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 유어 페이스-63화 (63/250)

< 63 : 31화. 타고난 싸움꾼(2) >

관중들의 함성이 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어느새 링에 올라온 김현수 코치님과 표명호 코치님이 내 몸을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하하하하! 정말 잘했다!"

"우리가 해냈어! 올림픽 메달을 땄다고!"

태권도나 복싱 같은 격투기 종목은 선수 보호&일정의 문제로 인해 동메달 결정전을 하지 않고 3, 4위 모두에게 동메달을 수여한다.

4강전에 진출하여 동메달을 확보한 셈이었으니 코치님들은 기쁠 수밖에.

"잘했다 인마…!"

형석이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시작한 복싱. 그 목표가 바로 이 올림픽이었으니까.

수영에서 은메달을 따긴 했지만 형석이에겐 지금 확보한 이 동메달이야말로 진짜 결실로 느껴졌을 것이다.

찰칵! 찰칵! 관중석에서 연신 플래시가 터졌다. 전문 카메라를 들고 있는 관중들도 있었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동료 연예인들과 경기장을 찾은 김준우 형은 기립하여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고, 수영 팀들도 휘파람을 불며 내 이름을 연호한다.

'이 기분도 오랜만이네.'

농구 챔피언 결정전 7차전 버저비터를 성공했을 때의 그 열기와 똑같았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내 스스로의 긴장감이 조금 떨어진다는 것 정도. 사람들은 명경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내 입장에선 그래도 어려운 경기는 아니었으니까.

'오늘 인터뷰는 엄청 길어지겠네.'

빨리 끝내고 선수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일단 링을 내려가 선수 대기실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기다려…!"

지혈을 받고 있던 루치아노였다. 녀석은 거즈로 코에서 흐르는 피를 틀어막으며 나를 붙잡았다.

경기가 끝난 뒤 전혀 상처가 없다는 의미로 밀라노의 귀공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의 얼굴은 참혹했다.

코뼈가 부러져 코피가 멈추지 않았고, 얼굴엔 피멍이 가득했다.

입안도 전부 터졌는지 녀석은 피가 섞인 침을 내뱉으며 독특한 억양의 영어로 말해온다.

"너…! 어디로 갈 거냐!"

"…?"

"프로 전환을 한 뒤에 어떤 체급으로 갈 건지를 묻는 거다!"

내가 프로에서 갈 수 있는 체급은 라이트 헤비급과 헤비급이었다.

그 중에서 내가 가기로 결정한 곳은 91kg+의 헤비급이었다.

사실 120%의 기량을 발휘하려면 감량을 하는 식으로 라이트 헤비급에서 뛰는 게 맞았지만 나는 복싱 하나만을 생각할 수가 없다.

농구를 위해 몸을 만든다고 하면 지금보다 두 단계는 더 벌크 업을 해야 한다.

그 경우 체중은 97~101kg사이에서 형성될 테다.

이 체중에서도 감량을 통해 라이트 헤비급에 나갈 수는 있지만, 그 경우 몸에 너무 큰 부담이 가게 될 테니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무조건 헤비급으로 간다.

그렇다고 이걸 놈에게 알려주면 옳다구나하고 따라올 것 같았기에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플라이급으로 갈 거야."

"헛소리 집어치워!"

"그럼 페더급으로 가지 뭐."

"이…!"

나는 고래고래 소리치는 녀석을 뒤로하고 링을 내려왔다.

'이놈과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 같네.'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때는 이번처럼 쉽게 이기진 못할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

'나도 멈춰있을 수 없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선 아직도 보완할 점이 많았다.

마지막엔 파고들어서 상대의 가드를 끌어내리고 끝장을 보긴 했지만 사실 그 전에 끝을 봤어야만 하는 경기였다.

'굳이 모험을 걸지 않고도 끝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선 여러 방면으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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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과 루치아노의 경기는 치열한 경기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보는 눈이 즐거운 경기였다.

국내에서는 이번 올림픽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현이 왜 블루칩으로 떠올랐는지를 입증했다.

[이성현 선수가 TKO로 승리하며 동메달을 확보합니다! 고등학생 선수가 단일 올림픽에서 메달을 2개 이상 획득한 건 이성현 선수가 최초입니다!]

[정말 멋져요! 통쾌한 승리였습니다!]

