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 유어 페이스-27화 (27/250)

< 27 : 13화. 주목받는 신예(2) >

하객 문제는 가벼운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체면을 세우는 허례허식이 꽤 중요하기 때문이다.

괜히 하객 알바라는 게 생겼겠는가.

'내가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으니까.'

그런 만큼 그 한정된 사람들이 다이너마이트 급 임팩트를 줘야 한다.

첫 번째는 최종훈 이사장이었다.

나는 날을 잡아 그의 집에 찾아가 선물과 함께 청첩장을 전달했다.

최종훈은 그 청첩장을 유심히 읽어보더니 음흉하게 웃는다.

"고등학생이 돌잔치랑 약혼식을 동시에 한다니, 정말이지 해외토픽 감이구만."

"…."

"알겠다, 내가 가주지. 걱정 마라, 이런 일은 익숙하니까."

"정말 감사드립니다."

"뭘, 법적으론 내가 네 보호자 아니냐. 이 정도는 해야지. 그래 어디, 아버지라 불러보겠냐?"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

최종훈은 나를 멈춰 세우더니 다리를 꼬며 말한다.

"아주 순조로운 것 같더군."

"뭘 말씀하시는지…?"

"올림픽 준비 말이다. 코치들의 칭찬이 아주 자자해, 네 실력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고 말이야. 훈련도 더 열심히 하고 있다지?"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그래,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 열심히 해야지. …근데."

"…?"

"농구 훈련은 대체 왜 하고 있는 거냐?"

내가 매일 밤 인문계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게 그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복싱 훈련의 일종이라기엔 종일 점프슛만 던지고 있다던데?"

이 부분은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제 꿈은 농구 선수가 되는 겁니다."

"오호…? 복싱이 아니라?"

"예, 하고 싶은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더군요."

"그건 괴롭지. 나도 어렸을 적엔 축구를 좋아했어, 선수가 되고 싶었지. 하지만 내 잘하는 건 따로 있었더랬지.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나한테…."

그렇게 최종훈의 인생 썰이 또 시작됐다.

보다 못한 임수영 여사가 끼어들어왔다.

"여보, 그만해요. 벌써 9시에요."

"어이쿠. 이제 시작인데 말이야."

최종훈은 미안했는지 10만 원짜리 수표를 꺼내 택시비를 하라며 건네준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둘 다 놓치는 법이라곤 하지만…. 속담이란 건 죄다 구닥다리야. 둘 다 할 수 있으면 하는 거지. 그게 남자의 야심이라는 거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끝까지 해봐. 응원은 하마."

이 작자도 일단 교사 자격증이 있는 교육자인 만큼 마지막은 항상 훈화로 끝이 나곤 했다.

주택에서 나온 나는 수표를 주머니에 넣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 도중 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몇 번 이어진 후 김준우 형이 전화를 받는다.

[어, 성현이냐?]

"예, 형.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괜찮어, 지금 운동중이거든. 넌 뭐하냐?]

"이제 집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전화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나는 준우 형에게 이번 돌잔치와 약혼식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러자 준우 형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며 되묻는다.

[돌잔치랑 약혼식? 그게 네 아기이고, 심지어 약혼식도 네가 하는 거라고?]

"그렇습니다."

[너 인마 고등학생이잖아.]

"조금 복잡합니다."

[복잡해도 다 설명해봐. 들어줄 테니까.]

준우 형은 주은이를 임신 시켰다는 대목에선 불같이 화를 냈지만, 양가의 합의가 있었다는 말에 한숨과 함께 납득을 한다.

[PT알바 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냐?]

"아주 없지는 않아요. 혹여나 상대 집안에서 반대를 한다면 여러 선택지를 고려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뭐, 남자답게 책임을 지려는 마음가짐은 좋아.]

"굳이 칭찬할 거리를 찾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잘못한 건 사실이니까요."

[어휴…. 얌마, 형은 나이 40을 앞에 두고 여자 친구도 없는데 넌 약혼식이냐?]

"그… 와주실 수 있을까요?"

[야 이눔 시키야! 당연히 가야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래서 언제라고?]

"8월 7일입니다. 조만간 청첩장을 보내드릴게요."

[8월 7일이면… 고정 스케줄은 없는 날이네. 갈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축가는 구했어? 사회자는.]

