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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유어 페이스-45화 (45/250)

< 45 : 22화. 돌이킬 수 있는 기회(2) >

사정은 코치님들에게 미리 말해두었기에 입국장에 도착하고 나서는 곧장 개인행동을 할 수 있었다.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입국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거기서 임 비서. 임병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현아, 여기다."

그는 비서 짬이 어디 가질 않는지 능숙한 손길로 내 짐을 나눠들었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가니 3억에 육박하는 외제 SUV가 서있었다. 임병식의 개인차인 모양이었다.

"뒤에 공간 많으니까, 짐은 대충 뒤에 실어라."

짐을 싣고 조수석에 앉으니 드르륵! 하며 임병식이 내 의자 등받이를 편하게 뒤로 물려주었다.

그러면서 묻는다.

"올림픽은 나가게 됐냐?"

"예, 진출했습니다."

"정말 잘됐네."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시동을 걸더니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 너무나도 느긋한 행동에 오히려 내가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죠? 어째서 임 비서님께서 선영이의 휴대폰을…."

"그게 조금 복잡하다."

"차근차근 얘기해주셔도 됩니다."

"그럼…."

그는 운전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듣자니 계기는 임수영 여사에게 있었다고 한다.

"누나가 말이야. 선영이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라 하더라고."

"임수영 아주머니가요?"

"당연한 거지. 초등학교 6학년이나 되는 애가 부모 없이 친척 오빠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데,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겠냐?"

"그렇긴… 하죠."

"그래서 내가 조사를 해보니까 이게 진짜 골 때리더라. 넌 알고 있었냐? 선영이의 부모에 관한 것."

"잘은 모릅니다."

나는 중3 이전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어보기도 어려웠던 게, 그 이야기는 선영이에게 트라우마나 다름없었다.

흘러가는 식으로 들은 정도밖에 없었다.

"그럼 다 설명을 해야겠네. 우선 선영이의 친부모 말인데, 걔가 6살 때 이혼을 했더라."

"예…? 하지만 제가 알기로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진 부모님이랑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 있었다는 기준이 굉장히 넓었던 거지. 적어도 아빠는 거의 집에 있지 않았어. 뭐, 그건 지금에 와선 중요한 건 아니고."

문제가 발생한 건 선영이의 친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였다.

"막상 재혼을 하려 하니까 딸린 애가 부담스러웠던 거야."

"그래서 할머니 집에 버려두고 간 거군요. 저도 그곳에 버려져 있었으니까 마침 잘 됐다는 듯이…!"

"그런 셈이 되겠지. 다만 그렇게 버려지긴 했어도 호적에는 멀쩡하게 등록이 돼있었어. 재혼한 남자의 가족이 돼버렸지."

여기까지는 그나마 있을 법한 가정사였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아니었다.

"최근 그 재혼한 남자의 부친이 사망했어. 호적상 선영이의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지. 그러면 당연히 재산상속 문제로 시끄러웠겠지?"

"예…."

"그런데 그 재산에 함정이 있었거든. 재산도 재산이지만 5억에 달하는 채무도 함께 있었던 거야."

"그렇담 상속포기를 하면 그만인 것 아닙니까?"

"그러기엔 그냥 있는 재산이 아까웠나봐. 그래서 형제친척들이 전부 짜고 편법을 썼어."

바로 폭탄 돌리기를 해버린 것이다.

"다들 짜고서 상속포기를 해버린 뒤에 재산을 빼돌리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채무가 남아있는 폭탄은 호적에 있는 선영이에게 상속시켜서 미성년자 파산을 시켜버리려 한 거지. 상속을 한 척 하고 결국엔 파산을 한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미친…!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짓이지. 걔들도 법을 제대로 알고 한 짓은 아니었거든. 채권자들이 곧장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냈어. 그러니까 이제 걔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야. 일단 법으로 얘기를 하려면 선영이가 필요해졌으니까."

"…!? 설마 그 부모란 작자가 선영이를 찾아왔나요!?"

"그 전에 타이밍 좋게 내가 빼돌렸어. 마침 11일이 총선으로 쉬는 날이어서 누나와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보냈다. 학교에는 당분간 쉴 거라고 전해뒀고. 그리고 혹시나 휴대폰으로 연락이 올까봐 선영이 휴대폰도 내가 가지고 있던 거다."

"휴우…! 정말 잘하신 겁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놈들을 선영이와 만나게 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 인간 말종…!'

선영이의 친엄마가 유일하게 행한 선한 짓은 선영이를 버린 것밖에 없었다.

그 덕에 선영이는 그런 가정에서 자라지 않아도 됐으니까.

'선영이의 친권박탈을 해놓지 않길 정말 잘했네.'

