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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445화 (444/468)

445화. 통풍과 환기가 중요한 이유 (2)

“그러니까 말입니다. 당분간은 장소와 상황을 불문하고 24시간 내내 훌러덩 발가벗고 지내셔야겠습니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방금 내 소중한 고막은 이 세상의 어떤 참신한 멍멍이 소리를 접수한 걸까. 3왕자 크리스탄은 대단히 당황하려는 2심방 2심실을 퍽퍽 눌러놓고서는 간신히 되물었다.

“저기…… 제정신이십니까?”

나름의 용기를 한껏 끌어모은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황태자가, ‘아하하하 역시 그건 좀 너무한 농담이었죠?’라고 반응해 주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3왕자가 잠시나마 소중하게 품었던 소망은 약 0.5초 만에 정면으로 부정당하고 말았다.

“네. 매우 제정신입니다.”

“…….”

“제가 원래 진료를 할 때는 농담을 잘 안 하는 편이거든요.”

“…….”

아니 그걸 그렇게까지 정색하면서 대답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3왕자는 울고 싶어졌다.

“그럼 혹시 은유나 비유인 겁니까?”

“은유? 비유?”

“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훌러덩 벗은 듯한 편한 마음으로 지내라는 뜻이라든가.”

“진료가 장난이에요?”

“……네?”

“그렇게 둘러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시간 아깝게.”

“…….”

“그냥 벗으라고요. 홀딱 벗고 지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

“3왕자님? 헬로우?”

“네에……?”

“괜찮아요?”

“저, 모르겠습니다?”

“으음, 확실히 눈동자가 잠깐 풀렸던 거 같기도 하고.”

“…….”

아버지.

아바마마.

존경하는 부왕이시여.

어쩌면 당신께서는 틀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술로 명성이 드높은 황태자? 이제 보니까 그거, 조금은 잘못된 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3왕자는 아라비아 유전처럼 쑴펑쑴펑 솟구치는 의구심을 느끼며 물었다.

“제가 왜, 옷을 다 벗고 지내야 한다는 겁니까?”

“그래야 피부가 나아질 테니까요.”

“피부가……요?”

“그렇죠.”

라키엘이 송곳니를 반짝이는 듯한 미소를 크르릉 머금었다.

“대부분의 피부 질환에는 통풍이 중요합니다. 상큼상큼 앤드 뽀송뽀송. 특히 무좀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사실이었다.

피부병, 특히 무좀은 통풍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한 번이라도 무좀 때문에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통풍이 안 되는 구두나 부츠를 온종일 신어야 하는 일이 무좀에 최악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 보기 숭한 발가락 양말도 일부러 찾아서 신기까지 하는 거지. 발가락 사이가 딱 맞붙어 있는 사람들은 통풍이 안 되니까. 그렇게 온종일 살갗이 닿아서 공기가 안 통하면 무좀 진균이 번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니까.’

그렇기에 발가락 양말을 신어서라도 발가락 사이를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다시 한번 되새기는 거지만 상큼상큼 앤드 뽀송뽀송, 정말로 중요하다.

한데 그런 무좀이 전신이 번져 있는 3왕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3왕자궁의 침실에서만 지냈을 겁니다. 바깥출입, 마지막으로 해본 게 언제였죠?”

“그건…….”

“몇 년은 됐죠?”

“……네.”

“그러면 안 되는 거거든요. 쯧쯔쯧!”

라키엘은 절로 샘솟는 안타까움을 가득 담아서 혀를 찼다.

“게다가 종종 후드나 이불, 망토 같은 걸 전신에 덮어쓰고 지냈지요?”

“아, 예.”

“그거, 언제마다 교체했습니까?”

“교체라니요?”

“며칠에 한 번씩 갈아입었느냐고요.”

“어, 한…… 열흘 정도……?”

“으이그, 무좀을 아주 둥기둥기 키우셨네, 키우셨어.”

“…….”

“실내 환기도 잘 안 했죠?”

“그건…….”

“안 했겠죠. 덕분에 공기 가득 퍼져 있는 무좀 진균이나 포자랑 365일 짝짜꿍 했을 거고.”

“…….”

“덕분에 알게 모르게 주위 사람들이 제법 전염됐을 겁니다. 식사를 건네주기 위해 잠깐 침실 문을 열었던 시종이라든가. 3왕자님이 쓰던 침구를 걷어가서 빨래를 해야 했던 시녀들이라든가. 다들 발이며 손톱에 변형이 생겼겠지요. 환자분의 그 질환, 알고 보면 전염력이 엄청나니까 말입니다.”

