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 유어 페이스-64화 (64/250)

< 64 : 32화. 로열로드 >

중반을 지나 종반으로 접어드는 올림픽.

대한민국은 8월 7일까지 금메달 12개를 획득하며 쾌조를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8월 8일부터는 태권도 일정이 시작되니 역대 최고 기록인 금메달 13개를 갱신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성적도 성적이고, 심지어 이성현 같은 하이틴 스포츠 스타까지 등장하면서 국내의 올림픽 흥행은 지난 베이징만큼이나 뜨거웠다.

주요 중계가 있는 날이면 가족들이 삼삼오오 TV앞에 모였고, 대학가의 호프집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7일에 펼쳐진 심형석과 안드레이 잠코보이의 경기를 맞아 주은의 가족들도 습관처럼 TV앞에 모여 있었다.

"시은아, 주은이는 뭐하고 있길래 안 내려오니?"

"남편이랑 전화하나봐. 아주 좋아죽더라고."

마침 중계 화면에서도 관중석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성현을 비추었다. 국내 카메라가 잡은 게 아니라 공식 중계 카메라가 잡은 영상이었다.

이는 성현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미 미국 복싱계에선 4강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미국의 핵주먹과 아시아의 프린스가 금메달을 놓고 자웅을 겨룰 거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었다.

"슬슬 내려오라고 해. 어차피 경기 시작하면 성현이도 전화는 끊어야 할 거 아니야."

"알써."

시은은 통통 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주은의 방은 슬쩍 열려있었다. 문을 닫아놓으면 딸 지은이 엄마를 찾으며 문 앞에서 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은은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슬쩍 귀를 기울였다.

"으응…. 조금만 더 통화하면 안 돼? 1분만 더."

애교와 투정을 섞은 기묘한 목소리에 가족인 시은은 소름이 끼쳐 부르르 떨었다.

차마 못 듣겠다 싶었는지 똑똑! 노크를 하며 기척을 낸다.

"응? 언니, 왜?"

"경기 곧 시작한데. 네 남편도 곤란해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빨리 끊어."

"으으…."

주은은 입을 삐죽 내밀며 통화를 마친다. 끊을 때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 잊지 않았다.

시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주 깨가 떨어져요."

"뭐가."

"너네 사귄지 5년은 되지 않았냐? 그런데 아직도 새내기 커플 같단 말이야."

남녀 교제를 수도 없이 해보고, 봐오던 시은에겐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로 보였다.

'아무리 뜨거워도 3년이 지나면 식어버리던데 말이지.'

그녀가 보기에 주은이 한 남자에게 헌신적인 부분도 있지만 성현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다.

"주은이 네 남편이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은근히 밀당을 잘하나 보다?"

"언니도 그렇게 생각해!? 진짜 그렇다니까! 우리 오빠가 표현을 잘 안하다가도 가끔씩은 나한테 막 드러낸다? 그게 얼마나 치명적인데! 예전에 약혼 기념일엔 있잖아?"

"어휴, 또 남편 자랑 시작했네. 애인 없는 사람은 슬퍼서 살겠냐."

"어? 언니 헤어졌어?"

"말했잖아! 그놈이 바람 폈다고!"

"에헤헤, 그러니까 나처럼 좋은 남자를 만나야지. 우리 오빠는…."

시은은 주은의 자랑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함께 거실로 내려왔다.

딸 지은은 엄마가 나타나자 안아달라며 보챈다.

주은은 지은을 안아들고 소파에 앉았다.

그때 마침 선수 소개가 시작됐다. 아버지 명훈은 고개를 끄덕인다.

"저 친구가 성현이 소꿉친구라며?"

이에 장남 휘진이 답한다.

"맞아요, 이번에 기사도 나왔잖아요."

형석이 8강전 경기를 앞두고 한 인터뷰였다.

형석은 그 인터뷰에서 성현에 대한 진심어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때 성현이 형석을 위해 부모님을 런던에 초대한 미담도 덩달아 알려졌었다.

차남 휘민은 감탄한다.

"서로 친구를 잘 둔거지. 이야, 저런 친구가 진짜 평생 가는 친구인데. 성현이 쟤가 친구 챙기는 법을 잘 아네."

성현에 대한 주은네 가족의 평가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아버지 명훈도 이젠 딱히 불편한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걸 본 주은은 결혼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하고 내심 황홀해 한다.