내 친권박탈 소송을 진행할 때 사실 선영이도 같이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시점엔 선영이가 아직도 부모를 그리워하고 있었기도 하고, 학교생활에도 지장이 갈까봐 하질 않았었던 것이다.

만약 했다면 큰일 날 뻔 했던 셈이다.

그 선영이의 할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사망하지는 않았을 테니, 이런 막장스러운 계획은 전부터 계획을 하고 있었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선영이의 친권박탈 소송을 냈으면 법원에 출석해 소명을 하고 선영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 했을 게 분명하다.

이런 법률 싸움의 경우 친부모의 힘이 무지막지하게 강하기 때문에 선영이를 뺏겼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자, 이야기는 이걸로 끝인데…. 그러면 이제 네가 나한테 궁금한 게 있겠지?"

"어떻게 해결해야하는가 입니까…. 그건 둘째 치고, 왜 이런 일을 좋은 일이라고 표현하셨던 거죠?"

"좋은 일이라곤 안했어. 좋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했지."

"그게 그거입니다. 어째서죠?"

"그야 이 사실을 알면 누나는 그 애를 입양하려 할 테니까. 너…. 은근히 그래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 아니냐?"

"…!"

사실이었다.

나는 줄곧 선영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프로 생활을 하게 된다면 미국에 장기간 나가있을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수영 여사는 최적의 인물이었다. 인품도 훌륭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걸 좋아하고, 선영이를 귀여워하며, 덤으로 엄청난 부자다.

임병식이 피식 웃고는 말을 이어간다.

"누나는 그 애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봐. 내게 부모에 대해 알아보라고 한 것도 아마 입양할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거겠지. 그런 애한테 이런 불우하고 억울한 가정사가 있다는 걸 듣는다면 누나는 절대 가만있지 않아. 어떻게든 해결하려 할 거다."

"임수영 아주머니에겐…."

"아직 얘기 안했다. 너한테 먼저 얘기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뭣보다 매형이 문제야. 매형은 절대 그런 이유로 애를 입양할 사람이 아니거든."

임병식은 아직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며, 최종훈이야말로 이번 일의 열쇠라고 표현했다.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선영이에게 법률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이번 사해행위 취소소송과 연계하여 친권박탈소송을 진행해야 하거든. 그걸로 친권을 박탈시키고 상속포기를 해야 돼. 이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뭣보다 친모에게서 강제로 친권을 박탈시키는 거니까. 방임은 했을지언정 학대 사실이 없다고 하면 글쎄…. 게다가 그쪽 입장에선 할머니에게 맡겨둔 거였으니 방임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만이니까."

"…그걸 이기려면 단순한 법률적 도움으로는 안 된다는 거군요."

"정답. 이름 높은 로펌에 의뢰를 하거나 전문 법무 팀이 움직여야겠지. 가령 우리 길성 그룹의 법무 팀이라든가?"

"돈은 제가 올림픽만 끝내면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시간이 있을까요?"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을 거다. 소송이야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선영이에게 여러 가지 안 좋은 영향이 갈 테니까. 그러고 싶지 않으면 지금 확실하게 끝을 내놓는 게 좋을 거야. 게다가 넌 선영이를 입양시키고 싶은 거잖아? 그러면 뭐가됐든 매형과 얘기를 해봐야지."

"결국엔 최종훈 이사장님을 설득해야 한다는 겁니까…."

"그래, 어떻게 할 거냐?"

"지금 얘기할 수 있습니까?"

"그 인간이 미국에서 얼마 전에 돌아왔거든.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다. 그럼 연락을 해둔다?"

"부탁드립니다."

이건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담판을 지어야 했던 일이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최종훈의 자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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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훈은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미국에 갔다 온 시차적응이 아직도 안되는 게 짜증난 모양이었다.

내게 있어선 악재였으나 그의 기분을 풀어줄 희소식이 하나 있었다.

"강녕하셨습니까, 이사장님. 아시아 예선을 마치고 막 돌아왔습니다."

"그래. 저기, 얘기는 들었다. 전부 KO로 잡고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고?"

"예, 그리고 형석이도 진출을 했습니다."

"그 심형석이는 널 졸졸 따라다니는 애 맞지?"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분명 네게서 좋은 영향을 받은 거겠지. 하하하! 우리 학교에 2명이나 올림픽에 진출하다니. 예상 이상의 성과야!"

기분이 조금 나아졌는지 투 머치 토커 모드에 들어갈 기미를 보인다.

그 페이스에 휘말리면 내 얘기를 할 수가 없었기에 선수를 치기로 했다.

"이사장님, 오늘은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음…? 부탁하고 싶은 거라니?"

"단도직입적으로 얘기를 드리겠습니다. …선영이를 입양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흐음."

최종훈은 예상을 했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그걸 노리고 내 와이프와 친분을 쌓은 거였냐?"

