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 유어 페이스-209화 (209/250)

신경전 (2)

삐이이이!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

스테이플스 센터의 팬들은 만세를 지르며 환호했다.

벤치 선수들도 코트에 나와 승리를 격하게 자축했다.

나는 가벼운 탈진감에 멍하니 서 있었다.

오늘 경기에선 상대가 내게 수비 부담을 주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였던 만큼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42분에 달하는 출전 시간도 부담이 됐고 말이다.

‘그래도 이겨서 다행이야.’

이걸로 시리즈 동률. 홈 5, 7차전 홈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는 보스턴이 여전히 유리한 상황이긴 했지만, 2-0으로 몰렸던 시점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셈이었다.

“리, 수고했다.”

스티븐스 감독이 물과 수건을 내밀며 내 등을 쓰다듬었다.

“오늘 경기를 통해 돌파구가 보였어. 너도 느꼈겠지?”

“…예.”

요키치가 보여 준 의외의 활약과 보스턴의 팀워크다.

먼저 요키치는 오늘 경기에서 야투 8/12라는 극강의 효율을 보여 줬다. 3점은 4/7로 성공률 50%를 넘겼고, 페인트 존에서 시도한 야투도 4/5로 빅맨다운 수치를 보여 줬다.

그렇게 절치부심을 한 러브가 11분 출전에 그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러브는 그 11분 동안 야투 3개를 시도해 3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모양새만 보면 요키치에게 완전히 밀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러브도 상심이 컸는지 환호하는 동료들을 지나쳐 먼저 라커룸으로 들어가 버렸다.

두 번째는 보스턴의 팀워크.

흐름이 좋을 때의 보스턴은 크리스 폴과 르브론, 두 명의 볼 핸들러가 적절히 조화를 가져가며 공격을 이끌었지만, 흐름이 약화되고 조급해지자 개인플레이가 많아졌다.

르브론은 우격다짐식 드라이브 앤 킥. 폴은 빅맨을 미끼로 던져 두고 직접 미드레인지 점퍼를 시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 공격 패턴들이 충분한 효율을 보여 줬기에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 공격 패턴에선 쿤보와 엠비드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우리도 수비하기가 편해졌다.

“그게 5차전 돌파구가 될 거야. 오늘은 수고했어, 내일은 훈련이 없을 거야. 저녁에 보스턴으로 이동할 테니 그때까지 푹 쉬어라.”

경기장은 코트 인터뷰 준비로 부산했다.

경기 MVP는 내가 뽑힌 모양이었지만 나는 사기 진작 차원에서 인터뷰를 요키치에게 밀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요키치를 눈으로 찾았을 때였다.

요키치는 엠비드와 눈을 마주한 채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 다 표정이 험상궂은 걸 보면 좋은 얘기는 절대 아닌 듯했다.

엠비드는 오늘 자존심의 상처를 받은 듯했다.

러브도, 가넷도, 가솔도 본인이 제어를 했지만, 요키치만큼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물론 요키치가 엠비드와 직접 대결을 펼친 장면은 드물었지만 어쨌든.

엠비드는 그게 심기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는 요키치를 향해 으르렁거렸고, 요키치도 질세라 눈을 마주하며 맞받아치고 있었다.

이게 양 팀 선수들의 충돌로 번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헤이! 헤이-!”

상황을 눈치 챈 J.R. 스미스가 황급히 뛰어와 엠비드를 잡아끌었다.

우리 쪽에서도 내쉬가 요키치를 뒤로 잡아끌었던 반면 가넷은 엠비드를 죽일 듯이 다그쳤다.

가넷은 엠비드의 얼굴 바로 앞에 검지를 내밀며 삿대질을 했다.

이에 엠비드는 눈이 돌아 버리며 가넷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라우리가 육탄 방어를 하며 말렸다.

여기서 엠비드와 가넷이 동반으로 출전 정지 징계를 받는다고 하면 클리퍼스 쪽은 아쉬울 게 없었으니까.

