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 유어 페이스-67화 (67/250)

< 67 : 33화. 천둥의 신(2) >

마지막이 될 3라운드.

자그만 사고로 인해 2라운드를 상대에게 뺏기고 말았지만 2라운드 마지막 공방을 통해 많은 점수를 뺏기진 않았다.

'점수로는 아직 내가 유리해. 이걸 상대가 의식하지 않을 리 없어.'

아니나 다를까, 켐벨은 빠르게 달려들었다.

'일단은 유인…!'

나는 강한 견제를 퍼부으며 도망을 가 놈을 끌어들였다.

점수 부분에서 쫓기는 켐벨은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 공방에서 소모된 시간이 대략 41초.

마침내 구석에 몰리기 직전 상황이 됐다.

스윽! 나는 이 타이밍에 가드 스타일을 크랩 가드로 바꾸었다.

양 팔을 가슴 아래에 둔 가드 스타일. 머리를 오픈 상태로 두는 이 스타일에 켐벨의 눈이 커졌다.

"들어와."

"…!"

내 도발에 꽉! 켐벨이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팡! 나는 왼손 플리커로 견제를 하며 사이드로 후퇴. 이미 반쯤 몰린 상황이었기에 내 등 뒤로 로프가 위치한다.

플리커를 피해내며 추격해 들어온 켐벨은 내 바디를 노리지 못한다.

크랩 가드 형태이기에 오히려 바디 방어는 완벽했으니까.

놈은 더킹 이후 상체를 들어 올리며 레프트 훅을 시도.

이걸 우측 위빙으로 피하며 팡! 녀석의 바디에 라이트를 먹였다.

이 순간. 툭! 내 오른쪽 등에 로프가 닿는다.

득달같이 몸을 돌린 놈은 오른 주먹을 쏘아냈다. 위빙으로 인해 상체를 살짝 숙이고 있었기에 놈과 나의 눈높이가 맞춰졌다.

내 얼굴을 향해 올곧게 날아오는 스트레이트.

이 순간을 노린 나는 왼쪽 어깨를 들어 그 펀치를 막았다.

회심의 숄더 롤.

꽈득!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놈의 턱을 향해 라이트 훅을 시도했다.

'그 숨통, 끊어주마!'

이게 작렬하면 그대로 끝.

그러나 휘익! 놈의 상체가 사라졌다.

마지막 순간에 상체를 숙이며 내 오른쪽으로 위빙을 한 것이다.

내가 회심의 숄더 롤을 준비한 것처럼, 놈도 이것 한 방을 노리고 있던 것이다.

"뭣…!?"

"흐읏…!!"

라이트를 피해 내 우측으로 이동한 놈은 레프트를 내지른다.

이건 피하지 못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오른 주먹은 당장 회수하지 못하니 가드를 할 수도 없었고, 숄더 롤도 불가능.

위빙이나 더킹도 타이밍이 맞질 않는다.

그렇담 길은 하나뿐.

꽉! 나는 왼손을 꽉 쥐고 놈의 안면을 노려 주먹을 내질렀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나와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켐벨.

팡!!

순간 의식이 끊긴 듯, 시야가 까매졌다.

나는 실신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해 최대한 의식을 붙잡았다.

그러자 마치 주마등처럼 지금까지의 광경이 스쳐갔다.

헬스장에서 만난 철민 대표, 내 PT회원들, 김준우 형도.

형석이, 복싱부 후배들, 코치님들, 최종훈 이사장도 보였다.

수영부의 윤성호 코치와 이용호.

주은이와 그 가족들. 그리고 딸 지은이.

그리고 마침내 금메달 같은 건 따지 않아도 오빠는 대단하다며 웃고 있는 선영이가 보였다.

어젯밤에 전화를 해서 그런지 그 목소리가 정말로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끼익! 어떻게 움직였을까.

나는 의식이 날아가며 쓰러지는 중간에 오른발을 뒤로 빼 균형을 잡았다.

