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42화 (441/468)

442화. 집돌이를 끌어내는 법 (2)

이거, 미친 새x인가.

혹은, 미친 x끼인가.

국왕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까 낮에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서 황태자와 마주했던 때에 그러하였다. 그리고 반나절이 지난 지금, 함께 3왕자궁 앞에 와 있는 이 순간에도 그러했다.

덕분에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낮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완벽하게 똑같은 의구심이 계속 드는 걸로 봐서는 확실하다. 마젠타노의 황태자는 아무래도 진심으로 좀 미친놈인 거 같다고.

“그럼 준비는 되셨습니까?”

“……모르겠소.”

황태자의 물음에 국왕 하르난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모르겠다. 내가 준비가 된 것인지.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막내아들인 3왕자의 궁에 불을 질러 버릴 물심양면으로의 준비가 말이다.

“저런.”

라키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국왕에게 굳은 눈길을 던졌다.

“아까도 제가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우리는 오늘 3왕자궁에 불을 질러야 합니다. 왜냐. 그래야 귀국의 3왕자가 타인과의 만남을 주저하고 회피하는 끔찍한 저주에서 풀려나고, 비로소 제게 원활한 진료를 꾸준히 받을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정녕, 이 방법밖에 없는 것이오?”

“혹시 더 나은 방법을 떠올리셨습니까?”

“그건…….”

“있었다면 이미 동원하셨겠지요, 더 나은 방법. 하지만 지금껏 2년이 넘도록 그러지를 못하셨습니다. 그게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

“이제는 인정하실 때가 되지 않으셨나요?”

“하지만 나는…….”

“압니다. 아들의 궁에 불을 질러야 하는 이 초유의 사태가 얼마나 가슴 아프고 불안하실지가 말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귀국의 3왕자가 정말로 죽거나 다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걸 어떻게 보장하오?”

“제가 최대한 안전하게 불을 질러드릴 테니까요.”

“…….”

진짜 미친놈 맞네.

국왕 하르난트는 입 밖으로 나오려는 그 말의 발목을 간신히 붙잡았다. 대신 그는 황태자를 향해 되물었다.

“차라리 납치극을 꾸며서 녀석을 강제로 끌어내면 어떻겠소?”

“안 됩니다.”

“어찌하여?”

“그러면 3왕자궁이 여전히 남아 있게 될 테니까요.”

“그러면 좋지 않소?”

“안 좋습니다.”

“이유는?”

“3왕자의 마음속에 돌아갈 수 있는 심리적인 도피처가 여전히 남아 있게 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라키엘이 딱 잘라서 말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쯤에서 국왕께 묻겠습니다. 국왕께서는 3왕자궁이 통째로 불탔을 때에 발생할 재산상의 손해가 염려되는 것이십니까?”

“그건…….”

“3왕자가 온전한 몸으로 치료되는 쪽이 금전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훨씬 이득이지 않겠습니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말입니다.”

“그건 나도 동감이오.”

3왕자가 나을 수만 있다면.

하여 정상적인 후계 경쟁에 뛰어들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왕자궁 따위, 열 채라도 기꺼이 태우고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고도 전혀 아까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국왕이 물었다.

“하면, 지금 바로 그걸 실행하려는 것이오? 정녕코?”

“예. 그래서 이렇게 준비도 다 마쳤지 않겠습니까?”

라키엘이 어깨를 으쓱이며 뒤쪽을 가리켰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이미 미리 대피를 마친 3왕자궁의 시종과 시녀들이 좌르륵 도열해 있었다.

“국왕께서 이미 허락을 하셨고, 그 허락하에 진행된 준비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대피와 사전교육까지 끝마쳤습니다. 오늘의 일은 모두 꾸며진 일일 것이나, 이 일의 전말이 3왕자의 귀에 들어가선 절대 안 된다는 내용의 정신교육까지 말입니다.”

“크흠…….”

“덕분에 지금 저어기, 3왕자궁에는 진짜 시종과 시녀들 대신 훈련받은 기사들만 변장을 하고서 대기하는 중입니다. 물론 3왕자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채로 꿈나라에 가 있겠지요. 지금 시간이 자정이 훌쩍 넘었으니까 말입니다?”

“흐음…….”

“그러니 3왕자는 안전할 겁니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을 거니까.”

