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61화 (460/468)

461화. 황위를 계승하는 법 (1)

“궁둥짝을 아주 그냥 부욱 째서 고름을 다 뽑고, 씻어내고, 안쪽의 고름주머니도 야물딱지게 도려내야겠사옵니다?”

“……믓?”

움찔!

황제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거, 엄청 아플 텐데, 라고.

“칼로 찢는단 말이더냐?”

“예, 폐하.”

“아무것이나 닿기만 해도 아픈 자리이거늘?”

“그러니 째야 하옵니다.”

“다른 방법은 없겠느냐?”

“없사옵니다.”

“어째서?”

“폐하의 궁둥짝에 생긴 종기가 너무나 크고 아름다워서이옵니다.”

“아직 직접 본 것도 아니지 않느냐?”

“방금 드리었던 말씀을 폐하의 궁둥이에 있는 종기와 눈을 마주치며 다시 드리면 되겠사옵니까?”

“…….”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이거, 대항(?)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라고.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네 의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사람의 일에는 무릇 예외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안타깝사오나, 폐하의 경우는 예외가 아니신 듯하옵니다.”

“그걸 어찌 그리도 확신하느냐?”

“폐하의 앉아 계신 자세 때문이옵니다.”

“……무어라?”

“조금 전에도 폐하께서 그러셨사옵니다. 아무것이나 닿기만 해도 아프다고 말이옵니다. 그 정도로 탱탱하게 부어올랐을 정도면, 째는 거 외에는 답이 없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설마, 두려우신 것이시옵니까?”

“…….”

“무릇 폐하께서는 더블 써클의 보유자이시며, 또한 검술에도 깊은 조예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만.”

“…….”

“실제로도 저를 샌드백처럼 두들기시며 이런저런 가르침을 내리신 적도 있었지 않사옵니까?”

“…….”

“하온데 사람을 죽이는 검도 아닌, 한낱 손가락 크기의 메스가 두려워 수술을 저어하고 계신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사옵니다.”

“…….”

아니.

무서운데.

검술 훈련할 때 쓰는 진검보다 메스가 더 무서운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로 그랬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대체 어째서, 전쟁터에서 난무하는 흉흉한 대검보다 자그마한 메스가 더 무섭게 느껴지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무서웠다! 두려웠다! 불안했다!

“괜찮사옵니다. 제가 아프지 않게 잘 해드리겠사옵니다.”

“설마, 내 손은 약손?”

“역시, 알고 계시었사옵니까?”

“내 알다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내손약손을 쓰려면 폐하의 궁둥짝을 쓰담쓰담……이 염려되는 것이시옵니까?”

“……커험! 흠흠! 크흠!”

“그 일이라면 염려를 내려놓으소서. 그간 제 기술이 많은 발전을 이루어, 이제는 환부와 멀리 떨어진 곳을 쓰다듬어도 환자의 통증을 제법 덜어줄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그게 사실이더냐?”

“예, 폐하.”

라키엘은 고개를 조아리며 웃음을 삼켰다. 방금 분명히 보았다. 황제의 노골적으로 기뻐하던 기색을. 황제도 그런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금방 근엄한 표정을 되찾았다.

“뭐, 흐음, 듣기에 나쁜 소식이 아니로구나. 커흠! 흠!”

“하오면 이제 폐하의 주치의와 가르딘 경을 불러들이면 되겠사옵니까?”

“으음? 그게 무슨 소리이더냐?”

“당장 폐하의 궁둥짝을 째…… 아니, 수술하기 위함이옵니다.”

“한데, 내 주치의는 그렇다치고 어찌하여 가르딘 경을?”

“제가 아는 모든 의사 중에 가르딘 경이 외과수술에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옵니다.”

라키엘은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운이 좋은 덕분에 과거의 의술들을 제법 익힐 수 있게 되었사오나, 오직 사람의 살갗을 자르고 꿰매는 등의 외과 처치는 아직 가르딘 경을 뛰어넘지 못하였사옵니다. 하온데 제가 어찌 부족한 실력으로 감히, 폐하의 궁둥짝에 칼빵…… 아니, 함부로 메스를 댈 수 있겠사옵니까?”

“하면…… 너의 실력이 부족한 까닭에 짐의 궁둥이를 보는 눈이 더 늘어나게 되었노라는 뜻이더냐?”

“그는 실로 훌륭한 외과의사이옵니다.”

“……크흠! 커허험!”

“마음에 아니 드시어도 어쩔 수 없사옵니다.”

“커허험! 크흠!”

“제국 만백성의 평화와 안녕을 책임지는 폐하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소서.”

“…….”

“설마하니, 폐하께서는 아직도 황실의 안위와 제국의 미래보다 스스로의 감정을 우선순위로 두고 계신 것이시옵니까?”