"어, 경기 시작했다."

이기면 4강에 진출하며 동메달을 확보하게 되는 중요한 경기.

형석은 이 경기가 기세 싸움이 될 거라고 판단하고 1라운드부터 공격적으로 밀고 나갔다.

원투에 이은 바디 콤비네이션으로 착실하게 점수를 따려 했던 것이다.

이게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상대 잠코보이는 지난 경기에서 형석이 보여준 카운터를 의식하여 추격을 망설였다.

그런 심리의 틈을 파고든 형석은 차근차근 점수를 벌며 1라운드 1분 40초까지 미세한 우세를 점한다.

[좋습니다! 이대로라면 1라운드 판정은 심형석 선수에게 갈 거예요!]

[그렇담 남은 시간을 버텨야 할 텐데요! 아, 러시아의 안드레이 잠코보이! 파고듭니다!]

잠코보이의 강점은 긴 팔을 이용한 중거리 싸움이었다.

특히 그는 사우스포였기에 이런 거리 싸움에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기묘한 타이밍에 순간 리듬을 잃고 만 형석은 바디를 치고 빠져나가는 사이에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통타당하고 만다.

상체를 숙인 상태에서 얻어맞은 형석은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아…. 다운을 뺏기고 맙니다.]

[잠코보이 선수가 잘 노렸네요. 심형석 선수의 펀치 콤비네이션을 끝까지 보고 있었어요.]

[이러면 1라운드는 잠코보이 선수에게 가겠는데요.]

[심형석 선수가 2라운드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모험을 걸어야 해요.]

그렇게 2라운드부턴 진흙탕 싸움이 펼쳐졌다.

만회하려는 형석과 굳히려는 잠코보이.

형석은 중거리에서 퍼부어진 견제를 깡으로 버텨내며 유효타를 적립. 가까스로 2라운드를 호각으로 끝낸다.

[심형석 선수가 사우스포에 대한 준비가 덜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사우스포를 상대로 파고들 때 오른손 가드를 함부로 내리면 큰 코 다치거든요. 지금 심형석 선수가 급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라이트를 성급하게 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른쪽 얼굴이 비어버리면 사우스포의 입장에선 고맙거든요.]

마지막 3라운드에서도 이 부분은 고쳐지지 않았다.

3라운드 1분 21초가 지나는 시점에 형석은 어중간하게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시도, 이에 잠코보이는 기다렸다는 듯 왼쪽 사이드로 이동하며 레프트 훅 카운터를 먹이려 한다.

이때 비로소 독사 작전이 번뜩였다.

사실 형석이 사우스포에 준비가 덜 됐을 리가 없었다. 사우스포 훈련 파트너로 성현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틈을 내준 건 이 함정을 위해서였다.

1라운드 다운을 당한 건 그 과정에서 나온 오산이었을 뿐. 오히려 그 다운으로 인해 상대가 감쪽같이 속아버렸다.

형석은 그 레프트 훅을 기다렸다는 듯 더킹으로 피하고는 끼익! 순간 사우스포로 전환하여 뒤에 있던 오른발을 앞으로 힘 있게 전진.

팡! 상체를 일으키며 레프트 어퍼컷을 작렬시켰다.

[됐습니다! 됐어요!]

[상대가 아직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계속 몰아쳐야 해요! 다운을 뺏어내야 합니다!]

러쉬를 가하는 형석.

충격을 받은 상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클린치 밖에 없었다.

잠코보이는 형석의 오른팔을 붙잡으며 몸을 붙이려 했다.

그걸 팍! 형석은 왼손 숏어퍼로 턱을 한 번 더 강타한 뒤 몸을 뒤로 뺐다.

잠코보이는 형석의 오른팔을 붙잡은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

[다운! 이제 동률이에요! 심형석 선수! 상대가 일어나면 쉴 틈을 주지 말고 몰아쳐야 합니다!]

3라운드 남은 시간 1분 30초.

잠코보이는 회복을 위해 클린치를 계속 시도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때마다 형석은 짧은 공간을 이용해 복부를 가격하며 심판들에게 어필을 했다.

마지막 30초에는 잠코보이가 반격을 가했으나, 여기선 오히려 형석이 클린치를 걸며 3라운드가 끝이 나고 만다.

