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 (1)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 전부터 빛 좋은 개살구니 도시 재정을 망가뜨릴 거라느니 말이 많았던지라 현장의 열기는 그렇게 들떠 있지 않았다.
“참 신기해, 올림픽에는 그렇게나 열광하면서 아시안게임은 찬밥 신세라니 말이야.”
형석이 녀석의 말이었다.
“심지어 아시안게임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메달을 왕창 따 오잖아. 아시안게임은 못해도 금메달 50개 이상은 따는데, 올림픽은 열 개 정도였나?”
“그래서 더 열광하는 건지도 모르지. 게다가 올림픽은 세계 전체랑 싸우는 거잖아.”
“아시안컵과 월드컵의 차이인가….”
그런 잡담을 나누며 우리가 향한 곳은 복싱과 펜싱 등의 경기가 치러지는 체육관이었다.
굳이 현장 중계를 할 필요 없이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하는 게 효율적이었지만, 조직위에서는 관객 몰이를 위해 꼭 현장 중계를 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탓인지 현장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성혀언-!”
“챔피언 등극 축하해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환호성.
자칫 주객이 전도될 수 있었기에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뒤에 바로 중계 부스로 들어갔다.
부스에서는 캐스터가 대본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 둘 다 어서 와요.”
기본적인 것들은 숙지를 해 두고 있었기에 금방 준비가 끝났다.
첫 번째로 중계할 경기는 중국 선수 장진민과 우리나라 김형오의 라이트플라이급 대결이었다.
“이성현 선수는 무제한급인 헤비급이지 않습니까? 그 대척점에 있는 게 바로 라이트플라이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두 체급 간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감량의 여부겠죠. 헤비급은 감량에서 자유로운 반면 라이트플라이급은 감량이 가장 격렬한 체급이니까요.”
“아하.”
“평균 체중을 49kg 아래로 유지하는 건 말도 안 되게 힘든 일이에요. 저 선수들처럼 신장이 165cm 정도만 돼도 평균 체중이 60kg을 넘어가거든요. 심지어 저 선수들은 근육량이 높아서 49kg 아래로 체중을 유지하는 건 힘들어요. 그러니 대회에 맞춰서 49kg 아래로 감량을 하는 거죠.”
“소위 말하는 리바운드군요. 하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경우에는 다음 경기가 바로 이틀 뒤에 있지 않습니까? 리바운드를 통해 체중을 늘리면 다음 경기의 계체는 통과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이런 토너먼트 경기의 경우엔 수분을 빼는 감량을 많이 해요. 수분만 전부 빼내도 3kg 정도는 감량이 되거든요. 일단 그렇게 수분을 빼서 계체를 통과한 다음 수분 섭취를 하는 거죠. 이후에는 다시 수분을 빼는 식으로 다음 라운드의 계체를 통과하는 거고요.”
“이성현 선수는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 저는 없습니다. 체중 유지는 해 봤어도 감량은 한 적이 없어서요. 이 부분에 대해선 심형석 해설위원이 잘 알 거예요.”
형석이는 이때다 하며 끼어들었다.
녀석은 자신의 감량 일화를 우스꽝스럽게 얘기하며 오디오를 풍성하게 채웠다.
그러고는 내게 엄지를 치켜든다.
선수 소개가 끝나고 시작된 경기.
라이트플라이급 경기라 그런지 기술적인 움직임이 많았다. 유효타가 나와도 펀치가 가벼운 탓에 주목을 끄는 장면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런 경기는 복싱 팬들조차 지루해할 정도이기 때문에 우리 해설 쪽에서 텐션을 유지해 줘야 했다.
‘형석이랑 같이하길 잘했네.’
녀석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쉴 새 없이 입을 놀려 댔다.
“3라운드 판정은…! 아…. 심판 둘이 장진민 선수의 손을 들어 줬습니다. 2-1 판정패. 아쉽습니다, 김형오 선수.”
“3라운드에 연타를 맞은 게 컸던 것 같아요. 아쉽네요.”
패배한 김형오는 땀에 젖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게 어떤 심정인지 잘 아는 형석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한다.
“김형오 선수에겐 이번 대회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거든요.”
