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44화 (443/468)

444화. 통풍과 환기가 중요한 이유 (1)

떨린다.

이렇게나 떨릴 수가 있을까.

하르미온의 3왕자, 크리스탄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심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중천으로 떠오르며 짧아진 그림자가 창가에 드리워 있었다. 예정된 약속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곧 그가 이곳으로 오겠지. 자신을 진료하러.

‘마젠타노의 황태자는 의술로 명성이 드높은 인물이란다. 그런 그가 이곳에 와 있는 지금이 치료의 더없는 기회가 아니겠느냐.’

……라고 당부하시던 부왕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 들은 적이 있다. 마젠타노의 황태자는 손수 병원을 세우고 수많은 이들을 진료하기를 즐긴다 하였던가.

그러면 그때 그 말도, 그래서 꺼낸 거였겠지.

‘어라? 여기에 왜 약만 잘 쓰면 금.방.나.을.수.있.는.피.부.병.환.자.가 있는 거지?’

“…….”

그때 그 멘트는 아무리 돌이켜봐도 조금 홍보성이 느껴졌는데. 혹은, 맛깔나는 재료를 눈앞에 둔 요리사가 눈을 번득이는 모습 같기도 했고.

지난밤의 일을 떠올리던 크리스탄은 문득, 콧등을 찡그렸다.

‘하지만…… 내가 이교도의 치료를 받게 될 줄이야.’

그동안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열심히 기도에 매달렸던 자신이었다. 한데 그 결말이 이렇듯 이교도의 치료라니.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허무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여 자신도 부왕에게 되물었더랬다.

다른 이도 아닌 자신이, 하르미온의 왕자인 자신이, 국왕이자 오르무스의 대변인인 자의 아들인 자신이, 이렇듯 이교도의 치료를 받아도 되는 것이냐고.

그랬더니 부왕이 복잡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던가.

‘참회는 내가 하겠다.’

……라고.

그 결론이 이거다. 자신이 황태자와의 첫 진료를 앞두고서 긴장감에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게 된 것이 말이다.

‘내 모습, 괜찮을까.’

긴장감과 함께 걱정이 들었다.

황태자가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내심 질겁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겉으로는 질겁한 속내를 숨기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엿보이는 특유의 어색한 눈빛과 미묘한 표정을, 자신이 감지해 버리는 건 아닐까.

“…….”

또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은데.

그런데 영 자신이 없다.

어젯밤, 황태자가 이쪽을 봤을 때는 사방이 어두웠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달리 햇볕이 너무나 쨍쨍하니까. 숨을 곳조차 없으니까.

그때였다.

똑똑똑.

“마젠타노의 황태자가 드십니다.”

노크와 함께 늙은 시종장의 푸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은발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지요.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입니다.”

“……아.”

“3왕자, 맞으시죠?”

“아, 크리스탄 리니에르 하르미온입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황급히 인사했다.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돋아났다. 시선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고개를 들어야 할지, 숙이고 있어야 할지, 두 손은 왜 이다지도 둘 곳 없이 어색한지. 그 와중에도 나는 왜 이렇듯 황태자의 기색부터 민감하게 살피는 것인지.

“어젯밤에 잠깐 보고 이제야 다시 제대로 뵙게 됐군요. 정식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별달리 다친 곳이 없어 보여서 더욱 다행이고요.”

“아, 예…….”

“혹시 호흡이 불편하거나 잔기침이 나오진 않습니까?”

“아마도, 요?”

“호흡기에 대미지는 없으신 거 같고.”

“…….”

고맙습니다.

어젯밤에 절 구하러 달려와 주셔서.

황태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괜히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부터 들어서였다.

그런데 황태자는 전혀 별다른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신경도 쓰지 않는 느낌이었다.

“다행이군요. 그럼 환부를 좀 보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였다.

황태자가 대뜸 손을 쑥 뻗어왔다.

“……!”

스륵.

피할 틈도, 반응할 여유도 없었다.

황태자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손길이 이쪽의 덮어쓰고 있던 후드를 잡았다. 걷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덕분에 후드를 덮어써서 가리고 있던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그, 어엇!”

