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초 (1)
마지막 버저가 울리면서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난리를 피우는 클리퍼스 선수들과 코치들, 거센 야유를 보내는 TD 가든의 팬들, 보스턴 선수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크리스 폴은 마지막 상황에서 성현이 파울을 범했다며 거칠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
닥 리버스 감독도 점잖게 파울이 있지 않았냐 물었지만, 고개를 흔드는 심판의 모습에 체념하듯 눈을 질끈 감고는 선수들을 추스르기 시작한다.
이번 시리즈 내내 클리퍼스 선수들과 신경전을 벌였던 엠비드는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 있었고, 아데토쿤보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라커룸을 향해 쓸쓸하게 걸어갔다.
반면 클리퍼스 쪽을 축하해 주는 선수들도 있었다.
르브론은 카멜로 앤서니와 진득한 포옹을 나누며 덕담을 건네고 있었고, 카일 라우리 그리고 전 동료였던 J.R. 스미스도 클리퍼스 선수들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이 해낼 줄 알았어. 축하한다, 형제들.”
스미스는 성현에게 축하를 건네더니 이후 가넷과 포옹을 나눴다.
“오, 쩨이알. 너도 여기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끝나는 거지? 그럼 클리퍼스로 돌아오는 게 어때?”
“난 지금 생활에 만족해. 제의가 오면 재계약을 할 생각이야. 그런 당신이야말로 앞일을 걱정해야지.”
가넷은 앞일이란 말에 복잡한 내색을 보였지만, 곧 표정을 풀고 껄껄 웃는다.
브래들리 빌도 스미스와 핸드 셰이크를 나누고는 와락 껴안는다.
“J.R., 네가 우리 팀에 해 준 헌신을 잊지 못할 거야. 그 역주행 턴 어라운드 점퍼도 그렇고.”
“하하! 다음에 한 번 더 꽂아 줄게. 축하한다, 브래드.”
“고마워. 그런데… 저것 좀 어떻게 해 주면 안 돼?”
아직까지도 심판에게 항의를 하고 있는 폴이었다.
스미스는 난처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르브론이 폴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몸을 끌어당긴 후 라커룸 복도 쪽으로 밀었다.
“그만해, 이미 끝났어.”
“….”
폴도 내심으론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주장인 르브론이 말리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라커룸으로 돌아갔다.
르브론은 복잡한 마음이 담긴 한숨을 쉬고는 성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취재진은 올 것이 왔다며 침을 꼴깍 삼킨다.
르브론은 성현의 손을 맞잡으며 상체를 가까이하고 귓속말을 했다.
“곧 크루저급 타이틀매치가 있다고 했지? 그것도 지지 마라. 거기서 져 버리면 우리가 초라해지니까.”
“…꼭 이길게요.”
“넌 어떻게든 지금의 이 승리를 더 위대하게 만들어야 돼. 그게 패자를 위한 승자의 의무야.”
“예. 수고했어요, 제임스.”
“그래.”
지금 이 승리를 충분히 즐겨라.
르브론은 그렇게 말하곤 주저앉아 있는 엠비드를 일으켜 세워 라커룸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보스턴 선수들이 승복을 하고 돌아갔음에도 강성 보스턴 팬들은 야유를 그치지 않았다.
특히 TD 가든의 팬들과 마찰이 있었던 론도 쪽은 8차전이라도 시작하려는 듯 언쟁을 벌이며 상황을 험악하게 만들었다.
그걸 가넷이 필사적으로 말리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추슬렀다.
그렇게 잡음이 사라지자, 코트는 클리퍼스 선수들의 독무대가 됐다.
선수들은 지급된 챔피언 모자를 쓰고 기쁨을 나눴다.
“컴 오오오온!”
“내가 뭐라고 했어! 우리가 이길 거라고 했지!?”
선수들은 부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연신 괴성을 질러 대고 있다.
가장 신나 보였던 건 러브였다.
이번 플레이오프 내내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는 지금에서야 그 마음의 짐을 전부 내려놨는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의 이번 파이널 시리즈 개인 기록은 평균 8.6득점에 2.3어시 7.4리바운드.
그와 경기 내내 부딪쳤던 엠비드가 17.8득점 10.4리바운드 2.4블락을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압도를 했으니 도무지 칭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5차전과 오늘 7차전에서 쏠쏠한 활약을 보이며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다만 그에 대한 구단 내부의 평가가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가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쿱착 단장은 러브에 대한 트레이드 계획을 확정 짓고 있었다.
이미 요키치가 러브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 플레이오프에서 증명된 상황이고, 곧 FA로 풀리는 마크 가솔까지 데려올 계산이었으니, 급여도 높고 아직 트레이드 가치가 높은 러브를 내보내는 게 이치에 맞았다.
그걸 통해 고갈 났던 드래프트 픽을 확보해 4~5년 후의 일도 계획을 하는 것이다.