이후엔 로프를 슬쩍 붙잡고 뒷걸음질 치며 중립 코너로 향했다.

"다운!"

쓰러져 있는 켐벨에게 다운을 선언하는 심판.

"허억! 허억! 허억!"

나는 어지러운 것을 억지로 참으며 숨을 골랐다.

정말로 선영이의 목소리가 닿은 건지, 그도 아니면 그저 훈련으로 만들어진 동물적인 감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다운을 피한 건 컸다.

이걸로 3라운드를 내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여기서 KO로 끝날 가능성도 있었다.

순간 의식이 끊어져서 어떻게 쳤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목 근육이 통나무만한 켐벨이 허우적거리며 일어나려는 걸 보면 뇌를 흔드는 것에 성공한 모양이다.

"쓰리! 포! 파이브!"

"할 수 있다고! 카운트 그만해!"

"식스! 세븐!"

"으아아앗!"

집념으로 일어나는 켐벨.

"에잇! 나인! …계속 할 수 있나?"

"할 수 있다잖아!"

경기 재개 신호를 보내는 심판.

켐벨은 휘청이며 내게 다가왔다.

지금은 데미지 회복이고 뭐고 공격을 해야만 했으니까.

나는 그런 놈을 상대해주지 않기로 했다.

굳이 모험을 걸 상황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클린치를 걸어라 성현아!"

"점수는 이미 충분해! 도망가!"

이미 승기를 99% 굳힌 상황에서 KO를 따내겠다고 정면 승부를 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클린치를 걸며 놈의 진을 뺐다.

그럴수록 놈의 얼굴이 상기됐다.

내가 클린치를 걸며 껴안자 호통을 친다.

"빌어먹을! 제대로 해!!"

"이게 제대로 하는 거잖아. 아웃복서는 원래 이렇게 승리를 따내는 거라고."

그러다 3라운드 2분 20초가 지날 즈음. 나도 데미지에서 회복을 했기에 현란하게 도망을 갔다.

파파파팡! 다시 시작된 강한 견제.

켐벨은 뚫고 들어오려 했지만 조급함이 너무 강한 나머지 이젠 가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잽을 먹이며 후퇴.

마침내 땡! 경기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렸다.

웅성이는 경기장.

미국 팬들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켐벨의 승리를 보러 온 미국 농구팀 선수들은 분위기가 싸해져 입도 뻥긋 하지 않고 있었고, WCB의 회장 멜슨 버드는 오묘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메이웨더는 머리를 긁적였고, 파퀴아오는 기립하여 박수를 보냈다.

헤비급 챔피언 모하메드 사다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퇴장한다.

그 와중 심판은 채점을 하고 있는 3심에게 다가가 채점지를 모아온다.

"하아! 하아…!"

켐벨과 미국 코치진은 낭패한 표정으로 판정 결과 발표를 기다렸다.

주심이 곧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예상과 같았다.

1라운드는 10-7, 10-8, 10-8로 나, 2라운드는 8-10, 9-10, 9-10으로 켐벨. 마지막 3라운드에서 10-8, 10-9, 10-8로 내가 가져오며 심판A(28-25), 심판B(29-27), 심판C(29-26)으로 3-0심판 만장일치 판정승이 나온다.

심판이 내 손을 번쩍 들었다.

"우와아아아!!"

"성현아!!"

만세를 부르며 링에 난입하는 코치님들.

관중석의 형석이도 환호성을 질렀고 관중들이 가진 태극기가 여기저기서 펄럭였다.

김준우 형도 동료 연예인들과 손을 맞잡으며 기뻐했다.

그런 축제 분위기를 깨버리는 괴성이 있었다.

켐벨은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미국 코치들이 위로를 해주고 있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불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쏘아붙였다.

그 패기로운 기세에 다들 몸을 굳혔다.

"You son of a bitch…!"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거칠게 말을 이어간다.

"You think i'm done with you!? you think this ends here!? it doesn't──!!"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지리멸렬한 말.

하지만 나는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뻔했으니까.