“믿어도…… 되겠소?”

“믿으니까 허락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

국왕 하르난트는 침묵했다.

사실은 맞다.

믿었기에 허락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도 황태자가 이런 수고를 들이면서 3왕자에게 위해를 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3왕자는 이미 지금만으로도 없는 것보다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국왕으로서는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였다.

“……알겠소.”

오늘따라 유난히 밤이슬이 차갑다. 특히 이제 곧 불타 사라지게 될 아들의 궁 근처인 이곳은 어찌나 더 서늘하게만 느껴지는지.

“그럼, 3왕자궁에 대한 방화 작전을 허락하는 바이외다.”

“감사합니다.”

마지못해 끄덕여진 국왕의 고갯짓.

라키엘이 만족하며 웃었다.

그렇게 방화가 시작되었다.

작전의 스타트는 라키엘의 신호를 받은 하르미온의 궁정마법사가 끊었다.

딱!

마력을 모은 마법사가 손가락을 튕기며 수인을 맺었다. 잠시 후, 3왕자의 침실 창문에 마력에 의해 생성된 불길이 붙었다.

처음에는 창틀 아래쪽에 수줍게. 그러나 창틀 테두리를 따라 옮아가며 커지다가. 마침내는 창틀을 완전히 둘러싸면서 맹렬하게 활활.

타다닥! 타탁!

3왕자의 침실 창문마다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길이 그 이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연기 또한 창문 안쪽으로 유입되지 않았다. 다른 마법사들이 시전한 돌풍 마법이 연기를 바깥쪽으로 계속해서 날려 보낸 덕분이었다.

‘좋아. 다음 단계.’

라키엘이 2차 신호를 보냈다.

이번에 신호를 받은 이들은 복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던 근위기사들이었다.

“불이야! 불이야아!”

“물! 물을 빨리 가져와!”

“양동이! 서둘러!”

“끄아악, 바지에 불길이!”

“콜록! 콜록! 엄마아!”

시종, 시녀로 변장한 채 대기 중이던 근위기사들이 나름의 열연(?)을 펼쳤다. 다들 복도에서 들으란 듯이 우당탕 쿵쾅 다급하게 뛰어다녔다. 당황한 듯한 외침과 비명을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일부는 3왕자의 침실 문 손잡이에 빗장을 걸었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바깥에 테이블로 바리케이드를 쌓기까지 했다. 3왕자가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 진가(?)가 곧 드러났다.

덜컥! 덜컥!

“……헉, 허억?”

3왕자, 크리스탄 리니에르 하르미온은 침실 안쪽에서 문을 열려다가 당황했다. 문이 열리지가 않았다. 아무리 당겨도 문이 꿈쩍도 안 했다. 밀어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3왕자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그저 곤히 자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암울한 하루를 보냈고, 지친 마음으로 탄식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지난 2년간 매일 그랬던 것처럼 눈물로 젖은 베개를 끌어안고서 잠이 들었다.

괴물 같은 흉측한 몰골.

이런 꼴이 된 자신이 싫었다. 사실은 스스로 죽을까 몇 번이고 고민을 했다.

하지만 쉽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조국 하르미온의 미래가 너무 어두워질 듯하여서. 자신이 보아도 인성과 능력에 하자가 있는 형들이 이 나라의 앞날을 수렁에 빠뜨릴 듯하여서. 그걸 방관하는 것은 왕족으로 태어난 자신의 핏줄과 사명에 대한 파렴치한 배신이 될 듯해서.

차마 죽지를 못하였다. 오늘도 마지못하여 절망 속의 희망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눈물로 가득한 바다를 건너는 꿈.

그 끝에 마침내 맞닿은 여정의 끝.

꽃으로 가득한 섬으로의 불시착.

사방에 흩날리던 꽃잎.

온몸을 스치던 잎사귀.

그때마다 만신창이로 진물이 흐르던 피부가 매끈해졌다. 흉한 딱지와 노란 진물이 사라졌다. 스스로도 잊고 있던 뽀얀 살갗이 되살아났다. 눈물이 났다. 보면서도 꿈이라는 게 느껴져서. 허무하고 아름다워서. 그래서 눈물로 젖은 베개를 꽉 움켜쥐고서 눈을 떴던 것 같다. 한숨을 내쉬지 않으려고. 그까짓 꿈 때문에 느꼈던 신기루 같은 환희에 들뜨지 않으려고.

