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화. 훌렁훌렁 훌러덩이라는 신세계 (1)
무좀은 끈질기다.
무좀은 사채업자보다도 집착이 심하다. 무좀을 완전히 박멸하는 건 바퀴벌레를 일망타진하는 것보다도 빡세다.
실제로 무좀에 걸려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내용일 것이다. 정말이니까. 실제로 그러하니까.
라키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아. 내가 살다살다 또다시 무좀에 걸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셀프로 말이다.
“……푸흐.”
새록새록 간질간질해지는 발가락 사이의 감각을 느끼며, 라키엘은 절로 흘러나오는 한숨을 푹 쏟아냈다. 그리고 제법 오래된 과거, 한국에서의 한때를 회상했다.
훈련소에서였다.
무좀에 당첨(?)되었다.
처음엔 무좀인 줄도 몰랐다. 그저 간질거렸다. 그러다가 발가락 사이와 주변의 피부가 홀라당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하지만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의무대에 갔더니 빨간약만 발라줬지!’
고약한 농담?
절대로 아니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정말로 저랬다.
어디가 깨져서 온 병사와, 찢어져서 온 병사와, 피부병이 생겨서 온 병사가 다들 똑같이 빨간약 세례(?)를 받고는 막사로 돌려보내지곤 했으니까.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그때부터 전경 생활이 끝날 때까지 무좀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대 진짜 별의별 짓을 다 했지.’
발가락 양말은 기본이었다. 식초에 발 담그기? 당연히 해봤다. 시중에서 팔던 ‘Px 정’에 ‘정x환’ 가루를 낭낭하게 타서 발을 담가도 봤다.
결과? 발 전체의 피부 한 겹이 통째로 삭아서 상큼하게 벗겨지는 바람에 죽도록 개고생만 했다.
그러고도 죽지 않던 무좀은 사회에 돌아오고 나서야 자연히 사라졌다. 더 나은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어서? 아니. 생활습관이 바뀐 덕이 가장 컸다.
‘온종일 통풍도 안 되는 워커 신고 뛰어다니지 않아도 됐거든.’
거기에 각종 약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무좀이 사라졌다. 물론 말로는 간단하게 끝난 것 같지만, 결코 쉬운 나날은 아니었다.
처음 훈련소에서 무좀에 당첨됐던 이후로 약 6년이 지났을 무렵에야 무좀이 사라졌던 거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야. 무좀은 결코 쉽게 죽지 않아. 적절한 환경과 처방이 갖추어져도 무좀 진균이 완전히 박멸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기 십상이지. 게다가 진균을 어설프게 다 죽이지 않은 채로 치료를 끝내 버리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져. 내성을 갖춘 더 강력해진 무좀에 시달리게 되거든.’
그게 무좀 치료의 가장 엿 같은 부분이다.
그래서였다.
라키엘은 그 ‘시간’을 단축하고 싶었다.
‘빠른 연구가 필요해.’
그래서 일부러 3왕자의 무좀 진균을 자신의 발에 옮겼다. 셀프 감염에 당첨되었다. 그리고 지금, 살포시 떨리는 오른손에 검정색 K-맛 가시를 들고 있다.
“…….”
하아.
이거 셀프 시침은 진짜 싫은데.
하지만 어쩔 수가 없겠다. 이 가시로 신진대사 가속을 해야 개발 후보 무좀약의 성능을 빠르게 테스트할 수 있을 거니까. 그만큼 항진균 무좀 박멸 연고의 연구에도 탄력이 붙을 테니까.
‘언제까지고 여기서 머무를 수는 없잖아.’
어디까지나 새로 얻은 도시의 소유권을 정당하게 만들려고 온 길이다. 그걸 위해 도맡은 3왕자의 치료였다.
하니 치료를 후딱 끝내고, 도시의 소유권을 안정화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황도로 돌아가고…….
‘꿀 빨면서 사는 거지!’
아름다운 황족 라이프가 자신을 기다린다. 제발 좀 그렇게 살고 싶다. 물론 데미안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마계왕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건 앞으로도 잘 대비하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가자.’
