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화. 인생뼈컷 페스티벌 (2)
인간의 시기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어디서 본 문장인 것 같다면 착각이다. 그저 인간의 본질이 정말로 끝없는 시기심의 화신(?)이기에, 저러한 말을 어디서 본 듯하다는 혼동이 생길 뿐이다.
정말이다. 인간은 말 그대로 질투의 화신이니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친구가 로또에 당첨되면 그게 왜 내 것이 아닌가 하는 우주의 근원을 파고드는 질문이 뒤통수 가득 쑴펑쑴펑 떠오르는 것이 인간이니까.
물론 이곳, 국경도시 라키엔데의 시민들도 그러한 진리(?)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저기, 아빠?”
“응? 왜 그러니?”
“황태자 전하 말예요. 오늘도 혼자 광장에서 뼈다귀 사진을 찍고 계셨어요.”
“그러니? 그거 큰일이구나.”
“큰일, 안 생겼던데요.”
“어허. 함부로 쉽게 말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사흘이 넘도록 뼈다귀 사진을 찍으셔도 아무 일 없었잖아요.”
“그, 그런가……?”
어느 남자가 어린 아들의 반박에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흘 전이나 지금이나 황태자의 모습은 쌩쌩, 그 자체라고. 어쩌면 본드래곤 뚜식 경이 재채기와 함께 벽에 새겨 버리는 뼈다귀 사진이라는 거…… 생각만큼 해로운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대화는 다른 곳에서도 수군수군 이어졌다.
“나흘이 지났는데도 황태자 전하, 여전히 괜찮으셔…… 수군수군.”
“혹시 몹시 건강하셔서 그런 거 아니겠소? 수군수군.”
“아녜요. 제가 듣기로는 황태자 전하,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약골에 저질 체력의 소유자라고 들었어요. 수군수군.”
“예전엔 아주 오늘내일하는 게 일이었다던데? 수군수군.”
“그럼 어떻게 저 끔찍한 저주를 나흘째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멀쩡하신 걸까? 수군수군.”
“어쩌면 저거, 생각보다 별로 안 해로운 거 아니었을까? 수군수군.”
“정말로 어쩌면 저거, 좀 좋은 걸지도 모르겠소……. 수군수군.”
“그러고 보니까 황태자 전하…… 피부가 좀 고와진 거 같지 않아요? 수군수군.”
“키도 크신 것 같은데…… 수군수군.”
“머리숱도 많아지신 듯? 수군수군.”
“그럼 저 좋은 걸…… 혼자서만 하고 계셨던 거였어? 수군수군.”
처음엔 황태자를 몹시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시민들이었다. 황태자가 끔찍한 저주를 매일 홀로 감당하고 있다고 여겼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사흘, 나흘, 닷새가 지나도록 황태자는 멀쩡했다. 아니, 날이 갈수록 더욱 상태가 좋아 보였다. 뜻밖이었다. 의아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제서야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차츰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당연하지. 이제 좀 파악들이 되나 본데.’
- 뚜쉬익!
푸확!
이걸로 오늘 뚜식이의 몇 번째 재채기와 엑스레이를 온몸으로 받은 걸까. 모르겠다. 대략 30회 언저리까지 세다가 까먹긴 했는데.
라키엘은 셀프 피폭을 살짝 염려하다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광장 둘레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시민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많이 늘었네.’
첫날에는 몇 명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도 광장 둘레의 담벼락이나 대형 화분, 각종 조형물 뒤에 숨다시피 해서 이쪽을 지켜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뚜식이의 엑스레이가 주는 미지의 공포와 불안감 때문이었을 터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닷새가 지나도록 이쪽이 계속 멀쩡한 덕분이었다. 아니, 더욱 멀쩡해 보이도록 남몰래 노력을 기울인 덕분일지도.
‘당연하지! 매일 상태가 더 좋아 보여야 하니까.’