[상대 루치아노 베레티니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이야기할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만 얘기를 해보자면 엄청난 투지를 보여줬네요.]

[저도 놀랐습니다. 이 선수의 정신력이 생각 이상이에요.]

[보통 입이 가볍거나 거만한 선수는 멘탈이 약하기 마련인데 말이죠.]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메이웨더 같은 케이스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루치아노의 투지에 대해선 WCB 스카우트들도 놀라고 있었다.

본사의 데이터 룸에선 스카우트들이 머리를 맞대고 리포트를 수정하고 있었다.

"런던에 파견된 스카우트들에게 당장 근접 영상을 전송하라고 해! 그리고 가능하면 둘의 인터뷰를 따봐!"

일사불란하게 오더를 내리는 수석 스카우트 그레이엄 포터.

그는 지금까지 있던 루치아노의 리포트를 과감하게 삭제해버리고 새로이 리포트를 작성한다.

그렇게 그가 새로이 책정한 점수는 종합 64점. WCB의 스카우트 기준인 60점을 가뿐히 넘은 점수였다.

"베레티니 녀석이 자신감을 드러낼 만 했어. 이런 무기를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그는 멘탈은 물론이고 체력 부분에서도 고평가를 내렸다. 말이 체력이지 지구력, 내구력, 순수 체력, 라운드 운영같은 걸 복합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었다.

이에 한 스카우트가 이의를 제기한다.

"루치아노의 체력 점수를 높이는 건 성급하지 않습니까?"

"성급하다니, 오늘 그가 보여준 내구력을 벌써 잊었어?"

"내구력? …이성현이 솜주먹인 건 아니고요?"

스카우트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레이엄 포터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 부분은 세 가지 악재가 겹쳐서 그랬던 거야."

"세 가지 악재라니요?"

그레이엄은 하나하나 설명을 시작했다. 수석 스카우트다운 냉철한 분석이었다.

"첫 번째 악재는 리의 체격이야."

성현의 키는 192cm로 상당한 장신에 속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성현을 제외한 헤비급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183.6cm였음을 감안하면 8cm가량이 컸던 셈.

"이러면 벌크업이 제한될 수밖에 없지. 182cm에 90kg인 선수와 비교하면 당연히 펀치력이 약할 수밖에."

"흠, 그거야 뭐…."

이 부분은 성현이 프로로 전환하여 체중 제한이 없는 헤비급으로 가면 해결이 된다. 벌크업을 하여 체중을 불리면 펀치력도 자연스레 상승을 하게 될 테다.

"이상하군요. 그렇담 이번 올림픽에서도 슈퍼 헤비급으로 나왔으면 됐을 텐데요. 그럼 손쉽게 금메달을 땄을 거 아닙니까?"

"그거야 켐벨을 저격한 거겠지. 켐벨을 이기거나, 설령 진다고 하더라도 좋은 경기력만 보여주면 계약금으로 수백만 달러를 당길 수 있잖아.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 당연히 헤비급으로 출전을 해야지."

"하기야 그렇겠군요."

그리고 두 번째 악재.

"녀석은 키가 큰 탓에 타점도 너무 높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형태가 되면 상대의 턱을 흔들기가 쉽지 않아지지. 상대가 상체를 숙이며 접근해오면 더더욱 그렇게 돼."

"과연…."

"오늘 경기가 딱 그랬지. 루치아노가 턱을 방어하면서 들어오니까 정타로 맞춰도 뇌를 흔들지는 못했거든. 때리는 힘은 충분했어도 흔드는 힘이 부족했다고 할까. 뭐, 뇌를 흔들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만큼 유효타를 넣고 끝을 내지 못한 건 감점 요소이긴 하지만."

오늘 경기를 통해 성현의 평가는 67점에서 70점으로 3점이 상승해있었다.

자고로 70의 점수는 해당 체급에서 탑 5안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평가였다.

"그리고 설령 리의 펀치력이 약하다고 해도 문제 삼을만한 게 못돼. 그는 능숙한 경기 운영으로 승리를 끌어내는 타입이니까."

"하기야, 큰 펀치를 먹여서 KO승리를 거두는 것보다 말려 죽여서 이기는 게 더 어렵긴 하죠."

"그렇지, 만약 오늘 경기가 3라운드짜리 아마추어 경기가 아니라 12라운드짜리 프로 경기였다면 루치아노는 5라운드쯤에 말라서 죽어버렸을 걸?"