[심판들이 채점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과연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요…!]

[제가 보기엔 박빙입니다. 심판 개인의 판단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가 있어요. 같은 다운이라도 심판에 따라 점수를 다르게 줄 수 있거든요.]

[위원님, 이번 런던 올림픽에선 헤드기어 퇴출과 함께 3심제가 도입이 됐는데요. 이건 역시 WCB의 흥행과 맞물려 있다고 봐야할까요?]

[그렇죠. 본래 헤드기어 퇴출은 계속 얘기가 나오고 있던 것이긴 합니다만 이번 런던에서 퇴출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거든요. 아마 올림픽 위원회에서 WCB의 흥행을 보고 헤드기어를 퇴출시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이번 올림픽 복싱은 전에 비해 크게 흥행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헤드기어 퇴출과 3심제가 동시에 도입됐으니까요. 선수들이 공격적으로 운영을 할 수밖에 없죠.]

[아, 판정이 나온 것 같습니다! 주심이 결과를 발표합니다!]

결과는 아슬아슬했다.

1라운드는 10-8, 10-8, 10-8 잠코보이. 2라운드는 10-9, 9-10, 10-9로 잠코보이.

그리고 3라운드에서 7-10, 8-10, 7-10으로 심형석이 따낸다.

심판 A가 27-27. 심판 B가 27-28, 심판 C가 27-27.

두 명이 무승부, 한 명이 형석의 손을 들며 0-1의 판정승으로 형석의 4강 진출이 확정된다.

[이겼습니다! 이겼어요! 심판들은 3라운드 전체를 심형석 선수가 압도했다고 봤습니다!]

[잠코보이가 따낸 다운보다 심형석 선수가 따낸 다운을 더 높게 평가한 겁니다!]

[심형석 선수 동메달 확보! 길성 고등학교의 어린 선수들이 계속해서 세계를 놀라게 만듭니다!]

그때 NTBC의 중계화면 7시 자투리 공간에 모여 있던 복싱부 후배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방송사가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 미리 파견을 한 것이었다.

더불어 중계 메인 화면엔 코치들과 성현이 서로를 끌어안고 기뻐하는 모습이 비쳤다.

형석도 부모님과 성현이 있는 곳으로 포효를 했다.

"우와…."

시은은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으로도 느껴지는 서로간의 각별함. 그 중심에 성현이 있음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사람꾼이 따로 없구만.'

무뚝뚝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유형.

'저런 유형이 보통 여사친까지도 잘 챙겨주던데. 자칫하면 주은이가 마음고생 좀 할지도 모르겠네.'

시은은 경고를 해줄까 했으나, 딸과 함께 기뻐하는 주은을 보며 괜한 오지랖이라 생각하고 말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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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석이의 경기가 끝난 다음날.

녀석은 기상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아싸 군대 안 간다─!"

"그게 기지개를 켜면서 할 소리냐?"

"아침 먹으면서도 할 거거든? 자기 전에도 할 거야!"

동메달을 확정지은 게 얼마나 기쁜지 어린애처럼 침대를 뒹굴었다.

"어휴, 네가 3, 4위전을 했어야 하는 건데."

"뭐래냐. 복싱은 3, 4위전이 없어서 좋은 건데! 동메달 2개! 너도나도 행복한 결과잖아!"

"아무튼, 군대얘기 하면서 너무 시끄럽게 떠들지 마. 다른 선배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

"아…. 그것도 그러네. 메달을 따내지 못한 선배들이 많으니까…."

형석이는 시무룩하여 입을 다물더니 휴대폰을 꺼내들고 다시 희희낙락한다.

꼬락서니를 보니 4강전은 글렀다 싶었다.

'뭐, 동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정말 높이 올라온 거지만.'

형석이의 복싱 재능은 뭐라고 할까, 오묘했다.

기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타고난 부분은 없었지만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났다.

야구로 예를 들면 타율과 장타율은 부족하지만 중요할 때 출루를 해주거나 작전을 성공시키는 2번 타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정말 잘 했어."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난 나갔다 온다."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사실 다 들었거든! 내가 진짜 잘하긴 했지! 푸하하!"

형석이의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방을 나온 나는 선수촌 내의 인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시계를 확인하며 전화를 걸기로 한 약속 시간까지 기다렸다. 이건 그만큼 중요한 전화였다.

