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 38화. 스토리 메이킹 >
멜슨 버드는 복싱 단체의 통합을 주도한 것으로, 순식간에 스포츠계 거물로 떠오른 인물이었다.
본래는 유명한 투자 회사에서 수석 펀드 매니저로 일하던 사람이었다는 듯 하다.
그런 낭비가 없는 일을 해 와서 그런지 버드는 자리에 앉자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갔다.
"농구 실력은 있나?"
"자신은 있습니다."
"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NCAA에 나가기라도 하려고? 그런 것 치곤 이미 한국 대학에 갔다던데."
"…올 아메리칸 게임을 통해 곧바로 올해 NBA 드래프트를 노릴 생각입니다."
침묵이 흘러갔다.
프런트 직원들도 설마 NBA를 운운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눈살을 찌푸린다.
다만 버드는 이것도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는 눈치다.
"복싱을 하면 돈 방석에 앉을 게 뻔한 상황에서 농구에 눈을 돌렸다면 그만한 선택지를 고려했다는 거겠지. 농구에서 그 정도 무대라면 NBA밖에 없겠고. 그래서? NBA에서 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제 실력을 본 구단들이 선택할 일입니다."
"…음."
그는 턱을 쓰다듬더니 내 눈을 지그시 응시해왔다.
"아마 서로가 바라보는 지점이 똑같은 것 같은데."
"똑같다고 하면요…?"
"넌 이렇게 말하겠지. NBA에서 성공을 한다면 복싱에서의 PPV 가치도 크게 증가할 거라고, 결과적으로 우리 WCB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야."
정곡이었다. 나는 그 부분을 내세워서 설득을 할 생각이었다.
버드도 동감은 하는지 딱히 부정적인 견해는 보이지 않았다.
"매력적이긴 하군. 겸사겸사 NBA의 팬들을 복싱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테니. 복싱은 팬층이 두텁지만 조금 올드하다는 단점이 있거든, 메이저리그랑 마찬가지로 말이야. NBA의 젊은 팬들을 끌어올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긴 해."
"그런데도 흔쾌히 수락해주지 않는 걸 보면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신 모양이군요."
"네가 너무 큰 계약금을 받았으니까. 그런 네가 첫 경기를 치르고 곧장 NBA를 노크하면 어떻겠나? 언론에선 우리 WCB가 사기를 당했다. 호구같이 큰 계약금을 내줬다고 물어뜯겠지."
"그거야 경기에서 증명하면 될 일입니다. 전 복싱에서도 질 생각이 없어요. 이번 상대인 앤서니 조슈아도 내 상대는 아닙니다."
"그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음 경기는? 탑10 선수와의 경기는 절대 쉽지 않을 거다. 너도 알다시피 4개 단체가 통합하면서 랭커들의 실력이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높아졌어. 랭킹 5위권 선수도 예전이었다면 챔피언을 먹을 수 있는 수준이지."
"그렇다 해도 자신 있습니다."
"흠. 그렇담 이렇게 하지. 이번 3월 경기 이후인 6월 중순에 두 번째 경기를 잡아주겠다. 탑 10에 속한 선수와 말이지. 거기서 만약 참패를 당한다면 올해 NBA 드래프트는 단념하고 내년을 노려라."
"…."
농구 겸업 자체는 허락을 해주겠지만 지금은 시기상조라는 뜻이었다.
여기서 억지를 부릴 수도 있었지만 상대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었다.
탑10 선수도 이기지 못하면서 겸업을 하는 건 내가 보기에도 바보 같은 짓이었다.
게다가 버드는 승패를 크게 따지지 않았다. 무기력한 참패를 당하는 것만 아니면 허락을 해주겠다는 너그러운 입장이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맙네."
"제가 더 고맙죠. 제 꿈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만하게 끝난 미팅.
겸업에 대한 교통정리도 끝났으니 이젠 증명을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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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경기 전 계체와 더불어 미디어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다.
이번 이벤트에선 메이웨더의 웰터급 타이틀 방어전과 체급 월장을 선언한 파퀴아오로 인해 공석이 된 라이트급 타이틀 매치가 예정돼 있었다.
둘 다 큰 매치인 만큼 미디어의 관심도 높았다.
'기자들의 숫자가 엄청난걸.'
올림픽보다도 더 치열한 취재 열기였다.
기자들은 나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도 당연했다.
