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날레 (2)
뻥! 뻥! 라커룸은 솟아오르는 샴페인으로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선수들은 고글을 착용한 채 서로에게 샴페인을 쏘아 대고 있었고, 몇몇은 병나발을 불며 샴페인을 들이켜고 있었다.
구단 최초의 파이널 진출이자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우승.
사실 선수들은 물론이고 구단주조차 구단의 과거 역사에는 큰 애착이 없었기에 별 감흥이 없었으나 지역 팬들이 느끼는 감회는 남달랐던 모양이다.
팬들은 경기가 끝나고서도 계속 경기장을 지키고 있었다.
“리! 뭐 하고 있어! 즐겨야지!”
가넷이 내게 샴페인을 쏘며 집중 공격 명령을 내리자 러브, 요키치, 멜로가 합심하여 샴페인을 쏘아 댔다.
“풉! 푸훕!”
나는 반격을 가해 보려 했으나 샴페인을 쏘는 법이 익숙하지 않아 속절없이 당해야만 했다.
겨우 그 공격을 막아 내고 있자니 빌이 새로운 샴페인을 내밀어 왔다.
“여길 엄지로 누르고 쏘는 거야! 자!”
“됐어, 괜히 쏘면 다시 맞을 텐데.”
“하핫, 그것도 그렇지.”
빌은 샴페인 병을 들이켜며 말했다.
“정말 수고했다. 이번 시리즈를 이길 수 있었던 건 전부 네 덕이야.”
“무슨 소리야. 다 같이 이긴 거지.”
“그것도 그렇지만 말이야. 만약 내가 너였다면 론도에게 리딩 자리를 주진 않았을 거야.”
이걸 옆에 있던 가솔이 들었는지 끼어들어 왔다.
“그게 사실이긴 하지.”
가솔은 론도와 멜로, 둘을 곁눈질하고는 말을 이어 간다.
“성현, 네가 양보해 주는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에 론도와 멜로가 자기 역할을 받아들인 거야. 팀의 부동의 1옵션 선수가 양보를 해 주니 그들도 굽힐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신기하긴 했다. 론도는 둘째 쳐도 카멜로 앤서니는 득점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궂은일을 도맡아 해 줬다.
그는 이번 시리즈에서 마치 데니스 로드맨처럼 플레이를 해 줬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 냈고, 그중에는 공격 리바운드도 꽤나 많았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생각하면 팀을 위해 희생했음을 알 수 있다.
가솔과 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먼저 솔선을 했기에 멜로도 그렇게 해 준 거라는 뜻이다.
“뭐, 본인 스스로가 우승에 대한 열망이 큰 것도 있겠지만.”
툭! 툭! 가솔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가넷은 아마 다음 시즌에 팀에 남아 있지 않을 거야. 그렇담 새로운 주장이 나와야겠지. 난 그게 네가 될 거라고 생각해.”
“제가 주장이요…?”
전생에서도 주장을 해 본 건 은퇴 직전 두 시즌뿐이었다.
그땐 팀 내 핵심인 용병 선수와 친분이 두터웠고 후배들도 나를 따라 줬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주장의 의미는 그것과는 달랐다.
팀을 끌고 올라가야 한단 의미의 주장이니 훨씬 힘들 게 분명했다.
“그래, 다음 시즌부터 클리퍼스는 너의 팀이야. 나도 다음 시즌은 더 뛸 테고, 경우에 따라 내 동생도 팀에 합류를 하게 될 테니 잘 이끌어 줘.”
“너무 부담 주는 거 아니에요?”
“하하, 일부러 부담을 주는 거야. 그래야 네가 더 잘 준비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게 가솔, 빌과 환담을 나누던 차.
상황이 정리됐다고 판단한 감독님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초를 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내일 훈련을 비롯한 다음 일정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한다.”
여기서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여유는 없었다.
우리는 이미 시간에 쫓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부 컨파를 4-0으로 스윕하고 이미 파이널 경기를 준비하고 있던 보스턴에 비해,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일밖에 없었으니까.
시간적인 차이만 놓고 보면 보스턴은 우리보다 일주일을 더 쉬고, 준비할 수 있었던 셈이다.
물론 휴식이 길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시즌 초반이나 중간이면 모를까, 시즌 말미에 오랜 시간을 쉬다 보면 몸이 쿨 다운 상태에 들어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적인 야투 난조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비디오 분석은 비행기 내에서 하기로 했다. 내일 보스턴의 분석 영상이 담긴 태블릿을 나눠 줄 테니, 반드시 수령하도록.”