라키엘은 심호흡을 했다. 각오를 다졌다. 검정색 K-맛 가시를 자신의 쇄골 어름에 조준했다. 그리고 꽂았다.
톳!
가시가 수부혈(兪府穴)에 꽂혔다.
동시에 떠오르는 파괴적인 메시지!
딩동!
[당신은 K-맛 효과를 지닌 검은색 가시를 셀프로 시침하였습니다.]
[지옥과 같은 고통이 당신을 시험의 순간으로 빠뜨립니다.]
콰작.
몸속 어디선가, 무언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니, 어찌 보면 그것은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통각을 담당하는 신경줄?
‘……그와와와아아악!’
아팠다.
엄청나게 아팠다.
가시를 찌른 부위를 중심으로 감각이 사라졌다. 아팠다. 어깨가 사라졌다. 아팠다. 목덜미가 사라졌다. 아팠다. 온몸이 떨렸다. 아팠다. 쾅쾅, 망치로 때리는 듯이. 아팠다. 쿡쿡, 시뻘건 못으로 쑤시는 듯이. 아팠다.
‘미친!’
언제 사용해도 검정색 가시의 통증은 적응이 안 된다. 온몸이 절로 떨리고, 오싹 소름이 돋고, 정수리가 펑 터질 것처럼 모든 감각이 와락 곤두서는 이 매콤한 K-맛의 위력이란!
‘하지만…… 좋은 것만 생각하자.’
마음을 맑게 다스렸다.
아름다운 것만 떠올렸다.
예를 들자면 무병장수의 부유한 삶이라든가. 건강 걱정 없이 매 끼니마다 흡입하는 돈까스 파티라든가. 제육 퍼레이드라든가.
흰 쌀밥 위에 올려진 갓 구운 스팸에 잘 찢은 김치 한 조각과 따끈한 김치찌개 국물 한 모금이라든가 하는. 뭐 그런 것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덕분에 잠깐 찾아온 극한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윽고 보상이 찾아왔다.
딩동!
[당신은 K-맛 가시가 안겨준 고통을 효과적으로 인내하였습니다.]
[당신은 속으로 엄마를 찾으며 울지 않았습니다.]
[지옥과 같은 고통을 영웅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낸 당신에게 K-맛의 진정한 효과가 적용됩니다.]
[K-맛 가시 효과 발동.]
[당신의 신진대사가 ‘8282 모드’로 급가속됩니다.]
후우욱……!
‘흡.’
순식간에 훅 뜨거워지는 전신. 절로 들이켜지는 헛숨. 시야가 울렁거렸다.
투명한 잉크 한 방울이 눈앞의 세상에 똑 떨어지는 느낌. 보이지 않는 파문이 번지며 눈앞의 시야를 차례차례 흔들고 일그러뜨리는 기분.
그때부터였다.
심장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쿵쿠쿠쿸쿠쿵쿵! 쿵쿠쿠쿠쿠웅쿠쿸쿵!
폭주기관차? 아니다. 이건 화성 갈 끄니까! 를 외치며 비상하는 메가톤 뉴클리어 초대기권 돌파 로켓의 엔진과 같은 울림이었다.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전에…… 다른 놈을 검정색 가시로 찔렀던 때에, 그놈이 신체 가속의 혜택을 못 받던 게…… 이유가 있었구만……!’
문득, 크라노스에서 흑마법사를 검정색 가시로 찔렀던 때가 생각났다. 당시엔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는데, 내심 의아했던 부분도 있었다.
놈이 고통에는 몸서리를 쳤으되, 8282 모드로는 진입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알겠다.
당시의 흑마법사 놈은 속으로 울면서 ‘엄마’를 외쳤던 거다.
‘하긴. 이거 그 정도로 아픈 거니까.’
사람이라면, 아무리 근육 빵빵한 수염 숭숭 터프가이라도 무조건 엄마를 찾을 수밖에 없는 고통이다.
그나마 자신은 셀프로 가시를 찌르며 미리 각오를 하니까 간신히 참아내는 거지,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찔리면 절세의 영웅이라도 대책이 없는 거다.