26살의 아마추어 복서에게 남은 길은 많지 않다. 심지어 저 선수는 복싱의 꿈을 놓지 못하고 군대까지 미뤄 왔으니, 이제 남은 건 은퇴를 한 뒤 입대하는 것밖에 없었다.
캐스터가 말한다.
“안타깝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항상 생각을 합니다만, 선수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요. 그저 열심히 노력한 것밖에 없는데도 어째서 이런 좌절을 겪어야 하는 걸까요? 이성현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입장에선 1라운드에 탈락할 정도면 애초에 준비를 잘못한 거라는 생각이었지만, 선수의 좌절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공감을 했다.
“말씀하신 대로 선수는 잘못이 없어요. 열심히 한 것뿐이죠. 잘못이 있다고 한다면… 협회 쪽이겠네요.”
“…예?”
“선수들이 막다른 길에 몰리지 않도록 길을 제시하고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게 협회의 역할이거든요. 가령 군대가 문제라면 선수들이 군대에서도 기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상무 시스템을 확대시킨다든가, 군 복무 일정을 유기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해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 그런 시스템이 거의 없습니다. 극히 일부의 선수들만이 혜택을 받아요. 그 외의 선수들에 대해선 알아서 노력해서 실력을 키워라. 그러면 도와주겠다, 뭐 그런 식이죠. 그러니 복싱을 중도에 그만두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아…. 그, 그렇군요. 하, 하지만 협회도 최근에 국내 프로 무대를 활성화시키면서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그것도 지원금이 나오니까 하는 거지 선수들을 위해서 한다는 느낌은 없어요. 선수들을 위해서 하는 거였다면 티켓 판매 금액의 일정 부분을 대전료로써 선수들에게 지급을 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부분이 없어요. 형식적인 상금이 있을 뿐이죠. 제가 알기로 챔피언 등극 시에 5백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는데, 이게 아마 문화체육관광부나 중앙체육회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주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추측…이신 거죠?”
추측성으로 말하고는 있지만 형식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일 뿐, 난 실제로 관련 정보를 핵심 관계자에게서 들은 상태였다.
“뭐, 그 부분은 그렇다 쳐도, 티켓 판매 금액에 대한 부분이나 기타 재무 정보에 대해선 투명하게 처리를 해 줬으면 합니다. 그래야 선수들도 협회를 믿고 대전료의 일부분을 지불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일을 거시적으로 봐야 해요. 복싱계를, 프로 무대를 정말로 키우고 싶다면 쥐어짜 내서 이득을 취하려 하기보다는 투자를 해야 합니다. 더 먼 곳을 바라봐야 하죠. 그게 협회가 선수들을 위해서, 그 종목의 흥행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고요. 설령 대중적으로 흥행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선수들에게만큼은 잘해 줘야죠.”
“예, 예! 다음 경기가 준비되는 모양입니다.”
황급히 말을 돌리는 캐스터.
형석이도 못 말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 * *
협회를 향한 성현의 신랄한 비판에 팬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성현신ㄷㄷ 협회 엄청 까내리네. 이거 괜찮은 거냐?》
《이성현이면 쌉가능이지. 길성 그룹 아들에다가 WCB 헤비급 챔피언이잖아.》
《거기에 신흥 엔터의 최대주주임ㅋㅋ 협회가 대수냐?》
《이성현이 이번에 협회에 8억 냈다더라.》
《8억? 미쳤네. 사다트랑 한 대전료인가?》
사실 성현은 그 금액을 협회에 지불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성현은 국내 복싱 협회 소속이 아니라 WCB 소속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대전료의 3%를 지불한 이유는 복싱 협회의 주요 스폰서 중 하나가 길성이기도 하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그런 상황에서 협회에 일침을 가했으니, 협회 간부들은 좌불안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마치 성현이 후원을 끊어 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
성현과 파국을 맞을 경우 길성 그룹의 스폰서십도 날아가 버릴 가능성이 높았으니, 협회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즉각 챔피언 수당을 높이고, 티켓 판매 금액의 일정 부분을 선수들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중계가 있던 다음 날인 23일에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성현의 한마디에 협회는 전전긍긍! “방안 마련하겠다.”]
[거침없는 해설 이성현. 시청률도 고공행진.]