"적어도 저는 그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영이는 달라요. 그 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훗, 그건 어떨까? 겉으론 순수한 척 해도 속으론 어떤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저에 대해선 뭐라고 해도 좋으니 선영이에 대한 험담만큼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흥!"

최종훈은 코웃음을 치더니 임병식에게 눈짓을 한다.

"야, 병식아. 수영이가 너한테 뭐라고 하더냐?"

"…그 애의 뒷조사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누나도 입양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휘유! 이미 완전히 넘어갔구만."

"그것도 그거지만 조금 복잡한 사실이 밝혀져서요."

임병식은 선영이의 가정사에 대해 얘기를 했다. 최종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듣더니 내게 시선을 옮긴다.

"그 부분을 해결하면서 겸사겸사 입양을 시키고 싶다?"

"점잔빼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예, 전부 맞습니다."

"솔직한 부분은 좋다만…. 내가 그렇게 해줘야 하는 이유는? 인정에 호소하는 거라면 씨알도 안 먹힌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하겠습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거라니?"

"올림픽이 끝나면 제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을 겁니다. WCB에 진출하면 더더욱 오르겠죠. 전 국내 최고의 스포츠 선수가 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 저라면 이사장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뭐, 광고 계약을 헐값에 해주게?"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죠."

"흠, 은근히 매력적인 건 사실인데….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미래가치를 운운해봤자 설득력이 떨어지는 걸?"

그래서 나도 이 거래를 올림픽 이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영이의 사정이 밝혀진 지금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당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거래를 성공시켜야만 했다.

"저는 성은전자 사장의 사위이기도 합니다."

"그건… 확실히 메리트가 있지. 근데 아직 결혼 안했잖아?"

"주은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그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그건 그때 말해라. 언제 파혼할지 모르는 거니까."

"이사장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미 사위가 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요."

내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최종훈이 입을 삐죽이며 잠시 침묵한다.

"넌 씨, 그 꼬마애가 뭐가 그렇게 소중하냐? 친동생도 아니면서."

"친동생보다도 각별합니다."

"사람이란 결국 자기 핏줄만 소중한 법이야. 네가 과연 그 애를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감내할 수 있는 범위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흥, 말은 잘 하는군. 뭐, 네가 진심인 건 알겠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놈이라는 것도."

최종훈은 물을 벌컥 들이키며 조금은 침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재벌가 사람들이 왜 입양을 거의 안 하는지는 알고 있냐?"

"순혈주의 때문인가요?"

"그것도 있지만 혼외자 때문에 그래."

"혼외자…?"

"갑자기 입양을 하면 이상한 소문이 돌거든. 혼외자를 호적에 넣기 위해 입양을 한 거라고 말이야. 왜,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잖아."

"드라마는 보질 않아서요."

"어쨌든, 내가 선영이 그 애를 입양하면 여기저기서 소곤거릴 거다. 길성의 최종훈이가 아랫도리를 잘못 놀렸다고 말이야. 내가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그 애를 입양할 만한 메리트가 없어."

"그거야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을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놈들은 애초에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별 상관이 없거든. 그냥 그게 재밌으니까 떠들고 다니는 거지. 그런 놈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사실증명이라도 하리?"

그래도 지금 얘기엔 여지가 있었다.

메리트를 운운했다는 건, 그에 상응하는 조건을 제시하면 응낙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러나 그런 거래를 성사시킬 만한 협상카드가 나에겐 없었다.

그때.

"훗."

하고 최종훈이 낮게 웃었다.

그리고는 말한다.

"이건 동생을 생각하는 네 진심을 봐서 하는 서비스다. 네가 사용할 수 있는 협상카드를 하나 알려주도록 하지."

"제가 사용할 수 있는 협상카드요…?"

"난 말이다. 널 입양할 생각이었다."

"…!?"

"그 꼬마애와는 달리 넌 메리트가 확실하거든. 방금 말한 것처럼 성은전자 사장의 사위이기도 하고, 뭣보다 스토리가 있으니까. 내가 불우했던 너를 지원하여 최고의 스포츠 선수로 키웠다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전해지면 나는 물론이고 우리 기업의 이미지도 크게 상승하겠지. 혼외자 문제도 너라면 큰 걱정이 없고 말이야."

"그건 어째서입니까."

"그야 나랑 와이프는 너처럼 키가 크지 않으니까, 인물도 나와 달리 훤칠하니 내 친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 널 내 친아들이라고 하는 게 오히려 나에 대한 칭찬이 되는 거지! 내 유전자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니까. 크하하핫!"

최종훈이 보여준 협상카드.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정식으로 내 양아들이 돼라! 그럼 네가 목숨처럼 아끼는 동생도 같이 양녀로 받아들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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