의 무엇이다?”
“빛과 소그음!”
커다란 함성이 기도소를 가득 채웠다. 그만큼의 열기도 후끈후끈 차올랐다. 뜨거운 눈물이 신관들의 얼굴을 가로질러 턱에 방울졌다.
덕분에 라키엘은 십이지장 융털돌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저거…… 다들 뭐 하는 짓……?”
“새로운 기도 절차라고 들었습니다.”
“새로운…… 기도?”
저게?
저따위가?
라키엘은 끔찍해지려는 기분을 느끼며 데미안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심 빌었다. 제발, 방금 내가 들은 말이 장난 가득한 개소리였다고 해줘. 아니면 고약하고 센스 없는 농담인 거라도 좋으니까 제발, 쫌.
그러나 데미안은 웃음기라곤 없는 얼굴로 그의 기대(?)를 가볍게 걷어차고 말았다.
“그렇다고 합니다. 신관장이 직접 밝혔으니 사실이겠지요.”
“…….”
“신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전하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달았노라고. 진정한 신앙의 새로운 길을 엿본 느낌이었노라고 말입니다.”
“나 때문에?”
“예, 전하.”
데미안이 신관장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반성한다고도 했습니다.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커다란 아집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맹목적인 신앙에 파묻힌 까닭에 정말로 돌보아야 하는 이들을 살펴보지를 못했다고, 그것이 후회스럽고, 이제라도 바로잡고 싶노라고 말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좋은 취지는 알겠는데. 그런데-”
“라! 키에에엘!”
때맞추어 터지는 열광적인 연호.
라키엘은 달팽이관을 세척하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그런데 꼭 저렇게까지 해야 돼?”
“그건 저들에게 여쭤보셔야…….”
“아니, 물어볼 엄두가 나야 말이지!”
사실이었다.
아까 이미 기도소에 들어오자마자 기함했던 라키엘이었다. 자신을 보자마자 맨발로 달려나와 눈물로 반기던 신관들의 모습이라니. 너무나 극심하게, 179도쯤 돌아 버린 듯한 태도의 변화 때문에 얼마나 놀랐던지.
왜 이러느냐고 물어볼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신관들에게 붙잡히자마자 헹가래 17연타를 맞고서야 간신히 풀려났던 까닭이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저따위 열광적인 기도회를 열어놓는 중이었다. 그 어디에도 자신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건 뭐 거의 반강제로 묶여서 찬양당하는 기분이랄까.
“아니, 내가 무슨 광신도의 아이돌도 아니고.”
“아이돌 맞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뭐? 네가 아이돌을 알아?”
“예.”
“어떻게?”
“원룸에 있을 때 티브이로 봤습니다. 음악방송.”
“…….”
“방탄조끼단이 나오면 사람들의 반응이 딱 저렇더군요.”
“그런 거까지 봤어?”
“심심했으니까요. 전하께선 저만 내버려둔 채로 계속 어딘가로 쏘다니시고.”
“야. 그렇다고 티브이를 어떻게?”
“바닥에 굴러다니던 만져보다가 우연히 작동을 시켰습니다. 이것저것 눌러보기도 했고요. 덕분에 움직이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연극 비슷한 것도 봤습니다.”
“그림 연극?”
“예. 역대급 영지 설계사라고.”
“뭔 이상한 것까지 다 봤네, 쯧.”
“확실히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그런 게 그렇지 뭐. 어쨌건 일단 나가자. 나 여기 계속 있다간 닭살 돋아서 수명 줄어들 듯.”
“알겠습니다.”
라키엘은 도망치듯 기도소 밖으로 나왔다.
“어휴. 이놈의 마성의 매력 진짜.”
갑갑했던 숨이 그제야 탁 트였다.
하지만 그건 섣부른 착각이었다.
“……황태자 전하다!”
“전하아아!”
“여기 좀 봐주세요! 제가 이렇게! 원샷을 잘합니다!”
“저는 숨도 안 마시고 세 그릇을 들이켤 수 있습니다!”
“전하, 칭찬해 주세요!”
“…….”
거리로 나서자마자 사방팔방에서 달려오는 외침들. 얼굴도 잘 모르는 시민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 눈빛들이 마치 일일 10그릇 한정판 돈까스제육볶음을 먹으러 달려오는 사람들의 것처럼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라키엘은 기겁했다. 하지만 그런 기겁은 속으로만 갈무리를 했을 뿐, 적어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호통을 쳤다.
“어허! 줄을 서도록!”
무질서하게 달려들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쪽의 외침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우물쭈물, 이쪽의 눈치를 살피더니.
“전하께서 줄을 서라십니다!”
“1열 종대!”
“전하! 제가 제일 먼저 줄을 섰습니다!”
“저는 앞사람과 사회적 거리두기도 실천했습니다!”
“저는 새치기를 하려던 얌체 여자친구한테 이별통보도 했습니다!”
“저는 방금 이별 통보한 남자친구한테 올해의 모범시민상을 추천했어요!”
“…….”
이내 대로를 따라 기다란 줄이 만들어졌다. 그 모습을 보자니 절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겠다. 이렇게 줄까지 섰으니까, 여기가 임시 진료소가 되는 거겠지.
‘이대로 숙소로 들어가서 쉬기는 글렀네.’
하지만 나쁘진 않다.
전부 내 환자니까.
나를 보자마자 환호하며 몰려드는 사람들. 어떻게든 진료를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줄을 서는 사람들. 홀리워터탕의 올바른 복용방법을 물어보고, 쓴맛을 효율적으로 극복할 비결을 고민하는 사람들.
내게 진료를 받으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조금은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저렇듯 밝은 표정을 머금은 채 모여드는 사람들.