엠비드가 나오지 못하게 되면 요키치는 물론이고 가솔이나 러브를 같이 투입하면서 오히려 클리퍼스 쪽이 페인트 존을 장악해 버릴 수도 있었다.

“조엘! 참아! 참으라고! 여기서 싸우면 놈들이 좋아할 거야!”

빠드득! 엠비드는 이를 악물며 분을 삼키고는 몸을 돌려 라커룸 복도로 향했다.

가넷은 못내 아쉬운지 어깨를 으쓱이고는 요키치를 진정시켰다.

‘조만간 크게 한번 터지겠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나와 르브론의 신경전이었음을 감안하면, 나도 크게 한몫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 * *

[승부의 균형 맞춘 클리퍼스. 역시 강하다!]

[세르비아의 거인. 보스턴을 짓밟다. 니콜라 요키치의 깜짝 활약.]

[크리스 폴과 엠비드의 언쟁. 닥 리버스 감독은 “경기 중에 나온 의사소통에 불과. 전혀 문제없다.”]

[케빈 러브를 어찌할꼬. 일각에선 트레이드 가능성 제기.]

퇴근길에 나온 기사들이었다.

다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게 많자, 기뻐하는 듯 보였다.

보스턴이 4-0으로 스윕을 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무슨 놈의 기사가 이렇게 빨리 나오는 거야?”

브래들리 빌도 조금 전에 있던 라커룸 인터뷰를 떠올리며 진절머리를 쳤다.

“하여간 기자들이 문제라니까. 러브가 자리에 있는데도 요키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다니….”

“뭐, 그 반응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더 악질이라는 거라고.”

우리는 선수 관계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주은이가 빌의 여자 친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미칼라!”

빌이 연인을 향해 손을 흔들자 여성이 달려와 빌에게 안겨 진하게 입맞춤을 했다.

빌은 씨익 웃고는 작별을 고했다.

“그럼 내일 보자고.”

주은이는 둘의 진한 스킨십에 제법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도 할까?”

“뭐, 뭐!? 정말로!?”

주은이는 허둥지둥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쭈뼛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와 고개를 들었다.

“자기가 허리 좀 낮춰 줘야지…!”

“뭘 진짜로 하려고 그래.”

“빠, 빨리…! 여기선 이게 평범한 거란 말이야.”

슬쩍 입을 맞춰 주자 주은이는 만족한 듯 배시시 웃는다.

“근데 선영이랑 지은이는 어디 있어?”

“선영이는 경기 끝나고 어머님이랑 할리우드 구경하러 갔어. 오늘은 거기 호텔에서 묵고 온대. 지은이는 차에서 자고 있고.”

“그렇구나, 우리도 어서 집에 가자.”

차량에 탑승하자 지은이는 부스스 눈을 뜨더니 안아 달라며 손을 뻗었다.

그렇게 품에 안아 주자 다시금 자기 시작한다.

주은이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내게 묻는다.

“근데 자기야, 7차전은 어떻게 할 거야? 듣기로는 티켓 구하기가 엄청 힘들 거라던데.”

“그러게.”

당초 7차전 티켓의 가격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다들 보스턴이 못해도 6차전 안쪽으로 승부를 결정지을 거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2-2 동률이 되면서 7차전 티켓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티켓을 구할 수 있겠어?”

“그게 나도 쉽지가 않더라고. 보스턴 홈경기라서 그런지….”

선수들이 얻을 수 있는 티켓도 한계가 있었다. 오히려 특혜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중요한 경기에선 선수 관계자들에게 티켓을 주려고 하지 않는 편이었다.

“프런트한테 부탁하면 한 장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거기에 가넷이랑 론도가 TD 가든 시즌권을 가지고 있다더라고. 둘한테서 빌리면 세 자리는 어떻게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너랑 선영이랑 지은이까지 셋이 될 수 있긴 한데… 괜찮겠어? 비행기를 타기는 조금 그렇잖아.”

“괜찮아, 그럴 줄 알고 산부인과에 가서 물어봤거든. 의사 선생님이 괜찮대. 비행기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 주셨어.”

주은이는 7차전만큼은 반드시 응원하러 가야 한다며 직관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 마음이 고맙기도 하니 나도 힘을 써 보기로 했다.