“그, 그 정도만으로도 전염이 됐다고요?”

“예, 충분히. 환기를 잘 안 하셨으니까 더더욱이요.”

“……죄, 죄송합니다.”

“저한테 죄송할 거 없고요. 주위 사람들이나 본인 스스로한테 미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몰라서 그런 거니까. 이젠 알았으니까.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그,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말했잖아요? 훌러덩.”

“…….”

“다 벗고 지내시라니깐.”

“하, 하지만…….”

3왕자는 난감함을 느꼈다. 이제 황태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다. 어느 정도 이해도 됐다. 황태자가 말하는 ‘훌러덩’이 자신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당혹스러웠다.

“그렇지만, 당부처럼 다 벗고 지내자면…….”

“왕족으로서의 권위와 체면이 안 선다는 거지요?”

“……예.”

그것이 문제다.

벌거벗은 왕자님이라니.

시종과 시녀들이 다 보는 가운데 나체로 다녀야 한다니.

‘차라리 어딘가로 떠나 버릴까.’

아니면 그냥 콱 죽어 버릴까.

안 그래도 흉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3왕자였다. 단순히 수치스러워서가 아니라, 미래의 왕위를 경쟁할 자신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이미지 관리적 차원에서의 노력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훌러덩 파티라니. 3왕자는 자신이 열일곱 살의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도전(?)과 직면했음을 온몸으로 절감해야 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놀랄 겁니다. 나체라니. 심지어 이런 모습으로 나체라니.”

“괜찮습니다.”

“괜찮다고요?”

“예.”

“어떻게…… 말입니까?”

3왕자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느꼈다. 황태자가 괜찮단다. 그렇다면 뭔가 따로 마련한 묘안이나 대책이 있으리라는 뜻이렷다?

그러나 돌아오는 황태자의 대답은…….

“제가 훌러덩 벗는 게 아니니까요.”

“…….”

x발 한 대 때릴까.

하지만 3왕자가 분노의 급발진을 하기 직전, 라키엘이 진짜로 염두에 두었던 묘안을 먼저 밝혀 주었다.

“그냥 안 보이는 곳에서 훌러덩,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안 보이는 곳에서요?”

“예. 안 보이는 곳.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

라키엘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왕족이잖습니까. 이 나라의 최고 권력 가문인데 그런 장소를 마련하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어디 해변가를 통째로 비운다든가. 이곳 왕성의 정원 한 구역을 임시 통제 구역으로 만들어서 혼자 지낸다든가.”

“그, 그럼 식사 같은 건…….”

“전달받으면 되잖아요? 그건 내가 해줄 거고.”

“황태자께서…… 제 식사 같은 걸 말입니까?”

3왕자는 깜짝 놀랐다.

시종도 시녀도 아닌 황태자다. 무려 제국의 황족이며, 황위 계승 서열 1위인 존재다. 솔직히 지금 이렇듯 대등하게 말을 섞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하물며.

“그건 조금, 말이 안 됩니다.”

이 제안은 받으면 안 된다. 자칫 추후에 마젠타노에서 이 일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황태자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어깨만 으쓱였다.

“말이 되죠. 내 환자인데.”

“……네?”

“의료인이 자기 환자 식사며 챙겨주는 게 무슨 대수라고.”

“…….”

“아, 혹시 마젠타노에서 문제 제기를 할까 봐 걱정하는 거라면 그 걱정은 내려놓으시고요. 우리 황제 폐하가 그 정도로 쪼잔하진 않으시니까.”

“그래도 진짜로 문제 제기를 하신다면, 어떡하실 겁니까?”

“가출할게요.”

“네?”

“그 양반 내가 고집부리면 못 이기거든. 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좀 그런 편이라서.”

“…….”

“어쨌건, 내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도 싫습니까? 치료, 안 받을 거예요”

“아…….”

“받는다고요? 잘 생각했습니다. 훌러덩 장소 섭외는 그쪽이 알아서 하시고.”

“…….”

“그럼 잠깐 순서가 바뀌긴 했는데, 그쪽이 앓고 있는 무좀의 정확한 정체를 알려주겠습니다. 무좀입니다. 그중에서도 백선균, Trichophyton rubrum에 의한 감염입니다. 보통은 이게 발에만 증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환자분의 경우는 면역력이 조금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서, 이놈들이 피부 전체로 증식을 해 버렸어요.”