나와 켐벨의 금메달 결정전은 미국 내에서 무려 5000만 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이보다 시청률이 높았던 스포츠 이벤트는 NFL 슈퍼볼과 플레이오프, 그리고 NBA 파이널밖에 없었다고 하니 그 흥행 수준을 알 수 있었다.
그 본격적인 인터뷰 개시 전에 시작된 계체량.
다른 체급의 선수들은 이 계체에 굉장히 민감하고 자칫 경기가 파토나는 경우도 있지만, 체중 상한이 없는 헤비급 선수들에게 계체는 그냥 몸 자랑을 하는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앤서니 조슈아와 마주했다.
런던 올림픽에서 스쳐 지나가듯 한 번 보긴 했지만 직접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허…!"
나도 모르게 그런 탄식이 흘러나왔다.
조슈아의 무지막지한 몸집 때문이었다.
그가 체중계에 서서 근육맨 포즈를 취하자 계체원이 소리친다.
"109.3kg!"
신장 198cm에 체중 109kg.
진정으로 헤비급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체격 조건이었다.
반면 나는 192.8cm에 93kg이 나왔다.
키도 키지만 체중의 차이가 무려 16kg이나 나버렸다.
이걸 알기 쉽게 경량급으로 따지면 라이트 플라이급 선수와 웰터급 선수가 붙는 셈이었다. 그 체급 차이는 8체급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경기 운영을 해야 되겠는데.'
리치가 나보다 긴 만큼 직선적인 거리 싸움이 아니라 사이드로 움직이며 운영을 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저 펀치를 한 방이라도 맞으면 그대로 끝장이 날 수도 있었다.
서로 아이 컨택을 하는 과정에선 조슈아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진짜 헤비급에 잘 왔어, 말라깽이."
속삭이며 도발을 해오는 조슈아. 조용하고 젠틀한 선수라고 들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복싱이라 그런지 상대의 도발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최근에 들은 말들이 있었다.
복싱 선수에게 중요한 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능력이라고 말이다.
그 스토리를 잘 만들어야지만 좋은 경기가 자주 잡히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조슈아도 딱히 내게 악의가 있어서 도발을 하는 건 아닐 테다, 단지 이게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니 했을 뿐이다.
'그럼 나도 반격을 해볼까?'
나는 잠시 생각한 뒤 그에게 말했다.
"그럼 넌 가짜가 되겠네."
"뭐라고?"
"넌 조만간 헤비급에서 도망가게 될 테니까. 지금부터라도 라이트 헤비급으로 감량할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걸? 아, 내가 내일 2kg정도 빼줄 테니까 고맙게 생각해."
"…핫!"
뭐라 반격할 말이 없는지 조슈아는 코웃음을 치면서 내 눈을 노려봤다.
그 눈싸움이 끝나고 나서는 기자들을 모은 미디어 인터뷰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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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B의 미디어 인터뷰는 메인 이벤트와 코메인 이벤트에 출전하는 선수들만 단독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한 번에 모아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성현은 도합 8명의 선수들 사이에 앉아 질문을 기다렸다.
차례는 빠르게 찾아왔다. 미국 내에서 인지도가 꽤 있는 만큼 기자들도 성현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천둥의 신 토르가 WCB에 데뷔한다. 다만 상대와의 신장 차이가 있는 만큼 지난번에 보여준 내리찍는 펀치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중에 기회가 찾아온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WCB는 이 경기에 대해 헤비급 금메달리스트와 슈퍼 헤비급 금메달리스트의 대결, 진정한 런던의 승자를 가린다고 표현했다. 동의하는가?
"입장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체급을 올렸으니까요. 제가 이길 경우 2체급 석권이지 않습니까? 양쪽이 가지는 승리의 의미가 다릅니다. 제 쪽이 더 의미가 있죠."
이에 조슈아가 반론을 하려는 듯 했지만 마이크가 꺼져있었다. 진행 측에서 이미 성현의 인터뷰를 길게 가져가기로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슈아는 어이가 없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성현의 인터뷰가 계속 진행됐다.
─이번 올 아메리칸 게임에 나간다는 얘기가 있다. 상당히 뜬금없는 이야기인데.
"그 경기에 대해서도 기대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경기에 나가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듯하지만, 경기 내용은 그때 가봐야 아는 거니까요."
성현이 중립적으로 답하자 기자들은 농구 부분을 대충 흘려 넘기고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크레이그 켐벨의 경기는 보았나?
