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성 히어로 (1)
시리즈 마지막이 될 수 있는 4차전.
나는 경기 초반부터 돌격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홈에선 활발하게 패스를 하며 동료들의 움직임을 살려 주는 비중이 높다면, 원정에선 수비를 찢고 들어가서 기회를 만드는 비중이 높다.
아무래도 원정에선 상대 수비력이 미세하게 좋아지기 때문이다.
홈 콜의 영향도 있고, 동료들의 야투 난조 때문이기도 했다.
하여 내가 직접 뚫고 들어가 기회를 창출해야 했다.
“스크린!”
쿵! 러브의 스크린을 받으며 순간적으로 던컨과 미스매치를 잡은 나는 그 우측을 파고들었다.
끼익! 던컨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듯 이를 악물고 가로 수비를 펼쳤다.
그 과정에서 약간 접촉이 있긴 했지만,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여기에 우측 45도에 있던 레너드가 반 발자국을 움직여 더블 팀 압박을 줬다.
그로 인해 돌파가 막힌 나는 우측 엘보 지역에 멈춰 서서 패스 길을 봐야 했다.
‘이 타이밍이면 빌이 움직여 줬을 거야.’
본래라면 그냥 공을 받으러 외곽으로 나온 선수에게 공을 넘기겠지만, 여유가 있는 상황이니만큼 모험적인 플레이를 해 보기로 했다.
이런 것들을 맞춰 가야만 창의적인 공격이 자리 잡게 되는 거니까.
나는 던컨을 등진 채 옆구리 쪽으로 패스를 던졌다.
이 공을 잡은 건 빌이 아니었다.
언제 골 밑으로 들어왔는지 요키치가 공을 받아 낸다.
요키치의 마크맨이었던 고베어는 이 패스 타이밍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지 요키치를 놓친 상태였다.
“쳇!”
고베어는 요키치의 등 뒤에서 뛰어 블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요키치는 영리했다. 고베어가 허겁지겁 블락을 시도할 것을 대번에 눈치채고는 펌프 페이크로 한 박자를 늦췄다.
그러고는 등 뒤에서 뛴 고베어와 접촉을 하며 공을 슬쩍 올려놓았다.
삑! 휘슬과 함께 들어가는 공.
“우헤헤! 앤드원이네.”
요키치는 근육맨 자세를 취하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벤치에선 난리가 났다.
“지금 뭘 한 거야, 니키!?”
“바로 그거지!”
우리 벤치 분위기는 지난 시즌에도 좋았지만, 이번 시즌에는 더욱 요란했다.
가넷이 벤치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덕이다.
가넷은 벤치에서라도 힘을 실어 줘야 한다는 마인드인지 응원단장이라도 되는 양 플레이 하나하나에 호들갑을 떨었다.
그게 우리에겐 힘이 되지만 상대 팀에겐 짜증 요소 중 하나였다.
“Shut the fuck up!”
고베어는 가넷의 조롱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욕설을 쏘아붙였다.
여기서 테크니컬파울이 불렸다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보질 못했는지 심판은 그냥 진행을 했다.
요키치가 추가 자유투까지 성공시키며 49-52로 3점을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2쿼터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1분 32초.
양 팀은 쿼터 마무리를 위해 더욱 고삐를 당겼다.
스티븐스 감독은 여기서 점수를 벌린 채 쿼터 마무리를 하고 싶은지 강한 압박에 이은 속공을 주문했다.
하여 외곽에 있는 나는 볼 핸들러인 파커를 강하게 압박하며 패싱 레인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파커는 나와 일대일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는지 적당히 드리블로 빠져나온 다음 레너드에게 공을 연결했다.
레너드는 멜로를 앞에 두고 잽 스텝을 밟으며 간을 보더니 탕! 쏜살같이 파고들어 풀업 점퍼를 시도했다.
멜로는 팔을 쭉 뻗으며 컨테스트를 했지만 이런 풀업 점퍼의 경우 컨테스트의 의미가 딱히 없었다.
던지는 선수가 잘 던지기만 하면 들어간다.
그게 무진장 어렵고 효율이 나오질 않아서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는 거지만.
철썩!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공.
이번 시리즈 내내 레너드는 점퍼로 재미를 보고 있었다.
멜로가 수비에만 집중하고 있음에도 그를 완전히 제어하기는 어려웠다.
“속공!”
림을 통과하고 떨어져 내린 공을 러브가 잡아 내어 우측면의 빌에게 연결했다.
빌은 빠르게 드리블하며 질주.