“…….”

“정녕! 지배자로서의 책임감보다 일순간의 수치심이 중요한 것이시옵니까아!”

“…….”

“폐하의 몸은 폐하의 것만이 아니옵니다! 폐하의 궁둥이도 예외가 아니옵니다! 그까짓 수치심보다 폐하의 궁둥이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유념하시옵소서어!”

“…….”

아니, 내 궁둥짝에 네가 금 발라뒀니?

황제는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음은 스스로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버틴다 한들 답(?)이 없다. 아니, 궁둥이의 종기와 함께 상황도 악화될 것이다.

이 예쁘고 자랑스러운 아들놈이 더 극성을 부리겠지. 덕분에 자신의 궁둥이에 대한 소문이 황궁 내부는 물론이고, 황도 전체에 쫙 퍼질 것이다.

“후우…….”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황제는 사골육수처럼 짙은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여, 너의 청을 윤허하노라.”

“실로 현명한 결정이시옵니다, 폐하.”

라키엘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황제는 어쩐지 눈물이 차올라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흐르지 못하게 살짝 웃었다. 오늘따라 내가 왜 이러는지. 무슨 말을 한 건지. 방금 했던 명을 전부 저 하늘 위로 훨훨 보내 버릴 순 없을까.

‘허이유. 참. 좋은 날이로다. 좋은 날이야.’

최근 자신을 괴롭혔던 질환의 정체와 치료법을 알게 되어서. 그 과정에서 전보다 강단이 생긴 아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오랜만에 본 아들의 모습이 전보다 훨씬 헌앙해져서. 그래,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과 확신이 거듭 들어서.

기뻤다.

흡족하였다.

이제는 됐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주치의 멀렉스 경과 가르딘 경이 드옵나이다, 폐하.”

시종장의 낭랑한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요란한 발소리가 도다다다 빠르게 달려왔다.

“즈어어어언하아아-!”

가르딘 경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어전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러다가 자신의 행동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흠칫. 이쪽의 눈치를 살피며 재빠르게 예를 올렸다.

“화,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의 주치의, 피에로 가르딘이 이 땅의 합당한 주인이신 황제 폐하를 뵙나이다!”

“……그래, 알았으니 네 주인과 해후를 나누도록.”

“실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꾸벅!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린 가르딘 경이 꿇은 무릎을 축으로 삼아 몸을 180도 홱 돌렸다. 그리고 다시금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하였다.

“즈어어어언하아아-!”

“어, 그래. 오랜만이야, 가르딘 경.”

“즈어어언하아아아아아악-!”

“어, 나 맞아. 그러니까 소리 그만 질러도 돼.”

“즈어어언……!”

“쓰읍.”

“……하아?”

“어, 왜?”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그리웠어?”

“예, 전하!”

가르딘 경이 콧수염이 휘날리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전하에 대한 소식을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활짝 열어두느라 귓구멍이 헐었을 지경입니다!”

“……어, 그랬어?”

“예!”

“그럼 이제 목소리 좀 낮추고. 폐하께서 계시잖아.”

“아, 예…….”

“그리고 재회의 인사는 나중에 다시. 일단 지금은 경의 솜씨가 필요한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그것이……무엇입니까?”

가르딘 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은 오랜만인 주군의 부름을 받고서 달려오는 내내 궁금했던 그였다.

관례상 황도에 돌아오자마자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러 간 황태자가 어째서 자신을 황궁으로 부른 것일까 하고 말이다.

라키엘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수술 도구는?”

“아, 명대로 전부 챙겨왔습니다.”

“잘했어. 이제부터 그대가 폐하의 궁둥이를 째게 될 거야.”

“……예?”

“아, 그렇다고 역모로 몰리거나 하진 않을 거니까 안심하고.”

“…….”

그때부터였다.

수술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순식간에 마련된 수술대 위에 황제가 옆으로 누웠다.

“일단 환부를 확인해야 하니까 제 말씀에 따라주시옵소서, 폐하. 옆으로 누우셨으면 그 자세에서 다리를 굽혀 무릎을 두 팔로 끌어안으시면 되시옵니다.”

“이, 이렇게…… 말이더냐?”

“궁둥이를 뒤로 더 빼시옵소서.”

“이렇게……?”

“훌륭하시옵니다.”

“…….”

죽고 싶다.

황제는 시뻘게진 얼굴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함께 옹기종기 모여 황제의 환부를 감상(?)하는 라키엘과 가르딘 경, 황제의 주치의 멀렉스 경은 누구 하나 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심각한 눈빛이 되었다.

“……생각보다 크네.”

“그렇습니다, 전하.”

“폐하의 주치의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아냐. 이건 멀렉스 경의 잘못이 아니야. 사실을 숨기며 질환을 키운 폐하 때문이지.”