"봤습니다."
─그는 2경기 만에 슈퍼 미들급을 제패했다.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 성현의 인터뷰를 주시하고 있는 건 비단 현장의 기자들만은 아니었다.
성현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은 모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루치아노 베레티니는 와인을 홀짝이며 인터뷰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었고, 크레이그 켐벨도 마찬가지였다.
켐벨은 성현의 얼굴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와중에 성현의 대답이 나온다.
"그는 굉장한 선수입니다. 펀치력도 펀치력이지만 스피드가 어마어마해요. 그러니 그에겐 핵주먹이란 별명보단 다른 별명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별명을 말하는 건가?
존중을 해주는 인터뷰라 생각한 켐벨은 떫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어지는 발언에 그 표정이 구겨진다.
성현은 이왕 이렇게 된 거 화끈하게 스토리 메이킹을 하자는 생각으로 말한다.
"그 속도를 보면 퀵 '실버'라는 별명은 어떨까요? 아니면 '실버' 서퍼라든가? '실버' 펀처도 괜찮겠네요."
─하하하! 그럼 너는 골드보이인가?
"천둥은 황금색으로 표현될 때가 많으니까요. 이미 충분한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성현의 재치에 인터뷰 회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다른 선수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린다.
켐벨의 얼굴은 터질 듯이 붉어졌다.
"Fuck─!!"
쾅! 분을 참지 못하고 리모컨을 TV 화면에 던져버리는 켐벨.
TV 스크린은 거미줄마냥 깨져버렸다. 그걸로도 모자라 켐벨은 다른 물건도 TV에 마구 던져버렸다.
그 분노와 복수전에 대한 열망을 보면 성현의 스토리 메이킹이 제대로 적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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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에 펼쳐진 WCB 59. 넘버링이 붙은 공식 매치였다.
이 공식 넘버링 매치의 메인 이벤트와 코메인 이벤트는 반드시 12라운드로 경기가 치러진다.
반면 다른 하위 경기들은 7라운드가 기본. 그래도 매치의 흥행도가 높다고 하면 12라운드로 조정되는 경우는 있었다.
나와 앤서니 조슈아와의 경기는 이벤트 3번째 매치로, 7라운드로 진행이 됐다.
경기 시간은 오후 2시. 그래도 좋은 시간대에 배정을 받았다.
이 경기의 예상 PPV 수익은 우리 돈으로 대략 60억 정도. 상대 조슈아가 영국의 최고 기대주인 덕이었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중계권을 사들이며 랭킹 밖 선수들의 매치 치고는 상당한 매출을 올렸다.
'내게 들어오는 돈은 12억 정도인가….'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금액이긴 했다.
이미 나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수입을 기록하고 있었다.
2012년도에는 2위 메이저리그 선수, 3위 EPL 선수를 제치고 국내 스포츠 선수 수입 1위를 달성했다.
막대한 계약금도 있었고, 방송과 광고 촬영으로 번 돈이 있었던 덕이다.
이에 언론에서는 내가 복싱에서 성공을 한다면 향후 10년간은 1위 자리가 바뀌지 않을 거라 예측하고 있었다.
예전만큼은 못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기 복싱 선수의 수입은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리, 준비는 됐나?"
"됐습니다."
내 세컨드로 붙어있던 건 WCB 소속의 코치들이었다. 아직 코치진을 구축하지 못한 내게 WCB측에서 붙여준 것이다.
일종의 국선 변호사 같은 거라고 할까.
나도 마음 같아선 코치를 구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시아 쪽에서 구하려니 경량급 전문 코치들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유럽이나 미국에서 구하자니 실력있는 코치들은 굳이 신인인 내게 지원하려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일단 실적을 올린 다음에 구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좋아, 그럼 들어가자고."
"옙."
입장 신호를 받고 입장하니 관중석에 있던 팬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리──!"
"이성현 파이팅! 이겨라!"
"성현아 이겨라!"
LA와 가까운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는 경기라 그런지 한인들이 많이 찾아온 듯 했다.
관중석 곳곳에서 태극기가 보였다.
나는 팬들에게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링에 올라가 상의를 벗었다.
내 트렁크 바지에는 내 개인 스폰서인 길성 그룹의 엠블럼이 떡하니 박혀 있었고, 그 외에 국내 기업들의 자잘한 스폰도 붙어있었다.
사회자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앤서니 조슈아를 소개했다.
[앤서니 조슈아──!!]