전화를 건 대상은 최종훈 이사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사장님."

[이사장님은 무슨, 아버지라 부르라니까. 선영이도 그렇고 나한테만 서먹서먹한 거 아니냐? 특히 성현이 너. 병식이 녀석한테 들었다. 성을 안 바꾸겠다고?]

"…예, 그 부분은 양해해주십시오."

선영이는 이미 최선영으로 개명을 하기로 결정이 된 상태였다. 친구들이 바뀌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유선영이란 이름을 버리기로 했다.

다만 나는 성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이유를 들어봐도 되겠냐? 네가 친부모를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닐 테고.]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내 전생의 성이 같은 이 씨였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유이면서도, 그렇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내게 부탁하고 싶다는 건 뭐냐.]

"조금 복잡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를 올 아메리칸 보이즈 게임에 나갈 수 있게끔 해주십시오."

올 아메리칸 보이즈 게임. 미국 고교 농구 선수를 모아 서부와 동부로 대결을 펼치는 이벤트였다.

고교 농구의 올스타 게임이라고 할까.

[올 아메리칸 뭐?]

"얘기는 지난번에 병식이 아저씨에게 해놨습니다. 이사장님께서도 알기 쉽게끔 자료를 정리해놓으셨을 거예요."

곧 휴대폰 너머로 임병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차근차근 설명을 한다.

전부 이해를 했는지 최종훈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건 미국 고등학생들만 나갈 수 있는 거잖냐.]

"국적은 상관이 없습니다. 미국 고등학교 소속이기만 하면 되죠. 그리고 우리 길성고는 WASC인증을 받은 학교고요."

WASC. 간단히 말하면 미국 서부 학교 협회다.

길성 중고는 국제고등학교의 특성도 가지고 있었다. 부잣집 자제들의 유학 코스라고 할까.

하여 국제반을 따로 운영을 한다.

그런 만큼 미국 학교와의 자매결연도 많았고, 여러 연줄이 있다.

[잘도 조사를 했네. 그렇지만 아마 힘들다고 본다. WASC를 받았다곤 해도 결국 한국의 고등학교니까. …뭐, 그 대회의 룰 북에는 이 부분에 대해 따로 명시돼 있지 않긴 하겠지. 전례가 없을 테니까. 로비를 해서 밀어붙이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닐 지도 몰라.]

"…."

[…하핫. 너, 애초에 그렇게 해달라고 내게 연락을 한 거였구나.]

"맞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성사를 시켜주셨으면 해요. 로비를 통해 규칙을 바꿔서라도 말이죠."

지금 규칙으로는 내가 참여하지 못할 수 있어도 규칙이 바뀌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령 기존 대회는 기존대로 하고, 따로 추가로 한 경기를 더 한다든가.

최종훈의 재력이라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로비 과정과 스폰서 계약과정에서 수십억의 돈이 깨질 테지만 어쨌든 성공시킬 수 있다.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월성 은행과의 CF계약에 대한 금액도 있고요. 지금에 와서는 여러 방법으로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훗, 그건 그렇지. 넌 지금 국민적인 스포츠 스타니까.]

최종훈은 머릿속의 주판을 굴리는지 잠시 침묵을 한다.

[자신은 있냐? 그러고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하면 어쩌려고?]

"자신 있습니다. 이미 가볍게 검증을 하기도 했고요."

호세 칼데론과의 승부. 그 연습 게임은 내게 자그마한 확신을 심어줬다.

[…좋다, 추진해주지. 솔직히 말하면 우리 입장에서도 나쁜 제안은 아니야. 우리도 스포츠 스폰서십 광고를 하나 생각하고 있었거든.]

"감사합니다. 꼭 성사시켜주십시오."

[그래, 맡겨둬라.]

올 아메리칸 보이즈 게임의 날짜는 내년 4월. 이후 6월 28일에 NBA드래프트가 있다.

난 이 코스를 밟아 대학 농구를 패스하고 곧장 NBA에 입성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농구 생각이나 하고 괜찮은 거냐? 금메달은 따야지.]

"그거라면 이미 만전의 상태입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지난번 크레이그 켐벨과의 신경전 이후 내 감각은 바짝 서있었다.

소위 말하는 질 자신이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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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에 펼쳐진 복싱 4강전.