비행기란 말에 선수들은 떫은 표정을 지었다.
골든 스테이트 원정은 거리도 짧고 시차도 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피로감이 없었으나 보스턴은 달랐다.
서부 끝에서 동부 끝까지 비행을 해야 하고, 시차도 4시간이나 난다.
“내일은 오전에 있을 간단한 회복 훈련이 끝나면 곧장 보스턴으로 향할 거다. 만약 가족들을 보스턴까지 데려갈 생각이라면, 프런트에서 도움을 줄 테니까 미리 얘기하도록.”
라커룸의 분위기는 어느덧 가라앉아 있었다.
축제의 공기는 온데간데없이 선수들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 * *
라커룸 미팅을 끝마치고 퇴근을 한 나는 주은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선수 관계자들도 자그마한 파티를 하고 있는지 샴페인병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그렇게 다들 술을 마시고 있는 가운데, 주은이는 미소만 지은 채 분위기를 맞춰 주고 있었다.
“주은아.”
“아, 자기야!”
내가 나타나자 다들 휘파람을 불거나 MVP 챈트를 보내며 환호했다.
“지은아, 아빠 왔어! 집에 가자!”
“이잉…. 더 놀면 안 돼?”
“더 놀고 싶어? 자기야, 어쩌지?”
나는 지은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우리 딸, 집에 가서 아빠랑 게임기 가지고 노는 건 싫어?”
“…좋아! 게임 할래!”
“그래, 그럼 집에 가자. 애들한테 안녕 해.”
“응!”
그렇게 주차장으로 향하자 주은이가 코를 찡긋하며 속삭인다.
“고마워, 자기야. 나 때문에 집에 가자고 한 거지?”
“그 자리에서 술을 못 마시는 건 고역이잖아.”
“헤헤, 사실 한 모금은 마셔 봤어. 우리 둘째도 아빠 이긴 거 축하하라고.”
“나 참.”
집으로 가면서는 파이널 일정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얘기를 하면 구단에서 비행 편을 준비해 준다나 봐. 경기 티켓도 몇 개 확보해 놓은 모양이고.”
“아쉽다. 나도 될 수 있으면 가고 싶었는데.”
임신 초기이니만큼 조심을 해야 했다. 굳이 장거리 비행을 할 이유는 없었다.
주은이는 골똘히 생각하고는 말한다.
“선영이는 데려갈 수 있지 않아? 선영이 모레 LA에 도착한다던데. 우리 오빠들도 그때 올 거야.”
“그건 조금 그렇잖아. 지은이가 선영이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데 내가 데려갈 수는 없지.”
“지은이도 같이 데려가면 되지.”
“그럼 주은이 네가 외롭잖아.”
“…응, 엄청 외로워.”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솔직하게 인정을 하면서 내게 몸을 기대 온다.
“4-0으로 빨리 이기고 끝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1, 2차전 꼭 이겨.”
“하하, 노력해 볼게.”
집에 와서는 지은이와 놀아 주려 했지만 역시나 애들이 다 그렇듯, 시간이 늦어지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방으로 데려가려 하면 게임을 하겠다며 투정을 부렸기에 완전히 잠들 때까지 마루 소파에서 재우기로 했다.
“후우…!”
피로가 쏟아져 왔다.
‘이제 마지막 무대인가.’
꿈에 그리던 NBA 파이널.
솔직히 아직 실감은 나지 않았다.
파이널이란 무대가 어떤 의미로, 어떤 무게의 압박으로 다가올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그 부분이 우리 팀의 불안 요소이기도 했다.
가넷과 가솔, 론도를 제외하면 파이널 무대 경험이 있는 선수가 없다.
그 무대의 첫 경험을 원정팀의 지옥이라 불리는 TD 가든에서 하게 됐으니, 미지의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 *
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우리는 그 안에서 영상 분석 훈련을 진행했다.
선수들은 보급받은 태블릿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코치들은 전술판을 설치하며 준비를 했다.
나도 태블릿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태블릿 안에는 공통 훈련 자료 외에도 포지션에 따른 자료가 준비돼 있었다.
내 태블릿에 있는 자료는 크리스 폴, 카일 라우리, 스펜서 딘위디, J.R. 스미스에 관한 것이었다.