성현의 능수능란한 경기 운영을 전부 담아내기엔 3라운드는 너무 짧았던 것이다.

"리도 그걸 알고 3라운드에선 파고들어서 모험을 걸었던 거고."

"턱을 방어하는 상대의 가드를 치워내기 위해서 말입니까."

"그래, 굳이 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계속 일어나는 루치아노 녀석이 거슬린 걸지도 모르지."

16강 테르벨 풀레프와의 경기에선 바디를 집중 공략해서 상대의 가드를 내리게 했지만 빠르고 기술이 좋은 루치아노는 3라운드 만에 바디를 공략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미끼로 던져서 공략을 한 것이다.

"세 번째 악재는 뭡니까?"

"마지막 악재는 뭐, 말할 것도 없이 글러브지. 아마추어 글러브는 프로의 것보다 2온스는 높으니까."

"그거야 다 같은 조건이잖아요."

"어쨌든 펀치력 자체는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 프로 글러브였으면 루치아노가 이렇게까지 버티진 못했을 걸?"

잠시 흘러가는 침묵.

민머리의 스카우트가 미간을 찌푸린다.

"분명 걸물인 것 같긴 한데…. 전 뭔가 아쉽습니다. 타고난 싸움꾼의 기질이 보이질 않는다고 할까요. 본능적으로 급소를 찾아 때리는 야성이 없어요. 그저 배운 대로 정석을 따라 잘 싸울 뿐이죠."

이 말에 그레이엄은 오만상을 찌푸린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그거야 말로 타고난 싸움꾼의 기질이잖아."

"예?"

"배운다고 누구나 잘 싸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배워서 강해지는 것도 타고난 싸움꾼의 기질이라고."

"허! 그렇게 들으니 그 말도 맞는 것 같네요."

루치아노가 본능이라면 성현은 이성이었다.

궤는 다르지만 둘 다 타고난 싸움꾼인 셈.

스카우트들은 마지막으로 성현과 켐벨의 대결을 예상해보았다.

"이게 못해도 7라운드 경기였다면 리에게도 승산이 있었을 텐데 말이죠."

"뭐가됐든 지금은 솜주먹 상태이니…. 켐벨을 제어하고 점수를 따낸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스타일 자체가 상성관계에 있습니다."

"으음."

너나할 것 없이 켐벨의 승리를 예상하는 스카우트들.

유일하게 그레이엄만이 박빙의 승부를 점치고 있었다.

###

루치아노와의 경기 다음날.

나는 형석이와 얘기를 나누며 선수촌을 걷고 있었다.

형석이는 쉴 새 없이 떠들며 이번 일의 전말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번 루치아노의 사건은 의외로 깔끔하게 해결이 됐다고 한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여자 체조선수가 선수단 단장에게 내막을 밝히면서 끝을 맺은 것이다.

"허 참."

형석이는 어이가 없는지 실소한다.

"결국엔 쌍방 과실이었다니."

루치아노가 그 체조 선수를 꼬드긴 건 팩트다. 그리고 그 여자 선수도 동의를 하고 함께 방에 찾아갔다.

다만 그렇게 찾아간 방에 남자 둘과 여자 둘이 있는 걸 보고 경악을 했다.

루치아노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려던 것이지, 그런 특수한 상황을 예상하진 못한 것이다.

거기서 언어가 잘 통했다면 오해를 풀었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휴대폰으로 코치를 불렀다고 한다.

이후엔 알려진 그대로다.

사실을 안 선수단장 진성훈은 이 일을 굳이 경찰에 넘기지 않기로 했다. 루치아노 측도 딱히 법으로 싸울 생각은 없는 듯 했으니 이번 일은 이대로 종결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사실이 전부 밝혀지기 전까진 중립 기어를 박아야 한다고."

"뭐래, 너도 루치아노를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고 다녔잖아."

"그게 진짜 오해라는 거지. 난 걔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거든."

진실이야 어떻게 됐든 루치아노의 이미지는 회복되지 않았다. 2002 월드컵에 대한 망언을 정말로 하기도 했고, 적어도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있어선 최악의 쓰레기로 남게 됐다.

'뭐, 루치아노 그놈은 신경조차 안 쓸 테니 상관없나.'

그는 패배 직후 곧바로 짐을 빼고 선수촌을 떠났다고 한다.