그대로 페인트 존까지 진입하여 레이업으로 마무리를 하려 했으나 마크맨인 에이브리 브래들리의 집요함이 한 수 위였다.
탁! 블락으로 인해 백보드에 맞고 흘러나온 공.
그 공을 잡아 낸 던컨은 아직 백코트를 하지 못한 고베어를 포착했다.
고베어를 향해 부웅 날아가는 롱패스.
“골 밑만 틀어막아!”
우리는 부랴부랴 최소한의 수비를 시도했다.
고베어가 덩크를 하지 못하도록 러브가 골 밑을 지킨 것.
이로 인해 고베어는 쇼트 코너 부근에서 와이드 오픈 찬스를 맞이했다. 러브는 컨테스트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상황.
본래라면 여기서 쇼트 점퍼를 쏴서 성공시키는 게 맞았지만, 고베어는 그 부분에 자신이 없었다.
하여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공을 골대에 올려놓으려 했다. 레이업과 훅샷 사이에 있는 무언가라고 할까.
자리만 지키고 있던 러브는 웬 떡이냐며 폴짝 뛰어 컨테스트를 가했다.
이 영향인지 고베어가 시도한 어중간한 레이업은 림을 맞고 맥없이 흘러나왔다.
이걸 백업해 들어오고 있던 요키치가 캐치.
빠득! 요키치는 이를 악물고는 한 손으로 강한 패스를 쏘았다.
자기 라인에서 상대 라인까지 날아가는 터치다운 패스.
이 공은 상대 좌측 코너로 들어가고 있던 내게 향했다.
“젠장!”
속공 과정에서 나를 놓치고 만 파커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골 밑으로 향했다. 완전히 놓친 상황이니 그냥 박스 아웃을 해서 리바운드나 잡겠다는 거다.
이에 빌도 리바운드를 하기 위해 골 밑으로 향했으나, 내가 그에게 손짓했다.
“그냥 백코트해도 돼.”
“핫…!”
어차피 리바운드 상황은 안 나올 거라는 내 신호에 빌은 피식 웃으며 뒷걸음질을 치며 백코트를 한다.
이런 쇼맨십에 벤치 선수들도 벌떡 일어났다.
만약 여기서 내가 3점을 놓친다면 우스운 상황이 되겠지만, 지금 이 흐름에서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와이드 오픈 찬스에서 던진 3점.
나는 공을 던지자마자 결과를 보지도 않고 백코트를 했다.
슈팅의 결과는 벤치 선수들의 반응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컴 오오오온!”
타월을 흔들며 펄쩍 뛰는 벤치 선수들.
남은 시간은 51초.
포포비치 감독은 곧장 타임아웃을 부르며 흐름을 끊었다.
“호우!”
“렛츠 고, 리!”
내가 돌아오자 벤치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격정을 표했다.
조금 전 내 쇼맨십이 은근히 먹혔는지 경기장의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이는 샌안토니오 팬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스티븐스 감독은 못 말리겠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곧바로 작전판을 들었다.
“상대는 빠른 공격을 시도할 거다. 최대한 많은 공격 기회를 얻으려 할 거야.”
스코어는 51-55.
감독님은 상대의 빠른 공격을 역이용해서 쿼터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다.
하여 요키치와 러브를 빼고 가넷과 미들턴을 투입했다.
멜로가 파워 포워드 자리로 가는 스몰 라인업이다.
“조금만 더 힘내라! 다 왔어!”
샌안토니오의 공격으로 재개되는 경기.
우리 진영에서 공격을 재개한 샌안은 지노빌리를 투입하여 파커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줄여 주었다.
파커는 45도 깊은 곳으로 빠져나와 나를 위크 사이드로 유인했다.
공격은 그를 대신하여 지노빌리가 주도했다.
지노빌리는 던컨의 스크린을 받으며 돌파.
이후 멜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레너드에게 공을 연결했다.
오늘 야투 감각에 자신이 있던 레너드는 별다른 모션 없이 그대로 점프하여 슛을 성공시킨다.
53-55. 남은 시간 41초.
시간을 본 나는 투포원의 사인을 보냈다.
하여 외곽에서 퀵 샷을 시도하게 됐는데, 내게 가해지는 견제가 상상 이상이었기에 야투는 비교적 견제가 덜한 미들턴이 던지게 됐다.
그러나 미들턴이 던진 3점은 림의 끝을 맞고 튀어나왔다.
이 시점의 시간이 33초.
여기서 샌안토니오가 쿼터 마무리를 위한 승부를 걸어왔다.
33초 상황에서 투포원을 시도한 것이다.