[나 떨고 있니? 복싱 관계자들, 이성현 해설에 우려 표하다.]
성현의 여과 없는 해설은 23일 경기에서도 이어졌다.
이날에는 후배 김강혁의 경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란의 마흐디 나즈리와 경기를 하게 된 강혁은 과감하게 파고들며 상대를 압박했다.
“좋습니다! 마흐디 선수가 당황한 게 보여요! 듣기로 이성현 선수가 며칠 전에 훈련장을 방문해서 김강혁 선수의 훈련을 지켜봤다고 하던데요. 지금 이 경기 운영을 지시한 건가요?”
“그 부분은 코치들의 역할이니까요, 저는 마음가짐만 조금 가다듬어 줬습니다.”
“마음가짐이요?”
“중동 선수들을 상대로는 소극적으로 하지 말라고 했어요.”
“중동 선수들에게…?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중량급에 있는 중동 선수들 중 일부는 동아시아 선수들을 자기 아래로 깔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 선수들을 상대로 소극적으로 나가게 되면, 상대의 자신감을 높여 주게 돼요. 그러니 더 공격적으로 가 줘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상대가 알게 되거든요.”
강혁은 호쾌하게 밀고 들어가 계속해서 바디를 두들기며 점수를 쌓았다.
그러다 팡! 카운터를 맞고 주춤거리게 된다.
이 한 방이 각인이 됐는지 3라운드부터는 움직임의 날카로움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성현은 참지 못하고 독설을 날렸다.
“…화가 나네요.”
“예?”
“지금 이건 자기가 점수로 앞서고 있으니 무리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인 거거든요. 카운터를 또 한 방 허용하면 위험하겠다. 그러니 3라운드는 점수를 많이 주지 않는 선에서 버텨 보자. 이런 느낌인 거예요.”
“영리한 판단이라는 건가요?”
“전혀 아니죠. 앞서 말했듯이 복싱은 기세가 굉장히 중요해요. 지금처럼 점수를 지키면서 영리하게 풀어 나가려 한다고 해도 상대의 기세를 어떻게 흘려 넘기느냐에 대한 플랜이 준비돼 있어야 해요. 메이웨더가 그러는 것처럼요. 하지만 김강혁 선수는 제가 알기로 그런 경기 운영이 능숙하지 않아요.”
그러면 당연히 경기가 일방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강혁은 3라운드 내내 끌려다니며 가까스로 버텨 낸다.
판정은 2-1로 승리를 거두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됐지만, 성현의 회초리는 내려갈 줄 몰랐다.
“당장 대기실로 가서 한 소리 해야겠네요.”
이 일을 두고 팬들 사이에선 회초리라는 표현이 퍼져 나갔다.
협회건 선수들이건 가감 없이 회초리를 때리는 해설.
이 회초리 해설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은 다름 아닌 농구 해설에서였다.
* * *
올림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라고 하면 단연 축구를 꼽을 수 있다.
다만 아시안게임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
아시아에는 축구 강국이 많지 않기도 하고, 성적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별로 없었기에 축구가 독보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진 못하다.
야구, 농구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특히 농구는 필리핀, 이란, 중국 등의 국가가 관심을 가지면서 축구에 버금가는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 한국 대표팀은 예비 라운드에서 몽골과 요르단을 간단히 꺾어 내며 쿼터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
필리핀, 카자흐스탄, 카타르와 함께 파이널 라운드 진출을 위한 각축전을 벌였다.
그 첫 번째 고비가 된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야투 난조에 시달리며 10점 차로 끌려가기 시작한다.
“인 앤 아웃! 공이 빠져나옵니다. 필리핀의 속공!”
속공을 허용하며 12점 차로 끌려가게 된 대표팀은 바로 타임아웃을 불렀다.
“이른 시점에 타임아웃이 나옵니다. 이성현 선수, 지금 우리 선수들이 야투 난조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이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야투 난조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예?”
“공격 루트와 패스길이 너무 단순해요. 국가 대표 팀이라 그런 것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죠. 지금 필리핀 선수들이 반 발자국을 더 먼저 움직이고 있어요.”
그렇게 물꼬를 튼 성현은 신명 나게 회초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 팀이 며칠 후 자신이 직접 뛰게 될 팀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