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투 (1)
난장판이 벌어진 코트.
가넷의 딴에는 가해자인 고베어가 빌에게 가까워지지 않도록 밀친 것이었지만, 무지막지한 덩치가 밀친 것이니만큼 충격이 작을 수가 없었다.
고베어는 날아가다시피 하며 코트 바닥을 뒹굴었다.
이로 인해 고베어도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그는 당초 자신이 범한 파울에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런 생각도 싹 달아났다.
고베어는 벌떡 일어나 가넷과 이마를 마주 대며 신경전을 벌였다.
그나마 지난 출전 정지 징계를 의식하여 주먹을 휘두르진 않았지만, 그것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헤이, 헤이!”
파커와 지노빌리가 황급히 다가와 고베어를 떼어 냈고, 던컨이 그와 어깨동무를 한 채 바쁘게 속삭이며 진정을 시켜 줬다.
다만 가넷은 누구도 막지 못했다.
가넷은 파커, 지노빌리와 언쟁을 벌이며 고함을 질렀다.
그런 와중 빌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성현은 곧바로 의료진을 호출했다.
등부터 코트에 떨어진 빌은 견갑골 쪽을 부여잡으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의료진은 조심스레 빌을 부축한 뒤 상태 확인을 위해 라커룸으로 향했다.
그 작업이 끝나고 난 뒤에야 심판들은 비디오 리뷰를 시작했다.
플레그런트 파울은 확정적인 상황에서 플레1을 주냐, 플레2를 주냐의 문제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플레2를 받으면 즉시 퇴장이기 때문에 클리퍼스 입장에선 플레2가 나와 줘야 그나마 찜찜함이 풀어질 수 있었는데, 심판들은 고심 끝에 플레1을 선언했다.
이에 스티븐스 감독조차 눈살을 찌푸렸다.
“뭡니까!? 뒤에서 붙잡아서 떨어뜨렸는데 플레그런트 원이라고?”
포포비치 감독도 의외라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는 심판 중 하나에게 다가가 넌지시 말한다.
“플레 투를 줘도 상관없어.”
“뭐라고요?”
“지금은 그게 낫다고.”
백전노장인 포포비치는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불만을 가진 클리퍼스 선수들이 경기를 과격하게 할 게 뻔했다. 그러니 판정이 애매하더라도 플레 투를 줘서 고베어를 퇴장시키는 게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서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판은 고개를 흔들었다.
상대를 뒤에서 잡아끈 행위가 악질적이긴 했으나 플레 투를 줄 정도로 과격하진 않았다는 것.
포포비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리 났군.’
클리퍼스 선수들이 악에 받친 게 눈에 보였다.
이미 1차전에 벌어진 난투극으로 인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상황에서 화약이 대량 투하되어 터져 버렸다.
이제부턴 살얼음 위를 걷는 느낌의 경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뭣보다 점수 차이가 너무 순식간에 좁혀져 버렸다.
조금 전의 플레그런트 파울+슈팅 파울로 인해 클리퍼스에게 자유투 네 개가 주어졌고, 공격권도 클리퍼스에게 가 버렸다.
이 자유투는 홈 팬들의 야유 속에서 성현이 모두 성공시키며 62-57, 5점 차까지 좁혀져 버렸다.
“진정해라,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해!”
스티븐스 감독은 추격의 흐름을 잡기 위해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이는 즉효약이 되었다.
당장 코트에 있는 선수들의 경우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는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
가솔도 그렇고 성현도 그랬다.
둘이 솔선하여 동료들을 가라앉히자, 선수들은 당장의 경기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유투 이후 바로 이어지는 클리퍼스의 공격.
성현은 확실한 공격 성공을 위해 패턴 플레이를 지시했다.
손가락으로 수신호를 보내며 또 한 번 엘리베이터 도어 스크린을 요구한 것.
이에 우측 코너에 있던 J.R. 스미스가 골 밑으로 갔다가 자유투 라인을 타고 탑 쪽으로 튀어나오고, 양쪽 엘보 구역에 있던 러브와 가솔이 더블 스크린을 준비했다.
그러나 상대가 두 번이나 당해 줄 리 없었다. 샌안토니오 같은 팀이면 더더욱.