어쨌건 그렇게 8282 모드 진입의 비결(?)을 새삼 확인하며, 라키엘은 고개를 들었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정리된 약재들이 보였다.
무좀을 때려잡을 항진균 한방 연고의 재료로 삼을 후보 약재들이었다.
라키엘의 시선이 약재 후보들을 재빠르게 훑었다.
스파파팟!
평소의 시선 처리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
그보다 더욱 신속해진 두뇌 활동!
딩동!
[탕약조제 스킬 옵션 ② : 약재 배합 미리보기를 발동합니다.]
[탕약 조제를 실행하기 이전에, 준비한 약재의 배합과 비율에 따라 어떠한 효능의 탕약이 만들어질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미리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배합을 원하는 약재를 한 곳으로 모아주세요.]
파파팟!
경이로울 정도로 가속된 움직임, 정확한 손동작으로 약재를 집었다. 미리 염두에 두었던 약재들을 정확한 양과 비율로 접시에 담았다.
그러자 결과가 떠올랐다.
[‘8282 모드’의 영향으로 로딩 시간이 대폭 단축됩니다.]
[급가속 로딩 중!]
[6.6%…… 17.3%…… 41.2%……!]
[로딩창이 한계를 초월한 속도에 찢어집니다!]
[……100%!]
[로딩 완료!]
딩동!
순식간에 결과창이 떠올랐다.
[탕약조제 옵션 ② : 약재 배합 미리보기의 로딩이 완료되었습니다]
[포착된 약재의 배합으로 만들어질 탕약의 효능과 부작용을 안내합니다.]
약재를 집어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결과창을 볼 때까지 소요된 총 시간이 5초도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라키엘은 여기서도 만족하지 않았다.
‘아 빨리 좀!’
아무리 빨라도 일단 더 빨리를 외치고 보는 한국인의 근성! 그 의지를 담고서 재촉하는 마음 덕분인지, 결과창에 새겨지는 글씨의 속도도 평소보다 몇 배나 빨라졌다.
[약재 배합 미리보기]
[샘플 넘버 : 1]
[예상되는 효능 : 피부 탄력 개선, 면역력 강화, 미약한 항진균 작용]
[예상되는 부작용 : 간암 발생율 3,700% 증가]
“…….”
이건 못 써먹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실망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첫술에 배부를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으니까. 이제 시작에 불과한 거니까.
‘계속! 더!’
밤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아침까지 남은 시간은 길고, 검정색 K-맛으로 셀프 시침을 할 시간은 더 많다.
그러니까 해낸다. 오늘 밤 안으로 무조건, 3왕자의 무좀 치료에 써먹을 연고의 배합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파파팟!
라키엘은 다음 약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접시에 담아가며 배합과 비율을 바꾸어 갔다. 스킬 옵션을 발동했다. 그런 그의 눈동자는 집요할 정도로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한 번 더!’
딩동!
[탕약조제 스킬 옵션 ② : 약재 배합 미리보기를 발동합니다.]
[‘8282 모드’의 영향으로 로딩 시간이 대폭 단축됩니다.]
[……로딩 완료!]
딩동동!
쉴새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
더욱 쉬지 않고 움직이는 눈과 손.
만족스러운 결과가 바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실망스러운 순간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멈추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이.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던져지던 순간에도 바락바락 멈추지 않고 끝끝내 기어서 올라오곤 했듯이.
오늘도 그러하였다.
‘그러니까 계속!’
토돗!
물론 그는 연구에 열중한 나머지 두 가지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하나는, 검정색 K-맛 가시로 자신을 찌를 때마다 스킬이 조금씩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흐읍!”
극한의 고통.
그걸 참아내면 찾아오는 ‘8282 모드’.
그 모드의 유지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고작 몇 분 남짓이었다.
그러나 찌르고 참아내는 일이 반복될수록 경험이 쌓였다. 성장했다. 모드 유지 시간이 길어졌다. 동시에 용왕에게 죽어 부활하며 초기화된 체질도 서서히 변모해 갔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3왕자 치료 사실을 전해 들은 1왕자라는 소인배가 화병에 걸려 뒷목을 부여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