‘백코트 뎁스가 상당한걸.’
폴과 라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딘위디와 스미스도 그랬다.
특히 스미스는 식스맨으로서 절정의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르브론의 킥 아웃 패스를 잘 받아먹으며 트레이드 이후 시즌 평균 득점 12.5점을 기록하며 상당한 효율을 보여 주었다.
만약 론도가 살아나 주지 않았다면, 론도와 J.R.의 트레이드는 보스턴의 일방적인 이득으로 끝날 뻔했다.
“너희들도 정규시즌에 당해 봐서 알겠지만, 보스턴은 파워풀한 팀이다.”
스티븐스 감독이 강조하듯 말했다.
“그게 플레이오프에 들어왔으니 그 터프함은 상상을 초월할 거야.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TD 가든을 등에 업고 더욱 터프하게 플레이할 수도 있어.”
홈 콜 여부에 대해서 NBA 사무국과 심판진은 강하게 부정하곤 하지만, 팬들은 물론이고 선수들도 공공연한 치부 같은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도 홈경기에선 이득을 볼 때가 종종 있다. 그 부분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TD 가든은 그 악명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괜히 원정팀의 지옥이라 불리는 게 아닌 셈.
“보스턴은 그 부분을 확실하게 이용할 거다.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지?”
파울을 유도할 거라는 뜻.
보스턴의 팀 색깔만 봐도 그게 당연했다.
르브론 제임스와 아데토쿤보의 돌파 옵션, 엠비드의 골 밑 공격. 크리스 폴과 라우리 또한 영리하게 파울을 유도할 수 있는 선수다.
그렇게 파울이 쌓이다 보면 자유투를 많이 주게 될뿐더러, 파울 트러블에 걸리면서 선수들이 제대로 뛸 수 없게 된다.
“미리 말해 두지만 보스턴과의 경기는 전술적인 대결이 되진 않을 거다. 보스턴의 팀 전술은 단순하거든. 우리의 대처 방법도 자연스레 단순해질 거고.”
골든 스테이트는 그 전술 시스템이 독특하기 때문에 우리도 여러 전술과 전략으로 대처를 해야 했지만, 보스턴은 달랐다.
보스턴은 그저 순수하게 체급이 높은 팀이었다. 그렇기에 더 상대하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이번 시리즈에선 빅맨들이 계속 바뀔 거다. 파울 트러블에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니까. 그러니 공수의 연결 고리가 되어 주는 스윙맨들이 필요하지.”
그러면서 스티븐스 감독은 멜로와 나를 지목했다.
“리 그리고 멜로. 너희 둘은 스윙맨 역할을 수행해 줘야겠다.”
나는 그렇다 치고, 본래 스윙맨 역할을 수행하던 멜로까지 지목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상대 프런트코트 선수들의 견제를 위한 수비적인 역할, 멜로는 세컨 볼 핸들러로서의 역할이었다.
선발 라인업에 빅맨 두 명이 들어온다고 하면 자연스레 론도가 벤치로 가게 되면서 볼 핸들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요키치나 가솔이 제한적으로 볼 핸들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는 하나, 둘은 정적인 볼 핸들러들이다.
보스턴의 높이와 에너지 레벨, 오프 볼 수비 능력을 감안하면 그 둘이 효율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브래들리 빌도 있긴 하지만, 빌은 전술적인 스페이싱을 위해 측면에 위치해야 하니 볼 핸들러로 뛸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스티븐스 감독은 멜로에게 세컨 볼 핸들러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멜로, 네 역할이 뭣보다 중요하다.”
“…알고 있습니다.”
르브론 제임스와의 일대일 매치 업.
만약 멜로가 르브론을 완벽하게 제어한다고 하면 흐름이 우리 쪽으로 올 것은 자명했다.
반면 멜로가 르브론의 제어에 실패할 경우, 경기는 굉장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리, 너는 그때를 위한 보험이다. 만약 제임스가 파고들어 온다면 네가 백업을 해서 골 밑을 지켜라. 그 경우 라우리가 오픈이 되고, 제임스의 성향상 그쪽으로 킥 아웃 패스를 뿌리겠지만…. 그 부분은 경기 당일 라우리의 슈팅 감각을 보면서 맞춰 가도록 하지.”
라우리 정도의 슈터를 오픈으로 줄 수밖에 없는 억울한 상황.
이것이 바로 순수 체급의 차이, 르브론 제임스라는 선수의 위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