성현과 형석은 나란히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성현의 경기가 런던 시간으로 오후 1시 30분부터 있었고, 형석의 경기는 오후 6시 정도부터 시작을 한다.

[이성현 선수가 링 위에 올라갑니다! 과연 은메달을 확보할 수 있느냐! 지난 번 경기와 같은 통쾌한 승리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침착해 보이네요. 표정이 좋아요.]

[그런데 오늘은 경기장의 분위기가 어수선해 보이네요.]

[아무래도 상대 해리슨 베인즈가 영국 선수이니까요. 자국 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은 것 같습니다.]

해리슨은 가라앉은 눈으로 성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겉으론 침착하고 있었으나 내심으론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루치아노를 농락한 그 경기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코치가 말한다.

"괜찮아, 놈은 펀치력이 강하지 않은 편이야. 얻어맞더라도 큰 펀치로 반격을 가하면 네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거다!"

해리슨은 182cm의 키와, 감량 이후 리바운드를 통한 93kg의 체중을 가지고 있었다.

작고 단단한 유형. 스카우트들이 성현의 천적일 거라 예상한 유형이었다.

해리슨도 비슷한 생각으로 경기를 풀어가려 했다.

최대한 자세를 낮춰 성현의 펀치 타점을 위로 올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팡! 파고드는 해리슨의 관자놀이를 강타하는 성현의 레프트 훅.

쿵! 그 한 방에 해리슨은 곧바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1라운드 21초 만에 나온 다운.

"무슨…!?"

이에 해리슨은 물론이고 영국 코치들도 입을 떡 벌렸다.

국내 해설진은 탄성을 내지른다.

[다운입니다! 이렇게 빠르다니요!]

[완벽한 타이밍에 펀치가 나갔어요. 제대로 끊어쳤습니다! 해리슨 베인즈 선수는 지금 눈앞이 핑핑 돌 거예요! 뇌가 흔들렸거든요!]

해리슨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경기 재개 신호가 떨어지자 성현은 그에게 달려들어 미드레인지에서 강하게 압박을 했다.

맞으면서 반격을 가하려던 해리슨이었지만 첫 번째 다운으로 인해 망설임이 생긴 상태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순 없어.'

스피드와 테크닉, 펀치 리치 측면에서 성현이 우위에 있는 만큼, 뭐가됐든 파고 들어야했다.

그 파고드는 과정에서 들어오는 견제는 일정부분 허용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꽈득! 이를 악물고 접근하는 해리슨.

파파파팡! 그러나 견제로 들어오는 펀치들 하나하나가 매서웠다.

해리슨은 그 견제를 가까스로 버텨내며 자신의 주특기인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대포알이라고 까지 칭송받는 그의 무기.

그러나 성현은 뻔하다는 듯 가볍게 피해내며 레프트 어퍼 카운터를 먹인다.

핑! 하는 기묘한 소리.

이와 함께 해리슨은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다운을 선언하려던 심판은 실신한 해리슨을 보며 곧장 손을 휘저었다.

[우와아아아! 경기 끝입니다! 1라운드 1분 8초 만에 나온 실신 KO!]

[좋습니다! 내일 있을 결승전을 대비해 체력을 아꼈어요!]

이 경기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던 WCB의 스카우트들은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빨리 교정을 했다고!? 미, 믿을 수 없군. 이미 기술적인 측면에서 완성이 돼있었다는 건가!"

"애초에 할 수 있었다는 거군…!?"

지금껏 아시아 선수들만 상대했던 성현에겐 이런 펀치가 필요 없었다. 평범한 타격으로도 끝이 났으니까.

하지만 목 근육이 두꺼운 서양 선수들의 머리를 흔들기에는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성현도 외국 선수를 상대하는 건 이번 올림픽이 처음이었기에 적응하는 과정에 있었다.

그렇게 그 적응을 끝내고 이번 경기에서 적용을 했다.

불과 한 경기 만에 단점을 지워버린 것이다.

"빨리 리포트를 고쳐야겠군!"

"이러면 켐벨과의 경기도 모르게 되겠어!"

스카우트진은 만장일치로 동의하며 성현의 펀치력 점수를 6점에서 8점으로 상승, 여기에 정확도 점수를 8점에서 9점으로 올리며 도합 3점이 상승.

종합 73점이 되며 크레이그 켐벨과 동점을 맞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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