그래서 빵을 비롯한 탄수화물을 끊었다. 대신 끼니마다 기름진 고기를 듬뿍 먹었다. 신선한 채소도 적당히 씹었다. 밤에는 시장 브레다가 진상한 꿀과 올리브유를 피부에 바르기도 했다. 덕분에 컨디션이 제법 좋아졌다. 피부가 광이 아주 반들반들, 아라비아 유전 터진 듯이 매끈해졌음은 물론이었다.
어쨌건 그런 노력이 불러온 결과인지, 닷새가 지난 지금은 이쪽을 보는 시민들의 눈길이 제법 달라져 있었다.
걱정에서 부러움으로.
또 누군가는 은근한 시기심으로.
기회가 되면 나도 뼈다귀 사진 좀 찍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이글이글 담은 시선들이 노골적으로 날아와 파파팍 꽂히는 중이었다.
‘좋네. 딱 좋아.’
정확히 의도대로 됐다.
뚜식이표 엑스레이에 대한 인식 바꾸기 첫 단계, 성공.
문득, 예전에 들어본, 근대 유럽 어느 왕의 일화가 떠올랐다.
‘1700년대 프로이센 왕국의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4세였나. 그 양반이 감자를 널리 보급한 이야기였지, 아마.’
1747년, 당시 프로이센에 포메른 기근이라는 재난이 덮쳐왔더랬다. 하여 프리드리히 4세는 기근에 대처하는 구황작물로 감자를 주목했다. 사람들에게 감자 재배를 독려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아니, 대놓고 별로였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감자란, ‘개나 가축을 먹이기 위해 존재하는 작물’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사람들이 반발했다. 맛없어서 개도 안 먹는 걸 우리에게 먹이려는 것이냐고. 아무리 기근이 왔다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래서 프리드리히 4세가 꼼수를 썼지.’
끼니마다 자신의 식탁에 감자 요리를 올리게 했다. 더 나아가, 감자는 왕실과 귀족의 요리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칙령까지 내려 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의 인식이 확 바뀌었다.
‘어? 왕이랑 귀족만 감자를 먹을 수 있다고? 그럼 저거, 사실은 엄청 좋은 거였어? 라고 말이지.’
실은 감자가 엄청 맛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귀한 거라면 나도 한 입만 좀.
……이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프리드리히 4세는 한술 더 떴다. 아예 왕실 정예 척탄근위대를 동원해서 자신의 감자밭을 지키게 했다.
거기서 게임(?)이 끝났다.
농부들은 확신했다. 무려 왕실 정예부대까지 동원되어서 지켜야 하는 감자! 그만큼 엄청나게 귀하고 맛깔나는 최상의 식재료 감자! 라는 인식이 퍼져 버렸다. 그러자 예전엔 감자 재배에 반발했던 농부들이 앞다투어 몰래 감자를 키우기 시작했다.
‘덕분에 프리드리히 4세는 일명 감자대왕으로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오래오래 존경받게 됐다는 이야기지. 아직도 프리드리히 4세의 무덤에 감자를 가지고 오는 독일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니까. 뭐, 이번 일에 많은 참고가 됐으니 나한테도 제법 고마운 양반이기도 하고.’
라키엘은 광장 둘레에 와글와글 모인 시민들을 돌아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지금 모인 저들이 딱 감자 농사에 반발하다가 ‘어?’ 하기 시작한 농부들의 모습 같았다.
그러니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 한다.
프리드리히 4세가 척탄근위대까지 동원하며 감자밭 지키기 쇼를 벌였던 것처럼, 자신도 엑스레이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서 결정타를 날려야 한다.
그러니까…….
……촵촵!
라키엘은 초고속 진동 16비트 자진모리장단의 혀 놀림으로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광장을 둘러싼 시민들을 향해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발성으로 낭랑하게 외쳤다.
“다들! 엑스레이를 찍는 내가 부러운가!”
