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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유어 페이스-25화 (25/250)

< 25 : 12화. 엉뚱한 오해(2) >

지잉! 지잉! 지잉! 러닝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흐른다.

주은은 천천히 걸으면서 고개만 돌려 성현을 관찰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더 뒤로 빼셔야 해요. 무릎으로 하는 게 아니라 허벅지로 하셔야 된다고 몇 번이나 말씀 드렸잖아요."

"스쿼트는 아무래도 어려워서요. 선형 쌤이 조금 잡아주시면 안돼요?"

"그럼…."

성현은 받쳐주듯 여성의 허벅지를 잡는다. 여성은 레깅스를 입고 있었기에 성현의 손가락은 사실상 피부에 닿은 거나 마찬가지.

라고 주은은 느꼈다.

주은은 레이저가 나갈 것 같은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얼마나 노골적이었으면 성현이 그만 보라며 주의를 줬을 정도다.

일하는 모습을 보러오는 조건으로 아는 체를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야 아직 중학생인 주은과 친밀한 관계임이 알려지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으니까.

"후우…!"

러닝머신의 간이 TV로 시선을 돌린 주은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켰다.

'호스트 클럽이 아니었던 건 정말 다행인데…!'

화가 나기는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느끼기에 여성 회원들 모두 성현에게 치근덕거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체 뭐야? 왜 회원이라는 게 여자밖에 없는 거야?'

공교롭게도 이 날은 여성 회원들밖에 일정이 없었기에, 주은은 더 속이 탈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스쿼트가 어렵다며 앓는 소리를 한 여성이 PT가 끝나니, 저 멀리서 덤벨을 들고 완벽하게 스쿼트를 소화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다음 타임의 여성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진짜요? 너무 아쉽다. 그럼 2년 뒤에나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됐네요. 저도 아쉬워요."

주은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귀를 쫑긋한다.

"그럼 선형 쌤, 송별회를 겸해서 한 잔 해요. 이대로는 너무 아쉽잖아요."

"아하하…. 그럴 시간이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그럼 둘이서만 한 잔 해요. 그것도 안돼요?"

"조금 곤란합니다."

"왜요. 선형 쌤, 여자 친구도 없다고 그랬잖아요."

쿠당! 러닝머신을 타면서 발을 헛디디고 만 주은은 크게 비틀거린다. 이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성현은 얘기를 하고 있던 회원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 말하곤 주은에게 향했다.

"회원님, 러닝머신을 타면서 다른 곳을 바라보면 위험하세요."

"오빠…. 여자 친구 없다고 그랬어?"

"쉿, 쉿! 어쩔 수 없었어. 주은이 널 소개할 수도 없는 거잖아."

"하면 되지!"

"목소리 줄이라니까…! 어쨌든, 러닝머신은 위험하니까 사이클을 타. …아시겠죠, 회원님?"

주은은 입을 삐죽 내민 채 사이클로 향한다.

PT를 받고 있던 회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 사람은 왜 저런데요?"

"조금 발을 헛딛었나 봐요."

"흠, 그보다 쌤. 진짜로 시간 안돼요?"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주은은 마침내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데리러 온 운전기사의 차량 안에서였다.

성현이 마침 잘 됐다며 자기도 태워 달라 부탁을 했기에 둘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주은은 운전기사에게 말한다.

"아저씨, 조금만 돌아가 주세요."

"어? 미안한데 주은아, 나 선영이 잠들기 전에 들어가야 되거든."

"어차피 버스 타고 돌아가는 것보단 빠를 거야. 그보다 오빠."

주은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감성적으로는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성적으로는 성현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했는가를 너무나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오빠는 이 일이 즐겁다고 그랬지?"

"그냥, 운동을 가르치는 걸 좋아하니까."

"응…."

"주은이 넌 내가 이 일 하는 게 싫어?"

"…그런 거 아니야."

"싫은가 본데."

"그런 거 아니라니까."

"싫은 거 맞네."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격앙하여 존댓말이 나오는 주은. 성현은 이때다 하며 말한다.

"그럼 그만 둘게."

"…어?"

"주은이 네가 싫으면 당장이라도 그만 둘게. 아니다, 이제 안할래."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정말로…?"

"응, 한 달 내로 무조건 그만 둘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만 두는 게 어차피 정해져 있었던 만큼 성현은 주은을 풀어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주은은 성현이 오직 자신을 위해 그만 두는 것처럼 느껴져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나, 나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돼. 오빠랑 선영이의 생활이 걸린 일인 거잖아? 난 괜찮으니까…."

"아니야, 이젠 생활비 걱정도 덜해졌고. 그런 알바 같은 건 그만하고 주은이 너랑 지은이한테 더 신경을 쓰려고."

