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삐딱한 자세의 원인 (1)
심상치가 않다.
오랜만에 재회한 황제를 보며 라키엘이 불현듯 떠올린 생각이었다.
‘이건 좀…… 이상? 아니, 수상한데?’
라키엘은 고개를 조아린 채로 눈길만 슬쩍 들었다. 그러자 한껏 힘겹게 밀어 올린 쌍꺼풀 끄트머리 너머로 황제의 모습이 살포시 보였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발이었다. 그런데 저긴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니까 패스. 라키엘의 시선이 차츰 올라갔다.
발을 지나 종아리로.
종아리 다음은 무릎.
그다음으로 보인 것은 황제의 의자였다.
원래는 중후하고도 멋들어진 권좌를 애용했던 황제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예전의 권좌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대신 옛스런 스타일의 가구매장에서나 보일 법한 스툴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호화로운 등받이나 팔걸이? 당연히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잠깐 앉기에만 적당해 보이는 스툴 위에, 황제가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왼쪽 궁둥짝만 스툴에 걸치고 있는 거지?’
말 그대로 오른쪽 궁둥이는 허공에 떠 있었다.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저러면 골반은 물론이고 허리랑 척추, 견갑, 목뼈까지 다 틀어질 텐데. 설마 이쪽이 못 본 몇 개월 사이에 황제가 기이하게 앉는 삐딱한 습관이 생겨 버린 것일까.
‘……라고 보기엔 은근히 표정이 편해 보이지는 않는단 말이지.’
딱 보아도 눈치가 그랬다.
어딘가 뚱하고 불편한 표정. 눈빛. 호흡. 주위의 공기까지. 마치 인생 최악의 변비라도 된통 앓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걱정이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황제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스리슬쩍 경혈 스캐닝을 발동한 것은.
‘어쩌면 그사이에 뭔가 이상한 질환이 생긴 걸지도 몰라. 경혈 스캐닝.’
딩동!
[경혈 스캐닝을 발동합니다.]
[스캐닝의 범위 (반경 150m) 이내에 헤모글로빈 기반의 혈액을 지닌 대상이 다수 포착되었습니다.]
[범위 내의 헤모글로빈을 지닌 모든 대상이 자동으로 스캔됩니다.]
츠스스스스……!
시야가 바뀌었다. 온통 시커멓게 변한 배경 속에 황제의 모습이 잡혔다. 황제의 신체를 따라 흐르는 혈맥과 마나의 운행이 또렷하게 보였다. 순환하는 마나의 기운과 상호작용하는 오장육부의 조화와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만약 황제가 몹쓸 병이라도 걸리면…… 안 돼. 내가 곤란해져.’
그렇잖아도 라키엔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많은 반성을 한 자신이었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았노라고. 덕분에 이대로면 빼도 박도 못하고서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게 될 판이라고. 이러면 안 된다고. 하는 일은 없으면서 황족으로서의 권한과 부유함만 누리는 행성 최강급 금수저 백수 라이프의 꿈과 멀어져 버릴 수도 있노라고.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적당히 못난 짓을 해서 점수를 좀 깎아먹어 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더랬다. 한편으로는 2황자를 좀 팍팍 밀어(?)줘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데 지금 타이밍에 자칫 황제가 몸져눕기라도 한다면?
곤란해진다.
아니.
위험해진다.
짐이 병환이 깊어 국정을 돌볼 수 없게 되었으니 오늘부터는 황태자가 황위를 물려받든가, 황위를 대리하든가, 황위를 집어삼키든가, 황위로 북 치고 장구 치든가, 어쨌든 황위는 네 것이니라, 땅땅땅.
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
그건 안 돼.
라키엘은 황제의 어떠한 사소한 질병이라도 모조리 케어해서 무병장수 기네스북에 등재시키고 말겠다는 각오를 품었다.
안구에 힘을 빡 주었다. 평소보다 훨씬 꼼꼼하게 황제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 없다.
‘뭐지? 아픈 데가 딱히 안 보이는데?’
심혈관계? 쌩쌩했다.
호흡기? 팔팔했다.
소화기? 왕성했다.
비뇨기도 무탈했고, 탈모의 조짐 또한 보이지 않았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에서 제일 빡센 조기축구회에 휙 던져놔도 혼자서 팀 에이스는 물론이고 회식 자리의 삼겹살 곱빼기 블랙홀 역할까지 무난하게 소화할 체력과 건강 상태였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왜지? 딱히 건강에 이상도 없어 보이는데 왜 저런 식으로 불편하게 앉아 있는 거지?’