물론 선뜻 대답하며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이쪽을 향한 시민들의 시선이 잠시 반짝인 것을 라키엘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들은 이 좋은 것을 그저 대가 없이 누리려는 것인가아!”
이번에도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빛은 전보다 더욱 똘망똘망해졌다. 라키엘은 사뭇 비장한(?) 표정을 유지하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곁에 세워둔 팻말을 쑥, 뽑아서 높이 치켜들었다.
“여기! 내가 손수 내린 칙령이 말해주듯, 뚜식 경의 엑스레이는 본디 아무나 취하고 누릴 수 없는 고귀한 것이로다! 하지만-!”
더욱 발성에 힘을 기울여서.
가장 그럴듯한 수작질로.
힘차게 외쳤다.
“앞으로 며칠만 특별히! 황태자의 권한으로! 단돈 2마젠의 가격으로! 엑스레이의 촬영을 허하노라!”
“……!”
모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돈 2마젠.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아주 많이 부담스러운 가격은 또 아니었다. 딱 적당히 호화로운 식사 한 끼 정도의 금액. 그래서 지름신이 살짝 강림하면 큰 고민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5만 원 정도? 그러니까 더 적당하지!’
라키엘은 자신이 책정한 금액의 절묘한 균형에 감탄하며 재차 외쳤다.
“또한! 2마젠을 지불하고 엑스레이를 촬영한 이의 뼈다귀 모습은! 특별히 준비된 벽돌에 선명하게 새겨져! 이곳 광장의 복구공사에 귀중하게 쓰일 것이며! 도시의 재건을 위해 선뜻 기부를 한 명예로운 마음 또한! 후세의 모범이 되어 길이길이 이곳 광장에 남을 것이로다아!”
“……!”
시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마침내 나섰다.
“저기…… 전하?”
초로의 노인이었다. 딱 보기에도 멀끔한 행색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확 몰린 시선 때문에 주저하던 노인이 물었다.
“정말로 외람되오나…… 저처럼 돈이 없는 사람은…… 그럼에도 엑스레이를 찍고 싶은 사람은 어찌 방법이 없겠습니까?”
“있다!”
라키엘이 냉큼 대답했다.
“2마젠을 기부할 형편이 안 되는 자들은, 도시의 재건 공사에 참여하여 이틀간 봉사 노동을 하면 될 것이다!”
“저, 정말이옵니까?”
“당연하지!”
“……!”
2마젠의 가격.
아니, 기부금.
혹은 이틀의 봉사 노동.
그거면 내 뼈다귀가 황태자 인증마크 꽝꽝 찍힌 명예로운 모습으로 새겨져 광장에 길이길이 남겨질 거라고?
‘……이건 못 참지!’
그때부터였다.
따로 바람잡이를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도시의 재건을 위하여 큰 뜻을 내비칠 자는 기꺼이 줄을 서라!”
하나둘, 아니, 열 명, 스무 명, 쉰 명이 반사적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선착순을 향해 달리는 파블로프의 스피드 러너처럼. 늦으면 늦을수록 줄이 길어질 거라는 본능적인 직감에 따라.
“와아아아!”
광장 둘레에 있던 시민들 대다수가 조금이라도 먼저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맹렬히 달렸다.
도시의 재건을 위한 기부 운동.
인생뼈컷 페스티벌의 대성공을 알리는 질주였다.
그리고 광장에서 제법 떨어진 시장 관저의 지하 감옥 가장 깊은 곳. 마나하트가 봉쇄된 채로 몇 겹의 사슬에 꽁꽁 묶인 거구의 사내, 쟈빌론은 저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렸다.
“리한 군의관……. 어째서……이 도시에까지 돌아와 놓고선…… 날 보러는 안 오는 것인가아…….”
광장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소음.
온통 황태자를 연호하는 함성.
적막한 감옥과 상반되는 떠들썩함이 귓구멍을 콕콕 간질일 때마다 어쩐지 서러움이 폭발하는 쟈빌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