던컨은 파커가 더블 스크린에 걸릴 것이라 예단한 뒤 가솔을 버리고 JR을 잡기 위해 외곽으로 뛰쳐나갔다.
이 순간.
탕! 성현은 패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돌파를 시도했다.
던컨이 외곽으로 나가면서 생긴 45도의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성현의 마크를 하고 있던 에이브리 브래들리도 JR에게 향하는 패스를 경계하고 있었기에 성현의 퍼스트 스텝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돌파해 들어간 성현은 그대로 골 밑 마무리를 하려 했으나 놀랍게도 반응한 상대 선수가 있었다.
좌측 쇼트 코너에 있던 카와이 레너드와 반대편 엘보 지역에서 러브를 마크하고 있던 고베어였다.
둘은 기민하게 골 밑으로 백업을 하며 성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읏…!?”
성현은 외통수에 빠져 있었다.
킥 아웃 패스를 줄 공간이 없었던 것.
좌측 코너로 공을 빼기에는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우측 코너로 빼기에도 그쪽은 비어 있다.
그렇다고 몸을 180도 돌려서 자유투 라인 부근에 있는 가솔이나 러브에게 패스를 주기에는 당장 시야가 없어 패스 미스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어쩔 수 없지.’
혹여 야투가 실패하더라도 파울을 유도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흐읍!”
“흣!”
앞을 가로막는 레너드와 고베어. 수비의 귀재들.
성현은 그 사이를 파고들어 가 더블 클러치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틈이 너무 좁았다.
쿵! 레너드에게 치이듯 부딪친 성현은 파울 유도에 성공했으니 앤드원을 얻어 보자는 심산으로 균형을 잃어버린 와중에도 림을 바라보며 휙! 공을 위로 던져 올렸다.
‘들어갔다!’
그 궤적에 득점을 확신하고 있는 그때.
쿵! 우측에 있던 고베어와 부딪히게 되면서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다.
“…!?”
성현은 낙법을 취하기 위해 팔을 오므렸으나 더블 클러치를 하고 내려오는 상황이었기에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
빠직! 오히려 왼쪽 팔꿈치에 하중이 실리며 강한 충격이 가고 만다.
“으아아아…!”
팔꿈치를 감싼 채 고통스러워하는 성현.
이에 이어지는 고베어의 반응이 클리퍼스를 완전히 폭발시켰다.
“이거 내 파울 아니에요!”
이미 파울 네 개로 파울 트러블에 걸려 있던 그가 5파울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아닌 레너드의 파울임을 주장하며 쓰러져 있는 성현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심판들에게 길길이 날뛰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클리퍼스의 선수들은 완전히 폭발하게 된다.
* * *
불이 붙은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 팔꿈치.
팔꿈치는 팔 근육의 시작점과 같은 곳인지라 잘못 다치면 큰 영향이 갈 수도 있었다.
“리, 일단 라커룸으로 가자.”
“잠깐만요.”
나는 선수들을 말리고 싶었다.
동료들은 완전히 평정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감독님조차 심판에게 항의를 하고 있었고, 포포비치 감독이 만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선수들도 잔뜩 흥분해 있었다. 가솔과 내쉬마저 고베어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맹비난을 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연달아 벌어진 탓에 샌안토니오 선수들도 당황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팀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었기에 강 대 강으로 맞불을 놓으며 거친 말다툼이 벌어졌다.
추격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걸 진정시키고 싶었으나 내가 수습하기에는 상황이 심각했다.
“코트에 대해선 신경 쓰지 마. 지금은 네 상태가 더 중요해!”
“후우…!”
의료 스태프들과 라커룸으로 돌아온 나는 엎어진 채 등 부상을 진단받고 있는 빌과 마주했다.
빌은 나를 보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성현!? 넌 왜 온 거야?”
“비슷한 이유로.”
빌은 눈살을 찌푸리며 경기장 쪽의 소리를 듣더니 말을 이어 간다.
“설마 고베어 그 새끼가 또 저질렀어?”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겠네.”
“그 빌어먹을 새끼…!”
“넌 좀 어때?”
내 물음에 빌은 당장 4쿼터에 복귀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지만, 상태를 보고 있던 의료진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보아하니 최소한 이번 경기에선 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의료진은 내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 걸 보고 단순 타박상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되면 정밀 검사를 받아 봐야 돼. 팔꿈치 근육은 민감한 부위니까 더더욱.”