“그럼 전용기를 준비해 줄게. 다 같이 타고 와.”

“전용기!? 그거 엄청 비싸지 않아?”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니까. 어쨌든, 편하게 타고 와. 그리고 돌아갈 때는 같이 차 타고 대륙 횡단 여행이라도 하면서 천천히 돌아오자.”

“…!”

“근데 우리가 5, 6차전을 이기면 그럴 필요는 없겠네.”

“어!? 그, 그래도 여행 가자. 응? 자, 지은이도 여행 가고 싶지?”

지은이는 잠에 취한 채로 ‘여행 갈 거야….’라며 대답을 한다.

이에 나도 주은이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보스턴으로 떠나는 날.

6차전 일정이 확정이 된 만큼 대부분의 가족들은 LA에 남아 있기로 했다.

선영이만이 동부 관광을 하고 싶다며 수영 아줌마, 병식 아저씨와 함께 같이 가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되니 지은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나도 갈 거야! 아빠만 선영이 언니랑 놀러 가고 치사해! 나도 갈래!”

엉엉 울며 떼를 쓰는 지은이.

주은이가 달래 주고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은이는 자기만 따돌림을 당하는 거라고 착각했는지 설움이 폭발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아빠는 놀러 가는 게 아니라니까. 우리 딸, 뚝!”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은이.

나는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어쩔 수 없네. 아저씨, 어린애 비행기 표 하나 더 얻을 수 있어요?”

“글쎄다. 비행기 시간을 조금 늦춰야 될 수도 있긴 한데. 아마 가능할 거야.”

“그럼 지은이도 데려가죠 뭐.”

이에 선영이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 오빠! 괜찮아, 지은이는 내가 설득할게.”

보아하니 주은이를 생각해 준 모양이다.

당사자인 주은이는 내게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자기, 전에 나랑 한 약속 잊었어?”

“응? 무슨 약속?”

“가족끼리 놀러 갈 때는 무조건 전부 같이 가야 한다고 했던 거.”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않아?”

“똑같아!”

주은이는 결심을 한 듯 소리친다.

“기다려! 나도 갈 거니까. 지금 당장 휴가계를 낼게.”

“뭐!?”

주은이는 홈 6차전을 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같이 보스턴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이렇게 되면 주은이나 지은이, 모녀 중 하나를 달래 줘야 했는데, 모전녀전이라고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막기 힘들었기에 그냥 둘 다 데려가기로 했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봐. 기왕 그럴 거면 당장 전용기를 알아볼게.”

“전용기가 그렇게 갑자기 뚝딱 준비가 되는 거야?”

“발머 구단주님한테 부탁을 하면 되거든. 그분의 전용기를 빌리면 돼.”

다행히 발머 구단주는 흔쾌히 전용기를 빌려주기로 했다. 거기에 다른 선수들의 가족들까지 태워 주기로 하면서 비행기는 순식간에 만석이 됐다.

그렇게 전용기를 타고 보스턴으로 이동하기로 결정이 내려지자 지은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여행을 간다며 펄쩍 뛰었다.

“선영이 언니는 뉴욕에 가 봤어?”

“가 봤지! 자유의 여신상도 봤다?”

“우와! 나도 보고 싶어!”

“그럼 보스턴에 갔다가 뉴욕이랑 필라델피아도 가 보자. 7차전까지 있는 거면 일주일은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시간은 충분할 거야.”

“응!”

주은이는 상황이 커진 것에 대해 면목 없어 했지만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지 적극적으로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자기야, 이렇게 된 거 무조건 7차전까지는 가야 되는 거 알지?”

“그러게, 어깨가 무거워졌네.”

5, 6차전을 져 버리면 가족들은 보스턴에서 미아가 된다.

5, 6차전을 전부 이긴다면야 기쁜 마음으로 내가 보스턴으로 날아가 여행을 즐길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가족들이 시무룩하여 LA로 돌아올 것이다.

그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한 경기 이상은 잡아 내야만 했다.

인 유어 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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