그렇듯 행복한 꿈을 꾼 여느 날처럼 마음을 다잡고서 눈을 떴는데.

그런데…….

“불이야아악!”

저런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어째서인지 자신의 궁에 불이 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복도를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시종들의 발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창밖은 더 가관이었다. 창문마다 시뻘건 불길이 넘실거렸다. 매캐한 냄새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게다가 지붕은 불길한 소음을 삐걱대며 연신 몸을 비틀어댔다.

‘설마…… 지붕에 불이 붙어서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는 몰랐다. 지붕에서 기사들이 열심히 널뛰기(?)를 뛰고 있다는 사실을.

불안감이 콱 몰려왔다.

싫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

비참하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이런 식으로의 끝맺음을 원한 적은 정녕코 없었다.

‘나는 여기서 죽을 순 없어!’

이 나라에.

이 왕실에.

기댄 수많은 백성들의 삶과 평안이 내 어깨에 걸려 있다. 그러니 여기서 허무하게 죽으면 안 된다. 그건 죄악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미래를 도모하고 싶다. 지금은 비록 이렇듯 추한 몰골이라 해도, 언젠가는 꼭 나아서 사람들 앞에 서고 싶다.

하지만…….

“누구! 아무도 없느냐!”

쾅쾅쾅!

밀고 당겨도 요지부동인 문을 애타게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딘가에선 바삐 뛰어다니는 시종들의 발소리가 들리건만, 정작 자신의 외침에 화답하는 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이 3왕자를 절망스럽게 했다.

‘내가 평소에 내려둔 명령 때문인 건가?’

그 누구도 침실에 발을 들이지 말라 하였다. 어긴다면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엄명과 함께였다.

식사?

문 앞에 두고 가라 하였다.

청소와 정돈?

가끔씩만 맡겼다.

그만큼,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싫었다.

수치심 때문에?

부끄러워서?

그것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사실은 훗날의 자신을 위해서 미리 이미지를 관리하고자 하는 이유가 더욱 컸다.

3왕자는 자신이 언젠가 나을 수 있다고 여겼다. 비록 지금은 흉측한 몰골이라 할지언정, 훗날에는 멀쩡한 상태로 돌아가 왕위 경쟁에 뛰어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치료를 위한 노력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매일 기도했다. 주신 오르무스를 향하여. 온종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습을 숨겼다. 지금의 흉측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미래의 완치된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이렇게 궁에 불이 난 상황에서까지 자신의 엄명을 철저하게 지키며 아무도 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누가 좀! 여기로 와다오!”

애타게 외쳤다.

주먹이 아프도록 문을 쳤다.

그러나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때마다 절망감이 시시각각 심장을 쿵, 쿵, 두드려 왔다. 마치,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미래를 현실로 불러와 생명을 앗아가려는 듯이. 자신이 애타게 품어온 희망과 소망을 모조리 태워 버리려는 듯이.

‘나는…….’

여기서 죽기 싫어.

이러려고 악착같이 버텼던 게 아니야.

“끄, 끄흑……!”

무섭다.

허망하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시시각각 뜨거워지고 매캐해지는 고립된 침실에서 3왕자는 애타게 염원했다. 지금 누구라도 좋으니 와 달라고. 와 주기만 한다면, 그게 누구이든, 평생 자신의 은인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그가 원하는 어떤 것이라도 하나쯤은 반드시 들어줄 거라고.

신에 대한 신앙을 걸고서 절실하게 빌던 순간이었다.

콰장창!

“……!”

별안간 침실 창문이 깨어졌다. 사람 형체의 실루엣이 깨진 유리조각 사이로 뛰어들어와 착지했다. 처음 보는 은발의 남자. 그가 이쪽을 보더니 어쩐지, 광고 멘트처럼 들리는 엉뚱한 소리부터 노골적으로, 대뜸 꺼냈다.

“어라? 여기에 왜 약만 잘 쓰면 금.방.나.을.수.있.는.피.부.병.환.자.가 있는 거지?”

“…….”

3왕자가 라키엘 홀릭 클럽의 신규 회원으로 등록 쾅쾅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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