“그…… Tri…… 뭐라고요?”

“줄여서 T. rubrum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그냥 무좀으로 퉁치죠. 전신 무좀.”

라키엘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이건 세균이나 바이러스와는 또 다른 녀석입니다. 일종의 곰팡이죠. 실제로 곰팡이 친척이니까. 즉, 이놈은 세균이 아니라 인간과 같은 진핵생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균보다 죽이기가 훨씬 힘들죠. 세균의 세포막을 공격하는 원리의 항생제가 들지가 않거든요.”

“…….”

“해서 항진균제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약이 좀 독해요. 말 그대로 인간이나 동물과 먼 친척뻘인 곰팡이균을 죽이려고 만든 약이라서, 이게 인간의 세포에도 제법 타격을 주거든요. 간에도 안 좋고. 그래서 약을 쓰는 동안에는 절대로 술을 먹으면 안 되고. 혹시 술 좋아합니까?”

“아, 아뇨.”

“다행이군요. 어쨌든 이제 환자분이 어떤 질병과 싸워야 하는지 잘 알겠죠?”

“어,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질병?”

“쓰읍. 풍문에는 하르미온의 3왕자가 똘똘하다고 했는데.”

“…….”

“농담이고요. 원래 이게 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운 개념일 수 있어요. 이해합니다.”

“진료하실 때는 농담, 안 한다고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원래 인생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니까요?”

“…….”

“주먹 펴시고요.”

“…….”

“어쨌건 그래서, 앞으로는 준비된 장소에서 훌러덩 벗고 지내면서, 제가 조제해 드리는 약을 먹게 될 겁니다.”

“약을요?”

“예. 일단은 면역력 증진을 위한 탕약이 있을 거고. 나머지는-”

“나머지는……?”

“이렇게 준비를 좀 해야겠네요.”

“예?”

무슨 뜻인지 아리송한 말만 꺼내는 황태자. 덕분에 3왕자가 의아함을 느끼려던 순간이었다. 별안간, 황태자가 손을 쑥 뻗어왔다. 3왕자의 팔뚝을 꽉 움켜쥐었다.

“아앗?”

3왕자는 깜짝 놀랐다.

아까 진맥을 받던 때와는 달랐다. 아까가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터치였다면, 지금은…….

“아, 아픕니다!”

너무나 꽉 움켜쥐었다.

깜짝 놀라서 외쳤다.

그러자 황태자가 손아귀를 풀었다. 그리고…… 신발을 벗더니 자신의 발에 손을 비벼댔다. 방금 이쪽의 팔뚝을 꽉 움켜쥐었던 손으로였다.

“저, 저기요?”

3왕자는 조금 전보다 더 놀라고 말았다. 이쪽의 엉망진창인 환부를 움켜쥐더니, 그 손으로 제 맨발을 만져대는 황태자. 덕분에 3왕자는 아까 들었던 말을 떠올려야 했다.

“전염…… 잘 된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아까 분명 황태자가 말했다.

자신의 질환은 전염력이 엄청나다고.

환기가 덜 됐던 자신의 침실 입구에 잠깐 들어온 시종, 자신이 쓰던 침구를 걷어가서 빨래를 했을 시녀들, 그들 대부분이 알게 모르게 무좀에 걸렸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황태자는?

그런 무좀투성이인 자신을 ‘움켜쥐었다.’

심지어 그 손으로 제 발바닥을 마구 문지르고 있다!

“그, 그만두십시오!”

다급해져서 외쳤다.

행여나 황태자가 전염될까 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한데 황태자는 오히려 씨익 웃기까지 했다.

“그만두면 안 되죠. 연구, 해야죠.”

“네?”

“연구해야 한단 말입니다. 무좀 퇴치용 항진균 한방 연고.”

“그게 무슨…….”

“그냥 여유롭게 개발만 하려면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거 같아서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제일 간단하고 빠른 길이라서.”

“…….”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짐작 또한 되지가 않는다.

황태자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걸까.

그렇듯 3왕자는 조금은 어처구니가 상실된 눈빛으로 황태자의 기행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성공적(?)으로 무좀에 감염된 라키엘은 자신의 몸을 꼬슴이표 검정색 K-맛 가시로 찔렀다. 본격 항진균 한방 연고의 초고속 개발을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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