"자세한 건 저도 모릅니다."

[그럼 축가는 내가 해줄게. 사회도 그 누구냐. 현재 형한테 부탁해보지 뭐.]

"현재 형이요?"

[유현재 몰라? 국민MC있잖아! 야, 일단 끊어봐. 현재 형한테 전화 좀 해보게.]

뚝! 전화가 끊어지고. 약 15분 뒤에 전화가 걸려온다.

[미안하다, 현재 형이 그날 일정이 있다네. 다른 아는 개그맨 동생한테 사회를 봐달라고 할까?]

"아뇨! 축가를 해주시는 것만으로 너무 고맙죠. 사회자는 따로 구하겠습니다."

[그래 뭐, 소소하게 하는 자리에서 개그맨 사회자는 별로이긴 하니까. 알겠어, 그럼 청첩장 보내라.]

"예, 형. 운동 열심히 하세요."

[시간 나면 같이 운동 한번 하자. 너 인마, 나중에 우리 축구 동호회 한번 나오라고! 알겠냐!?]

"예, 꼭 나가겠습니다."

준우 형은 시간이 나는 연예인 동생들을 데려오겠다며 하객에 대해선 걱정 말라 말해주었다.

이걸로 하객에 대한 준비는 완벽하다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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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약혼식은 돌잔치에 꼽사리를 끼는 것이기 때문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듯한 속도로 진행이 됐다.

나와 주은이의 관계는 아직도 대외적으로는 밝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물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끝이 난다.

만약 성인이 돼서 결혼식까지 이어진다고 하면 성대하게 하겠지만, 이번 약혼식은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약혼반지인가….'

이런 건 전생의 나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일이었기에 생소했다.

나는 주은이의 어머니인 홍영숙 여사가 주선해준 명품 브랜드 샵에 와있었다.

여성 직원이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해준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을 하셨나요?"

"이성현이란 이름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아, 예. 약혼반지를 맞추시는 거군요. 피앙세 분께서도 같이 보실 건가요?"

"예, 금방 올 겁니다."

말하기 무섭게, 최대한 어른스럽게 차려입은 주은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주은이의 표정은 뭐랄까, 설렘과 기쁨, 흥분, 자그마한 두려움 등등이 황금비율로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직원은 앳돼 보이는 주은이의 얼굴을 보고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곧 표정을 고치며 안내를 한다.

주은이는 신이 나서 반지를 살펴보았다.

"오빠, 이건 어때?"

"대놓고 보석이 박힌 건 안 돼. 학교에서 뭐라고 한다니까."

내 말에 직원은 더더욱 당황한다. 대학교에서 반지를 가지고 뭐라 할 일은 없을 테니까.

주은이는 직원이 당황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고심을 하고 있다.

"음…. 오빠는 뭐가 좋은 건 같아?"

"아무거나 상관없어. 어차피 안 끼고 다닐 거니까."

그러자 주은이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눈을 끔뻑였다.

"바, 반지 안 끼고 다닐 거야…?"

"그보단 못 껴. 복싱에서 반지 같은 걸 끼는 건 룰 위반이거든. 반지를 끼고 펀치를 치면 손가락이 다치기도 해서 훈련 때도 못 끼고. 그러니까 그냥 집에 보관할 거야."

"으으…. 그럼 목걸이는?"

"목걸이도 안 돼. 귀걸이도 마찬가지고. 팔찌도 안 돼."

"운동선수는 역시 힘들구나."

주은이는 담백한 형태의 백금반지를 선택했다. 거기에 영어 흘림체로 서로의 이름을 새긴다고 한다.

가격은 2개에 290만원. 쿨하게 내 체크카드로 결재를 했다.

주은이는 걱정이 되는 듯이 물어온다.

"정말 괜찮아? 그냥 우리 엄마 말 들어도 돼. 돈은 엄마가 내주신다고 했어."

"아냐,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내가 해야지. 너희 부모님 입장에서 나는 도둑놈 같은 존재인데."

"이제 그런 건 신경 안 써도 된다니깐."

"그리고 주은이 너도 그걸 알고 최대한 싼 걸로 산 거잖아."

주은이가 고른 백금 반지는 비교적 싼 편이었다. 대충 훑어봐도 가게 안에 훨씬 비싼 것들이 수두룩했다.