“….”
나는 라커룸에 설치된 화면을 흘겨보았다.
내가 얻어 낸 슈팅 파울의 자유투를 내쉬가 전부 성공시켜 주며 점수는 3점 차까지 좁혀져 있었으나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내쉬와 JR의 백코트 조합이 공격은 어느 정도 될 수 있을지언정, 수비력이 문제였다.
샌안토니오가 그 부분을 공략하지 않을 리 없었다.
“리, 바로 검진을 받으러 가자.”
“…아뇨, 경기는 끝까지 보고 갈게요. 일단 할 수 있는 처치만 해 주세요.”
그렇게 나와 빌은 라커룸에서 남은 경기를 모두 지켜봤다.
샌안토니오는 급할 것이 없다는 듯 경기 템포를 낮췄다.
굳이 스몰 라인업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수비를 굳히며 차곡차곡 점수 차이를 벌려 간 것.
“젠장!”
최종적으로 출전 불가 판정을 받은 빌은 울먹이며 라커룸을 떠났다. 부상 정도가 생각 이상으로 심한 모양이었다.
“….”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경기의 마무리를 지켜봤다.
5차전 최종 106-97. 경기는 샌안토니오가 잡아 가며 시리즈 스코어 3-2로 우리는 엘리미네이션 상황에 몰리게 된다.
* * *
5차전이 시작되는 날의 새벽에 귀국을 한 주은은 곧장 집에 돌아오자마자 학교에 갈 준비를 해야 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그녀는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엄마! 으아앙!”
딸 지은은 일주일 만에 만난 엄마를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으이구, 우리 딸. 엄마 보고 싶었어?”
“응….”
“엄마가 미안해, 오늘 유치원 갔다 오면 같이 피아노 치자?”
“응!”
주은은 딸이 유치원에 갈 때까지 계속 놀아 주다가 유치원 차량까지 배웅을 해 주려 했지만, 문득 발을 멈췄다.
이젠 얼굴이 알려지기도 했고, 성현과의 관계도 밝혀졌으니 딸과 함께 있는 모습을 함부로 노출하면 안 됐기 때문이다.
‘공개를 하면 이런 부분이 곤란해지는구나….’
성현 본인은 이참에 딸의 존재까지 공표를 할 생각이었지만, 주은이 막았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성현에게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 테니까.
하여 일단 중학교 시절부터 양가의 인정을 받았고, 고1 때 이미 약혼을 했다는 식으로만 이야기를 전했다.
“주은아, 너도 학교 갈 준비 해야지. 오빠가 태워 줄까?”
차남 휘민이 추리닝 차림으로 말한다.
“오빠, 오늘 일 안 나가?”
“오늘 연차야. 5차전은 무조건 본방 사수해야 되거든.”
“헤헤, 나는 3차전이랑 4차전 직관했다?”
“크…! 미리 알았으면 나도 같이 가는 거였는데!”
“우리 자기가 나중에 우리 가족들 전부 초대하겠대.”
“그거 기대되네. 일단 차에 타.”
휘민은 운전을 하며 말한다.
“성현이 걘 진짜 크게 됐네. IYF 엔터도 엄청 성장하고 있는 거 알아?”
“응…. 기사 봤어.”
“이야, 그런데도 일편단심이라니. 주은이 너도 복을 잡은 거야. 알고 있지?”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하지 말라도 해도 뭐, 사실이 그런 걸 어떡해. 리라가 좋다고 대시하면 난 당장이라도….”
“오빠!”
휘민은 아랑곳 않고 성현에 대한 찬양을 시작했다.
그는 농구 팬으로서도 성현에게 매료가 되어 있었기에 성현의 대단한 점을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마침내 대학에 도착해서는 주은에게 주의를 준다.
“주은이 네 행동 하나하나가 성현이한테 영향이 갈 수 있으니까, 경거망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알고 있다니까! 진짜로! 다시는 오빠 차 안 타!”
괜히 기분 상했다며 주은은 뚱한 표정으로 대학 건물로 향했다.
주은은 주목이야 어느 정도 받겠거니 하며 각오를 했지만, 이어서 벌어진 상황은 그녀가 각오한 수준을 크게 뛰어넘어 있었다.
인 유어 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