내가 언제 이렇게 모두에게 환영받은 적이 있었던가.
“…….”
잠깐, 아주 잠깐, 한국에서의 적막하던 텅 빈 진료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울컥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얼굴은 웃느라 바빴으니까. 손길은 맥을 짚느라 분주했으니까. 그래. 기쁨조차 누릴 틈이 없는 문전성시. 문득,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
누군가가 말했던가.
행복은 성적순…… 아니, 성과급 순이라고.
털썩!
난데없는 길거리 진료 퍼레이드(?)를 온종일 치른 이후의 저녁이었다. 밤이 이슥해서야 간신히 저녁밥을 챙겨먹은 라키엘은 녹초가 된 채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피곤했다.
노곤했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아직, 오늘의 성과를 점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보상, 보상을 보자……!’
딩동!
강렬한 염원에 화답하듯, 반나절 내내 확인하지 못하고 묵혀뒀던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대략 피폭 상태 진단에서부터 사소한 피부병, 계절성 감기, 비염, 안구건조증, 관절염, 뾰루지, 사춘기, 모태솔로 증후군(?)까지, 그야말로 갖가지 진료를 수도 없이 치르며 얻은 경험치가 보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당신은 예정에 없던, 반나절에 걸친 하드코어 버라이어티 진료 마라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빡빡하게 진행된 연속된 진료를 통하여, 당신은 각양각색의 병증을 진단하고 그에 걸맞은 처방을 제시하는 충실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또한, 당신은 방사선 피폭 진단에 대한 전례 없는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처럼 희귀한 경험이 당신의 커다란 자산이 되었습니다.]
[진맥 스킬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명 : 진맥 (중급 Lv.3)]
[대상의 맥을 짚어 건강 상태를 진단합니다. 진맥 결과는 <종합검진표>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일깨운 오장육부가 환자의 동일 부위 오장육부와의 상담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환자의 병증을 더욱 자세히 진단할 수 있습니다.]
[스킬 전용 옵션 : ① 경혈 스캐닝 / ② CT 출력]
오랜만에 진맥 스킬의 레벨이 두 단계나 상승했다. 성장한 것은 진맥 스킬만이 아니었다. ‘내 손은 약손’ 스킬도 오랜만에 올라서 초급 6레벨이 되었고, 침술도 초급 7레벨로 상승했다.
오장육부가 안겨주는 보상 또한 깨알처럼 빠지지 않았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헌신과 그에 따른 업적에 뿌듯해합니다.]
[심장 : 크으. 우리 몸뚱이 좀 쩐다. 반나절 마라톤 진료라니. 전엔 엄청 빌빌거렸는데 ㅠㅠ]
[허파 : 허…… 파학…… ㅜㅜ]
[대장 : 이 몸뚱이에 취직하길 잘했지 말입니다 ㅠㅠ]
[간장 : 처음엔 뭔 이런 직장으로까지 눈을 낮추냐면서 주위에서 은근 무시했는데ㅋㅋㅋ ㅜㅜ]
[위장 : 이놈의 몸뚱이는 술도 마음대로 못 마시고 ㅜㅜ]
[콩팥 : 그래도 근무환경 나아지는 게 체감이 되니까 또 느낌이 다른 듯ㅋㅋㅋ ㅜ]
[비장 : 난 요즘 직장이 어디냐고 물으면 엄청 뿌듯하게 대답함ㅎㅎㅎ]
[콩팥 : 직장은 보통 항문을 열면 있지 않음?]
[방광 : ……간장 형 말대로 정말로 눈을 낮춰야 하는구나.]
[심장 : 선생님들, 둘 다 이 몸뚱이에서 나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장육부로서의 품격을 지키지 못한 콩팥과 방광이 나머지 장기들의 지탄을 받습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발전과 업적에 기뻐하며 5,000 HP를 후원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32,600]
……나 조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
오장육부의 수다를 구경하던 라키엘은 실소를 머금으며 눈을 감았다. 노곤했다. 온몸이 추욱. 물먹은 솜처럼 침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그 속에서 의식이 점차 멍해졌다. 숙면. 완벽하고도 보람찬 숙면의 세상이 그를 맞이했다.
♣
며칠이 흘렀다.
치열한 진료의 나날이 이어졌다.
라키엘은 아침이 밝을 무렵부터 해가 질 때까지, 먹는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진료에 매달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피폭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거의 모든 이들이 진료에 너무나 협조적이었다. 원샷 페스티벌의 영향 덕분에, 남녀노소 홀리워터탕을 충실하게 복용하는 까닭이었다. 어느새 이 도시에서는 홀리워터탕을 한큐에 마시지 못하는 이는 제대로 사람 취급도 못 받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남자가 되어서 그거 하나 단숨에 못 마시느냐. 그래서 사내 구실이나 하겠느냐. 여자라면 응당 홀리워터탕 한 사발쯤은 호쾌하게 마셔야지 않겠느냐. 너 그렇게 깨작깨작 마시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그랬니 안 그랬니. 옆집 제임스 아빠는 두 그릇도 훌쩍 마신다는데 당신은 대체 왜 그래요. 자네, 식후 홀리워터탕은 제대로 들이켜고 월급 받아가는 건가. 어머나 홀리워터탕 마시는 데 사탕이 필요하다구요?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수군수군. 블라블라. 기타 등등.
어느새 홀리워터탕은 이 도시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김치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걸 창안한 라키엘은 건국신화에 버금갈 칭송의 대상이 되어갔다.
그 소식이 머나먼 하르미온의 왕도에까지 전해졌다. 굴욕적인 협정서를 지니고서 귀환한 1왕자 일행과 함께였다.
멀쩡하던 도시를 졸지에 빼앗긴 하르미온.
왕성과, 국왕과,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