“……커흠흠!”

“들리셨사옵니까, 폐하?”

“너 같으면 안 들리겠느냐?”

“실로 송구하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말거라.”

“하나도 안 아플 것이옵니다.”

“그건 마음에 있는 소리더냐?”

“예, 폐하.”

“……고맙구나.”

이윽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황제의 종기는 치질 등의 질환과는 관련이 없는 단순한 농양이었다.

덕분에 수술의 절차는 간단했다.

“시작하겠사옵니다. 내 손은 약손~ 내 손은 약소온~ 에헤이야아-”

황제의 등을 쓰담쓰담 해주는 라키엘의 구성진 노랫가락! 그와 함께 황제의 등허리와 둔부가 완전히 마취되었다.

가르딘 경이 메스를 들었다.

스윽.

부어오른 종기를 따라 가로로 4센티 가량을 절개했다. 고름이 쏟아져 나왔다. 짜내고, 닦아내고, 훑어내고, 씻었다. 그러자 고름이 비며 탁구공 이상 크기의 공간이 생겨 버렸다.

“잘됐네. 그럼 여기부터 여기를 다시 절개.”

“예, 전하.”

라키엘이 지시를 하고, 황제의 주치의 멀렉스 경이 보조를 하고, 가르딘 경이 메스와 도구를 움직이며 환부 안쪽에 생성된 피지주머니를 통째로 잘라냈다. 적출했다. 다시금 안쪽을 씻고 소독했다.

“그럼 이제 봉합하면 되겠습니까?”

가르딘 경이 물었다.

“아니.”

라키엘이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열어둔 채로 거즈만 덮어둘 거야.”

“……예?”

“지금 상태에서 섣부르게 봉합했다간 다시 고름이 차오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열어둔 채로 지속적으로 소독을 해야 해.”

“그러면…….”

“새 살이 알아서 솔솔 채워지겠지. 그렇게 치료해야 하는 거야, 이 경우는.”

“알겠습니다.”

라키엘의 뜻을 이해한 가르딘 경이 다시금 분주하게 움직였다. 황제의 활짝 열린 환부 안쪽에 별궁 한의원표 소독 연고를 발랐다.

거즈를 꾹꾹 눌러담았(?)다. 그 위를 다시 기저귀만큼이나 두꺼운 거즈로 덮었다.

그사이, 라키엘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황제의 환부에서 흘러나온 고름과 피를 말끔히 닦아냈다.

엉망이 된 거즈와 도구를 재빠르게 정리하고 치웠다. 수술을 받은 황제가 행여나 그걸 볼까 싶어서였다.

‘자기 몸에서 이렇게나 많은 피와 고름이 나왔다는 걸 직접 보게 되면 대부분은…… 살짝 충격을 받으니까.’

그건 환자에게 좋지 않다. 환자가 황제이건, 거지이건 그건 똑같다. 배려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또한 동일하다.

그런 생각으로 세심하게 수술실의 정리를 마친 후에야 라키엘이 황제에게 말했다.

“이제 다 끝났으니 일어나도 되시옵니다, 폐하.”

“……끄음.”

“비록 마취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제법 아프실 것이옵니다.”

“과연 그렇구나.”

“하오나 조금 아프시더라도 제대로 체중을 실어서 의자에 앉으시어야 하옵니다, 폐하.”

“……수술을 받은 자리가 눌리는데 말이더냐?”

“그렇사옵니다, 폐하.”

라키엘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부터 한 시간이 중요하옵니다. 한 시간 동안 체중을 실어서 제대로 꾹, 앉아 주시어야 수술한 자리의 출혈이 멎을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네가 눌러주면 될 것이 아니더냐.”

“남이 누르는 것보다는 스스로 누르는 쪽이 덜 아플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이 역시 사실이다.

아파본 사람은 안다.

다쳐본 사람도 안다.

하다못해 까져서 쓰라린 자리에 빨간 소독약을 발라도, 남이 발라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바르는 쪽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다.

셀프로 통증을 감지하면서 바르는 양이나 톡톡 닿는 강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오니 당장은 불편하고 괴롭더라도 꾹, 제대로 앉아주시옵소서.”

“……그래, 알았다.”

황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라키엘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자신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어 보이지 않는 아들이. 오히려 소소한 배려까지 잊지 않고 챙길 정도로 여유를 갖춘 아들이. 어쩐지 전보다 훌쩍 자란 듯이 보였다.

대견하였다. 새삼스러운 확신이 재차 가슴에 스몄다.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반쯤은 충동적으로.

반쯤은 이성적으로.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심정으로.

이 말을 꺼내는 날이 마침내 왔다는 감격으로.

“아들아, 이제는 네가, 황좌에 앉을 때가 된 것 같구나.”

황제가 폭탄선언을 터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