그럼 혹시 척추 디스크 따위가 터진 걸까. 당장 뚜식이를 불러와서 엑스레이 촬영이라도 해봐야 하나.
……라고 궁리하던 무렵이었다.
마침 그때쯤 들려온 황제의 묵직한 목소리에, 라키엘의 생각과 고민은 맥이 딱 끊어지고 말았다.
“너는 짐을 오랜만에 보는 자리에서마저 곁눈질을 하고 있는 것이더냐.”
“……아.”
“너는 짐이 반갑지 않더냐.”
“반갑사옵니다.”
냉큼 대답했다.
여전히 삐딱하게 앉은 황제가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쯧. 참으로 고얀지고.”
“…….”
또 보자마자 다짜고짜 시비인가.
역시 이 아저씨는 내내 변하지가 않는 건가.
한데 아니었다.
“너는 어찌하여 짐을, 이 아비를 보자마자 감격의 눈물 한 방울조차 내보이지가 않는 것이냐.”
“……예?”
“아직 그만큼 반갑지는 않다는 뜻이렷다?”
“아, 그건…….”
“쯧쯧쯧!”
“…….”
그래서 서운했던 건가. 설마 그런 이유로 삐친(?) 건 아니겠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쑴펑쑴펑 들었다.
한데 누군가가 말했던가.
불길한 예감은 그냥 감이 아니라고. 네가 인생 전체를 투자해서 쌓아 올린 빅데이터라고. 그 빅데이터가 싸한 감각과 함께 보내는 경고라고.
역시 그래서인 걸까.
불길하게 쎄하던 예감은 어김없이 딱 들어맞고 말았다.
“서운하구나. 참으로 서운하도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큰아들이, 첫째가, 그동안 아들의 소식에 일비일희하며 기다렸을 아비를 보는 자리에서 여전히 뻣뻣하고 어색한 꼴이라니 말이다.”
“…….”
“심지어 너는 이 짐을, 아비를 몇 개월 만에 보러 오면서도, 그 머나먼 여행을 다녀와 놓고서도, 그 흔한 기념품 선물 하나 가져오지 않은 것이더냐?”
“어, 그건…….”
“변명?”
“아니옵니다.”
“하면?”
“선물, 있사옵니다.”
후딱 말했다. 저 까다로운 아저씨의 삐침 상태를 풀어주려면 버벅대선 안 된다. 마침 황제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 온 선물이 있기도 하다.
그걸 빼먹으면 손해지. 라키엘은 생각을 가다듬고는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쟈빌론을 잡아왔사옵니다.”
“쟈빌론?”
“예, 그렇사옵니다.”
“쟈빌론 플랑베르 앙부아즈? 이웃 왕국의 반역자이자, 본 황가의 명예를 실추시킨 그 수배자 말이더냐?”
“예, 그러하옵니다, 폐하.”
“흐음. 네가 그를 체포하였다는 소식은 짐 또한 일찌감치 들었다만.”
“폐하께 그를 바칠 생각을 일찌감치 품으며 오랜 시간 설레고 두근거리는 기분을 느끼곤 하였사옵니다.”
“너스레는 그야말로 청산유수로구나.”
“시, 실로 송구하옵니다.”
“쯧.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
“한데 너는 어찌하여 짐에게 그를 바치는 것이더냐?”
“예?”
“짐이 그를 받고 기뻐할 것이라 생각한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더냐.”
“그것은…….”
꿀꺽.
라키엘은 잠시 황제를 살폈다.
여전히 스툴에 삐딱하게 한쪽 궁둥짝만 걸치고 있는 황제. 그러나 삐딱하고 어색한 자세와는 달리, 이쪽을 굽어보는 황제의 눈빛은 엄격하고도 어쩐지 따스했다.
‘또 나를 시험하려는 건가.’
한편으로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다. 이미 흡족해하고 있는 기색이 느껴졌다. 평소처럼 까칠함을 가장하며 숨기려 들고는 있지만, 사실은 기쁜 거겠지.
한때 앞날이 보이지 않던 첫째가 이렇듯 훌륭한 공적을 세운 사실이.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뿌듯하고 행복한 거겠지.