천만 원이 훌쩍 넘는 것들이 많았다.

주은이가 최대한 배려를 해줬으니 나도 보답을 하고 싶었다.

"나중에 결혼반지는 더 좋은 걸로 하자."

"…!"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금방일 거야.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설마 그렇게 빨리 하지는 않을 걸? 못해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때까지 언제 기다려."

이 확인사살에 가까운 발언에 샵 직원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반지를 맞춘 후엔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반지를 맞춘 후에는 식이 열리는 호텔로 향했다. 국내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호텔이었다.

"진짜 좋다."

"…."

주은이는 호텔에 왔을 때부터 묘하게 조용했다.

곧 나직이 묻는다.

"오빠 오늘 시간 많다고 했지?"

"오늘은 통째로 비워놨어. 왜? 따로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아냐, 여기면 충분해."

"…?"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그래."

식장을 살펴본 후엔 호텔에 볼일이 없어졌기에 다른 곳이라도 가려고 했으나 주은이가 앞장을 서서 어디론가 향한다.

그건 객실이 위치한 3층이었다.

"여긴 왜?"

"…."

주은이는 말없이 어느 객실 문 앞에 선다. 그리곤 삑! 언제 챙겨놨는지 모를 카드키로 문을 열고는 나를 잡아끌었다.

그 약한 힘에 끌려갈 내가 아니었지만 애를 쓰는 모습에 끌려가주기로 했다.

철컹! 객실 문이 닫히자 주은이는 와락 안기더니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키가 닿지 않아 애꿎은 내 목에 키스 마크가 남는다.

"저기 주은아…?"

"걱정 마 오빠. 피임 방법은 시은 언니한테서 확실히 배웠거든."

"그, 그래…."

"그리고 키 좀 낮춰줘. 안 닿잖아."

슬쩍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자 곧 부드러운 입술이 포개져왔다.

내게 몸을 완전히 기댄 상태라 혹시라도 넘어질 수도 있으니, 매달려 있는 몸을 안아들어 침대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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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순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더위.

찔 듯한 더위였지만 그래도 기말고사가 지난주에 끝난 지라 인문계, 예술계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반면 체육계는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오히려 더 암울한 분위기였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덥다는데. 아이고, 우리도 실내에서 훈련하고 싶다."

"너 야구부잖아. 야구부가 어떻게 실내에서 해 미친놈아. 우리 축구부나 실내에서 훈련할 수 있지."

"개소리 수고요. 너네 축구부 코치가 그렇게 해주겠냐?"

점심을 맞은 급식실에선 여기저기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부분 외부에서 훈련을 하는 학생들이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형석이는 그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바깥애들은 진짜 고생한다. 요즘 모기들도 많아져서 죽을 맛이라던데. …응?"

형석이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성현이 너 목에 모기 대빵 큰 거 하나 물렸다."

"어? 아…. 그러게."

"가렵겠네, 손톱으로 십자모양으로 눌러. 내가 해줄까?"

"괜찮아, 가려운 건 아니니까. 그보다 오늘은 오후 훈련도 한다고 했지?"

"코치님들이 없어서 자율 훈련이긴 한데, 무조건 해야지. 올림픽이 1년밖에 안 남았잖냐. 이젠 진짜 장난이 아니라고."

"난 예전부터 장난 안쳤는데."

우린 다 먹은 급식판을 반납한 뒤 급식실을 나왔다.

그때 형석이가 조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성현아."

"응…? 왜 그래,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심각한 얘기야. 너 혹시 1학년 애들한테 무슨 얘기 들은 거 없어?"

"무슨 얘기?"

"아니, 뭐. 선배들한테 얼차려 당했다던가 그런 거."

"무슨 소리야, 우리가 언제 얼차려를 시켰다고. 3학년 선배들도 입시 때문에 정신없어서 그런 건 안하잖아. 아니, 애초에 3학년 선배들도 그런 거 할 사람들이 아닌 건 너도 알잖아."

"그건 그런데…. 저번에 훈련 끝나고 샤워를 하면서 호진이 엉덩이를 보게 됐거든? 피멍이 엄청 들어 있더라고. 그래서 왜 그런 거냐고 물어봤는데 입을 꾹 다물더라."