만약 오늘 우승하지 못했다면 러브에게도, 팀에게도 최악의 이별이 됐을 테지만, 우승을 했으니 윈윈으로 끝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마주 보며 웃고 있는 내쉬와 가솔.
지난 시즌 레이커스에서 트레이드되어 온 둘은 결국 목표했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애초에 레이커스로 간 이유가 우승 때문이었던 내쉬는 돌고 돌아 그 염원을 이뤄 냈다.
그가 파이널 시리즈에서 뛴 시간은 전부 다 합해도 20분이 넘지 않았지만, 7차전 위닝 어시스트를 해내며 우승의 주역 중 하나로 남을 수 있게 됐다.
그가 뭣보다 만족하고 있던 점은 마지막 순간을 코트 위에서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가솔은 짓궂은 표정으로 말한다.
“파이널 7차전 결승 어시스트가 커리어 마지막이라니, 너답네, 스티브.”
“의외로 별 감흥은 없는걸.”
“무슨 소리야,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하핫, 그런가?”
가솔은 이번 파이널 시리즈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팀의 보컬 리더로서, 그리고 유틸리티 빅맨으로서 기여를 했다.
개인 통산 세 번째 우승을 거둔 그는 이번 우승에 남다른 의미를 느꼈다.
팀의 주축 옵션이 아닌 베테랑으로서 팀을 지탱해 준다는 느낌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곧 동생인 마크 가솔이 팀에 오는 만큼 다음 시즌도 이런 식으로 팀의 성공을 도우리라 마음먹었다.
카멜로 앤서니와 브래들리 빌도 우승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내쉬와 함께 무관 듀오로 불리고 있던 멜로.
내쉬의 패스를 받아 결승 득점을 올리며 숙원을 풀어낸 그는 감회 깊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넓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개인 기록도 화려했다.
1, 2차전은 조금 부진하긴 했지만 3차전부터 3점을 폭발시키더니 시리즈 평균 23.3득점과 3.4어시, 7.2리바운드로 절정의 활약을 펼쳤다.
수비에서도 르브론을 상대로 평균을 해 주면서 파이널 MVP까지 노려 볼 수 있는 성적이었으나 멜로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3점 성공률 43%로 평균 19.3점을 올려 준 브래들리 빌도 마찬가지.
기자들도 파이널 MVP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 성현을 집중 조명하고 있었다.
시리즈 평균 27.6득점에 9.2어시 6.3리바. 여기에 경기당 2.3개의 스틸과 1개의 블락도 있었다.
당장의 포커스는 만장일치가 나오느냐 나오지 않느냐 뿐. 이미 수상은 확정된 분위기였다.
* * *
“휴우!”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탈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NBA 파이널 우승이 내 일생일대의 꿈은 아니었다. 커리어의 목표였을 뿐이지, 이것에 목숨을 걸지는 않았다고 할까. NBA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한다고 할까.
다만 동료 선수들과 장기간 호흡을 맞추면서 우승에 대한 열망이 점점 강해져 갔다.
그걸 역대급 전력을 구축하고 있던 보스턴을 꺾으며 다 함께 이뤄 냈다고 하니 날아갈 듯 기뻤다.
“오늘 정말 엄청났어요, 리!”
클리퍼스 저지를 입은 꼬마였다. 동료 선수의 사촌 동생인 모양이었다.
“우승 축하해요!”
“그래, 응원해 줘서 정말 고마워.”
그 밖에도 선수들의 관계자들이 난입을 하며 코트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하! 잘했다, 성현아! 우리가 최고가 됐다고!”
최종훈이 만면에 가득한 미소로 나를 끌어안았다. 공동 구단주인 그는 팀의 성공에 고무됐는지 ‘투머치토커’ 기질이 폭발해 발머 구단주와 함께 선수들을 격려하며 코트를 누비고 있었다.
곧 선영이도 지은이의 손을 꼭 잡고 내게 달려왔다.
“축하해, 오빠! 오늘 진짜 쩔었어!”
“고마워, 근데 주은이는?”
“언니는 사람들 데려온다고 경기장 밖에 나갔어.”
“그랬구나.”
경기를 직관한 건 주은이 일행 외에는 구단주인 최종훈밖에 없었다. 주은이는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러 간 모양이었다.
지은이는 물끄러미 내 머리를 바라보고는 말한다.
“아빠, 나도 그 모자 써 보고 싶어.”
2015 NBA CHAMPS라고 자수가 돼 있는 클리퍼스 모자였다.
“나중에 쓰게 해 줄게, 지금은 아빠가 쓰고 있어야 돼.”
“나중에 꼭이야? 약속!”
“그래, 약속.”
“에헤헤.”
코트는 시상 준비가 한창이었다.
단상이 준비되자 트로피가 등장했다.
선수들은 무슨 의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트로피의 등장을 격하게 반겼다.