"아니, 여기서 끝났어. 넌 나한테 진 거야."

"으아아아!"

분노가 폭발해 달려들려는 켐벨.

"그만해 켐벨!"

"경기 결과는 나왔어!"

흥분한 그를 미국 코치들이 육탄으로 막아 링에서 끌어내렸다.

그제야 온전히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미국 관객들도 기립하여 박수를 보내준다.

"아자아아아─!"

나는 속에 끓고 있던 환희를 표출.

관중들도 상응하는 환호성으로 답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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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일치 판정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성현.

국내에선 난리가 났다.

[금메달──!! 이성현 선수 금메달입니다! 이걸로 우리 대한민국은 역사상 최고인 금메달 14개를 기록하게 됩니다!]

[엄청난 승부였어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질 않습니다!]

더블 다운에 서로의 안면을 강타하는 카운터까지.

특히 마지막 다운을 뺏은 성현의 펀치에 대해 외신에선 천둥의 신이 벼락을 쳤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우와아아아! 언니! 우리 오빠가 이겼어! 금메달이야!"

"진짜 대박…."

차마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고 있던 주은은 판정 결과가 나오자 만세를 불렀다.

이는 최종훈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금메달이다! 병식아! 미리 제작한 플랜카드 동네방네에 다 걸어라!"

"바로 지시 내릴게요!"

고교 재학생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대업이 길성 고등학교에서 달성된 것에 최종훈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미 성현의 활약으로 길성고는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단순 부자 학교가 아닌 진짜 엘리트 학교로.

명예에 굶주려 있던 최종훈에겐 최고의 결과였다.

그러던 그때 임수영이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영에게 말한다.

"선영이 넌 기쁘지 않니?"

선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기뻐요, 그치만 오빠가 아파하는 게 싫어서요."

"성현이는 괜찮을 거야. 그보다 오빠 돌아오면 축하해줄 준비를 하자."

"네!"

이어지는 시상식.

켐벨의 경우엔 도무지 시상식에 나올 기분이 아닌지 부상을 핑계로 코치를 대신 내보냈다.

성현이 금메달을 목에 걸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휘파람을 불며 성현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관중들.

곧 엑셀런던 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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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이 끝난 후.

내 선수 대기실로 형석이가 뛰어 들어왔다.

"야 인마─!!"

나를 와락 끌어안은 녀석은 신나게 괴성을 지르더니 곧 눈물을 흘리며 오열한다.

"진짜 잘 했어! 잘했다고…!"

김현수 코치님도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표명호 코치님은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내게 말한다.

"성현이 너, 오늘 인터뷰는 각오해야 할 거다. 지금 난리도 아니거든."

"하하…. 그런 거면 그냥 빨리 끝내고 오는 게 좋겠네요."

나는 바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믹스트 존으로 나가자 카메라와 기자들이 잔뜩 보였다.

심지어 이번엔 외신들도 출동해 있었다.

"이성현 선수! 금메달 축하해요!"

"축하합니다!"

그런 기자들의 환영 속에 자리를 잡자 마이크 뭉텅이가 내 가슴 쪽으로 다가왔다.

먼저 한 기자가 소리친다.

─오늘 경기에 대한 이야기와 금메달에 대한 소감을 들려주세요!

"음…. 경기에 대해서라면 작전대로 된 부분이 있고, 작전대로 되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금메달에 대해선 당연히 기쁩니다."

─경기가 끝나고 상대 크레이그 켐벨 선수가 고성을 질렀는데요. 무슨 얘기가 오고간 건가요?

"결과에 불만이 있는 것 같아서 확실히 말해줬습니다. 네가 졌다고요."

탄성이 흐르는 믹스트 존.

그때 외신 기자가 손을 들며 말한다.

─이번 승리로 WCB 입성에 대한 전망이 확실해졌는데, 계획을 들려줄 수 있나?

이 영어로 한 질문에 한 기자가 통역을 해주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여러 가지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WCB에 입성하는 것도 그 선택지 중 하나이죠."