아마도 그런 기분이 느껴져서였는지도 모른다.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당신의 진짜 아들이 아닌데. 그런 따스한 눈길까지 바란 적은 없는데. 그런 눈빛, 함부로 받아서는 안 되는 건데. 당신을 속이는 거라서. 그럴수록 미안해져서.
‘그러니까…….’
지금은 저 사람의 행복을 함부로 깨뜨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가식을 부려서라도.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니.
이쪽이 저 사람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잊지 않기 위해서.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어설픈 솔직함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기만하지 않기 위해서. 그따위 위선자가 되지는 않기 위해서.
지금은 하얀 거짓말로 가식을 부릴 때다.
그렇게 아무도 모를 개x끼가 되어서라도 저 사람의 지금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 내가 드릴 수 있을 가장 큰 속죄이고, 껴안을 수 있을 혼자만의 응보다.
“저는 그저…… 저의 시성식을 방해하여 황가를 능멸하고 폐하의 얼굴에 먹칠을 한 무도한 자를 잡아들일 수 있었기에 기뻤습니다. 하여, 그 기쁨을 폐하와 더불어 나누고 싶었을 뿐이옵니다.”
역겹다.
이런 가식을 떠는 내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볼 수 있었다.
이쪽의 대답을 듣고서 끝내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황제의 모습을.
“무어라? 허. 퍼헛.”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렇게 웃는 모습의 황제는 처음으로 보았다. 지금껏 본 가장 솔직하고 흐뭇한 온도의 미소였달까. 그렇게 생각하면 가식도 마냥 나쁜 건 아니겠구나 싶었다.
적어도, 대한민국 일산에 남기고 온 진짜 라키엘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 잘한 거겠지? 라고.
“잘하였구나. 혹여, 너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더냐? 그를 죽이든 살리든 폐하의 마음대로 하소서, 라고 말이다.”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셔서 실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래, 좋구나. 좋아. 내 특별히 너의 성의를 받아 쟈빌론, 그자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감옥에 ‘보관’하도록 하마.”
“보관……이라 하심은?”
“추후에 언젠가 있을 앙부아즈와의 외교적 협상 무대에서 유용한 카드로 쓰일 수 있지 않겠느냐?”
“……아.”
라키엘은 입을 벌렸다. 솔직히 그건 생각 못 했다. 앙부아즈의 입장에선 쟈빌론은 용서할 수 없는 반역자니까.
그런 반역자가 타국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치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 어떻게든 자신들의 손으로 처리하고 싶을 테고.
그러니 앙부아즈와의 협상에서 유용한 카드로 쓰일 수 있을 거라는 저 말은 결코 허세가 아닐 것이다.
‘역시 황제.’
처형이나 앙부아즈로의 직배송(?) 외의 저런 처리 방법도 있었구나. 과연 제국 권력의 정점에서 오랜 시간을 버틴 고인물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참으로 교묘하고도 깔끔한 처리 방식이다. 더는 쟈빌론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 그러니 이제는 그것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일을 입에 올릴 때인 것 같다.
“한데 말이옵니다. 쟈빌론에 대한 일 외에도 제가 감히 한 가지, 폐하께 여쭙고 싶은 사안이 있사옵니다.”
“사안이라. 무엇이더냐?”
“폐하의 건강에 대한 일이옵니다.”
“흐음?”
의문을 내비치는 황제. 그 와중에서 여전히 한쪽 궁둥이만 스툴에 걸치고 있는 황제. 그래서 아까부터 심히 거슬렸던 황제의 삐딱한 자세와 염려되는 관절 건강 상태. 하여 아까부터 대화를 이어오는 내내 나름 유심히 분석한 경혈 스캐닝 자료.
덕분에 이제 조금은 감이 잡혔다.
원인이 대략 예상이 되었다.
오랜만에 본 황제가 저렇듯 이상하게 앉아 있는 이유. 내내 불편한 기색인 이유. 그건 바로.
“혹시 말이옵니다. 폐하께서는 지금…….”
현대의 시각으로 보아선 별것 아니지만, 실은 조선 시대의 제법 많은 왕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유서 깊고 심각한 질환.
“폐하께서는 혹여, 오른쪽 궁둥이에 슈퍼 울트라 왕뾰루지…… 아니, 농포성 종기가 생겨서 괴로운 것이 아니시옵니까?”
“……뭣?”
대놓고 물었다.
황제가 움찔, 했다.
역시.
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