이건 얼차려를 당한 게 분명했다. 그래서 형석이도 내게 물은 것이다.

"…그럼 누가 한 건지는 명백하지 않아?"

내 물음에 형석이는 눈을 질끈 감는다.

3학년들은 하지 않았고, 2학년 중에 나와 형석이처럼 길성 중학교 출신 애들이 한 게 아니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는 곧장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1학년 애들을 추궁해 범인을 특정했다. 1학년 애들은 입막음을 당한 건지 기어코 말하려 들지 않았으나 괜찮으니 말하라는 내 물음에 결국 실토를 한다.

그렇게 범인이 밝혀졌을 때쯤이었다.

"아, 오늘 급식 좆나 맛없네."

"그니까. 바깥에서 먹고 올걸 그랬어."

껄렁거리며 들어오는 김찬진과 정윤호.

형석이는 눈을 뒤집을 듯 분노하여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씹새끼들이, 애들을 패? 너네 미쳤냐?"

형석이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여기 1학년 중 대부분이 중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가족같은 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차려 같은 건 얼토당토 없었다.

반면 고등학교에 들어와 스카우트를 받은 정윤호와 김찬진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겐 오히려 때리지 않는 우리 복싱부 문화가 생소했던 모양이었다.

계속 손이 근질거렸는지는 몰라도 녀석들은 기어코 그 얼차려 문화를 실행했다.

형석이는 죽일 듯이 둘을 다그쳤다.

정윤호는 좋지 못한 일을 한 자각은 있는지 입을 다물었으나 김찬진은 아니었다.

녀석은 뻗대듯이 얼굴을 들이민다.

"아, 뭐! 1학년 새끼들이 건방지게 굴어서 좀 팼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말로 그만하자는 거지?"

"핫! 뭐, 말로 안하면 어쩌게. 한 판 뜰까?"

그에겐 자신감이 있었던 거다. 고교 미들급 랭킹 1위인 자신이 웰터급 4위에 불과한 형석을 가지고 놀 듯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체급도 차이가 나고 실력 면에서도 김찬진이 약간 우위에 있다.

그럼에도 형석이는 지지 않았다.

"그래, 한 번 뜨자! 좆나게 패줄 테니까."

"심형석 네까짓 게 나를 팬다고? 야, 올라와. 죽여줄게."

마침 3학년 선배들이 코치들과 함께 나가있던 탓에 말릴 사람이 없었다.

1학년 애들은 죽상이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둘은 헤드기어조차 끼지 않고 링에 올라가려 했다.

그런 형석이를 내가 막았다.

"형석아, 그만해."

"뭘 그만해! 여기서 그냥 물러나라고!?"

"그래, 넌 물러나. …내가 할 테니까."

"뭐?"

나는 스파링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들고 링으로 올라갔다.

내가 올라오자 김찬진의 표정이 바뀌었다.

헤비급인 내게 덤빌 깜냥은 없었던 거다.

나는 헤드기어를 녀석에게 던졌다.

"그거 껴, 실신하고 싶지 않으면."

"뭐, 씹새야!? 날 이길 수 있다는 듯이 지껄이네?"

"그럼 못 이길 것 같냐? 네가 나랑 스파링해서 한 번이라도 우위에 있던 적이 있기나 해? 진짜 자신 있으면 헤드기어 없이 시합용 글러브로 한 판 하던가."

"윽…."

"그럴 자신 없으면 빨리 헤드기어나 껴."

"아, 해! 코치들이 예뻐한다고 좆나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넌 인마 상대도 안 돼. 스파링은 그냥 적당히 했던 거고."

"입은 살았네."

녀석은 그래도 체급 차이를 극복하긴 힘들다고 봤는지, 주섬주섬 헤드기어를 낀다. 그리고는 내 글러브가 스파링 글러브가 맞는지 유심히 확인했다.

나는 녀석에게 선언했다.

"적당히 봐줄 테니까 너무 쫄지 마라. 난 오른손으로만 때릴 테니 최대한 버텨봐."

"미친 새끼. 야, 시작해!"

시작을 알리는 공은 딱히 필요 없었다.

내가 링 중앙으로 향하자 김찬진도 중앙으로 튀어나오면서 스파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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