─예를 들어 수영 선수를 한다든가?

"…그 부분은 선택지에 없습니다."

─그럼 어떤 선택지를 말하는 건가?

농구 입성에 대한 선택지였지만 이걸 말했다간 WCB와의 계약 협상에서 손해를 볼 수 있었으니 지금은 감춰두기로 했다.

"잡다한 것들입니다. 가령 어떤 대학을 갈 것인가 같은 거죠."

─흠, WCB는 크레이그 켐벨과 네 리매치 카드를 만지작거릴 게 분명하다. 반드시 계약 제안이 올 텐데.

"만약 WCB에 간다고 하면 그와의 리매치보단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는 것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다시 국내 기자들이 질문을 던진다.

─국내에 돌아가면 방송국에서 러브콜이 쏟아질 것 같은데요. 나가고 싶은 프로그램 같은 게 있나요?

"그건 돌아가서 생각을 하겠습니다. 지금은 우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이걸로 인터뷰는 끝.

추가적인 심층 인터뷰는 내일로 미뤄두고 선수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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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한 관심을 받은 성현과 켐벨의 경기.

관련 기사들도 쏟아졌다.

[올림픽 헤비급 금메달 이성현. 동양인으로는 최초!]

[켐벨의 커리어 첫 번째 패배는 아시아의 프린스에게.]

[토르의 천둥이 떨어지다. 번개같은 레프트에 무너진 켐벨.]

성현의 인터뷰도 화제가 됐다.

내용 자체는 정석적인 답변들이었기에 큰 이야깃거리는 되지 않았지만 외신 기자와의 문답이 주목을 받았다.

《이성현 얘 영어 개잘하네. 뭐임?》

《대충하는 것도 아니고 의사소통이 진짜 자연스러운데?》

《어디서 봤는데, 이성현 얘 공부도 탑급이라던데. 전교 10등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대.》

《아무리 그래도 그건 개소리다ㅋㅋ 운동만 개열심히 했을 텐데 공부할 시간이 어딨음.》

《저 길성고 학생인데요. 이거 진짜에요. 이성현 선배님 인문계 애들 사이에서 유명해요. 선생님이 이걸로 갈굼. 체육계도 못 이기냐고.》

이외에도 길성고 학생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증언을 하며 기사로까지 보도가 된다.

[문무양도!? 이성현 학교 성적 전교권 놓친 적 없어….]

[인증 줄줄이. 올림픽 직전의 6월 기말고사도 전교 7등!]

주가 폭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

미국 언론에서도 성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독보적인 챔피언 모하메드 사다트의 대항마가 나왔다느니, 라이트 헤비급, 헤비급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거라느니 법석을 떨었다.

그러던 와중 패배 이후에 나온 크레이그 켐벨의 인터뷰가 화제가 된다.

[크레이그 켐벨 패배를 인정하지 않다. "내가 불리한 경기였다. 내 체중이 90kg이었으면 놈은 피떡이 됐을 것."]

이는 켐벨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었다.

세 체급 제패를 위해 이번 올림픽이 끝나고 슈퍼 미들급으로 WCB에 입성할 예정이었던 켐벨은 한계 체중인 90kg까지 증량을 할 수가 없었다.

성현과의 경기 직전에 한 계체에서는 84kg이 나왔었다.

다시 말해 자기가 헤비급 한계 체중인 90kg을 맞췄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뜻이었다.

당연하지만 추접한 변명이었다.

켐벨은 이를 지적한 기자를 살벌한 눈빛으로 쏘아보곤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이러한 그의 반응은 성현과의 재대결을 원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했다.

이를 WCB가 놓칠 리가 없었다. 그들은 이 리벤지 매치가 엄청난 PPV를 기록할 거라 확신하고 성현에 대한 계약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남기며 막을 내린 올림픽.

이젠 그 축제의 뒤풀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성현이 귀국길에 오름에 따라 호시탐탐 때를 기다리고 있던 방송국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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