"오빠…! 응, 고마워…."

성현은 잘 헤쳐 나갔다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주은이 제대로 삐지면 달래기가 여간 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성현에게 운전기사가 말한다.

"학생, 그러다가 붙잡혀 살게 되는 수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붙잡혀 산다니요?"

"너무 져주면 안 된다는 건데…. 학생한텐 아직 일렀나보네."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도 양보해도 되는 것과 양보해선 안 되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거든요."

가령 그런 것이다. 지금이야 PT일이 중요해지지 않았기에 그만 둘 수 있는 거지만 PT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면 주은이 뭐라 하던 성현은 자신의 생각을 관철했을 것이다.

"아저씨, 오빠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오빠 집으로 가기 전에 한 바퀴만 더 돌아주세요."

"어이쿠, 그런 거라면 그쪽 집에 세우고 나는 내려서 담배나 한 대 태울게. 둘이 차안에서 오붓하게 얘기 해."

"그것도 좋네요."

주은은 기분이 완전히 풀렸는지 싱글벙글해 있었다.

둘은 아기에 대한 이야기나 반년 뒤에 있을 돌잔치&약혼식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찰나의 데이트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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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걸쳐 PT알바를 그만 둔 나는 본격적으로 풀 액셀을 밟기로 했다.

복싱과 농구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지금까지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건 충분할 정도로 깨우쳤다.

문제는 둘 중 하나도 놓칠 수 없단 점이었다.

복싱도 복싱이지만 농구에 대한 부분이다.

막연히 농구에 대해선 내 경험이 있으니 몸만 익숙해지면 된다는 마인드였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너무나도 거만한 소리였다.

내 경험이라는 건 기껏해야 국내 리그에서의 경험이었으니까.

리카르도 알멜다가 그랬던 것처럼, 르브론 제임스를 비롯한 NBA 선수들도 무지막지한 괴물일 거다. 그런 NBA 선수를 국내 리그의 경험만으로 맞먹으려 한 건 오만했다.

그러니 농구에 대해서도 충분한 준비를 해야만 했는데, 아무래도 복싱에 비하면 훈련 여건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편법을 하나 사용하기로 했다.

바로 일반 학생들의 농구 동아리였다.

이 농구 동아리에 가입을 하면 실내 체육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학 기간이긴 해도 동아리 가입이 가능했기에 나는 곧장 교무실의 담당 선생을 찾아가 가입 허가를 받은 뒤에 실내 체육관을 사용했다.

인문계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실내 체육관은 농구, 배드민턴, 탁구, 핸드볼 등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체육관이었는데, 시설이 굉장히 훌륭했다.

그런 반면 인문계 애들은 저녁 이후엔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에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존재였다.

나는 오전부터 오후 7시 40분까지 복싱 훈련을 소화하고, 다른 애들이 귀가할 때 실내 체육관 사용 허가를 받은 뒤에 농구 훈련을 진행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훈련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농구 훈련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파트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패스를 연습하던, 돌파를 연습하던 상대가 필요했다.

그런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기에 제대로 진행할 수 있는 훈련은 점프슛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효율이 좀 떨어지려나."

점프슛 연습은 공을 줍고 던져주는 사람이 있어야 훈련 볼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혼자하면 공을 줍는 시간이 길어져 효율이 낮아진다.

그러니 지금은 변칙 훈련을 해야 했다.

나는 20개 정도의 공이 들어있는 카트를 들고 탑에 섰다.

가장 먼 3점 거리인 탑 지점.

'NBA는 이것보다 더 길었었지.'

NBA를 기준으로 훈련해야 했기에 선보다 한발자국 반 정도 뒤에서 슈팅을 쏘았다.

철썩! 팅! 철썩! 철썩! 팅! 팅! 아직 슈팅 폼에 대한 몸의 적응이 덜된 탓인지 성공률은 40%정도에 그쳤다.

노마크 상태에서 훈련할 경우 60~70%정도를 성공하는 게 기본인 걸 생각하면 기준 미달인 셈.

그렇게 20개를 전부 쏴 카트를 비운 이후엔 바닥에 놓여있는 공을 주우러 갔다.

다만 그 공을 주워서 카트에 넣는 건 아니다. 그냥 그 공이 떨어져 있는 위치에서 점프슛을 쏘는 것이다.

엘보 지점에 떨어져 있는 공을 주우면 그 자리에서 엘보 점퍼, 자유투 라인에 떨어져 있는 공은 자유투 점퍼.

그렇게 미드레인지 점퍼를 시도하는가 하면, 골밑이나 쇼트 점퍼 위치에 떨어져 있는 공들에 대해선 페이더 웨이나 턴 어라운드 점퍼 같은 어려운 공격을 시도한다.