선수촌에서 밤의 황태자로 군림하던 녀석 치고는 담백한 퇴장이었다.

짐작하건데 나를 잡아내기 위한 훈련을 준비하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형석이는 씁쓸한 듯 말한다.

"어휴… 올림픽이 끝나간다는 게 느껴진다. 첫날엔 그렇게나 선수들이 많았는데 이젠 그 절반도 보이질 않네."

"왜 또 감수성이 터졌어."

"어쩔 수 없잖아. 내 인생 최대의 분기점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데."

8월 7일에 펼쳐지는 형석이의 웰터급 8강전.

이기면 동메달과 함께 군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지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생의 분기점이라고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안되겠다, 난 한 번 더 뛰고 올게."

불안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전력으로 뛰어간다.

나는 벤치에 앉아 녀석이 돌아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 와중이었다.

"헤이, 리!"

돌연 내게 말을 걸어오는 흑인 남성.

그를 보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게 크레이그 켐벨이 내게 말을 걸어왔으니까.

"크레이그…?"

이 만남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 형석이가 오자고 하지 않았으면 이 먼 구역의 벤치까지 올 일은 없었을 테니.

그는 친근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처음 얘기를 하는 것임에도 오랜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태도다.

"반갑다, 코치가 억지로 보여줘서 어제 네 경기를 봤거든. 멋지던데?"

"…고마워. 나도 네 경기는 봤어. 이번에도 1라운드 KO를 따냈더라."

"뭐, 항상 그렇지. 네 다음 상대는 해리슨 베인즈였나? 그놈의 라이트 스트레이트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괜히 대포알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거든."

"…."

태도는 부드러웠지만 왜인지 기분이 더러웠다.

왜 그런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놈…. 나를 얕보고 있어.'

지금 이 녀석은 열심히 해보라며 나를 '격려'하고 있었다.

토너먼트 라이벌을 격려한다? 이게 가진 의미는 하나였다.

내가 어제 어떤 경기를 펼쳤든,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줬든 자기보다 한참 밑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내 자존심을 긁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까칠한 반응이 나왔다.

"다른 사람의 상대까지 분석을 해주고… 아주 느긋하네? 마치 이미 금메달을 따놓은 듯한 태도잖아? 너도 나처럼 다른 종목에서 미리 메달을 따놓기라도 했어?"

"…오호."

눈매를 좁히며 노려보는 켐벨, 나도 지지 않고 그 눈을 응시했다.

놈은 곧 피식 웃었다.

"금메달은 당연히 따놨지.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은메달에 만족하는 법을 알라고, 코리안."

"은메달은 이미 하나 있거든, 너야말로 그 무의미한 전승 기록이 깨질 때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냐?"

"…."

"…."

잠시 눈빛을 주고받은 켐벨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모두들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쓰러지지."

"그거야 네가 아직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지 않아서 그런 거고."

"잘도 말하는데."

놈은 얼굴을 들이밀며 폭력적인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하자 등골이 오싹해지며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럴 순 없었다.

나도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마주했다.

그렇게 서로의 몸이 맞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시선이 부딪혔다.

녀석이 나직이 말한다.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죽여줄게. 그 머리통을 터뜨려주지."

나도 뭔가 되받아칠 임팩트 있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만화에서 본 대사가 하나 떠올랐다.

"너무 강한 말은 쓰지 마. 약해보이니까."

"…!?"

한 방 먹였는지 녀석의 말문이 막힌다.

그때 마침 형석이가 돌아왔다.

"야, 이성현! 뭐해!?"

켐벨은 열이 식었는지 얼굴을 떼고 돌아간다. 그 경로에 있던 형석이는 켐벨의 떡대와 그 떡대에서 나오는 위압감에 굳어버렸다.

"…후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어느새 손바닥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형석이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서 말한다.

"쟤 켐벨 맞지? 난 네가 웬 흑인 아저씨랑 얼굴을 맞대고 있길래 키스라도 하는 줄 알았어."

"뭐래."

"우와, 근데 쟤 포스 장난 아니다. 저걸 보니까 내 상대가 귀엽게 느껴질 정도야. 갑자기 긴장이 확 풀리는데?"

우연하게 성사된 켐벨과의 만남.

놈과 다음에 만나게 될 장소는 말할 것도 없이 링 위가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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