뒤늦게 당황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 했다. 괴물. 끔찍한 흉물.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최소한 마음의 준비라도 충분히 한 뒤에 내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듯 다짜고짜, 양해도 구하지 않고서 후드를 젖혀 버리다니. 수치스러웠다. 화가 났다.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기분으로 황태자를 쏘아보았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생각했던 대로 안면에도 많이 번졌네요. 두피 쪽으로도 심하고. 시간이 좀 걸리겠어요.”

“…….”

“목덜미도 봅시다. 귀 뒤쪽, 흐음. 다행히 진물이 심하진 않고. 가렵진 않았어요?”

“조, 조금…….”

“그래도 많이 긁진 않은 거 같네요.”

“긁으면 피가 나는 거 같아서…….”

“잘했어요. 안 긁는 거 중요하니까.”

“…….”

그 순간, 3왕자는 라키엘로부터 미증유의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

그것은 포근한 무심함이었다.

‘뭐지?’

이상했다.

자신을 보는 황태자의 눈빛이 이상했다.

흉한 몰골에 혐오감을 내비치는 눈빛은 아니었다. 혹은, 이쪽의 모습에 느낀 역겨움을 참아내며 억지로 웃는 기색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럭무럭 피어나는 동정심을 담은 자애로운 시선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자신을 향한 황태자의 시선은 마치…….

‘길가의 돌멩이를 보는 거 같아.’

무심했다.

시큰둥했다.

그저 겉으로 꾸며낸 무심함과 시큰둥함?

절대로 아니었다.

‘그건 내가 잘 알아. 혐오감을 숨기려고 동정심을 느끼는 척, 혹은 무관심한 척 보내는 눈빛은 수도 없이 받아봤으니까.’

그런데 지금 황태자의 눈빛은 자신이 수없이 느꼈던 그 눈빛들과 결 자체가 달랐다. 그냥 진짜로 무심하고, 무관심하고, 그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는, 그런 눈빛이었다.

‘꼭…… 지루한 공부를 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그래서 놀라웠다.

자신을 이런 관심 없는 눈빛으로 보아주는 사람이 있었나. 아니. 없었다. 처음이었다. 신선했다.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그래서 안심이 됐다.

‘내 상태에 어떤 감정도 못 느끼는 사람이라니.’

혐오감도.

동정심도.

그 밖의 감정도 없이 그저 심드렁함만 내비치는 황태자 덕분이었다. 3왕자는 뜻밖의 해방감을 느꼈다. 후드를 뒤덮어 쓰고 있던 때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저도 모르게 황태자에게 이런 질문을 먼저 건네었을 정도로.

“내 모습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3왕자는 자신의 입으로 물어놓고서야 뒤늦게 흠칫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멍청한 질문을 꺼냈다고. 이로써 황태자가 자신에게 어떤 형태로든 감정을 내비치게 될 거라고. 혐오감. 혹은 동정심. 둘 중의 하나겠지. 아마도 동정심을 내보일 확률이 좀 더 높을 거고. 괜찮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이쪽을 안심시키려 들겠지. 수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런데…… 아니었다.

“3왕자님의 모습이요? 당연히 이상하죠.”

“……예?”

너무나 태연한 대꾸. 3왕자 크리스탄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하지만 이어지는 황태자의 대답은 더욱 뻔뻔했다.

“이상하니까 제가 치료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무슨…….”

“그런데 말입니다. 3왕자께서는 사람이 이상하지 않은 순간이 얼마나 될 거라고 보세요?”

“네?”

“원래 사람은 대부분의 순간에 항상 좀 이상합니다. 사지 완벽하게 멀쩡하고 안 아픈 사람은 좀처럼 없거든요. 그래서 의사가 굶어 죽을 일이 없는 거기도 하고 말이죠.”

“그게, 무슨 뜻입니까?”

“3왕자께서 이상한 게 딱히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

특별하지가…… 않다고?

황태자의 말이 이어졌다.

“3왕자님의 모습이 좀 이상하게 보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무좀인 거잖습니까. 그럼 치료하면 되지. 다 나으면 괜찮아지는 건데요 뭐.”

“…….”

“이거랑 감기 걸려서 콧물 졸졸 흐르는 거랑 본질적으로 뭐가 다릅니까. 그냥 둘 다 잠깐 아픈 건데.”

“…….”

“그러니까 후딱 진료나 봅시다.”

“…….”