멀리 떨어진 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현대 농구는 점점 슈팅 거리가 길어지기 때문에 초장거리 3점도 연습해놓을 가치가 있었다.

센터 서클에 있는 공도 그 자리에서 점퍼를 던졌다. 소위 말하는 로고 샷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점프슛만큼은 마스터 해놓겠어.'

그러면 NBA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다.

그런 식으로 점프슛을 2,000개 정도를 소화하니 밤 11시를 훌쩍 지나가 있었다.

"헉! 헉! 어휴, 진짜 힘드네."

이걸 2년간 해야 한다고 하니 독종인 나조차 겁이 날 정도였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두 개의 종목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선 이 정도의 노력은 필수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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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봄과 함께 시작된 2학년 생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은이가 길성고에 입학했다는 점이었다.

체육계 애들은 벌써부터 신입생들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고 있었다.

"야, 요번에 들어온 예술계 애들 봤냐?"

"와, 씨. 걔들 진짜 많이 컸더라. 걔들 중학생 땐 애들 같아서 그냥 귀여웠는데, 이젠 장난 아니더라고."

"인문계 애들도 괜찮은 애들 많던데? 조만간 같이 꼬셔볼래?"

"관둬라, 그러다 퇴학당할라."

"뭘 그래, 올해는 축제도 있어서 기회가 있다니깐?"

반에 남자애들이 대부분인 만큼 그런 얘기밖에 없었다.

그런 남자애들의 대화에 끼어서 열변을 늘어놓던 형석이는 시계를 보더니 내게 다가온다.

"성현아, 슬슬 가자. 오늘 1학년 애들이 들어온다니까, 우리가 선배의 위엄을 보여줘야지."

"위엄은 무슨, 다 중학교 때부터 아는 동생들인데."

"그런 것도 아니야. 듣자니까 3명 정도 다른 학교에서 데려온 애들이 있는 것 같아."

"…고생해라, 미래의 주장."

"얌마, 너도 미래의 부주장이잖아."

형석이는 어깨동무를 하며 속삭인다.

"그러고 보니 성현이 네 여자 친구도 올해 입학했지?"

"그건 비밀이라니까."

"알고 있어. 그래도 인마, 나도 어떻게 좀 안되냐? 네 여친한테 말해서 좋은 애 좀 소개시켜줘!"

"올림픽에나 집중해라. 네가 올림픽 메달을 따면 여자애들이 먼저 접근해올걸?"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좋아, 무조건 금메달이야. 아자아자! 따자따자 금메달!"

기성을 내지르는 형석. 그 모습이 조금 부끄러워졌기에 녀석이 어깨동무한 팔을 슬쩍 풀었다.

체육관에는 1학년 애들이 군기가 바짝 들어 서있었다. 그래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게 선배들 대부분이 중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이기 때문이다.

"짜식들, 어른스러워 보이려는 표정이나 짓고 있고 말이야. 긴장 풀어!"

형석은 2학년을 대표해서 1학년 애들을 격려한다.

그러다 거구의 녀석 앞에서 말문을 잃는다.

191cm의 장신. 몸무게도 그만큼 나가는지 떡대가 남달랐다.

"어…. 넌 이름이 뭐냐?"

"김강혁이라고 합니다, 선배님!"

"그래, 네가 다른 학교에서 왔다는 애구나. 체급은 뭐야? 체중은 얼마나 돼?"

"93kg입니다! 감량을 해서 헤비급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휘유!"

형석이는 슬쩍 나를 보았다. 헤비급의 1학년을 데려온 이유를 짐작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 코치님이 내 곁으로 다가와 속삭인다.

"성현이 네 스파링 파트너를 스카우트 해온 거다. 너 혼자 스파링 할 상대가 마땅치 않았잖아."

"역시 그런 거였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실력은 충분할 거야. 쟨 중학교 2학년 때 중등 헤비급을 제패했던 녀석이거든. 성현이 넌 중학교 3학년 말미에 헤비급으로 전환해서 쟤랑 경기를 하지 않았던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좋은 상대가 됐을지도 몰라. 아니 뭐, 지금 네 상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는 아니고."

김강혁이란 녀석도 나를 알고 있는지 강렬한 눈으로 응시해왔다.

자신의 실력을 어서 선배들에게 증명하고 싶은 눈치였다.

"재밌네요, 조속히 스파링을 잡아주실 수 있나요?"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오늘 바로 하기로 했다. 신입생 환영을 겸해서 말이야."

중학 헤비급을 제패했던 강혁. 그리고 현 고교 헤비급 1위인 내 대결은 이전에 이사장과의 내기를 했었던 그 대결 구도와 비슷했다.

다른 게 있다면 이젠 내가 도전을 받는 위치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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