단상은 선수들과 팀 관계자들이 한데 섞여 자유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그 사람이 너무 많아 뒤늦게 도착한 주은이는 인파에 밀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을 정도.
그렇게 시상이 준비되자 커미셔너 아담 실버가 챔피언팀으로 클리퍼스를 호명하며 트로피를 구단주인 발머와 최종훈에게 넘겼다.
둘이 함께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자 환성이 울려 퍼졌다.
이후 트로피는 주장인 가넷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가넷은 자기가 들어야 할 것이 아니라는 듯, 곧바로 내게 넘겼다.
내가 트로피를 안아 들자 선수들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빨리 들어 올려!”
“번쩍 들라고!”
그 아우성에 떠밀려 트로피를 양손으로 들어 올리자 모두가 떠들썩하게 소리를 질렀다.
옆에 있던 선영이는 모든 포커스가 쏠리자 어쩔 줄을 몰라 했고, 지은이는 뭣도 모르고 신이 나서 펄쩍 뛴다.
이후에는 트로피가 다른 선수들에게 차례차례 넘어갔다.
그렇게 시상과 함께 인터뷰가 동시에 진행됐다.
단상 위에 올라 있던 인터뷰어가 스티븐스 감독에게 묻는다.
-구단 최초의 우승입니다! 이번 시즌에 대한 얘기를 해 주십시오!
“저는 이번 시즌보단 지난 시즌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갑자기 과거 얘기를 꺼내는 감독님.
“우리가 원 팀이 될 수 있었던 건, 지금 우승을 해낼 수 있었던 건 지난 시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지난 시즌에 다양한 시행착오와 갈등을 겪었고, 마지막엔 샌안토니오라는 벽을 만났죠. 그 과정에서 베테랑들과 어린 선수들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우리 코치들이 그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 이번 시즌을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잘해 줬기에 가능했던 우승이라는 얘기이군요.
“그렇게 해야만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선수들과 코치들, 그리고 팬과 프런트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시즌을 어떻게 성공으로 이끌었는가를 잘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차기 시즌, 차차기 시즌에도 좋은 영향을 줄 테니까요.”
‘이예에에!’ 하고 외치는 선수들의 환성이 스티븐스 감독에게 쏟아졌다.
그리고 선수들에 대한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마침내 파이널 MVP에 대한 호명이 있었다.
아담 실버 총재는 나를 지그시 응시하고는 씨익 웃었다.
선수들은 눈치껏 우승 트로피를 내게 넘겨줬다.
나는 그걸 왼팔로 든 채로 시상을 받았다.
“2015 NBA 파이널 MVP!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이견의 여지도 없습니다. 성현 리!”
내 오른팔에 안기는 파이널 MVP 트로피.
“MVP! MVP! MVP!”
“리-!”
MVP 챈트를 보내 주는 동료 선수들.
남아 있던 보스턴 팬들도 박수를 보내 줬다.
인터뷰어가 내게 마이크를 가져다 댔다.
-구단 최초의 파이널 우승과 동시에 정규시즌, 파이널 통합 MVP를 차지했어요! 환상적인 밤입니다! 소감을 말해 주시죠!
“아….”
잠깐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이 정리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 개인적으로는 베테랑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고 싶어요. 보통 팀의 분위기와 규율 같은 걸 주도하는 게 베테랑 선수들이거든요. 저는 우리 팀의 분위기가 30개 팀 중 최고였다고 자부합니다. 그게 우승으로 이어졌다고 봐요. 아, 결과적으로는 감독님과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건 가감 없는 진심이었다.
나 같은 동양인 선수가 NBA 팀에 적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 번도 불편한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유명한 복싱 선수란 배경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가넷을 비롯한 베테랑들이 팀 분위기를 잘 만들어 줬던 덕이다.
-팀 외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도 있을까요?
“그거라면 역시 저를 지탱해 준 가족들이겠네요. 제 엔터 사업이나 개인 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계시는 임병식 아저씨도 그렇고, 언제나 응원해 주시는 최종훈 회장님과 형님들, 그리고 외가 사람들, 복싱부 동생들과 친구들. 여기 있는 제 딸 지은이랑 동생 선영이도….”
주목도가 높아지자 선영이는 부끄러움이 한계치를 돌파했는지 내 등 뒤로 숨어 버린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참, 무슨 연예인들처럼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네.’
개인적으로 그런 수상 소감을 싫어하는 편이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이 이상 말하다간 끝도 없을 것 같았으니까.
결과적으로 누구 한 명을 빠뜨린 것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최고의 결과로 막을 내린 14-15 시즌.
이제 남은 건 크레이그 켐벨과의 크루저급 타이틀매치뿐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 경기는 일정도 잡히지 않은 상태였기에 당분간은 국내로 돌아가 방송 일이나 하며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인 유어 페이스