3왕자는 할 말을 잃었다. 황태자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가 충격적이었다. 특별하지 않다니. 별거 아닌 거라니.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래서인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자신을 끔찍하도록 괴롭힌 이 저주가 생각보다 쉽게 나을 것 같다는 희망이 엿보인 것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 버린 것은.

그런 3왕자의 모습에 라키엘은 내심 만족스러운 미소를 삼켰다.

‘후우. 이걸로 진료의 0단계, 통과.’

환자의 신뢰를 얻었다.

환자가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길 준비가 되었다.

덕분에 안도감이 들었다.

환자의 믿음을 사는 것.

그것이 생각보다 매우, 정말 많이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 라키엘의 지론인 까닭이었다.

‘당연하지! 환자도 고객인데!’

사실 병원을 다녀본 사람들은 안다. 병원에 가는 일은 귀찮다. 내 시간과 체력과 비용을 들여가며 찾아가야 하는 곳이 병원이다. 간다고 딱히 즐거운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따끔한 침이나 주삿바늘이 반겨줄 뿐이다. 쓰디쓴 약과, 고된 치료의 과정들이 즐비하게 펼쳐지는 공간일 뿐이다. 게다가 사람 붐비는 시간에는 수납 대기 시간만도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

‘그럼에도 아프니까 결국엔 억지로라도 가야 하는 곳이 병원이지. 그래서야. 환자들은 병원에 가는 일을 자신의 기회비용을 소비하는 행위로 여겨. 즉, 내가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면서 가는 병원을 신중하고 까다롭게 고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한데 그런 환자들이 신뢰가 가지 않는 병원과 의료인에게 자신의 몸을 선뜻 맡기겠는가. 아니. 절대로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가던 병원이라도 뭔가 믿음이 깨져 버리면 당장 다른 곳을 검색하게 되는 것이 환자의 마음이니까.

‘그래서, 그걸 관리하지 못했던 내 한의원이 한국에서 망했던 거기도 했고.’

잠깐 떠오르는 씁쓸한 기억은 재빠르게 커트!

라키엘은 쓴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럼 일단 진맥부터 합시다. 손목을 좀 볼까요.”

“네?”

“손목, 소매를 걷어서 내밀어 보시라구요.”

“이, 이렇게요?”

“예. 잘하셨습니다.”

라키엘의 손이 손목에 닿는 순간, 3왕자는 흠칫했다. 그리고 내심 놀랐다. 자신의 이런 몸과 닿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타인이라니. 이 또한 처음이었다. 하여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로, 나는 이 사람이 말하는 모든 치료를 기꺼이 믿으며 받을 수 있겠노라고. 치료를 위하여 이 사람이 하는 말은 전부 따를 수 있겠노라고.

“흐음.”

자신의 손목을 가만히 잡고서 눈을 감고 있는 모습도 이제는 조금 멋있게 보였다. 한편으로는 황태자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가 되었다. 의술로 명성이 드높다는 세간의 평가. 그에 어울리는 획기적이고도 효과 만점인 치료 방법을 제시하겠지.

그때였다.

“역시. 전신 무좀이군요.”

진맥이라는 걸 마친 걸까.

황태자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무좀이라시면?”

“환부가 좀 넓기는 한데, 질환 자체로만 보면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닙니다.”

“그러면…….”

“열심히 치료를 해야겠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3왕자는 기대감에 가슴이 뜀을 느꼈다.

완치될 수 있을 것이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왕위를 이어갈 자격을 얻을 것이다. 내 꿈을 펼치고,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마침내 역사서의 한 페이지를 멋진 성군의 찬사로 채워가겠지.

……라고 2심방 2심실을 쿵덕거리던 순간이었다.

“발가벗읍시다.”

“……예?”

“면역력 증진을 위한 체질 개선과 약물치료는 당연히 기본이고 말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좀 벗고 지내자는 말입니다.”

“벗자는 말씀은…… 옷을요?”

“예.”

잠깐만. 뭐지. 방금 내 귓구멍이 무슨 소리를 접수한 거지. 3왕자는 깊은 산 속 옹달샘이 말라붙을 듯한 당혹감을 느꼈다.

황태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빵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당분간은 장소와 상황을 불문하고 24시간 내내 훌러덩 발가벗고 지내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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