“흡!”
리바운드를 잡아 낸 던컨은 이를 악물며 전방으로 긴 패스를 던졌다.
우리 공격도 투포원을 위해 외곽에 있던 가드들이 달린 상황이었기에 자연스레 뒤에 남아 있게 된 건 빅맨인 가넷과 고베어였다.
고베어는 폴짝 뛰어 공을 캐치.
공을 잡고 착지한 지점이 자유투 라인 부근이었다.
가넷은 혀를 날름거리며 수비 태세에 들어갔다.
고베어는 미드레인지 공격 옵션이 없으니 골대 쪽으로 들어오는 움직임만 막으면 된다는 마인드였다.
고베어도 그 승부를 마다하지 않았다.
퉁! 퉁! 엉덩이로 두 번 정도 밀고 들어가더니 쏜살같이 몸을 돌려 골대를 노렸다.
“…!?”
이 저돌성과 속도가 예상을 상회했는지 가넷은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쳇!”
그는 2점을 그냥 주기보단 자유투를 주는 게 더 낫다고 판단. 고베어의 슈팅 핸드를 강하게 후려쳤다.
일반적으로는 맞는 판단이었다.
고베어의 자유투 성공률은 6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판단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에는 고베어의 분노치가 너무 높았다.
가넷의 파울에 바짝 약이 오른 고베어는 착지하자마자 가넷과 이마를 마주 대며 욕설을 쏘아붙였다.
다혈질인 가넷도 눈을 부라리며 응수.
고베어는 다른 선수들이 말리러 오기도 전에 퍽! 가넷을 양손으로 강하게 밀쳐 버렸다.
맥없이 바닥을 뒹구는 가넷. 이후 죽여 버리겠다 소리치며 일어났지만, 벤치에 있던 러브가 튀어나와 그를 꽉 붙잡았다.
삐삐삐삐삐! 바쁘게 휘슬을 불며 상황을 정리하는 심판들.
고베어는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듯했다.
심판에게 억울함을 표출하며 사정을 했지만, 심판들은 단호하게 플레그런트 파울을 선언했다.
포포비치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파커도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경기는 진행이 됐다.
일단 슈팅 파울로 얻은 고베어의 자유투 두 개가 먼저였다.
덜덜! 고베어는 손가락 끝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여기서 자유투를 놓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뻔했다.
그냥 잘 참고 자유투 두 개를 넣었으면 55-55의 동점 상황이었으니까.
팅! 그 우려대로 자유투 초구가 림 안쪽을 맞고 높이 튀며 실패로 돌아갔다.
힘이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자유투를 잘 던지는 선수가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헤이! 루디!”
던컨이 고베어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주문했다.
보아하니 긴장하지 말고 힘을 빼고 던지라는 조언인 듯했다.
하여 2구째는 힘을 빼고 던진 모양이지만, 너무 힘을 뺐는지 에어볼이 되며 흘러나온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백코트하는 고베어.
이후 플레그런트 파울로 얻은 우리의 자유투 두 개.
이건 내가 던지기로 했다.
우우우우! 압도적인 야유 속에서 침착하게 두 개를 모두 성공시키며 스코어는 53-57.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4점 차로 점수가 벌어지고 공격권까지 우리에게 있었다.
남은 시간은 26.3초.
우리는 24초를 전부 사용하며 공격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외곽으로 크게 나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이후 샷 클락 5초가 남은 시점에서 템포를 끌어올리며 마크맨인 브래들리의 옆을 파고들어 가 질주했다.
이후 좌측 엘보 지역에 있던 가넷에게 공을 연결하며 계속 질주.
공을 받은 가넷은 논스톱으로 공을 골대 쪽으로 던져 올렸다.
동료들의 스페이싱으로 인해 골 밑이 한산한 상황이었기에 이런 공격이 가능했다.
‘근데 너무 높잖아…!’
앨리웁 덩크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톡! 농구공의 밑을 손가락으로 툭 쳐서 방향을 바꿨다.
이것이 퉁! 퉁! 백보드에 맞은 뒤 림에 두 번 튕기고는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왓 더…?”
“뭐야 방금? 약속된 플레이야?”
동료들도 의문을 표하는 앨리웁 플레이.
가넷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웃고 있다.
이후 샌안토니오는 타임아웃까지 써 가며 마지막 2초를 살려 보려 했으나 지노빌리의 야투가 빗나가며 그대로 2쿼터를 끝내야 했다.
스코어 53-59. 전반 마무리를 말끔하게 해낸 우리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 진출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