그 사회자의 찢어지는 외침과 함께 등장한 조슈아는 목뼈를 위협적으로 움직이며 상의를 탈의했다.
'덩치가 어마어마하긴 하네.'
링에서 보니 그 몸집이 새삼 커보였다.
심판은 버팅과 홀딩 등에 대한 주의를 주더니 우리를 양 코너로 물렸다.
"후우…!"
땡! 공이 울리며 시작된 내 WCB 데뷔전.
둘 다 프로 데뷔전이었던 만큼 의욕은 누구 할 것 없이 만전이었다.
'일단 펀치 거리를 조금 볼까.'
나는 슬그머니 거리를 좁히며 놈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핑! 날카로운 잽이 내 안면을 노리고 날아왔다.
역시 리치 차이가 있는지 생각 이상으로 거리가 길었다.
'파워도 상당한 것 같은데.'
방금 잽이 마치 스트레이트처럼 보였을 정도.
잠시 거리 싸움을 벌여본 나는 그가 괜히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신체조건 완벽에 기본기도 튼실하고…. 제법이네, WCB에 스카우트 될 만했어.'
그렇다곤 해도 고작 그뿐이었다.
탕! 탕! 우리 세컨드가 1분이 지났다는 사인을 보내오고.
나는 슬슬 템포를 올리기로 했다.
조슈아의 잽을 사이드 스텝으로 피하며 본격적으로 견제를 들어간 것이다.
상대의 리치가 더 길지언정 그렇다고 거리 싸움에서 밀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거리 싸움은 리치도 리치지만 다리로 하는 싸움이다. 상대보다 더 기민하게 움직여서 타이밍을 뺏고 자기 거리로 끌어들이는 싸움.
그런 의미에서 조슈아는 팔만 길 뿐, 다리로 하는 거리싸움에 대한 조예가 부족했다.
나는 미드레인지 싸움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며 그를 두들겼다.
"쳇…!"
참지 못한 조슈아는 상체를 숙이며 접근해 들어오더니 팔을 쭉 뻗어 훅을 시도했다.
그 긴 팔과 체중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는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나는 그의 원투 콤비네이션을 스웨이와 위빙으로 피하며 그의 왼쪽의 빠져나갔다.
'빈틈 투성이잖아.'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상대 몸집이 크니 때릴 곳이 더 선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내게 보이는 건 간이 위치한 바디. 그 한 점이 급소처럼 느껴졌다.
"흐읍!"
팡!! 작렬하는 리버 블로. 내 레프트가 고스란히 상대의 간과 내장 신경을 찌른다.
그러자 움찔! 놈의 몸이 꿈틀거렸다.
나는 녀석이 휘두른 펀치를 피해 뒤로 물러난 뒤 재차 파고들었다.
사우스포로 전환하여 오른손 잽으로 페이크를 준 뒤 왼손으로 바디를 치는 변칙 콤비네이션이었다.
이에 시원하게 속아 넘어간 조슈아는 얼굴 가드를 굳힌다.
'한 방 더!'
꽈득! 펑!! 또 다시 리버 블로.
이번에는 채찍을 치듯 끊어서 타격을 했다. 이러면 타격이 날카롭고 깊숙하게 들어가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1라운드 내내 계속 바디를 공략했다.
'이 정도로 바디를 쳤으면 2라운드부턴 가드가 내려오겠지.'
내가 바디를 치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었다.
턱을 굳건히 방어하는 상대의 가드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이제는 3라운드제의 아마추어 경기가 아니라 7라운드 프로 경기이니, 초반엔 여유를 가지고 바디 데미지를 쌓는 게 효과적이었다.
그러던 1라운드 종료 20초 전.
팡! 녀석의 느린 견제를 피해 리버 블로가 한 번 더 작렬했다.
'좋아, 1라운드는 이 정도면 되겠네.'
이젠 느긋하게 1라운드 종료를 기다리기로 했으나.
그때 녀석이 돌연 심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 잠깐만…!"
스스로 무릎을 꿇는 조슈아.
녀석은 바디를 감싸 쥐며 고통을 호소했다.
"다운! 중립 코너로 가있어!"
"엥…?"
데미지 축적 의도로 때린 바디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듯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조슈아.
나는 탐색전을 하려는 의도로 가볍게 1라운드를 치르고 있었지만, 녀석의 입장에선 이것이 영혼을 건 벼랑 끝 싸움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